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살암시믄 살아져야 제주 사람

제주어·지역정서 이해하고 욕심 버린 생활 자세 갖춰야
등록 2016-08-03 20:32 수정 2020-05-03 04:28
박진창아 달리도서관지기(왼쪽)는 최근 자신의 고향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 달리 북카페를 열었다. 그 또한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홍창욱씨는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에서 제주 마을 주민들과 협업에 한창이다.

박진창아 달리도서관지기(왼쪽)는 최근 자신의 고향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 달리 북카페를 열었다. 그 또한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홍창욱씨는 ‘무릉외갓집’ 영농조합법인에서 제주 마을 주민들과 협업에 한창이다.

이주민들이 제주 잘 정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거꾸로 물었다.

“제주 이주민들이 제주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주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죠.”

제주 출신으로 제주대 사회학과에서 ‘제주사회론’을 가르치는 김준표 강사는 7월22일 전화 통화에서 명쾌하게 말했다.

제주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원주민들의 생활철학이기도 하다. “살암시믄 살아지매.”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뜻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면 살게 된다는 것. 버티고 견디는 삶이 제주 사람들의 삶인데, 그걸 지속하지 못해 떠난 사람은 제주 사람이 되지 못한다.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원주민 입장에선 그런 사람이 제주 사람이다.”

제주 사람이 되긴 힘들다. 2009년 제주도 이주 붐이 일기 시작하던 시점, 제주 시내에 달리도서관이 생겼다. 육지와 제주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목표로 각종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책과 방송에 소개되면서 제주 이주민들이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는 일이 잦아졌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를 떠났다가 2009년 다시 제주에 정착한 달리도서관지기 박진창아씨는 원주민과 이주민의 경계에 서 있다. 그는 7월26일 “이주 붐 초기인 2009년께는 제주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질문하는 사람을 종종 봤다. 친해지려고 말을 걸면 제주 사람들이 퉁명스럽거나 마음을 잘 내어주질 않는다는 불만이었다”고 말했다.

제주에는 아직 ‘육지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경계심이 남아 있다. 김준표 강사는 “제주 사람들이 처음 맞닥뜨린 육지 집단은 고려시대 이후 세금 걷으러 온 관리였다. 해방 이후엔 4·3사건과 한국전쟁 때 내려온 군경이다. 그때부터 생긴 집단적 트라우마가 육지 사람에 대한 배타적 감정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주민과 투자자가 몰려 땅값이나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면서 정작 원주민이나 이주민이 이사할 집을 찾지 못하는 상황 등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우려를 낳고 있다.

‘육지 사람’ 경계심 남아 있어

하지만 원주민들도 시내에서 외곽 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하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박진창아씨는 “시엣아이(제주 시내에 사는 아이들)가 리 단위 촌에 가서 살아도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걸 본 적이 있다. 어르신들이 불쑥 창 안을 들여다보거나 텃밭 잡초를 매지 않는다고 잔소리나 욕을 하고, 마당에 호의로 무를 던져두고 가는 경우에도 시내에 살다 이주해온 제주 사람조차 사생활 침해로 받아들여 적응에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그 밖에 마을 환경미화 같은 행사에 참여하지 않아 생기는 불화도 있다고 제주 원주민·이주민들은 전했다. 박씨는 “최근엔 이주민들이 제주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묻는 경우가 많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마을에서 인간관계에 거리를 두거나, 아예 제주어를 배워 능청스럽게 이웃에 동화되는 경우로 양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준표 강사는 이주민들이 수월하게 자리잡으려면 단적으로 ‘삼춘’이라는 말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제주에선 친척과 동네 어른을 막론하고, 어머니·아버지 세대 정도의 어른에게는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삼춘’(삼촌)이라고 부른다. 남자삼춘, 여자삼춘이라 부르지만, 통칭해 삼춘이라 부른다. 제주 시내에선 그런 호칭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리 단위 마을에선 삼춘이라 부르면 상대적으로 친화력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길 가는 동네 어른에게 제주 사람은 “삼춘, 어디 감수과?”라고 말하는 식이다.

‘삼춘’이라는 말부터 배워야

박진창아씨는 최근까지 만나본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주제는 ‘먹고사는 문제’라고 전한다. 제주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지, 심지어 특정 사업의 전망이 있는지까지. 이주민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생계 문제다. 그럴 때마다 박 관장은 오히려 ‘소비’에 대해 얘기한다. “바쁘게 살기 싫어서 내려온 만큼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씀씀이는 그대로인데 바쁘게 안 살겠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i>“바쁘게 살기 싫어서 내려온 만큼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씀씀이는 그대로인데 바쁘게 안 살겠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박진창아씨
</i>

제주로 오기 전까지 누린 것 중에 포기할 것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그는 “느리게 사는 삶을 살고 싶어서 제주에 온 사람들도 자기 속도대로 살기 쉽지 않다”며 “제주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어서 관계를 맺고 일을 도모할수록 삶에 가속도가 붙는다”고 말했다. 스스로 생활 속도에 제동을 잘 걸어야 초심을 잃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제주살이 7년차 이주민이자 의 저자 홍창욱씨는 이주민들이 여유롭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 초기 작은 정보기술(IT)기업에서 2년간 근무한 뒤, 제주 주민들과 함께 운영하는 ‘무릉외갓집’이라는 영농조합법인에서 일한다.

홍씨는 “내 경험상 이주 초기 2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역 사람들을 알아가고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기간을 가진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적은 급여라도 고정적으로 받을 곳이 있는지에 대한 대비가 없으면 쉽게 버티기 어렵다. 보통 도시 사람들은 고정적으로 돈이 안 들어오면 불안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제주 역시 경쟁 치열한 곳”

홍씨는 “제주 역시 어떤 면에선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어느 정도 생활수준이 되면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제주 생활이 지속 가능하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여기 와서 보면 부족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제주시에 사는 이주민들이 지인에게 ‘도심에 살려고 제주 갔냐’는 질문을 받으면 5분 안에 산과 오름을 갈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요즘 제주 도로는 많이 막힌다. 건물은 계속 들어서고 곳곳엔 공사 현장이 즐비하고 도심에는 주차할 곳도 많지 않다. 누군가에겐 이전에 생각하던 제주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이 기사를 포함한 제주에 관한 모든 기사를 만나볼 수 있는 낱권 구매하기!
모바일 낱권 구매 ▶바로가기
인터넷 낱권 구매 ▶바로가기
* 한겨레21 1년 정기구독하기 ▶바로가기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