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제주 사람들은 땅을 보고 “미쳤다”고 말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주택과 땅 가격은 치솟고, 미친 땅값을 받기 위해 삼림을 파헤치고 길을 내고 있다. 제주가 간직한 원시림 곶자왈은 섬의 허파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바다 건너 제주 땅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일까. 한라산을 향해 치솟고 있는 신도시 아파트를 찾았다. 외국자본이 파헤치는 대규모 휴양단지도 직접 둘러봤다. 올레가 상징하는 제주의 평화를 지키려는 마을의 노력도 보았다.
제주 시인 허영선씨는 이렇게 묻는다. “제주는 묻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섬을 꿈꾸는 당신이라면 어쩔 텐가? 그렇다면 대체 제주는 어디로 가야 하지?”
제주도에 사는 ㄱ씨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아파트 9채를 샀다. ㄱ씨가 산 아파트는 제주시 노형동과 연동에 집중됐다. 노형동과 연동은 제주 내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비싼 곳이다. 2015년 제주도의 부동산 가격이 전국에서 제일 많이 오를 때 ㄱ씨의 투자는 계속됐다.
ㄴ씨는 26채의 아파트를 한꺼번에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기왕에 제주 땅을 가지고 있었던 ㄴ씨는 건설사에 아파트 지을 토지를 제공한 대가로 26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땅을 팔아 현금을 쥐는 것보다 제주에서는 아파트를 받는 게 남는 장사라고 ㄴ씨는 판단했을 것이다. 올해 수도권 등 제주 외 지역에선 아파트 분양이 신통치 않지만, 2016년 제주시 한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은 300 대 1을 훌쩍 넘었다. 제주에선 아파트를 갖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 7월19일 제주도청에선 ‘제주지역 주거불안 진단과 해소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김현아 의원(새누리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정수연 제주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5년 동안의 제주 지역 아파트 거래를 분석했다.
4년 새 평당 1천만원 오른 아파트도아파트를 많이 사들인 개인은 대부분 제주도민으로 드러났다. 몇 채씩 아파트를 사들인 육지인(제주도 외 다른 지역 거주자)은 적어도 데이터상으론 없었다. 정수연 교수는 “제주 지역의 주택 가격 과열의 원인을 중국인이나 이주민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라고 했다.
제주는 확실히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곳이다. 한국은행 제주본부 자료를 보면, 2016년 3월 제주 지역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경기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인기 좋은 제주시 노형동·아라동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서울 동작구·영등포구 수준에 육박한다.
노형동의 한 아파트는 139.25㎡(42평) 크기가 12억원에 매물로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동의 한 아파트도 109㎡(33평)의 가격이 5억원에 육박한다. 인구 65만 명의 지방 아파트 가격이 1천만 명이 사는 도시 아파트 가격을 추월하고 있는 셈이다.
바다 넘어 제주 주택의 고공비행은 누가 떠밀어올린 것일까. 제주에서 아파트는 원래 인기 있는 주거공간이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제주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많았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제주도민들이 아파트를 많이 사고 있다. 주변에서 대출받아 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제주의 기업인 김아무개씨는 전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해안가 땅의 인기는 오래된 이야기지만 급기야 섬 안쪽까지 몰아닥친 제주도 부동산 투자의 열풍. 제주는 탐욕의 ‘아일랜드’(섬)로 바뀌는 것일까.
제주의 부동산 욕망의 기원은 201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계청의 주택 가격 상승률을 보면 제주의 변화는 2009년부터 감지된다. 그 전에 마이너스 성장하던 주택 가격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한다. 2009년 2.46%, 2010년 4.66%, 2011년 5.22%, 2012년 3.69%, 2013년 0.27%, 2014년 1.44% 등 가격 상승률은 거침없이 치솟았다. 잠시 주춤했지만 계속 위를 향하는 상태다. 같은 시기 서울의 주택 가격 상승률은 2010년(-1.12%)과 2013년(-1.41%) 역성장을 했다.
제주 지역 공인중개사들이 느끼는 체감은 이보다 훨씬 크다. 제주시 아라지구 한 아파트의 4년 전 분양가는 평당 700만원 정도였는데 현재 평당 1700만원을 넘어선다. 4년 새 평당 1천만원이 오른 셈이다. 제주 아라동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2년 전 아파트를 보러 왔다가 그냥 간 고객이 이번에 다시 와서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문의하는 분들 대부분이 제주가 왜 서울 강북만큼 비싸졌느냐는 반응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1년치 ‘연세’와 섬이라는 특수 조건 [%%IMAGE2%%]여러 원인이 결합된 결과다. 제주는 2010년부터 인구 유출의 추세가 역전됐다. 이전까지는 제주를 빠져나가는 사람이 많았다면 2010년부터는 제주에 들어오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제주는 2010년 400명을 시작으로 지난해 1만4천여 명 등 매년 유입 인구가 늘고 있다. 가수 이효리씨 등 유명 연예인의 이주가 유명세를 탔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이 육지를 탈출해 돌담길을 넘는 바람을 탔다. 다음·넥슨 등 정보기술(IT) 기업의 제주 이전도 젊은 층을 제주로 이동시켰다. 제주 영어국제교육도시 내 국제학교가 개설된 것도 인구 유입에 한몫했다.
이주민들의 주거 선호는 조금씩 바뀌었다. 제주시 노형동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초창기 이주민들은 단독주택이나 농가주택을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아파트나 빌라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단독주택은 며칠만 관리하지 않아도 금방 ‘귀곡산장’이 된다. 젊은 사람들도 잘 관리하기 힘든데 은퇴하고 이주한 이들이 단독주택에서 살기 쉽지 않다. 수요가 바뀌었다.”
더구나 제주 지역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014년까지 전국 11위 수준으로 낮았다. 서울과 수도권 등의 비싼 집값을 버티다 온 사람들에게 제주의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가격이었다. 외지에서 온 이들에게 높은 값을 불러도 매매는 활발했다.
외국자본 유입도 잇따랐다. 제주도는 투자 유치를 위해 5억원 이상 부동산 투자를 한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줬다.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중국에서 사람들이 이주해왔고, 리조트 개발 등 대규모 사업권도 외국 기업에 넘겨주면서 제주의 땅값이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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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중국 자본이 땅을 사모을 게 예견되면서 다른 지역에 있는 기획부동산 세력이 대거 제주로 몰려들었다. 지금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땅이 차명투자나 간접투자 등을 통해 중국인들이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땅값 상승은 아파트 등 주택 가격에도 영향을 끼친다.
아파트에 대한 관심은 분양권 거래에서 확인된다. 2007~2009년 제주도의 분양권 거래는 100건 이하였다. 그러다 2010년부터 시장이 바뀌기 시작한다. 2010년 996건, 2011년 998건, 2012년 1742건을 거쳐 지난해에는 2271건 등 청약으로 분양권을 받은 사람과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들 사이에 거래가 급증했다. 아파트 분양권 웃돈(프리미엄)은 높아졌고, 웃돈을 얻기 위해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시장은 더 급속히 과열됐다.
제주 부동산 시장의 특수성도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첫째, ‘연세’다. 최근의 저금리는 아파트 등 주택 가격이 떨어지지 않게 막고 있다. 많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도 5% 이하 낮은 이자율은 대출이자를 감당하게 만든다. 수요자도 낮은 이자율 탓에 여전히 많은 대출금으로 집을 사면서 부동산 시장은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다.
제주는 여기에 더해 ‘연세’라는 특이한 부동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임차인이 월세 대신 1년에 한번 몰아서 세를 내는 집이 제주에는 많다. 예를 들어 다달이 100만원을 내는 대신 입주할 때 연세 1200만원을 주는 식이다. 집주인 입장에선 집세 밀릴 걱정 없이 한꺼번에 목돈을 쥐고 다른 데 투자할 수 있어 유리한 시스템이다. 만약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샀더라도 1년치 이자를 연세로 확보한다면 아파트값이 뛸 때까지 기다렸다 파는 ‘게임’이 가능해진 셈이다.
둘째, 제주는 섬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은 집을 이사할 만한 대체 공간이 있다. 경제적 상황에 따라 주거 또는 교육 여건을 조정할 수 있다. 좁은 섬에선 대체 지역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제주도 인구 60만여 명 중 대다수가 제주시에 살고 있으며, 공공시설과 편의시설도 제주시에 집중돼 있다. 특히 ‘제주시의 강남’이라 불리는 노형동과 연동에는 학원이 밀집돼 있다. 이곳의 초·중·고 학교는 학부모에게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 제주의 주택 수요가 한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제주는 ‘부동산 게임’이 가능한 조건이 완성됐다. 8년 전부터 부동산 중개업을 한 김아무개씨는 “2년 전부터 육지에서 부동산을 하는 분들이 제주로 많이 넘어왔다”고 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인기 있었던 제주도의 땅뿐만 아니라 아파트 등 주택을 노렸다. 서귀포 혁신도시 주변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서울과 분당에서 알던 투자자들에게 물건을 많이 소개했다”고 했다. 그 역시 육지에서 제주도로 넘어온 사람이다. 아파트값은 뛰기 시작했고 분양권 웃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많이 나왔다.
부동산 가격 급등, 거품 터질라 [%%IMAGE3%%]이를 본 많은 제주도민들이 아파트 거래에 눈뜨기 시작했다. 제주대학에서 만난 김태일 교수(건축학부)는 “국내 투기자본을 보면서 제주도민들이 가세하기 시작했다. 건축 쪽으로 진출한 졸업생들에게 물어보면, 최근 나오는 주택 물량의 90% 이상은 제주도민이 사고 있다고 한다. 값이 계속 오르니 지금 아니면 못 사겠다 싶어 심리적으로 쫓기니까 제주 사람들이 막차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빌라를 사두는 게 이익이 되다보니 분양공고가 나면 건축업자의 친·인척들이 공고날 아침에 미리 알고 전부 접수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 부동산 가격 폭등의 후폭풍은 아직 잠잠하다. 올해 상반기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꺾였지만 저금리 탓에 상황은 조용하다. 대출금으로 아파트를 사거나 연세를 내는 이들이 이자까지 감당하고 있다. 또 제주에서 계속되는 건설 계획은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 섞인 예측을 가능케 한다. 제주는 올해 초 신공항 건설이 발표됐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신화역사공원과 헬스케어타운 등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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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전문가인 정수연 제주대 교수는 이 ‘터지지 않는 거품’을 우려 섞인 눈으로 본다. 7월27일 만난 정수연 교수의 연구실 책상은 제주 아파트 가격의 이상 급등을 분석하는 온갖 자료로 뒤덮여 있었다. 정 교수는 지은 지 10년 넘은, 이른바 유명 건설사 브랜드가 없는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는 그래프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보통 아파트 가격은 입주 뒤 5~7년까지 오르며 정점을 찍은 뒤 고정된다.
“부동산 시장에서 집을 산 사람들 가운데 아직 낙오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제자들이 집을 구할 수 없어서 결혼을 포기하고 있다.” 이전보다 주택 가격이 훨씬 치솟으면서 젊은이들의 부담은 커졌다. 제주는 관광서비스업 비중이 크고 작은 기업이 대부분이어서 임금 수준이 높지 않다. 집이 없는 약한 고리부터 타격받는 것이다.
땅값 상승은 제주 주민들 사이에 빈부 격차를 확대시킨다. 이는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의 약화 또는 전체 주민들의 탈도덕화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제주의 허름한 농가주택의 경우 이전에는 돈 없는 노인들이 머물 곳으로 사용됐지만, 이제는 억대 가격을 받고 팔기 위해 잘 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 마을의 집만 보면 땅이 많은지 돈이 많은지 알기 힘들다. 그런데 부동산 열풍이 불어 땅을 파는 사람, 아파트를 사는 사람이 나오면서 전통적인 마을공동체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또 가족 간에 ‘내가 사라고 할 때 사지 왜 아파트 등에 투자하지 않았는지’ 싸우면서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비정상적인 주택 가격 폭등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계속 재산을 불릴 수 있게 시장을 놔둔다면 결국엔 모든 제주 사람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 교수는 이미 육지에서 실패한 부동산 정책이 제주에서도 반복될까 걱정한다. 그는 제주시에 대규모 아파트 분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금 추세대로 계속 올라 아파트값이 10억원 가까이 육박하면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임대주택만으로 가격을 잡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저렴한 주택에서 살다가 분양아파트로 넘어갈 수 있게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해 아파트 가격을 잡아야 한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대안은 대규모 아파트단지? 사회주택?그의 제안에 반론도 있다. 김태일 교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대신 ‘제주형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대규모 단지를 짓게 되면 제주시에 더 많은 인구가 모이게 돼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반박하며 “제주시 읍면에 위치한 마을 공동 소유 땅을 빌려 교육시설 등을 갖춘 주택단지를 값싸게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안은 엇갈리지만 분명한 점이 있었다. 제주는 탐욕의 섬으로 변질될 수도 있는 위태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제주가 잘하면 유토피아가 될 것이고 못하면 지옥이 될 것”이라고 정 교수는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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