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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밑에서? 수레바퀴 치우자!

‘20대 선거본부’ 꾸린 노동당 비례 1번 용혜인씨 “청년 문제 근본적 해결이 사회 불평등 문제 해결”
등록 2016-03-22 18:21 수정 2020-05-03 04:28
용혜인 후보(왼쪽 네 번째)가 선거본부 구성원들과 함께 껑충 뛰어올랐다. 선본은 세월호 참사 침묵행진, 비정규직 농성 현장, 용 후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절망라디오> 행사 등에서 만난 20대 청년들로 이뤄졌다. 이들 대부분은 20대 초반이다. 김진수 기자

용혜인 후보(왼쪽 네 번째)가 선거본부 구성원들과 함께 껑충 뛰어올랐다. 선본은 세월호 참사 침묵행진, 비정규직 농성 현장, 용 후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절망라디오> 행사 등에서 만난 20대 청년들로 이뤄졌다. 이들 대부분은 20대 초반이다. 김진수 기자

선거 사무실에는 20대 청년들뿐이었다. 다른 정당이라면 선거 기간에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소비될 나이이지만 여기에선 이들이 선거 주체였다. 7명 상근자를 포함해 선거본부(선본) 구성원이 모두 20대였다. 이들과 섞여 있던 노동당 비례대표 1번 후보인 용혜인씨가 명함을 기자에게 건넸다. 명함에 ‘청년에게 소득을, 우리 삶의 변화를’이란 목표를 적은 그의 나이는 만 25살이다. 국회의원 출마는 만 25살부터 가능하다. 국회의원 후보와 선본이 20대로만 꾸려진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후보 등록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세금 서류나 인감 같은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지내왔으니까요.”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있는 사무실 임대료는 후보와 선본 구성원들이 조금씩 모아 내기로 했다. 후보 등록 기탁금(1500만원)은 용 후보가 대출을 받아 충당하기로 했다. 용 후보는 “소수 정당, 그것도 청년 후보가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할 때 진입 장벽이 높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선본이) 모두 20대이다보니 다들 체력이 좋고, (청년 정책 관련해서도) 청년 문제가 무엇인지 서로 공감대가 있으니까 의견을 모으기가 좋다”며 웃음을 지었다.

세월호 참사 맞닥뜨리고 시선 확장

원래 그는 출마와는 거리가 먼 청년이었다.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대학 신입생 땐 “집에 교통비 5천원이 없어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에 있는 학교(경희대)에 가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예식장에서 구두를 신고 스테이크를 나르며 하루 14시간을 일해야 4만5천원 정도를 버는”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2010년 소수 정당을 후원하려고 진보신당(2013년 노동당과 합당)에 가입했지만 당적만 유지하는 당원이었다.

그러다 그는 2012년 하반기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우리를 억누르는 수레바퀴에서 나만 빠져나오면 된다”고 생각한 시절이었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작은 방에서 학교를 오가며 공부하던 2014년 4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숨진 세월호 참사와 마주하게 됐다. 안산에서 자란 그의 친구 동생들, 그의 중학교 때 선생님이 세월호 속에 있었다. 이 참사는 그의 삶을 ‘나에서 너, 그리고 우리’로 확장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됐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침묵행진 ‘가만히 있으라’를 처음 제안한 학생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 가을,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된 사건을 경험하게 됐다. 당시는 유가족들이 국민 서명을 받으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었고, 이 법의 제정을 위해 여야 협상이 첨예하게 이어지던 시기였다.

“당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나는 국민의 대표’라면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게 협상의 전권을 주라고 세월호 유가족에게 훈계하듯 말하는 거예요. 2014년 보궐선거에서 (지역 주민) 약 3만 표로 당선된 이완구 의원이 500만 명 넘게 서명을 받은 유가족 앞에서 ‘나는 국민의 대표’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국회가 국민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말을 현실에서 (강하게) 실감하게 됐죠.”

이후에도 그는 세월호 유가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에 함께했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이 땅에 존재하지만, 거리농성·고공농성으로 존재 방식을 증명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청년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청년이 정치권에서 시혜의 대상으로 소비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동당 전국위원, 청년학생위원장을 거친 그는 총선 출마를 결심하고 당의 비례대표 경선에 나서 당의 상징성이 큰 ‘1번’에 당선됐다.

정치권의 시혜 대상으로 소비되는…

그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청년 문제다. 그는 “청년 문제의 핵심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있다. 청년이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사회가 됐다”고 했다.

“전국을 돌며 청년을 만나는 간담회를 했어요. 강원도 강릉에서 만난 한 청년은 마트에서 주 6일을 일하며 외국으로 나갈 돈을 모으고 있었어요. 주 6일을 일해도 이 땅에서 더 나아지지 못하니까 ‘탈조선’을 생각하는 거죠. 어떤 지역에선 자신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청년도 있었어요. 아무 해결도 되지 않았는데 위로가 되었다는 걸 보면서 우리 청년들이 많이 고립돼 있구나 생각했죠.”


“청년 문제의 핵심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있다.”

그는 “청년 문제는 20대여서 겪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난 40~50년간 저임금, 장시간 노동, 저소득의 문제가 누적됐다가 그 문제가 사회에 진출하지 못했거나 진출할 청년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청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라고 확신한다. 이는 우리 정치가 청년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지 않으면 정치와 청년의 괴리가 지금보다 더 벌어질 것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구직 과정에서 수당을 지원하는 수준으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집약된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노동당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그렇게 일자리를 얻은 이들을 정규직화하되, 노동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줄어들지 않도록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법제화’와 청년을 포함한 국민에게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는 ‘기본소득 보장법’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노동시간 단축, 기본소득 도입 공약

용혜인 후보는 “기본소득 30만원을 지급하려면 연간 170조원 정도 필요하다. 재벌의 조세부담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약 34%)으로 올리면 약 200조원을 걷을 수 있다. 기본소득 보장은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이상적)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총선에선 지역구 후보에게 한 표, 지지 정당에 한 표를 각각 찍게 된다. 총 47석이 걸린 비례대표 의원은 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하지만 지역구 5석 이상을 얻거나 정당 득표율 3% 이상을 받은 정당에 한해 득표율에 맞춰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다. 노동당 비례대표 1번인 용 후보가 당선되려면 노동당이 ‘당 득표율 3% 벽’을 넘어야 한다.

그는 지난 2월 출마선언문에서 “개인적인 불행으로 보였던 ‘각자의 수레바퀴’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수레바퀴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청년과 우리 사회를 향해 말을 걸었다. 한때 그 수레바퀴에서 혼자 빠져나오려 했던 그는 이제 “그 수레바퀴를 들어올리고 싶다”고 얘기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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