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저작들을 저잣거리처럼 저울에 달아 경중을 매길 수는 없다. 그러나 크게 보아 그의 저작 가운데 ‘울림의 트라이앵글’은 (1988)과 (2004), (2015)일 것이다. 그의 사후, 언론들이 다투어 이들 ‘3부작’에서 글귀를 인용해 보도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영복의 여타 글은 여태 묶이지 않은 채로다. 언젠가 전집이라는 울타리에 모두 들 것이다. 1988년 그가 옥살이에서 풀려나 ‘온전한 햇빛’을 본 뒤 처음으로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이 ‘한겨레 논단’이다. 당시 ‘한겨레 논단’은 신문 1면에 실렸다. 1990년 2월부터 5월까지 모두 7차례 쓴 칼럼은 ‘장년 신영복’의 날카롭되 따뜻하고, 넓으나 성기지 않으며, 차분할지라도 무력하지 않은 사유를 잘 보여준다.
1990년 2월22일치 첫 칼럼(‘개인의 팔자 민족의 팔자’)에서, 그는 자신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좌익 장기수’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리고 기다란 한 문장을 적었다. “고생스럽고 가난한 삶이든 넉넉하고 영광스런 삶이든 그 진상을 분단과 연결시켜 보는 시각은 곧 통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는 지극히 사회 역사적인 관점이다. 통일에 관한 무수한 주장은 각자의 이런 입장에 근거해 있으며 또 근거해야 한다.” 훗날 그는 “입장의 동일함, 그것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했다.
3월8일치 칼럼은 ‘산천의 봄 세상의 봄’이라는 제목처럼, 봄을 맞이하는 희망과 희열에다 아직 오지 않은 사회의 봄(좌절된 1980년 ‘서울의 봄’!)을 아우르는 ‘두 겹의 시선’이 읽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박힌 경멸과 불신이 사라지고 억압된 자리마다 갇힌 역량이 해방될 때 세상의 봄은 비로소 그리고 어김없이 온다. 산천의 봄과 마찬가지로 무성한 들풀의 아우성 속에서 온다. 그 우람한 역량의 해방 속에서 온다. 모든 것을 넉넉히 포용하면서 온다.”
‘죽순의 시작’(4월6일치)에서 “지천명의 나이에 세상을 시작”한다고 쓴 그는 대나무의 마디를 상처의 흔적이 아니라 달성의 표적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식목의 계절에 그는 물었다. “나는 어느 뿌리 위에 나 자신을 심고 있는가. 그리고 얼마만큼의 마디로 밑둥을 가꾸어놓고 있는가.”
이어서 미완의 혁명 또는 분실된 의거로 4·19를 회상한 신영복은 합법적인 선거로 다시 쿠데타 세력에 정권을 넘겨준 실망을 딛고 “새로운 역사, 도도한 기쁨을 적어넣을 수 있는 젊은 계절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젊은 4월’ 4월19일치)는 말로 민중을 위무하고 고양하기도 했다. 그것은 법이 물처럼 흐르지 못하는 시대일지언정(‘물과 법과 독버섯’ 5월17일치) ‘인간적인 사람 인간적인 사회’(5월3일치)를 향해 다 같이 어깨를 겯자는 호소였다. ‘더불어 숲’을 이루자는 것이다.
아귀 같은 개 두 마리가 으르렁댄다. 그 사이에 갇힌 사람의 말[言]. 감옥을 가리키는 한자[獄]는 말해야 하는 인간 자유의 적확한 형상이다. 생전 신영복은 자유라는 말을 ‘자기 이유’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자기의 이유를 갖는 삶’을 찾아 끊임없이 세상 아래로 내려간 여정이었다.
신영복이 남긴 ‘한겨레 논단’ 칼럼 가운데 절창은 ‘따뜻한 토큰과 보이지 않는 손’이다. 부조리한 사회의 ‘보이지 않는 손’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공감과 결단이 절실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힘 있는 양심, 고민하는 지성, 실천하는 이론”을 강조했다. 그래야만 사실을 넘어 진실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1990년 3월23일치로 발행된 <한겨레> 지면을 그대로 싣는다. 추모는 떠난 사람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행위이다.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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