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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세대의 거침없는 ‘굴기’

좌절 대신 참여… 선거 위해 귀국하고 ‘투표 버스’ 타고 원거리 한 표 행사
등록 2016-01-26 19:47 수정 2020-05-03 04:28
차이잉원 대만 민주진보당 총통 후보의 지지자들이 선거 직전 마지막 유세에서 그를 향해 환호하고 있다. REUTERS

차이잉원 대만 민주진보당 총통 후보의 지지자들이 선거 직전 마지막 유세에서 그를 향해 환호하고 있다. REUTERS

“이 나라는 우리의 것이기도 해요. 불투명하게 대만을 중국에 팔아버리려는 국민당만의 나라가 아니에요. 우리 미래는 우리가 결정할 겁니다.”

대만 총통, 입법위원(국회의원) 동시 선거를 이틀 앞둔 1월14일, 타이베이시 중정구 민주진보당(민진당)사 앞에서 만난 20대 여성 황아무개씨는 이렇게 투표 의사를 밝혔다. 황씨는 자신뿐 아니라 친구들도 독려해 꼭 투표를 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그렇게 표들이 모였고, 대만은 8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차이잉원이라는 첫 여성 총통도 탄생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중국에 빨려들어간 ‘아시아의 용’</font></font>

타이베이 시내 곳곳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했다. 중국과 경제 협력을 경제 활로로 삼아 다걸기해온 국민당 마잉주 총통 집권 8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만에 여러해 근무하고 있는 한 주재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만은 건물, 도로 등이 거의 바뀐 게 없다. 마치 발전이 더딘 중소 도시 같다. 놀라운 일이다”라고 했다. 대만은 한때 한국·홍콩·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 대만은 더 이상 네 마리 용에 끼지 못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8년 경제위기 직전까지 대만은 연평균 5%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상황은 2011년부터 바뀌었다. 성장률은 2014년 반짝 3.92%를 기록한 것을 빼고 2%대에 머물렀다. 급기야 지난해엔 1.06%에 주저앉았다. 실업률은 지난해 11월 3.77%에 이른다.

마잉주 국민당 정권은 대만 경제의 활로를 중국과의 경제 협력 확대에서 찾으려 했다. 마잉주 총통은 2010년 9월 중국 정부와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발표해 사실상 중국과 경제를 통합하다시피했다. 2013년엔 양안서비스무역협정(CSSTA)도 체결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소수 기업의 배만 불렸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크게 줄었다. 대만 기업들은 앞다퉈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국으로 이전했다. 대만의 산업구조는 대부분 생산자개발공급방식(ODM) 혹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어서 중국보다 생산비용이 높다. 결국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들어간 셈이다. 2014년 기준으로 대만은 수출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류멍쥔 대만 중화경제연구원 제1경제연구소장은 “마잉주 총통은 2008~2009년 경제위기 파도를 중국과의 경제 협력 확대로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 대만이 얻은 이득은 미미했다. 중국 관광객이 늘어난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특히 대만 기업들이 중국 현지로 넘어가 현지 기업화되다보니 대만 젊은이들로서는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국민당 정부도 문제점을 간파했다. 국민당은 중국 등 외국에 진출했다가 다시 국내로 돌아와 투자하는 기업들에 세금 감면 혜택을 줬다. 국내 고용 창출을 늘리겠다는 포석이었다. 마잉주 총통은 집권 기간 동안 법인세를 25%에서 17%까지 낮추었다. 효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기업들은 법인세와 증여세 등을 감면받자 투자보다 부동산 사들이기에 뛰어들었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타이베이의 90m² 아파트는 3천만~4천만대만달러(약 10억원)를 호가한다. 첫 월급이 한국돈 80만원에도 못 미쳐 ‘22K(2만2천대만달러·약 77만8천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그림의 떡이 됐다. 류멍쥔 소장은 “혜택을 받은 기업들이 당시 이를 투자로 연결했다면 현재의 부동산·취업·임금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해바라기운동’ 이후 청년 분노 분출</font></font>

결국 현실 정치에 무관심해 보였던 젊은 층이 ‘굴기(벌떡 일어섬)’했다. 1981년 이후 태어난 대만 20~30대 중반 세대는 ‘딸기 세대’라 불렸다. 쉽게 좌절하고 상처받아 딸기처럼 나약하다는 비아냥이다. 그러나 암울한 현실의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는지 직시하는 순간 그들은 거침없이 나섰다.

대만 총선 1년10개월 전 2014년 3월, 대학생과 시민단체들은 중국 경제 종속에 반대하는 입법원(국회) 점거시위를 벌였다. 점거는 70여 일 동안 이어졌다. 시위는 ‘해바라기(太陽花)운동’이라고 불렸다. 대만 젊은이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그해 9월 말 홍콩에서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어진 ‘우산시위’가 중국 당국의 묵살로 억업되자 더욱 커졌다.

젊은이들의 참여는 대만 정치 지형을 가파르게 바꿔나갔다. 그해 11월 치러진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은 참패했다. 전국 직할시와 현, 시 등 28개 선거구에서 단 6곳밖에 승리하지 못했다. 대만 언론들은 당시 ‘대만 전역이 파란색(국민당의 상징색)에서 녹색(민진당)으로 뒤바뀌었다’고 했다.

그리고 1년2개월 뒤 총통, 입법위원 동시 선거에서 젊은 층은 다시 한번 자신들의 미래와 권리를 위해 참여했다. 대학원을 마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뉴질랜드로 건너가 강사를 하던 30대 젊은이는 한 표를 행사하려고 선거 전날 돌아왔다.

한 20대는 민진당사 한 켠에 마련된 차이잉원 후보 선거 홍보 기념품 매장에서 티셔츠와 가방을 사들었다. 그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후원금을 보태고 거리에서 홍보도 하니 일석이조다. 혹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곱지 않은 눈으로 볼까봐 꺼려지지 않으냐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떳떳하지 않을 것이 뭐 있느냐”라고 말했다.

대만 스린 야시장 부근 지하철역에서 만난 한 청년은 “현 정권 아래서 우리 일자리가 중국으로 옮겨 가버렸다. 투표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기차나 시외버스를 타는 수고로움도 꺼리지 않았다. 대만에서는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는 까닭에 타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원래 주소지로 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 타이베이 시내 각 대학에서는 한국 대학교 학생회가 마련하는 추석 귀향 버스처럼 투표 버스가 마련됐다.

선거 막판 ‘쯔위 사태’가 불거지자 젊은 표심은 그야말로 질풍노도로 바뀌었다.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본명 저우쯔위)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만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들다 중국 누리꾼에게 ‘대만 독립 분자’라며 뭇매를 맞자 대만 젊은이들은 분노했다.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대만 양안정책협회는 “젊은 유권자 134만 명이 투표장으로 가거나 표심을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개표 방송 내내 대만 방송들은 쯔위가 ‘최소 2% 이상의 표를 움직였다’ ‘대만 정치판에 폭탄을 투하했다’라고 보도했다. 결과 차이잉원 후보는 총통 선거 사상 가장 큰 표 차인 308만 표 차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신생 정당 ‘시대역량’은 원내 3당으로</font></font>

젊은이들의 힘은 기존 정당인 민진당의 압승을 이끄는데 그치지 않았다. 자신들을 대변할 신생 정당을 원내에 진출시켰다. 선거에 처음 참여한 ‘시대역량’(時代力量)은 5석을 거둬들이며 대선 후보까지 낸 친민당을 제치고 단숨에 원내 3당이 됐다. 시대역량의 주축들은 해바라기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다. 대만 록밴드 소닉의 보컬 린창쭤는 국민당 5선 의원을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다.

대만 젊은 층은 ‘분노’와 ‘참여’로 대만 정치의 물꼬를 틀었다. 기존 기득권 틀 속에 순응하며 자신을 구겨넣는 대신 참여를 통해 판 자체를 바꾸었다. 차이잉원 총통 당선자는 이제 이들의 요구를 조정하고 수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그는 “8년 만에 다시 국정을 운영할 책임을 맡겨준 대만 국민에게 고맙다”고 했다.

만일 차이잉원 당선자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젊은 표심은 빠르게 움직이거나 혹은 ‘바꿔도 별수 없다’는 짙은 냉소로 바뀔 것이다. 차이잉원 당선자가 단순히 정권 교체와 첫 여성 총통이라는 의의에만 안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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