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광고와 기사의 거리

<한겨레> 교육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광고 게재 논란… 사건의 전말과 해외 사례 통해 보는 전통 언론 신뢰의 위기
등록 2015-11-10 21:49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신문사는 여러 매체를 발행한다. 일간 와 주간 은 각각 편집국과 출판국에 소속된 매체다. 기자들은 과 를 수시로 옮겨다니지만, 그 편집권은 상호 독자적이다. 이 기사는 의 독립적인 취재의 결과이며 한겨레신문사의 전체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신문사 내부 논의에 대한 아래 기사의 내용은 경영진과 노조가 사원들에게 발송한 전자우편, 사내 게시판 공고문, 노사 합동토론 녹취록, 노보 등에 기초했다. _편집자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정책 의견 수렴 기간에 정부 쪽 입장을 담은 광고를 각 신문 1면에 내겠다고 제안했다(특집 기사 ‘정부광고, 프로파간다로 간다’ 참조). 1차 광고의 경우, 주요 일간·경제지 등 신문사 23곳에 제안했다. 광고 게재에 대한 강압은 없었다. 광고비를 내겠다고 했다. 게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은 언론사의 몫으로 넘어왔다.

을 제외한 22곳의 언론이 교육부 제안을 받아들여 1차 광고를 실었다. 도 지난 10월19일치 신문에 실었다.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습니다”라는 큰 제목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역사와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균형감을 키울 수 있는 역사 교과서,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에 충실하게 만들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광고가 신문의 1면 하단을 채웠다. 논란이 시작됐다.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1차 광고는 10월15~19일 22개 언론에 집행됐다. 이 기간 동안 주요 일간지 4곳 1면의 광고 및 관련 기사 게재 유무를 살펴보면, <조선일보>(10월15일치)에는 광고와 “‘좌편향 수업’이 도를 넘었다”는 내용을 담은 관련 기사가 함께 실렸다. <동아일보>(10월19일치)에는 광고만 실렸다. <한겨레>(〃)에는 광고와 국정화 반대 행동을 전하는 기사가 함께 실렸고, <경향신문>(〃)에는 광고 없이 국정화 반대 행동을 전하는 기사만 실렸다. 각 신문 갈무리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1차 광고는 10월15~19일 22개 언론에 집행됐다. 이 기간 동안 주요 일간지 4곳 1면의 광고 및 관련 기사 게재 유무를 살펴보면, <조선일보>(10월15일치)에는 광고와 “‘좌편향 수업’이 도를 넘었다”는 내용을 담은 관련 기사가 함께 실렸다. <동아일보>(10월19일치)에는 광고만 실렸다. <한겨레>(〃)에는 광고와 국정화 반대 행동을 전하는 기사가 함께 실렸고, <경향신문>(〃)에는 광고 없이 국정화 반대 행동을 전하는 기사만 실렸다. 각 신문 갈무리

긴급 회의 뒤 교육부 광고 게재, 잇따른 논란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교육부 광고가 게재된 1면 사진이 나돌았다. ‘표리부동’ ‘돈에 영혼을 팔았다’ 등의 비판이 따라붙었다. 한겨레신문사 고객센터에도 교육부 광고를 이유로 구독을 끊겠다는 독자 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논란은 이미 내부에서 시작된 상태였다. 정부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 광고를 제안한 건 게재 일주일 전인 10월12일이며, 10월16일치 신문 초판(1판)에 광고가 실렸다. 이를 본 편집국 간부들이 광고 철회를 편집국장에게 건의했다. 비슷한 시각 한겨레 노동조합 간부들도 사 쪽에 광고 게재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대부분의 독자가 접하는 이후 판본부터 광고가 빠졌다.

내부 이견이 제기되자 경영진은 논의를 더 진행한 뒤, 광고 게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회사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편집국 간부 회의, 경영진 회의 등이 잇따라 열렸다. 한겨레신문사 전략기획실 쪽은 “‘의견광고’이니만큼, 명백한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이 없는 한, 한겨레 논조와 다르더라도 실어야 한다는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많았다”고 논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게 해서 교육부 광고가 게재됐지만, 논란은 이때부터 커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지부(노조)는 교육부 광고가 게재된 신문이 발행된 직후인 10월19일 오후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부광고 게재에 대한 노조의 입장’ 성명을 발표했다. “이미 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어긋난다’고 규정한 만큼, 이를 합리화하는 정부의 의견광고를 받아들인 행태는 적절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노조는 또 경영진에 “(교육부 광고 게재에 대해) 사내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며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토론회를 제안했다. 사 쪽이 받아들여 지난 10월2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편집인, 광고국 부국장, 논설위원, 노조위원장, 우리사주조합장, 역사 교과서 국정화 취재 담당 기자, 미디어 담당 기자 등이 대표 패널이었다. 플로어에는 50여 명의 사원이 자리잡았다.

토론회는 밤 10시를 훌쩍 넘겼다. 각자의 명분과 근거가 모두 절박했다.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참석자 가운데 어떤 이는 “돈 몇 푼에 우리 지면을 판 것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 주장과 다르다고 의견광고를 거부해선 안 된다. 오히려 (교육부 광고를) 싣는 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이미 취재 현장에서 (광고 게재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와 취재 거부가 있었다. 독자에게 정부의 의견광고를 싣는 일을 ‘기사와 광고의 분리 원칙’으로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경영진은 토론회 자리를 포함해 사내 공지를 통해 ‘광고게재기준’을 적용해 내린 결정이라고 알렸다. 신문에서 기사를 싣는 면은 ‘취재보도준칙’을, 광고 지면은 ‘광고게재기준’을 따라야 하고, 이에 따라 교육부 광고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논조와 무관하게 ‘광고게재기준’으로만 판단했다는 것이다.

광고-기사 분리 원칙의 기원과 현실

한겨레신문사의 ‘광고게재기준’이 따로 명문화된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만든 ‘신문광고윤리강령 및 실천요강’, 그리고 ‘한겨레 윤리강령’의 제9조(판매 및 광고 활동: 우리는 상도의를 벗어나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를 준용해 광고게재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불법·허위 광고, 명예훼손, 미풍양속을 해치는 내용 등을 담은 광고 게재를 금지한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만한 사안일 경우 임원진이 별도로 심의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

‘광고는 광고이고, 기사는 기사’라는 영업과 편집의 분리 원칙은 19세기 후반 미국 언론에서 시작된 특별한 관행이다. 1896년 의 발행인 아돌프 옥스는 새 소유주로서 처음 신문을 내는 날 지면에 ‘업무 공고’(Business Announcement)라는 제목으로, 아마도 저널리즘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회자될 말을 공표한다. “(뉴스를) 불편부당하게,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어떠한 정당이나 종파, 이익도 개입시키지 않고 전달하겠다.”

가 세계적 권위지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수많은 언론이 이를 뒤따랐다. 1923년 주간지 을 창업한 헨리 루스는 이 원칙을 교회(뉴스)와 국가(비즈니스)의 정교분리에 비유하는 걸 좋아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주요 일간지 의 발행인은 자기 회사의 광고 쪽 사원들이 기자들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원칙의 확립을 주도한 게 기자들이 아니라 언론사 소유주와 경영진이라는 것이다. 이 원칙은 저널리즘은 물론, 회사의 장기 재정 전략을 포괄한다. 19세기 후반 는 ‘옐로 저널리즘’이 우세한 상황에서 다른 언론들과 경쟁해야 했다. 그들은 선정·정파적 언론이 불러온 ‘신뢰의 위기’에 주목했다.

그들이 ‘회사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뉴스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도록 경영하겠다’는 다짐을 공표한 건, 시민들에게 신뢰받기 위해서다. 또한 광고주들로선 많은 시민들이 신뢰하는 매체를 선호한다는 점도 주목했다. 결국 광고-기사 분리 원칙은 미국 민주주의·자본주의에 대한 존중에 기반해 신문·광고 판매 수익을 함께 높이기 위한 경영 전략이었던 셈이다.

이 원칙이 2015년 한국 언론에 적용될 수 있을까? 광고-기사 분리 원칙을 처음 고안한 미국에서도 이 원칙이 전통 언론이 뉴스로 시민들의 관심을 ‘독점’할 수 있었던 시대에 가능한 이야기였다는 판단이 나온다. 이제 시민들은 뉴스를 포털·SNS 등에서 접한다. 종이 신문 구독률은 계속 추락해서 한국의 경우, 1996년 69.3%에서 2014년 20.2%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판매 수익이 급감하고 광고 수익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광고를 둘러싼 논란이 곧바로 뉴스에 대한 신뢰로 직결되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몇몇 신문사는 시장 생존 능력을 상실했지만 대기업 광고에 의존해 명맥을 이어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로 인해 신문들은 수준 높은 기사를 통해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질적 경쟁이나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려는 자기 혁신보다는 광고 수주에 역량을 집중하는 대응을 하고 있다.”(배정근 숙명여대 교수)

절박한 명분과 근거

한겨레신문사가 ‘심의 절차’를 거쳐 교육부 광고를 게재하면서 ‘기사와 광고의 분리’ 원칙을 내세운 건, 가 광고로 인해 취재·보도에 영향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란 자신감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어떤 개인·집단, 정부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가 교육부 광고를 게재한 것에 대한 판단을 언론학자 6명에게 물었다. 이들 가운데 4명은 “한겨레신문사 경영진이 사회와 독자의 마음을 읽는 일 모두 잘못했다”고 말했다. 창간 독자인 이승선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는 “경영진의 인간적 충정은 이해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자의 공감과 마음을 얻어야 신문이 생존할 수 있을 텐데 (가) 현실과는 좀 떨어진 원칙을 실행하며 1차적으로 독자의 마음을 놓쳤고, 이후 원칙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또다시 독자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제 없다”고 말한 2명의 학자 가운데 황용석 건국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의견광고는 신문의 논조와 다른 반론을 실을 수 있는 ‘액세스권’의 문제다. 지면에 광고와 기사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편집 논조가 광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교육부가 광고로 반론을 제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논란 이후, 이에 항의하는 독자들에게 한겨레신문사는 11월3일 대표이사 명의의 편지를 보냈다. “야당과 여러 시민단체들의 교과서 국정화 반대 의견광고들을 연일 실었고,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의견광고 게재를 요청해왔”으며 “그릇된 국정화를 강력하게 비판하되 세상에는 우리와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언론의 원칙이라고 봤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는 10월29~30일 9개 신문에 집행된 교육부의 2차 광고는 받지 않았다. 10월30일 전략기획실이 사내 전자우편으로 밝힌 이유는 “광고 지면이 없다”는 것. 경영진은 “광고윤리규정과 심의기구 등을 보완하고 명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내·외 논쟁과 관련된 일인 만큼 이를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충분히 공론화하는 게 필요하다. 새 규정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현재까지의 원칙과 기준을 토대로 광고 게재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신문사 구성원 가운데는 신문 지면을 통해 1차 광고 게재에 대해 설명하고 내부 이견을 골고루 소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다.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 하어영 미디어국장은 “최근 단체협약에 근거한 공식 절차를 거쳐 신문 편집위원회에 참여해 이번 사안에 대한 신문 게재의 필요성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좋은 언론을 향하는 길은 어디에

어릴 적부터 를 읽으며 세상을 만난 ‘한겨레 키드’라고 자칭하는 민노씨는 논란의 와중에 ‘한겨레 키드의 독백’ 이라는 글을 에 썼다. “(교육부 광고 게재는) 부끄러운 일이고, 그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가) 광고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광고와 기사가 서로 영역을 달리하므로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직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취재  뒷얘기


내가  ‘방화범’입니다


10월26일 오후, 매주 월요일마다 있는 편집회의에서 교육부 광고 게재 논란을 기사로 쓸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의견은 엇갈렸다. 더 지켜보고 제대로 취재하여 쓰자는 쪽으로 논의가 모였다. 그 결과, 우리 자신의 일인데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써야 하는 ‘유체 이탈’의 취재를 내가 맡았다. 고역이었다.
같은 날 저녁 7시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열린 사내 토론회의 분위기는 스콘 빵처럼 딱딱해, 인사 건네는 말도 조심스러웠다. 양복 스치는 소리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비장함이 비애가 되고, 분노가 무력감으로 옮아갈 때쯤, 밤 10시를 훌쩍 넘겨 토론회가 끝났다.
토론에서 어느 간부는 “광고는 ( 안에서) 늘 뜨거운 감자였다. 편집과 광고 사이에 방화벽(firewall)을 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럼 내가 방화범이냐!’라고 반발한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차마 손 들고 얘기하진 못했으나, ‘광고와 기사 분리 원칙’을 형식적으로 적용하자면 지금 나는 방화벽에 불을 지르고 있다. 다만 무엇을 위해 어떻게 불을 지를 것인지의 차이가 있겠다.
내가 일하는 디지털팀에선 기자와 경영관리 사원이 함께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고 독자 프로모션을 한다. 어느 기자는 이번 논란을 두고 ‘돈 앞에 장사 없다’고 했다. 그래, 돈 없이는 못 산다. 그런데 언론이라면 독자 앞에서도 장사 없어야 한다.
돈이냐 독자냐 양자택일 아니냐고? 글쎄, 의 목표는 독자가 자발적으로 ‘돈 주고 읽고 싶은’ 언론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번 돈을 독자를 위한 저널리즘에 펑펑 쓰는 거다. 그런 돈만 가치가 있다. 그런 언론만 생존할 가치가 있다. 우리 자신의 일이지만 남의 일처럼 취재하되 우리 안팎을 향해 이번 기사를 쓰고 싶었던 이유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