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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게 개축해 유병언 사진 전시

허위 매매계약서, 무리한 증개축, 부실 선박검사, 상습 과적 ‘대한민국 가장 위험한 배’
등록 2015-10-07 18:27 수정 2020-05-02 07:17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다.”
이아무개(3등 기관사)는 5층 조타실에서 신보식 선장이 갑판장과 나누는 얘기를 엿듣다가 깜짝 놀랐다. 세월호의 복원성(선박이 좌우로 기울었다가 다시 서는 성질)이 나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 정도로 나쁜 줄은 몰랐다. 그리고 보름 뒤 세월호는 전남 진도 팽목항 부근에서 좌현으로 기울었다가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1999년부터 인천~제주 항로를 독점해온 청해진해운은 2010년 카페리호 여객선을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월·수·금 노선(인천 출항)에 운항 중인 오하마나호(6322t, 1989년 건조)가 노후한데다 다른 선사의 항로 진입 움직임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인천~제주 항로에 화·목·토 노선을 추가하면 3년간 적자가 나겠지만 이후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손익계산서가 나왔다. 청해진해운 김한식 사장은 유병언 회장의 승인을 받아 선박을 물색했다. 1994년 일본 히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한 총중량 6588t, 재화중량(안전한 항행이 가능한 최대 적재량) 3963t인 나미노우에호를 낙점했다. 청해진해운은 8억엔(약 116억원)을 지급하고 2012년 10월 선박을 인도받기로 매매계약을 했다. 대금은 청해진해운이 16억원을 마련했고 나머지 100억원은 산업은행에서 빌렸다.
① 별도로 공란으로 둔 허위 매매계약서 체결
첫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나미노우에호의 재화중량(3963t)이 커서 해운법이 정한 ‘증선 기준’을 충족할 수 없었다. 해양수산부는 선사가 기존 항로에 추가 여객선을 투입할 때 평균 25% 이상의 운송 수입을 올릴 수 있음을 증명하도록 했다. 출혈 경쟁으로 인한 화물 과적을 예방하려고 진입장벽을 높인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편법을 고안했다. 매매계약서를 체결하면서 원계약서와 별도로 ‘재화중량’ ‘인도기간’ 등을 공란으로 둔 허위 매매계약서를 한 부 더 작성한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재화중량에 ‘3063t’, 인도기간에 ‘2012. 7’이라고 거짓으로 적었다.
2011년 7월 청해진해운은 인천지방해양항만청에 인천~제주 항로 증선 인가를 신청하면서 사업계획서와 허위 매매계약서를 제출했다. 사업계획서에는 여객 정원 750명에 재화중량 3천t으로 더 줄여 넣었다. 그래야만 평균 운송수입률이 가까스로 25%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허위 매매계약서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2011년 8월 증선을 인가했다. 이 과정에서 청해진해운 임직원은 항만청 공무원에게 수천만원의 뇌물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항만청 공무원을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1심에서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2~5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는 뇌물을 줬다는 청해진해운 임직원의 검찰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대신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청해진해운 임직원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로 처벌했다. “허위 매매계약서를 토대로 증선 인가를 한 것은 행정처의 불충분한 심사로 인정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인도 기간까지 거짓이라고 알기는 어렵다. 따라서 항만청의 불충분한 심사가 아니라 청해진해운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된다.”(2015년 6월23일 광주고법 형사6부 판결문) 청해진해운은 ‘유죄’, 항만청은 ‘무죄’라는 결론인 셈이다.

광주고법은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해 인천~제주 항로 증선을 인가받은 청해진해운 임직원에게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를 적용했다. 하지만 이를 승인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주고법은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해 인천~제주 항로 증선을 인가받은 청해진해운 임직원에게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죄를 적용했다. 하지만 이를 승인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사진공동취재단

② 무리한 증개축 뒤 수익성 보장도 실패

2002년 10월7일 이준석 선장과 신보식 당시 1등 항해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나미노우에호를 인수해왔다. 당시 선박 상태는 양호했다. 2014년 5월30일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사에서 신보식 선장은 “(운항할 때) 특별히 문제점이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너울성 파도를 만나도 그렇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문제는 증개축 과정에서 발생했다. 2012년 10월22일 선박 명칭을 ‘세월호’로 등록한 뒤 대규모 선박 개조 공사에 돌입한다. 시작은 유병언 회장의 말 한마디였다. “사진 전시실을 만들어라.” 사진작가로 활동해온 유 회장을 위해 청해진해운은 그의 사진을 1억원어치나 사들였다.

세월호 증개축은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전남 영암 CC조선에서 진행됐다. 5층에 전시실을 새로 지으면서 4층도 연장해 여객 공간을 늘렸다. 선수 우현의 카램프(차량 진입문)도 철거하고 철판으로 막았다. 컨테이너 화물을 더 싣기 위해서였다. 증개축 수리비용으로 51억원이나 들였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여객 정원은 804명에서 921명으로 늘었지만 적재 가능한 화물량은 반토막 났다. 객실과 전시실을 만들면서 머리가 큰 오뚝이처럼 불안정해졌고 우현 카램프를 철거하면서 좌우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51cm 올라간 무게중심을 내리고 균형을 맞추려면 평형수를 1324t이나 늘려야 했다. 그만큼 화물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적재 가능한 화물량은 1077t으로 감소했다. 세월호 증개축 설계자와 복원성 계산자에게 검찰이 물었다.

수사관 사업성과 선박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세월호 같은 개조를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는가.
복원성 계산자 안 된다.
수사관 만약 화물을 과적하고 평형수를 빼내 만재흘수선(안전한 항해를 위해 물에 잠기는 적정 수위를 배 표면에 표시한 선)을 맞추면 어떻게 되는가.
계산자 복원성이 아주 나빠져서 선박 전복 위험성이 매우 높아진다.
(이아무개 설계업체 대표, 2014년 4월24일 검경 합동수사본부 진술조서)
수사관 세월호 사고 당시 화물량은 1070t을 훨씬 초과하고 평형수는 2·4·5번 탱크만 채웠는데 복원성이 어떻다고 생각하나.
증개축 설계자 많이 위험한 상태다.
수사관 배에 승선하겠는가.
설계자 그 배의 위험성을 알기에 절대 승선하지 않을 것이다.
수사관 세월호 선원들은 화물을 넣으려고 평형수를 100% 채우고 운항하지 않았다.
설계자 그렇다면 작은 외력에도 쉽게 기울어지고 한번 기울어지면 본래 상태로 돌아오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윤아무개 설계업체 대표, 2014년 4월24일 검경 합동수사본부 진술조서)

③ +값을 -로 입력하는 부실한 선박검사

세월호 증개축 설계 도면과 복원성 계산서는 한국선급이 검토·승인해야 했다. 설계자가 경사시험을 해 복원성 계산서를 완성하면 한국선급 선박감사원이 이를 승인하는 것이다. 경사시험이란 배 위에서 중량물의 위치를 옮겨서 배가 기울어지는 각도를 측정해 경하중량(선박 자체 무게)과 무게중심을 구하는 시험이다.

2013년 1월 세월호의 경사시험이 진행됐고 전아무개 선박감사원이 감독했다. 그리고 1월28일 제출된 경사시험 결과서를 다음날 승인했다. 하지만 감독은 허술하기만 했다. 첫째, 설계자의 계산 실수를 잡아내지 못했다. 세월호는 선미가 선수보다 더 잠겨 있는 선박이라서 선미흘수선을 +0.077m 보정해야 한다. 그러나 설계자는 -0.077m로 잘못 입력했다. 세월호의 선미가 실제보다 0.154m 적게 물에 잠긴 것으로 계산됨에 따라 경하중량이 실제보다 가볍게, 무게중심이 실제보다 낮게 산정됐다.

둘째, 연료유 및 청수 계산에 오류가 발생했다. 연료유와 청수가 만재된 상태(최대 용적의 96%)에서 출항 복원성을 계산해야 하는데 90% 적재했을 때를 조건으로 설정했다. 그만큼 적재 가능한 화물량이 늘어났다. 셋째, 컨테이너 화물 단위무게를 비현실적으로 추정했다. 10피트 컨테이너의 무게는 통상 6t으로 산정하는데 세월호는 3t으로 줄였다.

넷째, 실제 공사 결과는 애초 승인된 설계 도면과 달랐지만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세월호는 4층 여객실 출입문을 4개 증설하고 위치를 바꿨다. 또 5층 전시실에 사진 전시를 위한 대형 구조물(21t)을 추가했다. 이렇게 세월호 구조가 달라지면서 복원성이 더 나빠졌다. 특히 침몰 사고 이후 잠수사가 선내 수색 작업을 할 때도 큰 혼동이 발생했다. 세월호 선박검사를 부실하게 한 이유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선박감사원에게 물었다.

수사관 경사시험의 기초 자료인 데이터를 설계회사에 맡기고 모두 검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선박검사원 검증해야 할 범위가 너무 많기 때문에 샘플 검사를 했다.
수사관 설계회사는 선주의 의뢰를 받아 선박이 출항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민간업체다. 선주에 유리한 데이터를 작성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그렇게 검증해도 무방한가.
선박검사원 (묵묵부답)
(전아무개 선박검사원, 2014년 5월9일 검경 합동수사본부 진술조서)

검찰은 선박검사원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 업무를 관련 규정에 따라 충실하게 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지만 “업무를 방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대형 선박의 경우 선박검사원 혼자서 관련한 모든 자료를 계측하고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설계자)의 계측 결과를 신뢰했다고 해서 경사시험 결과가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④ 평소보다 6배 많은 승객, 최대의 2배인 적재량

청해진해운은 증개축 공사가 끝난 뒤에야 화물량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을 알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증개축 현장에서 감독을 맡았던 안기현 해무팀 이사의 말이다. “최종적으로 수리가 완료된 시점, 즉 경사시험을 하고 나서 들었다. 선체를 자르기 전에 들은 것이 아니라 선체 수리를 다 하고 난 후였다.” 그는 객실을 늘리는 개조를 하더라도 화물량은 약간만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고 했다.(2014년 5월2일 검경 합동수사본부 피의자 신문조서)

2013년 2월 청해진해운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적재 가능한 화물량이 많이 줄어들어서 수익성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었다. 그 다음달 세월호는 그냥 출항했다. 그리고 그 뒤 1년간 최대 화물량(1077t)의 2배를 싣고 주 2~3회씩 운항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는 2014년 4월15일 밤 9시에도 인천항을 출항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들이 승선해 탑승객은 평소보다 6배(476명) 많았다. 출항이 늦어지면서 화물이 늘어 최대 적재량의 2배(2142.7t)가 됐다. 반면 평형수는 복원성에 필요한 양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만재흘수선(6.26m)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8시48분 맹골수도를 막 빠져나온 위험한 배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다가 좌현으로 30도 기울었다. 무리한 증개축과 화물 과적 등으로 복원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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