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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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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침몰시키는 아이들, 또 구조 신호를 외면할 텐가

단원고 생존 학생들, 외상후스트레스(PTSD)로 불면증, 자해, 분노조절장애… 평생 갈지도 모르는데 정부는 시행령에 5년만 심리상담비 지원한다고 못박아
등록 2015-08-13 14:52 수정 2020-05-03 04:28

“엄마, 얘기 좀 해요.”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인 경기도 안산 단원고 3학년 수영(18·가명)양이 엄마에게 다가와 손목을 내보였다. 엄마는 자해 흔적이 흐릿한 손목을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겉으로 보기에 수영양은 활달한 아이다. 동아리 생활도 열심히 하고 학생회장에 출마한 경험도 있다. 까르르 웃는 씩씩한 모습을 보고 다들 “(생존 학생 가운데) 걱정이 덜 되는 아이”로 여겼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니었다.

힘들게 살아남은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 지난 1월9일 단원고 제28회 졸업식에서 생존 학생들이 졸업하는 선배들을 위해 합창 공연을 하다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힘들게 살아남은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 지난 1월9일 단원고 제28회 졸업식에서 생존 학생들이 졸업하는 선배들을 위해 합창 공연을 하다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매일 악몽… 나도 모르게 자해

수영양은 사고 뒤 매일 같은 악몽에 시달렸다. 그 악몽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악몽 때문에 잠들기 어렵고 자다 깨기도 일쑤라고 털어놨다. 하루 수면시간은 2~3시간 정도. 수면제도 먹어봤지만 그러면 멍해져 학교 생활이 힘들었다. 고3 수험생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혼자 이겨내보려고 버텼는데 어느 날, 몽롱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해를 한다는 걸 알아챘다. 깜짝 놀랐지만 수영양은 그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흔적은 시계와 팔찌로 가리며 지냈다.

뒤늦게 수영양이 엄마에게 고백한 것은 친구 지연(18·가명)양 때문이었다. 세월호에서 탈출할 때 허리를 다친 지연양은 병원에서 엑스레이(X-ray)를 찍으려고 옷을 갈아입다가 엄마를 놀라게 했다. 엄마가 지연양의 왼쪽 손목에 그어진 줄을 발견한 것이다. 오른쪽 손목에도 같은 흔적이 있었다. 엄마는 무너져내렸다.

지연양 이야기를 들은 수영양은 엄마에게 먼저 말하기로 결심했다. “엄마, 걱정 마. 고칠게. 의사 선생님도 만날게.” 딸 소식에 아빠는 나흘간 출근하지 못했다. 언니는 헛구역질을 하며 걱정했다. 엄마는 계속 눈물만 났다. 가족들은 한방에서 잠을 자며 ‘고통의 시간’을 나누고 있다.

힘들게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다. PTSD는 심각한 외상 사건을 경험한 뒤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질환으로 정신적·신체적 기능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건을 경험한 직후는 물론 몇 개월 또는 몇 년 뒤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첫 번째 증상은 사건 당시 기억이나 감정을 재경험하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 속으로 끊임없이 침습(원하지 않는데 특정 생각이 반복되는 증상)한다. 둘째, 사고 기억, 감정이 떠오르지 않도록 스스로 회피한다. 그런 생각이나 대화뿐 아니라 관련한 사람, 장소도 거부한다. 셋째, 집중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크게 짜증내고 자주 분노를 폭발한다. 악몽·불면증·분노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된다.

단원고 마음건강센터 김은지 센터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자려고 누우면 사고 때가 생각나고 친구가 떠오른다. 뒤척이다가 해 뜰 때쯤 잠들면 악몽이 찾아온다. 건물이 무너지거나 쫓기는 꿈인데 세월호 사고를 상징한다. 그러면 불안해서 더욱 잠을 못 잔다. 수면이 부족해지면 우울·불안이 높아지고 예민해진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크게 화를 내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청소년 정신과 의사인 김 센터장은 지난 7월부터 단원고에서 ‘스쿨 닥터’로 생존 학생들을 돌보고 있다. 생존 학생 부모들은 실제로 새벽 4시까지 아이들 휴대전화에서 “카톡”(카카오톡)이 요란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것도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한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지난해 7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안산 단원고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1박2일간 도보 행진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것도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한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지난해 7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안산 단원고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1박2일간 도보 행진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행진에 나선 생존 학생의 가방에 친구들 이름표가 달려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행진에 나선 생존 학생의 가방에 친구들 이름표가 달려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75명 생존 학생들, 75개 트라우마

김 센터장은 “불면증·악몽을 많이 호소하지만 아이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한 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다. 75명의 생존 아이들 수만큼 다양한 트라우마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겪은 세월호 참사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물속에서 친구가 발목을 잡는데 뿌리치고 나왔다 하고, 어떤 아이는 복도까지 함께 나왔는데 손잡았던 친구가 물에 떠내려가버렸다고 한다. 선실 캐비닛이 물에 떠다녔는데 거기에 머리가 끼어서 한참 나오지 못하다가 겨우 탈출했던 경험도 있다. 화장실에 함께 앉아 있던 친구에게 나오라고 손 내밀었는데 무섭다고 나오지 않았다고도 하고…. 그 아이는 화장실만 가면 친구 생각이 난단다.” 한 생존 학생 아버지의 증언이다.

사고 경험이 다양하기 때문에 심리적 치료가 5년이면 끝날 아이도, 평생 받아야 할 아이도 있다고 김 센터장은 말한다. “아이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이들은 나아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한꺼번에 뭉뚱그려 질문하지만 생존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그만큼 오래, 깊이 심리상담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세월호 참사 뒤 병원에서 퇴원한 생존 학생들이 학부모와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합숙하며 심리상담 등을 받았는데 그때 심리적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싹텄기 때문이다. 4·16 인권실태조사보고서 를 보면 생생한 증언이 나온다.

“연수원 생활은 처음에는 대개 안 맞았어요. 너무 일정도 빡빡하고 심리치료를 한다고 하면서 솔직히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거예요. 자꾸 사고가 나서 좋은 점을 얘기해보래요. 그래 갖고 그냥 애들 다 뭐 싸웠던 친구랑 연락이 닿았어요, 이런 것 얘기하고…. 사실 사고가 나서 좋은 점이 어디 있어요?”(생존 학생 박민지(가명)양)

“심리검사가 힘들었어요. 막 1천 문항 이렇게 질문을 하고, 같은 걸 연수원 가서도,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계속 하고. 검사지 이름이 똑같아요. 그걸 10번 이상씩 받았어요. 애들은 진짜 (심리적으로) 힘들어해도 검사지에는 성실히 답 못하는 것 같아요. (연수원 생활 초반에는) 밥 먹고 검사하고 밥 먹고 검사하면 밤 10시예요. 그럼 자야 해요. 우리 조 애들은 하기 싫어서 뛰쳐나가고 그랬어요.”(생존 학생 박민규(가명)군)

“(연수원 있을 때) 연구소에 들어왔는데 자기들 말로 4개월 프로그램이래요. 그걸 열흘에 다 하는 거예요. 아이들한테나 부모한테나.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 아이들이 연구 대상, ‘마루타’인 거예요. 그 사람들 논문 쓰기 위한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어요. 아이들 친구들 시신이 다 건져지기도 전인데 계속 후벼 파서 나오게 해야 한대요. 어떤 아이들은 거기서 폭발했어요. 이게 무슨 상담이냐고요.”(생존 학생 부모 이아무개씨)

3년간 심리상담비 300만원으로 추정하여 책정

4·16 인권실태조사보고서는 “생존 학생에게 제공한 치유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최근 심리상담 지원 기간을 정부는 5년으로 한정했다.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피해구제 특별법) 시행령을 보면, 피해자 등이 의료기관에서 심리적 증상 및 정신질환 등의 검사·치료를 받을 경우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2020년 3월28일까지 지원하도록 돼 있다. 원래 세월호 피해구제 특별법(제25조)은 “국가는 피해자의 심리적 증상 및 정신질환 등을 검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고만 규정했는데, 정부가 시행령으로 그 기간을 5년으로 못박은 것이다. 5년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거나 재발하는 심리적 트라우마는 정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마저도 배·보상금에 해당 정신질환 등의 진단·치료비를 산정·포함했으면 아예 지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향후 검사·치료비도 쥐꼬리 수준으로 산정한다. 단원고의 한 학생이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향후 3년간 심리상담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추정 치료비로 겨우 300만원이 나왔다.

청소년은 심리·정서적으로 발달 과정에 있고, 자신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최소 10년은 지속적으로 추적 관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1987년 3월 19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여객선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사건’을 장기 추적 연구해보니, 청소년은 사고 5~8년 뒤에도 34%가 PTSD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의 여객선은 뱃머리의 문을 연 채로 벨기에 제브뤼헤 항구를 출발한 뒤 갑판이 물에 잠기면서 전복됐다.

2004년 동남아 쓰나미 사건 이후 노르웨이 유가족을 추적했더니 6년이 지난 뒤에도 36.2%가 1개 이상의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 역시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PTSD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신체 질환도 발생한다. 최근 PTSD 증상이 나타나면 당뇨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발표도 나왔고, 미국 9·11 테러 이후 피해자들이 심혈관·호흡기 등 다양한 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 것으로도 나타났다. 생존 학생들은 이미 사고 당시에 부딪힌 후유증으로 팔과 다리, 허리 등에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피부염, 두통, 역류성식도염,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고 있다.

진상 규명이 치유의 첫걸음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 것도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한다. 심리학자들은 지난해 8월 ‘진실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 비극적인 현실의 이유를 밝히고자 함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왜 침몰했는가’ ‘왜 더 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고통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둘째, 짓누르는 죄책감을 덜어낼 출발점이다. 진짜 원인을 밝혀내야 살아남은 자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진상 규명이 과거와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불신과 무력감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지난해 생존 학생들이 세월호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고 안산 단원고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1박2일간 도보 순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친구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재판 증인이나 도보순례) 다 아이들이 하자고 했어요.”(생존 학생 부모 오아무개씨) “아이하고 얘기하다보면 내 친구는 왜 죽었을까, 밝혀야 하지 않을까 해요.”(생존 학생 부모 이아무개씨)

피해자의 뜻과 달리 심리상담 지원이 5년으로 한정된 이유가 무엇일까. 말 그대로 피해자를 구제·지원하는 법률임에도 정부가 피해자를 배제한 채 시행령을 만들고 지원 방안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시행령안을) 일방적으로 받았고 이렇게 국가가 가겠다 (선언했죠. 피해자들이) 모여서 투표해서 다시 만들었어요. 다 보류됐습니다. 제로예요. 생존자는 치료를 평생 해줘야 하는데 ‘니네는 살아 왔잖아?’ 이게 끝이에요.” 생존 학생 부모 박아무개씨의 말이다.

지금까지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와 정부 혹은 가해자 쪽이 각각 손해사정사·변호사를 선임해 피해를 산정했다. 그 차이가 크면 협상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세월호 피해구제 특별법은 배·보상 기준은 4·16 세월호 참사 배상 및 보상 심의위원회가, 심리상담비 지원은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지원 및 희생자 추모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할 그 누구도 위원회에 없는 셈이다.

생존 학생의 아버지 오지연씨는 답답하다고 했다. “위원회에 출석해 아이들 고통을 얘기했는데 전혀 모르고 있어요. 울다가 실신하고 자살·자해를 시도할 정도로 그렇게 아이들이 괴로워하는데 해양수산부가 ‘(생존 학생들) 잘 지낸다, 괜찮다’고 하니까 그 말만 믿고….”

배·보상금, 심리상담비 지원 신청 기간은 9월28일까지다. 앞으로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시행령 공포 뒤 6개월 이내로 한정하고 있어 민법과 국가배상법이 정한 소멸시효(3년)보다 훨씬 짧다. 반토막 예산으로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딘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진상 조사 결과를 전혀 반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54쪽 참조). 나중에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가 추가로 밝혀지더라도 추가 배상을 받을 수도 없다. 세월호 피해구제 특별법(제16조)을 보면 “배·보상금, 위로지원금 지급 결정에 동의할 때 국가와 신청자(피해자)가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고 돼 있어서다.

자녀 불이익 받을까봐 국가 손배 못해

그렇다고 생존 학생 부모들은 일부 희생 학생 부모처럼 배·보상금을 거부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아이들이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을까봐 두려워서다. 대학 진학, 군 입대, 취업 등 졸업 이후 펼쳐질 생존 학생의 미래가 충분히 불안하다. 생존 학생 부모인 이씨가 말한다. “(단원고를) 졸업하면 그다음부터가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대학을 가면 혼자라는 거, 대학 가서 친구야 사귀겠지만, 친구들이 ‘넌 어떻게 나왔어? 어떻게 살아왔어?’ 이걸 알게 되면 그때부터 또 시작일 것 같아요. 아이가 또 상처받고 그런데 (심리상담 지원은) 5년이라니, 그걸로 되겠어요?”

*참고 문헌: 4·16 인권실태조사보고서 (416연대, 2015)안산=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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