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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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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책 속 어린이는 나라의 찬밥

어린이만을 위한 아동 예산은 3.6%에 불과, 그나마 발달권 중심으로만 짜여 있어, 어린이 정책을 어린이가 이야기할 ‘참여권’ 보장 필요해
등록 2015-05-05 21:36 수정 2020-05-03 07:17
어린이날을 맞아 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243개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아동정책을 들여다봤다.
국내·국제법상 아동은 만 18살 미만의 아이들을 말한다. 은 그 가운데 만 7~12살에 해당하는 어린이 정책에 돋보기를 갖다댔다. 분석 결과, 어린이는 뒷전이었다. 전체 아동정책 예산 11조8600억원 가운데 어린이만을 위한 예산은 4300억원, 3.6%에 불과했다. 예산의 대부분은 영·유아 돌봄 예산에 치중해 있었다.
정책 편중도 심하다. 어린이 정책은 대부분 아이들의 교육·인성 함양을 북돋우는 ‘발달권’ 정책에 쏠려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알고 표현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참여권’ 정책은 아예 없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정하고 있는 아이들의 4대 권리인 생존·발달·보호·참여권은 서로 맞물려 있다. 아이들이 참여하지 않는 생존·발달·보호권은 어른의 관점만 포함된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은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줬다. _편집자
지난 4월28일 서울 은평구 북한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6학년 어린이들이 손을 잡고 뛰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날 자신이 원하는 어린이 정책을 쏟아냈다. 왼쪽부터 김현우, 김강민, 구정찬, 이지윤, 황다경, 이석현, 김태겸. 정용일 기자

지난 4월28일 서울 은평구 북한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6학년 어린이들이 손을 잡고 뛰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날 자신이 원하는 어린이 정책을 쏟아냈다. 왼쪽부터 김현우, 김강민, 구정찬, 이지윤, 황다경, 이석현, 김태겸. 정용일 기자

흔히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어린이에게 ‘보배’로서의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을까. 어린이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정부가 시행하는 어린이 정책을 분석하는 것이다.

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전국 243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의 아동정책을 분석했다. 우리나라 ‘아동’의 기준은 만 0살부터 만 18살까지다. 이 가운데 만 0살부터 만 6살까지를 영·유아, 만 7살부터 만 12살까지를 어린이, 만 13살부터 만 18살까지를 청소년으로 구분한다. 여기서는 주로 어린이(초등학생)를 위한 정책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예산 불균형 조정하는 부처 없어

분석 결과 전체 아동정책 1487개 가운데 어린이만을 위한 정책은 127개(8.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유아를 위한 정책 264개(17.8%)의 절반 수준이었다. 청소년 정책 207개(13.9%)보다도 훨씬 적다. 예산 비율에서는 더욱 큰 차이가 났다. 광역 및 기초단체의 전체 아동정책 공약 이행 예산 약 11조8600억원 가운데 어린이만을 위한 예산은 약 4300억원(3.6%)에 불과했다. 영·유아 예산 약 2조9500억원(24.9%)에 비하면 상당히 미미한 숫자다. 규모가 적은 청소년 예산조차 어린이 정책의 2배에 이르는 약 7300억원(6.2%) 수준이다. 이는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 모두에 해당하는 정책을 제외하고 각각의 대상에만 해당하는 정책을 분석한 결과다.

이것은 우리나라 아동정책의 상당 부분이 영·유아 보육 정책에 치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정부 정책이 학교 교육에 집중되고 양육 책임은 오롯이 가정의 몫으로 맡기는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선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옹호사업팀장은 “영·유아 보육의 경우 정치인들이 갑자기 선언적으로 공약을 내걸다보니 크기가 커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어린이 양육은 여전히 가족의 몫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조차 국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전체 아동복지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유아 보육’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201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아동·가족 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23%지만, 한국은 0.93%로 OECD 34개국 가운데 32위에 해당할 만큼 아동을 위한 예산이 적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는 “영·유아 보육 쪽으로 돈이 너무 많이 나간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전체 아동정책 예산 규모가 적은 게 문제라고 봐야 한다.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영·유아 무상보육은) 대통령 공약 사항이니 그건 해야겠고, 그러다보니 다른 영역에 대한 투자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산 부족 문제뿐 아니라 예산 불균형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부처가 없다는 점도 큰 문제다. 현재로서는 0~18살 아동에 대한 복지 전반을 총괄하면서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 등 단계별로 체계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정부 기관이 없다. 교육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 여러 기관이 얽혀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는 “아동정책이 부처별로 분산돼 있다보니 어떤 정책이 교육의 영역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부터 시작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시스템은 사고가 터지거나 정책의 미비점이 발견됐을 때 부처별로 서로 책임을 미루는 등 부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시스템 미비는 교통사고·학대·유괴 등으로 어린이 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후 대처식 정책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13년 12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사가 학교 교과 과정이 끝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13년 12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사가 학교 교과 과정이 끝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영·유아 보육 쪽으로 돈이 너무 많이 나간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전체 아동정책 예산 규모가 적은 게 문제라고 봐야 한다.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대통령 공약 사항이니 그건 해야겠고, 그러다보니 다른 영역에 대한 투자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

전국 243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가 만들어낸 127개 어린이 정책 내용은 주로 어떤 것들일까. 이 정책들을 아동의 4대 권리인 생존권(건강·기본생활보장), 보호권(안전·유해환경·학대), 발달권(보육·교육·인성), 참여권(인권·표현 및 결사의 자유)으로 나눠본 결과, 전체 어린이 정책의 42.5%(54개)가 발달권에 치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보호권 31.5%(40개), 생존권 16.5%(21개) 순이었다. 4대 권리와 직접 상관없는, 아동복지 전달 체계나 법·제도 변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해당하는 정책이 9.5%(12개)였지만, 참여권에 해당하는 정책은 아예 없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참여권 보장 권고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보면, 발달권에 해당하는 정책의 경우 △방과후 돌봄교실 △어린이공원 조성 △어린이도서관 설립 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보호권 정책은 △어린이보호구역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 등 교통정책 위주였고, 생존권 정책으로는 △어린이 급식관리지원센터 설치 △어린이 무료접종 △취약계층 어린이 영양관리 등이 있었다. 반면 인권 증진 교육이나 학교 자치활동 활성화, 어린이 참여기구 설립 등 참여권에 해당하는 정책은 어떤 광역 및 기초단체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권을 생존권이나 발달권, 보호권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선영 팀장은 “아동의 4가지 권리는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다. 생존·보호·발달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참여권이 보장돼 스스로 필요한 부분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권이 존중돼야 아동에 가장 적합한 생존·보호·발달권이 같이 충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어린이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으면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공급자 위주의 정책이 만들어지게 된다. 어린이가 원하는 정책보다는 관리가 편하고 예산이 적게 드는 정책이 주가 되는 등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도 2011년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4차 국가보고서 심의결과’ 보고서를 통해 “아동을 포함하는 공개 대화를 통해 예산 수립 과정의 투명성 및 참여제도를 보장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외국에서는 아동의 정책 참여가 훨씬 다양하게 보장된다. 프랑스는 1994년부터 매년 어린이의회를 개최해 어린이들이 직접 법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실제 프랑스 공화국 법률로 제정·공포된 법률이 4개에 이른다.

이선영 팀장은 “어린이들을 만나면 정치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고 이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아이가 많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직접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동국회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런 참여가 단순한 ‘스펙’으로만 이용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을 바꾸는 성공 경험으로 쌓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월28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월22일 0~2살 영아의 가정 양육을 유도하는 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혀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위). 2005년 9월 서울덕수초등학교 학생들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안전 운전을 해달라는 ‘스쿨존 슬로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위쪽부터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월28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해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월22일 0~2살 영아의 가정 양육을 유도하는 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혀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았다(위). 2005년 9월 서울덕수초등학교 학생들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안전 운전을 해달라는 ‘스쿨존 슬로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위쪽부터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부모의 노동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아동의 4가지 권리는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다. 생존·보호·발달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참여권이 보장돼 스스로 필요한 부분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권이 존중돼야 아동에 가장 적합한 생존·보호·발달권이 같이 충족될 수 있다.” -이선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옹호사업팀장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률을 낮추는 3가지 시점을 꼽는다. 첫 번째는 첫아이를 낳을 때다. 많은 여성들이 첫아이를 낳고 육아 문제로 직장을 그만둔다. 여기서 잘 버틴 사람도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두 번째 고비를 맞는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종일반이 있어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지만, 초등학교의 하교 시간은 그보다 훨씬 이르기 때문이다. 정익중 교수는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은 영·유아와 똑같은 돌봄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이와 관련된 인프라가 거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마지막 시점은 아이에게 사춘기가 왔을 때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망치기 싫어서’ 이 시점에 직장을 그만둔다.

이는 결국 아동복지 정책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부모의 노동정책이 유기적으로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진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특수성에 따라 아동정책은 노동·교육 정책과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방과후 교육 문제에 대해 학부모 운영위원회를 꾸린다고 해도 비정규직 직장인 부모는 참석하기 힘들다. 가정 친화적인 노동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또한 입시 위주식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의 권리가 계속적으로 침해되는 일이 발생한다. 아동복지 정책은 부모의 노동정책과 아이의 교육정책이 같이 가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아동수당제도



소득재분배 등 다양한 정책 효과



유럽의 선진적 아동정책을 얘기할 때 등장하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동수당’이다. 이 때문에 아동수당제도가 유럽의 일부 나라에서만 도입된 것으로 곧잘 오해되지만, 현재 아동수당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전세계 90개국에 달한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 미국, 터키,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아동수당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뉴질랜드가 1926년 최초로 아동수당을 도입한 이래 주요 국가의 아동수당제도 도입은 주로 1930~50년대에 이뤄졌다. 이들 국가에서 아동수당은 태어난 순간부터 만 16~20살까지 지급된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현재 만 5살까지만 ‘무상보육’이라는 이름으로 수당이 지급되고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 만 0살은 월 40만6천원, 만 1살은 35만7천원, 만 2살은 29만5천원, 만 3~5살은 22만원을 어린이집 비용으로 제공받는다. 가정에서 어린이를 키울 경우에는 만 0살은 월 20만원, 만 1~2살은 15만원, 만 3~5살은 10만원이 지급된다. 만 6살부터는 오롯이 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할 책임을 진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아동수당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1932년부터 아동수당제도를 도입한 프랑스를 예로 들면, 두 자녀 이상을 둔 모든 가정을 대상으로 아이가 만 20살이 될 때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자녀 수가 많아질수록, 또 자녀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수당은 더 많아진다. 2010년 아동수당 급여액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한 달 124.54유로(약 15만원)를 받고, 자녀가 늘어날 때마다 159.57유로(약 19만원)를 추가로 지급받는다. 또한 자녀가 만 11살이 되면 한 달에 35.03유로(약 4만원)를 추가로 받고, 만 16살이 넘으면 한 달 62.27유로(약 7만5천원)가 또 추가된다.
아동수당제도는 단순히 저출산 대책일 뿐만 아니라, 자녀가 있는 가구와 없는 가구 간의 소득을 재분배하고 아동 빈곤을 완화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효과가 있다. 이 때문에 아동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아동수당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그러나 한 달 5만~6만원의 무상급식을 놓고도 찬반 논쟁이 격렬한 한국에서 당장 아동수당을 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는 “아이들이 가진 천부적 사회권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굉장히 선별적으로 접근하는 것 때문에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아동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효과를 높이려면 아동수당을 도입하고 보육·교육 서비스를 공공이 주도해서 같이 가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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