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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도, 자격도 부족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4월7일 인사청문회 앞둬… 박종철 사건 부실수사, 사석에선 “좌익척결” 외치는 등 “기본적 직업윤리마저 의심스러운” 박 후보자의 행적들
등록 2015-04-07 14:37 수정 2020-05-03 04:27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역사적 문제, 그 시대의 아픔에 대해 일반인들의 여론이나 통상적 판단을 넘어서서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혜안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저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무난했다는 것으로 면피가 되는 자리가 아니다.”
대법관을 지낸 적이 있는 한 법전문가의 말이다. 대법원은 최종심(3심)을 담당하는 곳이다. 최종심이 내려지면 판결에 불만이 있더라도 더 이상 항고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판례는 역사에 두고두고 기록으로 남아 비슷한 수많은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대법원을 두고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표현한다. 대법원의 판사인 대법관에게는 그래서 ‘혜안’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4월7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과연 박 후보자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혜안과 용기를 가졌을까?
그의 경력 가운데 지혜나 철학, 용기를 엿볼 수 있는 사건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역사적 사건이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담당 수사검사로서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은폐 의혹은 부정하면서도 “수사를 철저히 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이 되어 괴로운 심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최소한 ‘부실수사’였다는 점은 인정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법관 후보자 자리에서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런 그가 과연 대법관에 오를 자격이 있을까. 그 삶의 궤적을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봤다. _편집자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자격 논란 가운데 가장 크게 문제되고 있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사건은 그해 6월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직선제 개헌’을 외치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결국 그해 ‘87년 체제’로 불리는 민주화가 이뤄졌다. 역사는 박종철 사건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였던 박상옥 후보자의 역할은 그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박 후보자는 1월19일 1차 수사팀에 합류한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팀장이던 신창언 형사2부장과 안상수 검사(현 창원시장), 박상옥 검사 3명이었다. 박 후보자는 고문 경찰관으로 의심되던 조한경과 강진규 2명 가운데 강진규를 조사한다. 4일 만에 수사를 끝낸 그는 1월24일 이 2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같은 해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고문 경찰관이 더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건은 더욱 확대된다. 결국 검찰은 5월20일 2차 수사를 시작해 고문 경찰관 3명을 추가로 기소한다.

지난 3월26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대학민주동문회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지난 3월26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대학민주동문회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단 4일 만에 끝낸 수사

박 후보자가 담당 검사로서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정황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2차 수사에서 추가 기소된 고문 경찰관 3명은 이미 박 후보자가 1차 수사에서 조사를 마친 이들이었다. 결과적으로 박 후보자는 1차 수사에서 이들을 조사하면서도 이들이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내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논란이 되는 것이 그가 과연 추가 범행을 밝혀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밝혀내지 ‘않은’ 것인지다. 박 후보자 본인의 주장대로 밝혀내지 못한 것이라면 ‘부실수사’이고, 밝혀내지 않은 것이라면 ‘축소·은폐’에 해당한다.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건의 축소·은폐에 직접 가담했을 법한 근거는 계속 튀어나오고 있다. 1차 수사에서 박 후보자에게 조사받은 강진규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박상옥 등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사가 (범인이 2명뿐이라는) 우리 말만 믿고 수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하려고 했다면 이(고문 주무자)를 확인하는 것은 수사의 기초, 에이비시(ABC)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1987년 재판 과정에서도 박 후보자가 다른 공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내용의 진술을 한다. 그는 당시 “(1차 수사에서 박상옥 검사가) ‘반금곤이 주범인데 왜 강진규가 주범자로 되어 있느냐’고 추궁하였지만 제가 답변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금곤은 박 후보자가 1차 수사 당시 조사를 마쳤던 경찰관으로 2차 수사에서야 추가 기소가 이뤄졌다.

1차 수사팀이 고문 경찰관 3명의 존재를 알았다는 근거는 또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의 2009년 조사 보고서를 보면, 당시 서울지검 공안2부장이었던 최환 변호사의 진술이 나온다. 그는 “(1차 수사 당시 고문 경찰관) 2명을 기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 안 검사(현 안상수 창원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둘밖에 없어?’라고 하자, (안 검사가) ‘3명이 더 있는 것 같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당시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는 경찰과 윗선의 공작에 맞서다가 수사팀에서 제외된 인물이다. 그의 진술대로 당시 안 검사가 1차 수사 때부터 고문 경찰관 3명의 존재를 알았다면, 같은 수사팀에 있었던 박 후보자도 이를 알았을 수밖에 없다.

3명의 존재, 정말 몰랐을까?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도 “일반적으로 물고문은 4~5명이 한 조가 돼 진행하며 급할 경우에도 최소 3명은 물고문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과 (1차 수사에서 기소된) 조한경은 1반 반장으로 총괄담당이고 강진규는 4반 소속이어서 이 둘만이 한 조가 되어 물고문을 진행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 등은 박상옥 후보자를 비롯한 당시 수사검사가 물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2명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음을 알았음에도 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이를 덮는 데 함께했다는 유력한 정황증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박상옥 후보자의 해명은 “몰랐다”는 것이다. 박 후보자 쪽은 최근 언론 해명을 통해 “후보자가 기억하기로는 (1987년) 3월 초순에 안상수 검사로부터 그런(고문 경찰관이 5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후보자가 당시 큰 충격을 받았고 수사를 철저히 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이 되어 괴로운 심정이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1차 수사가 종료되고 한 달이 넘은 시점에야 추가 범인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이다.

‘1차 수사 때는 몰랐다’는 박 후보자의 해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1차 수사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도 2차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이를 바로잡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막내 검사 프레임’이다. 국회 인사청문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한성 의원은 최근 “권위주의 시대에 (박 후보자는) 평검사로 진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조직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수사를 가로막은 게 사건의 진상이다. 그런 사람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건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막내 검사로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그런 막내에게 정치적 책임을 지우는 건 부당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박상옥 후보자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대법관 후보자’다. 개인에게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을지언정 ‘대법관 후보자’로서는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익명을 요청한 대법관 출신의 어느 법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가 됐다면 대법관으로서 역사적 평가에 대한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판사가 유신 때 긴급조치 위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고 해보자. 결과적으로는 아주 부당한 판결이었지만 판사가 ‘나는 당시의 판례를 따랐다’고 한다면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가 힘들 수도 있다. 판례를 변경하면서까지 제대로 된 판결을 내렸어야 한다고 비난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건에서 유죄를 내린 사람이 대법관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역사가 바로 서는 것 아니겠나.”

더 이상 ‘개인’이 아니다

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개최에 반대하면서 청문위원직을 사퇴한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는 감옥에서 나온 쪽지를 김승훈 신부에게 전달한 교도관도 있었고, 박종철의 사인을 (고문사가 아닌 쇼크사로) 조작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부검의도 있다. 엄혹한 시절에 미관말직에 있던 사람도 했던 일들인데 정의와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는 검사가 그런 용기도 없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대법관을 하겠다고 나설 자격은 없는 것 아닌가.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대법관 후보자로서 청문회에 올라갈 자격조차 없다”고 말했다.

“대법관뿐 아니라 법률가로서의 자질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법률가로서의 기본적인 직업윤리가 의심된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 후보자가 권력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기보다는 권력에 순응하거나 대세 추종적인 선택을 해온 인물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박종철 사건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다.

그는 1992년 부산지검 형사부 검사 시절, 무고한 시민을 물고문한 경찰관을 불구속 입건하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당시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과 이아무개 경장은 길거리를 지나던 시민 이아무개씨를 강도상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송도파출소로 연행한 뒤, 집단폭행하고 물고문까지 가했다. 당시 경찰은 이씨의 혐의 사실이 드러나지 않자 집으로 데려다주며 “재수가 없어서 당했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담당 검사였던 박 후보자는 이 경장을 불구속 입건하는 데 그쳤다. 이 경장이 현직에서 파면된데다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경찰의 불구속 지휘 건의를 받고 일반적 절차와 기준에 따라 수사 지휘를 했다”고 해명했다.

이 사건은 그가 박종철 고문치사 같은 역사적 사건을 담당했으면서도 ‘반인륜적 고문’에 대한 근절 의지를 확고히 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판사 출신이면서 국회 인사청문위원인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고문은 반인도적 범죄이며 헌법에 고문 금지가 명시될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이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인권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해야 할 대법관이라면 반인도적 범죄인 고문에 대한 정확한 근절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오히려 덮었던 장본인에게 대법관 역할을 맡길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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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은 없었던 행보

박 후보자는 또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비리 사학을 옹호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제공한 사분위 회의록을 보면, 그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사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경기대와 상지대 등 비리로 쫓겨난 옛 재단 관계자들이 복귀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나온다. 특히 박 후보자는 2012년 7월에 열린 사분위 전체회의에서 2004년 비리로 구속돼 유죄판결을 받은 손종국 전 경기대 총장의 친누나를 경기대 이사로 선임하는 데 찬성했다. 회의 도중 일부 위원이 비리 전력자의 친누나를 정이사로 추천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박 후보자는 이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세에 따른 그의 결정은 비리 전력자의 가족이 재단에 복귀하는 길을 터준 셈이 됐다. 이에 대해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 4개 교수·학술 단체는 공동성명을 내어 “박상옥은 사학 분쟁을 조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이었다. 비리종합백화점으로 불린 상지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리 사학들에 구 재단 인사들이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비판했다.

박 후보자가 술자리에서 ‘우익보강 좌익척결’을 외치는 등 이념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지난해 초 박 후보자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연구원들과 가진 식사 자리에서 술잔을 돌리며 “술잔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우익, 왼쪽으로 돌리면 좌익이라는데…. 우린 우익을 보강해야죠”라고 했다는 것이다. 복수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소속 연구원들은 과의 통화에서 “술자리에서 박 원장으로부터 ‘좌익척결, 우익보강’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 쪽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연구원들은 박 후보자가 원장으로 취임한 뒤 수평적이던 연구원의 분위기가 상하수직적으로 변했다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 연구원은 “박 원장은 연구원들과 소통하려 하기보다는 조직 구조를 실장 중심으로 만드는 등 연구원을 ‘검찰식 상하 구도’로 통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선라인 조직을 따로 만들어 소통 및 업무 추진에 혼선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원도 “박 원장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듣는 분이다. 연구원 내에는 구성원의 의견 수렴을 위하여 태스크포스팀이 구성되는데 여기서 의견을 내놔도 본인의 생각과 다른 것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분이 대법관이 되면 굉장히 갑갑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좌익척결, 우익보강!

박상옥 후보자에 대한 비판 여론은 점차 확산되는 모양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7개 시민단체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박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은 박종철 열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박 후보자를 임명 제청한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박 후보자는 억울하게 죽어간 한 대학생의 가해자와 그 가해자를 숨기려는 시도를 알면서도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했다. 대법관 자질이 없다”며 대법관 임명을 반대하고 있다. 대법관으로서뿐 아니라 법조인으로서의 자격 자체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뿐 아니라 법률가로서의 자질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법률가로서의 기본적인 직업윤리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대법관으로서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 4월7일 열리는 인사청문회에서는 과연 어떤 결론이 맺어질까.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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