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려되는 두 가지 풍경이 있다. 하나는 연말연시만 가까워오면 들리기 시작하는 ‘장난감이 모자란다’는 뉴스 속 부모들의 모습이다. 부모들은 스마트폰 알림으로 마트의 특정 장난감 ‘한정판매’ ‘독점판매’ 같은 문구를 받고는 득달같이 달려가 몇 시간 줄을 서서 ‘귀하신’ 장난감을 사서 아이에게 선물하는 기쁨을 큰 낙으로 여긴다. 증가 추세의 맞벌이 부부들이 평소 아이와 충분히 놀아주지 못하기 때문에 늘 미안한 마음에 대한 보상 심리로 아이를 위해 육아용품뿐 아니라 장난감도 쉽게, 자주 사주는 모양이다. 또 다른 풍경은 놀이로 둔갑한 교육 프로그램이 일찍 제공되는 것이다. 어떤 부모는 생후 13개월 자녀에게 통합자극 교구로 개발된 ‘한글 놀이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해 문자를 익숙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좀더 신경 쓰는 부모는 ‘놀이’를 통한 영어 습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게다가 다중지능이론으로 오감을 자극해 전뇌를 발달시킨다는 ‘음악 놀이교육’ 프로그램도 기꺼이 선택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와 교육 풍토에서 아이들의 순수 놀이는 위험할 정도로 방해받고 있다. 놀이를 가장한 교육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진짜 놀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뺏고 있다.
위험할 정도로 방해받는 순수 놀이
아이들에게 놀이는 기본적 욕구이며 동시에 세상을 배우는 길이다.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아이는 자신을 만들어간다. 누구나 일상에서 아이들이 노는 광경을 쳐다보면 놀이 과정에서 아이가 얼마나 집중력을 발휘하며 대단한 의지와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지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놀이 과정의 성취감을 바탕으로 자신감도 얻는다. 놀이 상황에서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되며, 이때 독립적인 사고가 길러진다. 영·유아기의 놀이는 내적 과정으로서 인성 발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적어도 취학 전까지는 생활 속에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많이 익숙한 양육 방식과 넘치는 장난감이 아이의 발달을 어떻게 방해하며 건강한 놀이를 위해 어떻게 독소로 작용하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개인의 삶 전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고, 아이 발달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헝가리의 여의사 에미 피클러(1902~84)의 영아보육학과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의 발도르프교육학은 영·유아기의 놀이를 진지한 작업이자 활동으로 바라보면서 건강한 인성의 토대라고 강조한다.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움직임과 놀이를 통해 창의성이 만들어지므로 영·유아기의 놀이 발달을 단계별로 구분해 설명한다. 여기서 자유 놀이가 풍성하게 이루어지려면 아이는 내적 자극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른들의 삶의 자세와 생활 모습이 본보기로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장난감 적을수록 상상의 폭 넓어져
신생아 시기에는 스스로 주변을 탐색하고 직접 실험할 수 있도록 감각적 자극을 피하는 것이 좋다. 생후 3~4개월까지 신생아의 환경은 아늑하고 단순해야 한다. 아기가 초점을 맞추게 되면 자신의 손가락과 손이 훌륭한 놀잇감이다. 이 시기의 아기는 자신의 손을 발견하고 집중해 놀며 손과 팔을 움직이며 놀이를 시작한다. 이때 움직이는 물건이나 소리 내는 장난감은 불필요하며 아이 발달을 방해한다. 약 3~6개월에 밝은 색 천(35cm 크기)을 주변에 놓아준다. 아기가 누운 상태에서 시선을 자극하는 모빌이나 지루함을 달래주려고 어른 손가락을 움직여주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
아이가 활동과 상상으로 놀이에 몰입하려면 어른들의 일상생활 태도가 중요하다. 어른의 과제는 놀이가 학습으로 인해 방해받지 않도록 놀이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일이다.
생후 3년간 아이는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운다. 이 시기에는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면 된다. 어른들의 행동은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며 모방의 대상으로서 놀이 행위로 그대로 옮겨진다. 예를 들어 엄마가 자신에게 해준 대로 인형을 사랑스럽게 재우고 우유를 먹이는 놀이를 한다. 아이가 몸을 충분하게 움직이려는 기본 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그러나 어른들이 제공하는 놀이 프로그램은 아이의 순수한 움직임을 방해하며 제한하기 쉽다. 이런 관점에서 만 3살 미만의 아이를 위해 어른이 전래놀이를 함께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 3~5살은 판타지 연령이다. 이때 아이들은 판타지를 펼치며 또래와 자유 놀이를 즐긴다.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상상하며, 역할 놀이를 창의적으로 구체화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놀이에서 재창조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세밀하게 완성된 장난감을 주면 상상의 여지가 제한된다. 트럭은 트럭이고, 다리미는 다리미일 뿐이다. 하지만 단순한 놀이 도구는 아이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장난감은 적을수록 상상의 폭은 넓어지고 집중하기에 좋다. 상상하는 아이에게는 장난감이 많을수록 방해가 된다. 장난감이 없어도 아이들은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다. 아이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잘 놀고 있다는 증거다.
만 5살 이후 아이들의 판타지 능력은 감소한다. 이 시기 아이들의 놀이 모습은 완전하게 바뀐다. 즉흥적인 상상 놀이가 아니라 계획하는 놀이를 시작한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또래에게 표현하며 계획을 놀이로 진행하느라 서로 세부 규칙을 세우며 즐거워한다. 레스토랑 놀이를 구상하면서 음식 종류를 정하고 역할을 나누다가 혹시 놀이가 이루어지지 못해도 아이들은 기뻐한다. 이때가 되면 아이가 심심해할 때, 어른이 놀이 제안을 하며 생각을 자극해주면 좋다. 이때도 아이의 놀이를 어른이 주도해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놀이를 할 때만 완전한 사람이 된다”
요약하면 영·유아기의 건강한 발달은 자유로운 놀이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놀이가 표면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아이가 활동과 상상으로 놀이에 몰입하려면 어른들의 일상생활 태도가 중요하다. 어른의 과제는 놀이가 학습으로 인해 방해받지 않도록 놀이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일이다. 결국 영·유아기에는 어른의 개입이 적을수록 아이는 저절로 잘 논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너무 일찍부터 너무 많은 개입이 ‘놀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 놀이들은 사실 놀이가 아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유용성의 사슬을 아예 벗어나서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서 열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놀이 충동’이라고 했다. 놀이 충동을 회복해 놀이가 사회의 원리가 되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아름다운 국가’라고 불렀다. “사람이라는 단어가 완전한 의미를 가질 때 놀이를 하고, 놀이를 할 때만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의 놀이 문화 전체를 점검하게 만든다.
이정희 (사)루돌프 슈타이너 인지학 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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