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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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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잡고, 얼음땡! 놀자판이면 어때요

놀이마저 개발·교육 일부로 여기는 시대… 몸·마음 부대끼는 사이
드는 깨달음 “노는 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들여다보는 기회”
등록 2015-01-01 14:46 수정 2020-05-03 04:27
2014년 12월20일 여러 세대가 어우러져 참여한 ‘생놀자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꼬리잡기를 하며 순수한 승부욕을 불태웠다. 생놀자판을 제안한 놀이활동가들은 “잊어버린 놀이력을 함께 찾고 공감하고 확산하고 싶다”며 사람들에게 같이 놀자고 손을 내밀었다. 하자센터 제공

2014년 12월20일 여러 세대가 어우러져 참여한 ‘생놀자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꼬리잡기를 하며 순수한 승부욕을 불태웠다. 생놀자판을 제안한 놀이활동가들은 “잊어버린 놀이력을 함께 찾고 공감하고 확산하고 싶다”며 사람들에게 같이 놀자고 손을 내밀었다. 하자센터 제공

“돼~지꽃이 피었습니다.” “악~어꽃이 피었습니다.”

2014년 12월20일 토요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4층 하하허허홀. 술래가 어떤 동물을 말할지 긴장이 감돌았다. 동물 버전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한창이었다. 돼지가 호명되자 다들 코를 들어올려 돼지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악어가 불리자 바닥이 늪인 양 바닥에 엎드리는 사람, 두 팔을 크게 벌려 악어 입을 표현하는 사람, 손가락으로 뾰족한 이빨을 묘사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몸짓이 드러났다. “그건 악어라고 볼 수 없겠어요.” 술래에게 지목당한 사람은 짧은 탄식과 함께 술래의 손을 잡은 채 누군가 빨리 끊어줘서 놀이에 참여할 수 있기를 고대하는 눈빛을 마구 발산했다.

놀이의 힘을 함께 찾는 ‘생놀자판’

술래도, 술래가 아닌 사람도 모두 즐거운 이 놀이판은 하자센터의 청년 놀이활동가들이 1년 동안 놀아온 걸 공유하고 함께 놀자고 손 내미는 ‘생놀자판’이었다. 놀이활동가는 뭘까. 청년들로 구성된 놀이활동가들은 하자센터가 기획한 어린이와 어른 세대가 함께 노는 ‘움직이는 창의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놀이의 판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1년 동안 도대체 놀이가 뭔지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공부도 했다. ‘한강공원에 가서 사람들 웃기기’ 같은 실험도 했다. “1년 동안 얻은 답은요, 삶은 곧 놀이고 희로애락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노는 것은 사치가 돼버렸어요. 아무도 놀지 않아요. 우리의 잊혀진 놀이력(놀이의 힘)을 함께 찾고 공감하고, 확산하자. 그런 생각으로 판을 깔았습니다.” 놀이활동가 리따(27)가 말했다.

생놀자판에는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20대·30대·40대까지 세대와 성별을 불문한 20여 명이 초대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스스로 찾아왔다. 대학생 이성원(21)씨는 한국에 대한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이씨는 4살부터 대학에 오기 전까지 과테말라에서 살았다. “2012년 서울에 왔는데 깜짝 놀랐어요. 버스나 전철에서 다들 신문이나 휴대전화만 보고 있는 거예요. 여기는 왜 사람들이 창밖 한번 쳐다보지 않지. 다들 뭘 그렇게 들여다보는 거지. 참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2년 살다보니 저도 똑같이 됐어요. 여유는 없어지고, 어디를 갈 때도 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서울에서 노는 사람들은 어떻게 노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이곳으로 오게 했어요.” 이직을 준비하는 전홍재(29)씨는 “이 시대에 노는 게 필요한 것 같은데 ‘논다’는 모임이 있다고 해서 어떻게 노나 보러 와봤다”고 했다. ‘오기 싫은데’라는 생각을 반쯤 가지고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 정미희씨는 “과제가 많아서 ‘지금 이 판국에 뛰어노는 게 웬 말이야’라는 생각도 절반쯤 있었는데, 친구가 놀이활동가였고 꼭 오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참여자들이 말한 것처럼 놀이가 ‘난감’한 시대다. 이미 20세기 초에 이런 지적이 있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나치즘이 유럽을 광기와 살의로 물들였던 1938년 저서 에 썼다. “오늘날의 문명은 더 이상 놀이를 하지 않고, 설령 놀이를 하는 척해도 그것은 가짜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에서 인용한 로테르담 상과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기업의 한 총수의 말은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기업이 실천하고 있거나 실행하려는 내용이다. “내가 기업에 처음 들어온 이래 기술제작부와 영업부 사이에 경쟁이 붙었습니다. 이 경쟁은 늘 있었습니다. 내 동생과 나는 기업을 일이라기보다 게임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놀이 정신을 젊은 직원들에게 심어주려고 애썼습니다.” 1930년대부터 기업들은 생산량을 늘리고 이윤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동자에게 놀이 정신을 주입했다. 놀이가 놀이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무언가의 ‘도구’로서 존재하게 된 전형적인 예다. 아이들도 못 논다. 놀 곳이 없다. 놀이터는 어린아이들이 하루 1~2시간 놀 뿐 큰아이들이 놀기엔 어색한 공간이 됐다. 학원에 가느라 놀 시간도 없다.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학원에 가버려 놀 친구가 없다. 그래서 친구 만나러 학원에 가는 악순환의 나날이다. 아이들에게 허락된 놀이는 교육과 개발을 위한 ‘도구적 놀이’다. 인지력과 창의력을 향상하기 위한 놀이, 언어능력을 개발하는 놀이, 숫자와 친해지는 놀이…. 그렇지 않으면 놀이에도 치료가 붙어야 한다. ‘아트테라피 놀이북’ 같은 이름이 붙은 책들은 놀이도 치유의 목적으로 하라고 권한다.

불안하고 낭비적이라 여겼던 ‘그냥 놀기’

놀이활동가에 지원해 ‘놀이’를 활동한 청년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다. ‘불나방’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청년 놀이활동가 박유정(22)씨는 놀면 불안한 청춘이었다. “뭔가를 하지 않고 그냥 놀면 늘 불안했어요. 학교 시험 기간이거나 과제를 할 때가 아니라면, 공모전이라도 알아보고 준비했어요. 그냥 쉬는 건 낭비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놀 줄 몰랐죠. 그런 내가 뭔가 이상하다 느꼈어요. 놀이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자 ‘한번 해봐야겠다’ 직관적으로 느낌이 왔어요.” PD가 되고 싶어 PD 준비를 하고 있는 강예슬(25)씨도 “하루 종일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보며 앉아서만 노는, 우리의 노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생각에 놀이활동가를 지원했다. “자꾸 (PD 입사 시험에) 떨어지는 와중에, 어딘가 합격의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이렇게 얼음땡하고 꼬리잡기하며 몸으로 뛰면서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하루 종일 집에 있을 때도 시간을 가지면서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잘해요. …잘 노는 사람이 된 거죠.” -놀이활동가 박유정씨


삼각산 재미난마을에 20∼30대 청년들이 모인 ‘동네형들’. 동네형들은 일상에서 예술을 제안하며 재미있고 즐거운 마을살이를 꿈꾼다. 정용일 기자

삼각산 재미난마을에 20∼30대 청년들이 모인 ‘동네형들’. 동네형들은 일상에서 예술을 제안하며 재미있고 즐거운 마을살이를 꿈꾼다. 정용일 기자

놀면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놀이활동가 박유정씨는 “놀이에 답이 있다는 걸 체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놀아도 불안하지 않다. “노는 건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더라고요. 노는 건 즐거워야 하니까, 내가 뭘 좋아하나, 내가 뭘 잘하나 그런 걸 자꾸 생각하게 됐어요. 이전엔 한 번도 그런 걸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냥 대학에 가라니까 갔고, 과제를 내주니까 하고, 취업할 때 필요하다니까 공모전을 준비하고, 어쩌면 놀이활동가도 그런 스펙 가운데 하나로 참여한 것일 수도 있었는데, 놀이가 뭔지를 들여다보면서 나도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면서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놀이를 통해서 자신감도 커졌어요. 놀이는 누구나 잘하니까요.”

노는 방법도 달라졌다. 박유정씨는 이제 그동안 자신이 하던 놀이가 ‘소비적 놀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저는 친구들과 만나서 맛집에 가고, 쇼핑몰에 가서 옷 구경하고, 영화 보고, 돈 주고 무언가를 사면서 놀았어요. 여행도 좋아했는데, 제가 해온 여행이 나를 들여다보고 채우는 여행이 아니라 어디어디 찍고 오는 여행이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얼음땡하고 꼬리잡기하며 몸으로 뛰면서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하루 종일 집에 있을 때도 시간을 가지면서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잘해요. 책을 읽는 것도 ‘이건 어떤 도움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읽는 게 아니라 제가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좋아하면서 읽어요. 잘 노는 사람이 된 거죠.”

‘생놀자판’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땠을까. 이날 만나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사람들은 처음에 어색해했다. 서로 스티커를 붙여주며 질문하고 답하며 낯을 익히는 게임을 하면서 몸을 풀더니 꼬리잡기를 하며 서로가 서로의 허리를 붙잡고 홀을 10바퀴쯤 뛰고 나자 땀과 함께 어색함을 지우는 듯했다. 얼음땡을 하며 누군가의 얼음에 ‘땡’을 쳐주고, 팀을 짜서 풍선배구를 하면서 서로 자연스럽게 몸과 말을 섞으며 존재하는 얼음들은 대부분 깨졌다. 1시간쯤 뛰어놀았을까, 자유놀이 시간이 주어졌다. “몸으로 노는 것만 놀이는 아니에요. 혼자 멍 때리거나 시체놀이를 해도 되고, 공기를 해도 되고 이야기를 해도 됩니다. 자유롭게 보내세요.” 놀이활동가 아띠가 제안했다. 잘 놀까. 걱정도 잠시, 잘 놀았다. 몇몇은 공기놀이를 하고, 두 사람은 줄을 돌리고, 두 사람은 노래에 맞춰 뛰는 줄넘기 놀이를 했다. 비석치기와 멀리뛰기를 하는 패도 있었고, 마피아 게임을 하는 패도 있었다. 딱지를 만들어 강당이 떠나가라 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쪽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놀면서 친해진 생면부지의 사람들은 금방 잘 섞여들며 서로에게서 ‘곁’을 찾았다.

스마트폰 말고, 친구 얼굴 보고 놀자~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고, 모르던 ‘재미’도 발견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김민주(18)양은 이렇게 말했다. “여고에 들어오면서부터 체육시간조차 흐지부지됐어요. 학교에선 정해진 수업시간에 따라 교과서에 쓰여 있는 대로 주입식으로 배우니 너무 재미없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제가 뭘 좋아하는지 이 짧은 시간에도 찾아다니며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자유놀이 시간에 처음엔 공기놀이를 하다가 재미가 없어서 줄넘기를 했더니 정말 재밌는 거예요. ‘역시 나는 몸으로 놀아야 돼’ 생각하다가, 다시 마피아 게임을 했더니 ‘아, 나는 머리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또 생각하게 됐어요.” 친구 2명과 함께 온 중3 이용성(15)군은 “보통은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거나 친한 애들끼리 집에 모여 스마트폰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노는데 이렇게 친구들 얼굴을 보고 노니 재밌고 좋다”며 “PC방보다 재밌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수 중인 장한빛(20)씨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신범 생명의 숲 활동가는 “오랜만에 심장도 뛰고 피도 끓고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원진(27)씨는 “도대체 마지막으로 언제 얼음땡을 한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뛰어노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 노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네형들’, 재미난 마을에 정착하다

그러나 이 놀이의 판 역시 ‘기획된 놀이판’이다. 놀이활동가들이 만든 판에 사람들이 와서 토요일 오후 4시간 동안 신나게 놀다 집에 돌아간 셈이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렇게 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골목이 사라졌고, 노래방·영화관·쇼핑몰이 아닌 놀이공간은 찾기 어렵다. 왜 이 시대에 진짜 놀이는 사라진 걸까.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책 에서 모두가 노동하는 인간이 되면서 놀이마저 노동의 법칙을 따른다고 지적했다. “(현대의) 놀이 세계에는 노동 법칙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제한적인 자유시간에 기쁨을 최대화해야 하기에,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가 하는 놀이는 속도라는 전형적인 노동의 법칙에 따른다. 효과적으로 빨리 놀이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조차 잠깐의 지연 시간도 허용하지 않고 노래방 기계의 간주 뛰어넘기 버튼을 누른다.”

한국 사회라는 특수한 시공간적 요인도 있다.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교양학부)는 “군사독재와 급속한 산업화가 맞물리면서 한국 사회에서 몸은 노동의 도구로만 여겨지게 됐다. 모든 시간은 효율적으로 짜여야 하고, 아이들에게도 점점 입시의 중요성이 강조돼왔다. 게다가 외환위기가 덮치면서 사람들에게 ‘놀이’를 할 여유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놀이를 복원하려는 고민과 움직임은 계속된다. 서울 강북구 삼각산 재미난마을에서는 일상에서 예술과 놀이를 실천하려는 청년 그룹이 있다. 미술하는 이인혁씨, 청소년단체에서 일해온 심은선씨, 국제교류단체에서 활동해온 박도빈씨 등 20~30대 청년 8명이 주축이 돼 만든 ‘동네형들’은 마을에서 재밌게 살고자 ‘삼각산 재미난 마을’에 정착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은 재미난 파티를 연다. 핼러윈데이가 있던 10월에는 건어물파티를 열어 동네 청년들과 건어물과 맥주를 곁들여 놀았고, 11월에는 다 함께 김장을 하며 놀았다. 철가방에 벽화 도구를 잔뜩 넣어 ‘찾아가는 예술철가방’이 되기도 했다. 강원도 강릉·태백, 경북 울진, 경남 창녕·함안 등 전국 7개 학교에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벽화를 그리며 놀았다. 심은선씨는 “일하는 곳과 집이 너무 멀어서 힘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상 안에서 즐겁게 하며 살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터와 삶터가 가까워야겠다, 그리고 나와 같은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이곳에 정착해 오래전부터 알던 도빈·인혁과 함께 ‘동네형들’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하는 건 벽화그리기 같은 예술활동이기도 하다. 그것도 놀이일까. 이인혁씨는 “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놀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때 그냥 즐겁게 자기를 표현하면서 하면 된다. 벽화도 똑같다. 우리가 하는 건 몸을 열심히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시트지를 활용한 벽화다. 이건 누구나 잘할 수 있고, 나를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놀이다”라고 말했다.

박도빈씨는 “시골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보다 스마트폰을 더 많이 한다. 도시 아이들은 학원이라도 가는데, 시골 아이들은 갈 학원이 없고 부모의 관심이 더 적은 편이다. 아이들이 스마트폰 게임을 좋아하는 건 그 안에 협동, 미션, 거래 등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놀이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건 어른이건 일상과 마을에서 스마트폰 같은 즐거움을 만들어나가는 것, 또 우리가 즐거운 것이 ‘동네형들’이 하는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아이와 ‘놀아주는’ 게 아니라 함께 ‘노는’ 엄마들도 있다. 2009년부터 서울 은평구 숲에서 행복한 놀이를 찾아온 ‘숲동이놀이터’가 그들이다. 숲동이놀이터는 일주일에 세 번 엄마와 아이들이 숲에 가서 논다. 특별한 장난감은 따로 없다. 숲에서 만난 나뭇가지, 나뭇잎, 흙이 다 장난감이다. 비 오는 날에는 비를 흠뻑 맞으며 논다. 태풍이 지나가면 더 새로워진 숲을 만난다. 날씨가 제약이 아니라 ‘놀잇감’이다. 숲동이놀이터의 조건은 1. 장난감을 가져오지 않는다 2. 아이들을 기다려준다(’빨리 하라’ 재촉하지 않는다) 3. 아이들을 자유롭게 둔다(제어하지 않는다) 4.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5. 서로 이해한다(아이들이 다툴 때) 6. 생태보전시민모임 회원으로서 일상에서 생태를 보전하는 삶의 태도를 유지한다 등 여섯 가지다. 모든 원칙이 중요하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는 숲동이놀이터가 6년째 지속돼온 큰 힘이다. 2009년부터 숲동이놀이터에서 둘째를 키워온 백찬주(버들)씨는 “아이들과 숲으로 함께 가서 놀다보니 마치 ‘암흑의 터널’ 같던 육아의 기간이 매일매일 아이가 반짝이며 성장하는 순간으로 다가왔다”며 “매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3살 때부터 숲동이놀이터를 하며 숲에서 아이를 키워온 재즈가수 말로도 “숲에서 노는 놀이는 잘할 필요가 없다. 그냥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점점 조직에 혹사당하고 일에 점령당해서 성과가 있고 생산적인 것만 원한다. 놀이에서도 그렇다. 놀이를 낭비로 보지 않고 그냥 놀면, 그리고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놀면, 거짓말처럼 행복해진다. 엄마들도 놀면서 시, 노래, 그림 등 각자의 재능을 발견하며 빛나는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그냥 놀면, 거짓말처럼 행복해진다”

놀이를 무언가의 도구가 아니라 놀이 자체로 여기며 그 안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서로에게서 ‘곁’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청년 놀이활동가들은 “놀이활동을 통해서 무엇보다 가장 즐겁고 소중했던 것은 함께 놀며 시간을 보냈던 내 옆의 다른 ‘놀이활동가’들의 존재였다”고 말했다. 생놀자판에 참여한 대학생 박지홍(22)씨 역시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놀 때, 몰랐던 아이들과도 다 같이 ‘우리’가 돼 함께 놀던 추억을 오늘 어른이 된 뒤 겪었다. 아주 따뜻하다”고 말했다. 숲동이놀이터 회원 함박울도 “우리 아이가 더 이상 숲에서 엄마와 함께 놀지 못하는 때가 와도 같이 숲에서 놀았던 버들·말로·민들레 등 숲동이 엄마 친구들은 영원히 함께 갈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찬호 교수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위험사회, 성과와 효율로만 평가받는 경쟁사회에서 지금 살길은 함께 놀며 ‘곁’을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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