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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중은 ‘바보’인가

헌법재판소 결정 요지로 본 쟁점… 경기동부가 당 장악,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당 자주파가 내세운 강령,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꾸짖기도
등록 2014-12-23 15:44 수정 2020-05-03 04:27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9명 중 가운데)이 12월19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을 읽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9명 중 가운데)이 12월19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을 읽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에서 헌법재판관의 의견은 8 대 1로 갈렸다. 박한철 헌재 소장과 주심 이정미 재판관을 포함해 이진성·김창종·안창호·강일원·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이 해산 결정을 했고, 김이수 재판관만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헌재 결정문 347쪽 가운데 소수의견이 180쪽에 이른다. 찬반 의견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가 진보당의 ‘주도세력’인가 △주도세력은 북한에 동조하는가 △진보정당은 필요한가의 쟁점을 놓고 엇갈렸다. 진보정당에 대한 견해는 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이 보충의견에서 좀더 분명히 드러냈다.

<font size="3"><font color="#C21A8D">#쟁점1 이석기 등은 진보당 주도세력인가?</font></font>

<font color="#C21A8D">[다수의견]</font>은 진보당을 장악한 주도세력은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연합 등 자주파라고 했다. 이들의 방침대로 당직자 결정 등 주요 사안을 결정하며 당을 주도했다는 이유에서다. 주도세력의 핵심인 이석기 의원은 당원들과 모여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과 동조해 국가 기간시설 파괴, 무기 제조·탈취, 통신 교란 등 폭력 수단을 실행하려고 계획했다. ‘이석기=경기동부연합=진보당’이라는 논리 구조를 형성하며 내란음모 사건을 진보당 활동과 동일시했다. 비례대표 부정선거,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및 관악을 지역구 여론 조작 사건 등도 국가의 존립, 의회제도, 법치주의, 선거제도 등을 부정한 활동으로 판단했다. 특히 폭력·위계 등을 적극 활용해 민주주의 이념에 반했다고 덧붙였다. “진보당은 주도세력이 장악했기에 그들의 목적과 활동은 진보당의 진정한 목적과 활동에 귀속한다.”

<font color="#C21A8D">[소수의견]</font>은 내란음모 사건이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한 행위로 볼 수 있다며, 찬성 의견과 출발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고작 130명이라는 데 주목했다. 그들이 모두 이석기 의원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전체 당원 수 10만 명에 비하면 극소수에 그친다. 회비를 내는 진성당원만 따져도 진보당 당원은 3만 명이다(2012년 11월 기준). 대다수의 일반 당원은 내란음모 사건이 말하는 ‘은폐된 목적’(북한식 사회주의 추구)을 고지받거나 확인할 수 없었다. 이들을 “옛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대변해온 ‘진보정당’의 활동과 강령에 공감한 당원”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공공교육이나 공공급식, 공공의료 등 진보정당의 정책은 여당과 제1야당에도 영향을 끼쳤고 일정 부분 수용되기도 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 여야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것도 한 예다. “진보당 기본 노선에도 어긋나는, 이석기 의원과 그를 지지하는 소규모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이념이나 신조가 곧 정당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font color="#C21A8D">#쟁점2 주도세력은 북한에 동조하는가?</font>

<font color="#C21A8D">[다수의견]</font>은 진보당 주도세력이 과거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1997년 해산) 및 영남위원회, 실천연대(2000년 결성), 일심회(2006년),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등에서 자주·민주·통일 노선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북한과 연계돼 활동했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했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북한 관련 문제에 대해선 맹목적으로 북한을 지지하고 한국 정부를 무리하게 비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력들이 내란음모 사건에도 다수 참석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당 자주파가 내세운 강령인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로 안정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 체제로 설정했다.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전략이다. “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이나 활동은 한국 사회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친다.”

<font color="#C21A8D">[소수의견]</font>은 이념적 성향을 가리려면 현재 활동이나 발언이 판단의 근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수의견은 10여 년도 더 지난 국가보안법 위반 형사 판결이나, 오랫동안 진보당 구성원들과 직접적 접촉이 없었던 증인의 진술을 근거로 주도세력의 과거와 현재의 사상, 신념을 판단했다. 물론 주체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이를 고수한 자주파가 있을 수 있음을 원칙적으로 부인하지 않는다는 소수의견은 밝혔다. 그러나 현재까지 주체사상이 내면화됐다고 판단하려면 적어도 이석기 의원처럼 현재도 그 활동 내역이 드러나야 한다. 사람의 생각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향 선언을 하지 않으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추단해선 안 된다. “납득할 만한 증거가 제시돼야 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가치를 일부 포괄하는 광의의 사회주의 강령으로 소수의견은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것도 증거가 부족하다. 옛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브라질 노동자당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을 당선시켜 집권 정당이 된 점을 베네수엘라와 칠레의 사례와 함께 중요하게 검토한 점 등을 보면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이 아닌) 남미의 모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진보당은 선거에 의한 집권을 주장하고 있지, 폭력혁명 또는 폭력적 방법에 의한 집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font size="3"><font color="#C21A8D">#쟁점3 진보정당은 필요한가?</font></font>

<font color="#C21A8D">[보충의견]</font>은 맹자의 고사에 나오는 피음사둔(淫邪遁)을 인용해 “번드르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해야 한다”고 했다. “진보당 주도세력과 북한의 각종 전술을 간파할 수 없는 능력이 없이 그들의 글을 읽고 주장을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가면과 참모습을 혼동하고 오도하는 광장의 중우(衆愚), 기회주의 지식인·언론인, 사이비 진보주의자, 인기 영합 정치인 등과 같은, 레닌이 말하는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뻐꾸기와 뱁새도 끌어왔다.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이를 모르는 뱁새는 정성껏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과 새끼를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낸 뒤 둥지를 독차지하고 만다.”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사태의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아야 한다”는 옛 성현의 가르침도 내세워 보충의견은 관용을 경계했다.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그 근본을 무너뜨리려는 행위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font color="#C21A8D">[소수의견]</font>은 진보당의 주장이 소수의 지지를 받으며, 언뜻 보기에 고개를 젓게 만들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역시 우리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성장시키는 자원이라고 봤다. “모름지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다양한 견해와 새로운 발상을 포용하고 받아들인 나라는 융성했고, 문을 닫고 한 가지 생각을 고집한 나라는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바다는 작은 물줄기들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그 깊이를 더해갈 수 있는 법이다. 민주주의야말로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생각들을 포용해가는 것을 그 제도의 본질로 한다.”

국가안보에 대한 제재나 공당에 대한 엄중한 질책은 헌재의 몫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형사절차와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진보당이 자기비판 능력을 발휘해 당원의 일탈행위를 바로잡을 가능성도 소수 의견은 열어뒀다. 다만 “헌법이라는 탐조등으로 우리 사회의 갈 길을 찾아나설 때” 헌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때)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두 축으로 하는 민주적 기본 질서의 바탕이자 토대가 되는 ‘자율과 조화’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헌법 전문의 근본 정신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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