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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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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수직계열화 그 쇳물 끓는 욕심

2012년 기준 비현대차 계열 부품사 평균 영업이익률 2.77%, 현대차 계열사 10.11%…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구호 아래 경영진·정규직만 살쪄, 세계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 이르면 역풍 가능성
등록 2014-10-16 15:35 수정 2020-05-03 04:27
3일 오후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3공장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가 함께 섞여 작업하고 있다. 울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3일 오후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3공장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가 함께 섞여 작업하고 있다. 울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국내 대표적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자동차 부품사와 비계열 자동차 부품사의 평균 영업이익률 격차가 3배를 넘어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 재벌 체제의 우산 아래 놓인 부품사에 견줘 그렇지 못한 부품사들의 수익성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특히 비계열 부품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정부가 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에 힘을 쏟으면서 한동안 높아졌으나 그 뒤 다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 자체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며 이익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 데 반해, 국내 자동차 산업 전체를 볼 때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하게 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반성장 이슈’ 터지면 반짝 상승

최근 이 입수한 산업연구원의 ‘통상·산업정책의 연계를 통한 자동차산업의 지속가능 성장방안’ 보고서를 보면, 비현대차 계열 자동차 부품사들(93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2년 기준 2.77%였다. 같은 해 현대차 계열 자동차 부품사들(12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0.11%에 이르렀다. 영업이익률은 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값으로, 기업이 물건을 내다팔아 얼마나 건실하게 이익을 남기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다.

추세적으로도 현대차 계열사로의 쏠림 현상은 뚜렷하다. 2007년 2.68%이던 비현대차 계열 부품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08년과 2009년에도 2%대 초반에 머물다가 2010년 3.93%로 반짝 상승했다. 영업이익률이 오른 비밀은 2010년 상황에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은 이명박 정부가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대·중소기업 상생에 적극적으로 나선 때였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의 최대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를 불공정 하도급 거래 혐의로 조사하는 등 현대차를 강하게 압박했다. 자동차 산업 전문가인 산업연구원의 이항구 박사는 “비계열 부품사의 영업이익률은 정부 정책에 따라 움직인다. 영업이익률이 가끔 올라가는 때가 있는데 판매나 영업에 특별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고, 동반성장 이슈가 터지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비계열 부품업체의 경쟁력 자체의 개선보다는 정부 정책에 따른 일시적 효과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비현대차 계열 부품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이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2011년 3.09%를 기록한 뒤 2012년에는 2.77%까지 떨어졌다. 이와 달리 현대차 계열 부품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07년 이후 꾸준히 상승해 10%대 안팎의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왔다. 2007년 2.6배 수준이던 현대차 계열 부품사와 비계열 부품사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2012년엔 3.6배까지 벌어졌다. 이번 조사 대상인 현대차 계열 부품사는 현대모비스·현대파워텍 등 12곳이며, 비현대차 계열 부품사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등록된 규모가 큰 93곳을 대상으로 산업연구원이 연도별로 조사했다.

이처럼 현대차 계열 부품사와 비계열 부품사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데는 이른바 ‘쇳물부터 자동차까지’란 구호 아래 자동차 제조 전 공정을 아우르는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 전략이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수직계열화는 현대차가 원가를 절감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보탬을 줬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차와 계열 부품사로만 이익이 집적되는 또 다른 효과도 낳았다. 현대차 계열 부품사가 협력업체인 비계열 부품사들의 생산물량과 납품단가를 통제해 비계열 부품사가 높은 영업이익을 올리기 힘든 탓이다.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전경.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에 들어가는 자동차 강판 등 철강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제철 제공

충남 당진시 현대제철 전경.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에 들어가는 자동차 강판 등 철강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제철 제공

물론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톱5(전세계 자동차 판매량 기준)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수직계열화의 장점을 충분히 살린 경영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직계열화는 제품의 판매가 잘되고 원활하게 성장을 지속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적극적으로 신흥국가에 생산공장을 세우고 자동차 시장을 공략할 때도 수직계열화는 일사불란한 공급 체계로 위력을 발휘했다. 고태봉 연구원은 “일본 업체들은 강력한 수직계열 시스템으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대지진을 겪으면서도 견고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납품 끝난 뒤 계약서 다시 쓰기도”

수직계열화의 상위에 있는 계열 부품사들에 이익이 쏠리도록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단가 인하 압력이 대표적이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말, 연초에 단가 인하 압력이 있다. 납품이 끝난 뒤 계약서를 다시 쓰기도 한다. 정해져 있던 단가를 바꿔 적게 주는 방식이다. 협력업체가 12월에 상여금을 주기라도 하면 1월에 계약서를 바꿔서 단가를 인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차 계열 부품사가 단가 인하 압력을 행사한 정황은 공정위 조사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수직계열화의 핵심 회사인 현대모비스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2012년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을 보면, 현대모비스는 여러 차례 협력업체에 줘야 할 납품대금을 일방적으로 감액한 사례가 드러났다. 예를 들어 현대모비스는 자동차 부품을 위탁제조하는 협력업체에 최저 입찰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산해 대금을 지급했다. 또 물량 증가, 생산성 향상, 공정 개선, 약정 인하 등의 사유가 없음에도 최고 19%까지 일방적으로 납품단가를 인하해 협력업체에 지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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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업체 역시 단가 인하 압력 속에서 경쟁력을 키워온 측면도 있다.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도요타·폴크스바겐 등이 현대차 경쟁력을 분석했더니 부품값이 싸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부품업체들이 워낙 압박을 받다보니 가격경쟁력을 갖게 돼 현대차 납품 외에도 자기 브랜드로 수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은 현대차 계열 부품사와 비계열 부품사의 이익률 격차 확대는 장기적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고 우려한다. 그간 수직계열화를 통해 집중된 이익이 현대차가 인재를 모으고 국외 공장을 짓는 양적 성장을 하는 양분이었으나, 이러한 양분이 지속 가능한지 의문을 품는 전문가도 있다. 특히나 세계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수직계열화 전략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박심수 고려대 교수(기계공학과)는 “수직계열화가 강화되면 자동차 수요가 떨어지는 등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그룹 자체가 흔들리기 쉽다. 계열사들이 전부 현대차 납품밖에 안 하니까, 리콜 문제라도 발생하면 피해가 막심해진다”고 진단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도요타와 GM처럼 800만 대 생산 규모를 넘어 성장하다보면 품질 불량 등으로 인해 리콜 사태를 겪는 ‘800만 대의 저주’ 성장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박심수 교수는 또 “단가 인하 압력이 고착화돼 협력업체들이 연구·개발을 할 여지가 없다. 협력업체의 연구·개발이 뒤처지면 결과적으로 완성차 품질에 문제가 생기는데 현대차 내부에서는 이를 장기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 일단 단기 수익을 짜내는 데 집중한다”고 비판한다.

현재로선 현대차그룹이 당장 전략을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몽구 회장이 이 전략으로 자신이 내세운 글로벌 톱5 목표를 10년 만인 2009년에 달성했다는 점도 궤도 수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단시간 내에 수십 년 역사를 가진 독일·미국 자동차 기업을 따라잡는 ‘추격’ 전략의 성공 경험이 아직은 큰 힘을 발휘하는 셈이다. 하지만 성공은 분명 과제도 남긴다.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재벌 체제가 수직계열화를 통해 이익은 자기가 다 가져가고 그에 따른 비용은 사회가 부담하고 있다. 다음 세대인 정의선 체제가 들어선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할지 ‘탈추격’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했다.

다가올 ‘800만 대의 저주’

이런 가운데 현대차와 협력업체의 기술력 격차는 크게 벌어지고, 국내 자동차 산업 노동자 내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9월30일 임금협상을 타결했다. 기본급을 9만8천원 인상하고 성과급으로 통상임금의 300%와 500만원, 목표달성 격려금으로 통상임금의 150%와 370만원을 주기로 했다. 이를 통해 현대차 정규직 직원은 평균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게 된다.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2012년부터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1억원이 넘었다. 계약직 직원들을 통계에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평균 연봉이 1억원 아래로 보이게 맞추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역시 평균 연봉이 높아진 사실이 공개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임금협상 타결이 자세히 보도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현대차 경영진과 정규직 노동자의 삶만 수직상승하고 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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