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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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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30분 퇴근… 다른 삶, 다른 노동

주간2교대제 전환 뒤 달라진 현대차 노동자들의 삶… 노동시간 줄고 삶의 질 높인다는 평가,

한쪽선 부품업체 직원들에겐 남의 이야기라는 비판도
등록 2014-06-27 13:35 수정 2020-05-03 04:27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들이 주간연속2교대제가 시행된 지난해 2월 오후 4시께 공장 문을 나서며 퇴근하고 있다. 종전 주야2교대제 때는 주간조가 저녁 7시께 퇴근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들이 주간연속2교대제가 시행된 지난해 2월 오후 4시께 공장 문을 나서며 퇴근하고 있다. 종전 주야2교대제 때는 주간조가 저녁 7시께 퇴근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지난 5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두 명의 노동자와 자리를 함께 했다. 주간연속2교대제로 근무형태가 바뀐 뒤 한 명은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한 명은 여행과 운동을 더 자주 즐긴다고 말했다. 늘어난 시간은 축구에서 수비 뒷공간으로 찔러주는 패스처럼 경기 또는 인생의 흐름을 바꾼다.

“주간연속2교대제로 바뀐 뒤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어요.” 정재건씨는 노동시간이 줄어든 뒤 자원봉사에 눈을 떴다. “어르신 손발 마사지도 다니고, 일요일에는 가끔 도배·장판 봉사도 해요. 오후 근무조일 때는 출근하기 전에 마술 봉사도 하고요.” 24년간 의장공장(조립)에서 공장밥을 먹었지만, 그는 “봉사하는 것을 배우고 나니까 계속 이 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그는 이제 웃음치료를 배우고 있다.

정씨가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데 적극적이게 된 것은 현대차 공장의 근무형태 전환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3월 공장을 24시간 돌리는 주야교대제 대신 심야엔 공장을 멈추는 주간교대제를 도입했다. 심야에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종전 하루 10시간씩(잔업 포함) 일하던 노동자들은 이제는 많아야 하루 9시간씩(잔업 포함) 일한다. 정씨의 자원봉사 ‘짬’은 이렇게 노동시간 단축에서 나왔다.

자원봉사하고 여행가고

여가활동도 늘었다. 현대차 공장에서 21년을 일한 박진철씨는 이전보다 여행이나 캠핑을 더 자주 다닌다고 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주간교대제로 바뀌면 ‘이제는 좀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전엔 아무래도 시간 제약이 있었죠. 주말에 특근도 하니까. 이제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어요.” 심야 노동시간이 줄면 일의 피로도도 감소해 여가시간은 더 알차진다.

이런 효과는 현대차와 함께 주간2교대제로 전환한 협력업체에서도 나타났다. 현대차 공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세종공업에서 만난 김영철씨는 “오후 3시30분에 근무가 끝나면 아내와 헬스장에 간다”고 말했다. 현대차 1차 협력사인 세종공업은 지난해 9월 주간2교대제로 전환했다. 9개월이 지난 뒤 공장 노동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김씨는 “삼성에 다니는 사무직 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나한테 부럽다고 말한다. 자신은 야근도 많이 하는데 급여가 나보다 적다고 하더라. 2교대제 전환 뒤 부러워하는 친구가 많다”고 했다.

개인의 변화는 지역사회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 3월 내놓은 ‘울산지역 자동차산업의 근무형태 변경과 지역사회 변화’ 보고서를 보면, 울산 지역 상권은 일반음식점의 매출 감소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조사 대상 일반음식점의 매출액은 2013년 12월 기준으로 전년 같은 달에 견줘 약 36% 줄어들었다. 명촌동·진장동 등 울산 북구 6개 동의 음식점 매출 변화는 감소한 곳이 64곳이었고 증가한 음식점은 2곳에 불과했다. 변화가 없다고 응답한 음식점은 9곳이었다.

연구소는 “과거 주간조의 퇴근시간이 저녁 6시50분이었지만, 현재 1조의 퇴근시간은 오후 3시30분으로 변경돼 저녁 식사 및 동료들과의 회식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또 “야간조의 퇴근시간은 밤샘 노동을 하고 오전 8시였으나 현재 2조의 퇴근시간은 새벽 1시30분이어서 아침에 식당을 이용하는 노동자도 크게 줄었다. 교대제 전환 뒤 점심 식사 시간도 1시간에서 40분으로 줄어들어 외부 식당을 이용하기도 어렵게 됐다”고 했다.

세종공업 노동자인 강정호씨도 예전보다 회식이 줄었다고 했다. 심야 노동 때 느끼던 ‘속쓰림’은 없어지고, 대신 낚시 등 여가활동을 가족과 함께하니 전보다 “‘쩐’이 더 많이 깨진다”고 강씨는 웃었다. 실제 울산 북구의 음식점 매출은 줄었지만 운동시설은 증가했다. 골프연습장이 58곳에서 64곳으로, 당구장이 60곳에서 67곳으로 늘었다. 박영훈 현대차 홍보팀 부장은 “명촌동과 진장동 등의 술집이 완전히 죽은 상태”라고 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삶의 변화가 느껴진다. 지난 3~4월 조합원 26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 뒤 삶의 질이 향상됐나’라는 질문에 50%의 응답자가 ‘매우 그렇다’ 또는 ‘대체로 그렇다’고 답했다. ‘대체로 그렇지 않다’와 ‘전혀 그렇지 않다’는 15%였고, ‘보통이다’는 34.2%였다.

많은 임금보다 줄어든 노동시간이 더 중요

만족하는 이유에 대한 물음엔 ‘육체적·정신적 피로도가 줄어서’라는 답변이 43.6%로 가장 많았다. ‘여가생활이 늘어나서’(18.7%)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서’(17.2%)가 뒤를 이었다. 또 노동시간 단축, 삶의 질보다 더 많은 임금을 위한 잔업·특근이 더 중요한지를 물었을 때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은 59.1%에 이르렀다. 더 많은 임금을 위한 잔업·특근에 ‘동의한다’는 답변은 이에 못 미치는 37.9%였다. 한국 기업에선 수당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통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잔업·특근을 선택하는데 ‘노동시간 단축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은 놀라운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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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주간2교대제 전환의 특성 때문이다. 현대차는 주간2교대제로 전환하면서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임금이 감소될 여지가 생기자 이를 보전해주기로 했다. 대신 회사는 시간당 생산대수를 늘리는 등 노동강도를 높여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했다.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강화를 맞바꾼 셈이다.

그러나 인터뷰에 응한 현대차나 협력업체의 노동자들은 노동강도 강화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정재건씨는 “예전에는 1시간만 일해도 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요즘은 모듈화가 많이 되어서 그냥 조립하면 되고, 쓰는 장비도 고급화되면서 노동 여건이 개선됐다. 시간당 생산대수를 높였다고 해서 많이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노조 설문조사에서도 주간교대제 전환에 만족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노동강도가 높아져서’는 14.3%에 불과했다. ‘식사·출퇴근 환경이 나빠서’(31.2%)나 ‘임금이 줄어서’(23.7%)보다 뒷전이다. 이처럼 노동강도가 크게 높아지지 않으면서 여가시간이 늘어나니 삶의 만족도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현대차 노조는 현장 반응이 좋자 현재 ‘8시간(1조)+9시간(2조)’인 근무형태를 ‘8시간+8시간’으로 바꾸는 것을 준비 중이다. 울산공장에서 만난 엄교수 현대차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이제 잔업을 털어내는 게 관건이다. 8+8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는 2014년 단체협약 협상에 돌입한 상태다. 엄 실장은 “회사는 잔업을 없애면 물량이 감소할 때 임금을 주면서 (노동자를) 놀릴 수 있다고 부담스러워한다. 노조는 추가 인원 보충 없이 가면 노동강도가 더 강화된다고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남의 잔치 탓에 미래가 불안하다’

현대차 쪽은 일단 주간교대제 전환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속내는 조금 다르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주간2교대제 전환 뒤 “작업장의 모럴(도덕)이 좋아졌다. 회사 입장에서도 괜찮은 효과”라고 말했다. 시간당 생산대수를 높이면서 공장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등 놀던 사람이 줄고 작업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쪽은 생산라인 배치와 물량 등을 두고 노조와 협의하면서 ‘노동강도가 낮다’는 논리를 펴왔는데, 이번에 일부 이를 관철한 셈이다.

이처럼 주간2교대제 전환이 노사의 만족도를 높이긴 했으나 외부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울산공장에서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 이아무개씨는 “영세한 3D 업체는 야간에도 계속 일하고 자영업자들도 불경기라 힘든데, 현대차 직원들은 3시30분에 퇴근해서 낚시도 가고 좋겠다”고 말했다. 택시 수입은 현대차 주간2교대제 전환 뒤 떨어졌다고 한다. “택시는 어디 가거나 술 먹을 때 타는데 이젠 그냥 통근버스 타고 집에 가버리니까 영업이 안 돼요. 직원뿐만 아니라 아내들도 남편을 회사 보내고 나와서 친구들과 밥 먹고 술 먹고 하는데 이제 그냥 집에 있어요.” 더구나 신규 인원 채용 없이 노동강도를 높여 생산물량을 맞추니 지역사회가 가졌던 신규 채용의 기대도 사그라졌다.

한 현대차 협력업체 직원은 ‘남의 잔치 탓에 미래가 불안하다’고 주간2교대제를 바라본다. “현대차는 덩치가 크니까 주간2교대제로 가도 (투자한 것이나 줄어든 생산물량이) 어떻게든 만회가 되죠. 그 압박은 CR(비용 감축)이든 뭐든 간에 협력업체로 내려와요.” 그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울산공장의 생산물량이 감소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현대차는 경쟁력도 있고 다른 부품업체를 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1차 협력업체나 2차 협력업체는 버틸 수 있을까요. 물량도 줄고 납품단가도 계속 깎이면 이익 나는 부품업체는 없을 겁니다.”

현대차 공장 밖의 시선은 차갑다. 나아가 이런 시선은 현대차 노조를 향한 ‘귀족 노조’라는 딱지가 주간2교대제 전환 뒤 더 강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액 연봉을 받기 위해 해야 한다는 특근·심야 노동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엄교수 실장 역시 이런 가능성을 우려한다. “현대차 노조가 더 고립될 수 있다. 부품사들이 주간2교대제로 가지 못한 곳이 많다. 납품단가를 조정하거나 CR를 유보하게 해 더 많은 공장이 주간2교대제로 가도록 해야 한다.”

주간2교대제는 현대차와 기아차, 협력업체 10여 곳을 제외하곤 다른 곳까지 확산되지 못한 상태다. 같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다이모스 등도 여전히 주야2교대제를 실시하고 있다. 경차 모닝과 레이를 생산해 기아차에 납품하는 공장인 동희오토 노동자들 역시 주간2교대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동희오토의 한 노동자는 “우리도 심야노동은 몸이 힘들어서 하고 싶지 않다. 임금이 적다보니 맞벌이하는 집이 많은데 야간조에 들어가면 거의 가정생활도 불가능해진다”고 한탄했다. 그는 “현대차처럼 노조가 있는 곳은 노동시간 단축 얘기라도 꺼내지만 우리는 그런 게 없다. 임금 차이도 커지지만 원·하청 간 노동조건의 차이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들에겐 아직 노동시간 단축 뒤 자원봉사 활동을 나가는 것은 머나먼 이야기다.

울산=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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