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비켜, 젊은 사회적 기업이 간다



인도네시아의 ‘두안얌’, 타이의 ‘로컬 얼라이크’ 등 기업 만들어
사회 모순의 해결책 찾아나가는 젊은 기업가들… 사회적 기업, 동남
등록 2014-06-06 14:08 수정 2020-05-03 04:27
태국의 마을을 여행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로콜어라이크(Local alike) 직원들과 지역 공동체 주민이 27일 태국 방콕 쿠디진 마을에서 마을의 역사와 건물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오래된 방식으로 빵을 만들고 있는 빠안핀(아판 아줌마 빵집). 방콕/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태국의 마을을 여행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로콜어라이크(Local alike) 직원들과 지역 공동체 주민이 27일 태국 방콕 쿠디진 마을에서 마을의 역사와 건물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오래된 방식으로 빵을 만들고 있는 빠안핀(아판 아줌마 빵집). 방콕/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외롭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위로했다가, 뒤돌아서서는 잉여인간이나 루저라고 손가락질한다. 입시와 취업 경쟁이라는 전쟁터에서 청년세대의 재능이나 능력은 명예나 재력을 갖춘 기성세대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처럼 여겨진다. 여기, 조금 다른 삶을 사는 청년들이 있다. 월급 많이 주는 대기업 대신 사회적 기업 혹은 협동조합을 택한 청년들이다. 최근엔 ‘청년 사회혁신가’라는 멋진 이름도 붙여줬다. 이들이 꿈꾸는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다를까?
이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타이,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청년 사회혁신가들을 만나봤다. 은 유학 뒤 의사가 되는 것을 마다하고 태아 사산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인도네시아 지역 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사회적 기업에 뛰어든 젊은이, 방사능 오염 지역인 일본 후쿠시마에서 ‘저위험’ 공간을 골라내 아이들을 위한 생태 캠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의 청년 등 다양한 이야기를 3주에 걸쳐 소개한다. 이 청년들은 오는 7월 서울에서 ‘청년, 아시아 미래를 열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국제포럼에도 참석해 아시아 지역 청년혁신가들의 협력과 연대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예정이다. _편집자


멜리아 위나타가 두 손 가득 인도네시아 수공예품을 들고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합니다. 알다시피 자카르타는 교통체증이 심해서요. 저희는 아직 자카르타에 사무실이 없어요. 이렇게 들고 다닐 수밖에요.” 카페 밖 길에선 ‘아시아 최고 수준’이라는 자카르타의 교통 정체가 빚어지고 있었다. 5월24일 오후 약속 시간을 10분 넘겨 들어온 젊은 사회적 기업가 멜리아는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리에 앉아 그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1천km 넘게 떨어진 플로레스섬의 여성들이 만든 샌들, 상자, 방석, 천 등을 꺼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창업에 도전

“플로레스섬의 누사가라 여성들이 만든 것이에요. 누사가라는 가난한 여성이 많은 지역이에요. 천연섬유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파파야 과일 색깔은 천연 재료로 냈어요.”

제품을 살펴보니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만드는 제품과 견줘 경쟁력이 있을까 생각되는 가격과 품질이었다. 하지만 멜리아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 “호텔 체인에 슬리퍼를 30센트(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는 없어요. 제품을 만든 여성들을 착취하지 않고 적절한 이익을 줘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제품의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는 고객을 만나 설득하고 있습니다. 낙관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멜리아가 말한 누사가라 지역은 태아 사망률이 무척 높은 곳이다. 동남아시아에선 태어나는 10만 명의 아기 중 387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멜리아는 설명했다. 여성들이 임신한 뒤에도 쉬지 않고 힘든 농사일을 하다보니 사망률이 높다고 했다. 플로레스섬의 남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섬으로 일하러 간 사이 여성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 임신 중에도 일을 쉴 수 없는 것이다.

“집에서 다른 수입을 올릴 수 있으면 힘든 농사일을 하지 않게 돼 태아 사망률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첫 아이디어는 미국 하버드대학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이 냈다고 한다. 경영학의 최근 관심 주제 중 하나인 사회적 기업을 연구하다가 고향에 있는 친구들에게 사회적 기업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의과대학을 나온 멜리아도 제안을 받고 다른 고등학교 친구 4명과 함께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사회적 기업 창업 대회에 나가 도전하는 수준이었어요. 2번 정도 떨어지고 나니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서 우승하려고 나온 게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고는 누사가라 지역을 직접 방문해 여성들을 만나고 진짜 창업을 했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재미 삼아 하나보다 생각했다고 해요.” 멜리아는 부동산과 가구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둔 덕에 부족함 없이 자랐다. 의사가 될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외동딸을 사업을 배우라고 인도네시아로 다시 불러들였다. 한국으로 치면 ‘엄친딸’인 그가 사회적 기업에 뛰어든 것이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있어요. 경제성장률 숫자를 높이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인도네시아엔 풍부한 천연자원과 다양한 민족과 전통이 있죠.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처럼 발전하지 못했어요.”

기부받아 뿌린 수많은 돈은 다 어디로

젊은 멜리아가 고액 연봉이 보장된 의사 직업과 아버지의 사업을 놔두고 사회적 기업에 뛰어든 것은 ‘모순’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는 1억원이 넘는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포르셰 등 최고급 승용차가 달리는 도로 옆에서 노숙자가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누워 있는 곳이다. 통역을 맡은 이세지씨는 “인도네시아의 빈부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비정부기구(NGO)도 있었죠. 그들은 선진국에서 기부받아 수많은 돈을 뿌렸지만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나요. 부정부패로 중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커뮤니티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도 있어요. 그리고 현금만 주고 보조 기간이 끝나면 활동이 끝나죠.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거예요.”

그가 택한 것은 사회적 기업이었다. NGO는 사회 모순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다른 해결책을 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이틀 뒤인 5월26일 타이 방콕에서 만난 쁘리까몰 찬따라니짜꼰이 선택한 방법도 사회적 기업이었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어린애와 함께 있는 엄마를 봤어요. 그 엄마는 길가의 물을 떠서 아이에게 먹였어요. 집도 없고 물도 없었던 거죠. 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이런 현실이 너무 답답했어요.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답답했어요.” 쁘리까몰은 타이에서 손꼽히는 탐마삿대학을 졸업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5월1일 쁘리까몰은 타이에서 사회적 기업 ‘마디’(MA:D)를 만들었다. 타이어로 ‘오, 좋다’(마 디)는 말에서 따왔다. 마디는 사회적 기업에 사무실을 제공하고, 사회적 기업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사무실 사용료와 회원 요금을 내면 사회적 기업끼리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고, 창업에 지원이 필요하면 저희가 도와주기도 합니다.”

사회문제가 다양하니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기업을 모이게 하는 중심 공간이 되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가들이 모여 일하다보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아직 타이에서 사회적 기업은 생소한 개념이에요. 젊은이들도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선호하죠. 하지만 예전보다 사회적 기업이 늘어나고 창업도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특히 사회적 기업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의 관심이 늘고 있어요.” 마디에는 현재 예술·디자인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돕는 ‘크리에이티브 무브’ 등 2곳의 사회적 기업이 입주해 있다.

회사 수입 일부로 신발 나눠주고

인도네시아 NGO 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약했던 밤방 이스마완은 이를 두고 “아시아에서 NGO보다 사회적 기업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때”라고 말했다. 자카르타 남부 드폭에서 5월24일 만난 밤방은 인도네시아사회적기업가협회(ISEA)의 이사회 의장으로, 2008년엔 ‘아쇼카 펠로’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쇼카 펠로는 미국 비영리재단인 아쇼카재단이 선정한 사회혁신가로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총재가 대표적 인물이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제주올레의 서명숙 이사장이 아쇼카 펠로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시아의 많은 대학생들이 사회적 기업가로 진출하려는 상황이다. 젊은 세대는 미래를 보고 일해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내 이익이 아닌 주변을 살피는 삶이다.” -인도네시아 사회적기업가협회 이사회 의장 밤방 이스마완


인도네시아의 사회적 기업 ‘두안얌’의 멜리아 위나타 대표가 자신들이 판매하는 수공예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안얌은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의 누사 가라 지역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팔아 이들을 돕고 있다. 김명진

인도네시아의 사회적 기업 ‘두안얌’의 멜리아 위나타 대표가 자신들이 판매하는 수공예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안얌은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의 누사 가라 지역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팔아 이들을 돕고 있다. 김명진

밤방은 최근 NGO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데 큰 목표를 두고 있다. “NGO는 기부에 따라 활동이 달라지는데, 혁신할 능력이 있는 리더를 가진 NGO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빈곤과 교육, 일자리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정부와 NGO의 역할이 미흡했던 동남아시아에서 그는 새로운 활력소로 ‘사회적 기업’을 꼽은 것이다. “2007년 프랑스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 포럼에서 사회적 기업가는 부를 창출하면서 사회적 정의를 다할 수 있는 것을 역할로 삼았다. 아시아의 많은 대학생들이 그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기업가로 진출하려는 상황이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일해야 한다. 그 첫 번째가 내 이익이 아닌 주변을 살피는 삶이다.”

밤방의 말처럼 사회 모순에 주목한 아시아의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의 도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올해 반둥공대를 졸업한 에가르 푸트라 바테라는 인도네시아에서 신발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반둥은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신발·옷 등을 만드는 임가공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저임금 노동산업으로 인해 기업에 비해 지역경제의 발전은 더디다. 그곳에서 그는 “신발 기술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주목했다”고 한다. “이들은 한 달 평균 40달러를 벌어요. 낮은 수입에다 회사에서 주문한 것만 만드니 자신의 기술을 개발할 생각도 하지 못하죠.”

에가르는 이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기 위해” 평균임금의 2배가 넘는 수입을 보장하면서 좋은 신발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가격을 비싸게 매겨도 품질이 좋으면 승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이 업체는 현재 한 달 평균 매출이 2억루피아까지 늘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노동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다른 임가공 업체와 달리 “내년부터는 직원들에게 의료보험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했다. 회사 수입의 일정 부분은 시골에서 신발을 사지 못하는 이들에게 신발을 무료로 나눠주는 데도 쓰고 있다.

5대 빵집을 찾아가는 ‘마을 여행’

타이의 빠이 솜삭 분깜은 관광산업에 뛰어들었다. 관광산업은 타이 국내총생산(GDP)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수익은 현지인보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 그룹이나 여행사 등에 쏠린다. “타이의 관광산업은 굉장히 단조롭죠. 고산족을 만나러 가서 고산족 마을에 5분간 있다가 나와요. 나머지는 밤에 유흥을 즐기는 식이죠. 그렇다보니 지역주민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거의 없어요.”


“사회적 기업이 많아진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점에 좀더 접근할 것이고,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도 더 많아지리라 믿는다.” - 어느 젊은 사회적 기업가


빠이가 만든 사회적 기업 ‘로컬 얼라이크’(Local Alike)는 현지인과 함께하는 ‘마을 여행’을 추진한다. 잠깐 즐기고 가는 여행이 아닌 현지의 삶과 역사를 배우는 여행을 꿈꾼다. 관광산업이 발달해도 여전히 빈곤한 타이의 지역주민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공정여행’이다. 로컬 얼라이크는 타이 북부 시골 등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뿐 아니라, ‘먹고 마시는 관광’으로만 유명한 방콕에서도 여행 코스를 개발 중이다.

방콕의 쿠디진 마을은 로컬 얼라이크의 야심작이다. 방콕 짜오프라야강 주변에 위치해 200여 년 전 포르투갈인들이 들어왔던 이 마을은 옛 방콕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다. 100여 년 된 오래된 집과 골목이 있었고, 포르투갈인으로부터 빵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아 5대째 만들고 있는 빵집도 있었다. 5월27일 이곳에서 만난 로컬 얼라이크의 직원 빠뽄 뽕닌은 “상업적인 거대 여행지로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지역민에게 수익을 나누는 여행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의 도전은 동남아시아의 빈곤·문맹·실업 등 ‘거대한 벽’을 향한 작은 파도에 불과할지 모른다. 헤어나오기 힘든 빈부 격차, 부패 등의 문제를 만든 아시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물음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군부 쿠데타 같은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면 이들의 작은 파도는 그냥 묻혀버린다. 타이의 관광산업은 얼마 전 벌어진 쿠데타에 의해 이미 타격을 입고 있다. 빠이가 준비 중인 ‘마을 여행’은 타이를 찾는 이가 많아질 때 확산될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은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사회적 기업 지원 기관 ‘GEPI’에서 일하는 풍 푹 레스타리오는 “내가 기업에서 일하며 인도네시아 경제를 성장시키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나는 사회적 기업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 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그만두고 이곳에 뛰어들었다. “50대가 되어 삶에서 선택의 폭이 줄기 전에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쿠데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타이의 또 다른 젊은 사회적 기업가는 작은 파도가 모여 쓰나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적 기업이 많아진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점에 좀더 접근할 것이고,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도 더 많아지리라 믿는다.” 군부 쿠데타가 진행 중일 때 만난 그는 “그전에는 젊은이들이 몰랐다. 사회적 기업은 교육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이제 쿠데타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젊은 세대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방콕(타이)=이완 기자 wani@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