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약 2주 뒤 치러질 6·4 지방선거 판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여야 후보들의 대진표가 완성돼가는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 기관에서 쏟아내는 지지율 조사를 보면 야당의 우세가 뚜렷하다. 특히 현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도권에서 이런 경향이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리서치플러스가 5월12~13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서울의 경우 한때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26.7%)에 뒤지던 박원순 서울시장(45.3%)이 정 후보를 약 19%포인트 격차로 앞섰다. 인천도 송영길 인천시장이 유정복 새누리당 후보보다 8%포인트 더 많은 지지율을 보였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던 경기 지역도 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3%포인트 격차로 남 의원을 추격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결과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이 ‘정권 심판’ 정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수도권이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 지역인 점을 고려하면 수도권 3석 가운데 서울을 포함해 2석 이상을 잃을 가능성이 큰 여당은 ‘패배’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그렇다고 야당이 마냥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새누리당(32.3%)이 새정치민주연합(25.6%)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무능에 분노하는 유권자들이지만 그렇다고 야당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은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보수 지지층이 막판 결집을 이뤄낼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국민 인식 대전환, 수혜자 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를 앞지른 것도 일단은 세월호 참사에 기댄 측면이 커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 시장이 세월호 침몰 사고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입을 모은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박 시장 지지율 상승의) 1차적 요인은 세월호 참사, 두 번째는 정 후보 아들의 ‘국민 정서 미개’ 발언과 부인의 아들 두둔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도 “박 시장은 현역 어드밴티지(이점)가 있어야 하는데 정 후보에게 한때 밀렸다가 세월호 때문에 다시 뒤집어졌다는 점도 지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력보다는 특정 현안에 의해 불거진 ‘정권심판론’에 편승한 지지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 시장과 정 후보의 지지율이 20%포인트 가까이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그동안 박 시장이 쌓아올린 인간·생명 중심의 시정 운영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월호 사태로 국민 사이에서 ‘인간’이 소외되는 자본주의와 개발주의에 대한 회의가 폭발하면서 박 시장의 ‘인간 중심’ 시정의 가치가 새롭게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세월호 사건이 생명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국민의 인식 대전환을 가져온 사건이라고 규정한다면, 정 후보가 용산 개발로 대표되는 도시 개발을 강조한 반면 박 시장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던 터라 두 후보 간의 대비가 뚜렷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측면에서 박 시장의 우세는 크게 볼 때 ‘인간·생명 중시’라는 가치의 승리로도 볼 수 있다.
누가 승리하든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승리자를 단박에 유력한 대선주자급으로 올려놓는 대결이 된다는 측면에서 더욱 주목된다. 리얼미터가 5월12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정몽준·안철수·문재인 의원이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모두 15%대로 나란히 1~3위를 기록했다. 박 시장은 12.1%로 4위다. 박 시장이 재선에 승리할 경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압도적 1위를 꿰찰 가능성이 높다. 정 후보도 막판 재역전을 통해 승리할 경우 현재의 1위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다. 반면 패배자는 단박에 대권주자에서 이탈하고 재기하기 힘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서로에게 위험부담이 큰 대결이다.
부산에서 새누리가 지는 승부 펼쳐질까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수도권 지역인 인천과 경기에서도 야당은 최소 1곳 이상의 승리가 조심스레 점쳐진다. 특히 송영길 시장이 재선에 도전하는 인천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세월호 사태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전 안전행정부 장관 유정복 새누리당 후보의 지지율 정체가 눈에 띈다. 초접전을 벌이던 여야 두 후보는 5월 이후 점차 격차가 벌어져 오차범위를 넘어선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기의 경우 세월호 사건 직후까지도 남경필 새누리당 후보가 야당 후보들에 비해 안정적인 지지율을 보여왔으나 새정치연합 경선에서 김진표 후보가 당선된 이후 지지율 초박빙 접전으로 바뀌고 있다.
지역색이 뚜렷한 영호남에서 최대 관심지역은 부산이다. 5월16일 김영춘 새정치연합 후보가 사퇴함에 따라 오거돈 무소속 후보가 야권 부산시장 단일후보가 되면서 친박 핵심인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가 크게 불리해졌다. 리서치플러스 5월12~13일 조사에서 오 후보가 야권 단일화를 이뤘을 때 41.1%의 지지율을 얻어 28.4%의 지지율에 그친 서 후보를 12.7%포인트 격차로 따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청권은 대전의 경우 대전시장 출신인 박성효 새누리당 후보가 권선택 새정치연합 후보에 큰 차이로 앞서고 있고, 충북·충남은 현역 도지사인 이시종 충북지사, 안희정 충남지사가 우세를 보이고 있다. 세종은 새누리당 후보인 유한식 세종시장이 이춘희 새정치연합 후보를 약간 앞선다. 강원도는 새정치연합의 최문순 현 지사가 최흥집 새누리당 후보에 우세를 보이고 있고, 제주도는 원희룡 새누리당 후보가 신구범 새정치연합 후보를 압도적인 격차로 따돌리고 있다.
현재까지 전국 지도를 놓고 따졌을 때는 야당이 더 우세한 형국이지만, 문제는 부동층의 향배다.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여당에 마음을 돌린 유권자들은 새정치연합의 지지를 선택하는 대신 ‘지지 정당 없음’으로 옮겨갔다. 리서치플러스 5월12~13일 조사에서 무당파는 28.9%를 기록했다. 이들이 막판에 야당 지지로 돌아설지, 여당으로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이준한 교수는 “부동층의 원래 성향은 야당에 좀 가까운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통령 지지율이 60~70%까지 가다가 40%대로 줄었고 여기서 줄어든 10%가량의 사람들은 잠재적인 새누리당 지지층으로 봐야 한다. 이들은 앞으로의 상황에 따라 과거의 지지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안철수·김한길 대표가 이들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동층이 고스란히 야당 쪽으로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분석했다. 최창렬 교수도 “서울의 경우 40대 주부들은 완전히 돌아섰다. 그러나 문제는 야당이 그 추동력을 얼마나 받아낼 수 있느냐다”고 말했다.
잠재적 새누리 지지층인 부동층설령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는 온전한 야당의 승리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참사의 파장이 크다. 야당이 100%의 대안이 아니었지만 야당 지지로밖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야당의 역할에 대한 본격적인 주문은 선거 이후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심판 정서가 일단은 야당을 찍도록 만들겠지만 정부뿐만이 아니라 정치 자체에 실망한 국민은 선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야당의 정치적 역할을 요구하고 기대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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