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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혁신은 어디까지일까. 지난 1월 구글 X랩이 공개한 제품을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아직은 시제품 형태지만, 아이디어는 놀랍다.
구글 ‘스마트콘택트렌즈’는 일반 콘택트렌즈처럼 보이지만, 의료용 장비에 가깝다. 구글 X랩은 두 장의 얇은 렌즈 사이에 초소형 무선 칩과 혈당치 측정 센서, 안테나와 발광다이오드(LED)를 넣었다. 당뇨병 환자가 이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면, 렌즈는 눈물 성분을 1분 단위로 분석해 환자의 혈당치를 측정해 알려준다. 스마트콘택트렌즈가 본격 보급되면 주삿바늘을 피부에 찔러 혈당을 측정하던 기존 검사 방법도 바뀔 전망이다. 물론 실용화되기까지는 바늘의 아픔을 참아야겠지만.
‘입는 컴퓨터’ 시장의 물꼬를 튼 건 ‘구글안경’이다. 구글안경은 음성 명령으로 주요 기능을 실행하는 컴퓨팅 기기다. “오케이, 글래스”란 말로 사진을 찍고 길을 찾아가는 건 흥미롭지만, 튀는 디자인의 안경을 쓰는 건 영 어색한 일이었다. 구글이 유명 선글라스 브랜드와 협업해 패션용품으로도 손색없는 구글안경을 내놓을 예정이라니 지켜보자.
‘아이시스’는 구글안경과 비슷하지만, 일반 스마트폰과 유사한 ‘홈’ 화면을 갖추고 있다. 이용자는 이 화면에서 카메라 앱을 띄워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새 소식 알림을 받는다. 소니도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박람회(CES) 2014’에서 스마트안경 시제품을 공개했다.
스마트안경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다. 영국 버진애틀랜틱항공은 지난 2월, 공항 서비스 직원에게 고객 접객용으로 구글안경을 지급했다. 2013년 여름에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의료센터 의사가 직접 구글안경을 쓰고 수술 과정을 생중계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로키마운트 소방서에서 일하는 소방관 패트릭 잭슨은 아예 구글안경용 앱을 직접 만들었다. 그가 쓰는 구글안경은 화재 현장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고 소방본부 지시사항도 실시간으로 띄워준다.
‘아이리버온 ’은 겉보기엔 여느 음악 감상용 이어폰과 다를 바 없지만, 남다른 기능이 숨어 있다. 아이리버온은 이용자의 심장 박동수와 걸음 수 등을 실시간 측정해주는 건강관리 도우미다. 이용자가 이어폰을 끼고 운동을 하는 동안 이어폰에 달린 심장 박동 수 측정 센서가 스마트폰으로 운동정보를 실시간 전달한다.
인텔이 ‘CES 2014’에서 공개한 ‘스마트 이어버드’도 기능은 아이리버온과 비슷하다. 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운동하면 심장 박동 수와 생체 정보가 무선으로 연결된 스마트폰에 전달된다. LG전자도 올해 열린 CES에서 음악을 들으며 생체 정보도 수집 ·관리해주는 ‘LG HRM 이어폰’과 스마트 밴드 ‘라이프밴드 터치’를 공개했다.
지난해 ‘입는 컴퓨터’ 시장에서 봇물을 이뤘던 제품군은 단연 스마트시계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24일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4’에서 2세대 스마트시계 ‘기어2’와 ‘기어2 네오’를 공개했다. 두 제품은 안드로이드 대신 ‘타이젠’을 운영체제로 썼다. 1세대 제품보다 얇고 가벼우며, 사용자의 심장 박동 수 같은 운동 정보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도 넣었다.
퀄컴은 ‘톡’이란 스마트시계를 공개했다. 톡은 퀄컴이 자체 개발한 ‘미라솔 디스플레이’를 채택했다. 페블도 삼성이나 퀄컴보다 한발 앞서 e잉크 디스플레이에 자체 운영체제(OS)를 탑재한 ‘페블’을 선보였다.
필립 스마트시계는 4~5살 어린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통신사 유심카드를 꽂아 전화로도 쓸 수 있는데, 미리 입력해둔 번호를 띄워 전화를 건다. 완구 제조업체 브이테크가 내놓은 ‘키디줌’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시계로 입맛 따라 바꿀 수 있는 어린이용 스마트시계다.
지난해 2월 첫선을 보인 나이키 퓨얼밴드는 스마트밴드의 원조격인 제품이다. 아이폰용 앱만 출시돼 있다. 지난해 11월엔 방수 기능을 강화하고 정확도를 높인 2세대 ‘나이키 퓨얼밴드SE’도 공개했다. LG전자와 소니는 ‘CES 2014’에서 각각 ‘라이프밴드’와 ‘스마트밴드’를 선보였다. PC용 주변기기를 주로 만들어 온 레이저도 올해 CES에서 ‘나부’란 스마트밴드를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MWC 2014’에서 ‘기어핏’을 공개했다. 기어핏은 가로로 긴 1.84인치 곡면 아몰레드 디스플레이를 단 운동 보조 밴드다. 블루투스로 삼성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과 통신하며 걸려온 전화를 받거나, 전자우편과 문자메시지 수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심장 박동 수나 운동량을 측정하는 기본 건강관리 기능도 내장했다.
스마트밴드의 주된 기능은 운동량이나 수면량을 측정·관리하고 알림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건강관리 기능은 스마트폰 앱만 이용해도 충분하다. 좀더 ‘스마트’한 쓰임새를 찾는 것이 스마트밴드의 숙제다.
‘입는 컴퓨터’ 개념에 가장 가까운 물건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옷이 아닐까. 프랑스 시티즌사이언스는 올해 CES에서 ‘D셔츠’를 공개했다. 시티즌사이언스는 겉보기엔 평범한 천 속에 초소형 센서를 심었다. 이 옷감으로 짠 D셔츠는 입은 사람의 체온이나 심장 박동 수부터 이동 속도나 고도까지 측정해 알려준다. 이용자는 스마트폰 앱을 켠 뒤, 옷을 입고 뛰기만 하면 된다. D셔츠는 아직 콘셉트 단계의 제품이다. 정식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을 활용한 입는 컴퓨팅 제품도 눈에 띈다 . 인텔은 올해 CES 에서 손톱보다 조금 큰 사물인터넷용칩 (SoC) ‘ 에디슨 ’을 아기옷에 붙였다 . 아기옷에 부착된 ‘ 에디슨 ’이 아기의 기분부터 맥박이나 체온 같은 건강 상태까지 알아서 스마트폰으로 전달해주는 식이다 . 물론 아직은 콘셉트 단계다.
일본 로그바가 제작 중인 ‘링’은 아주 독특한 반지다. 링은 손동작(제스처) 기반으로 주요 명령을 조작한다.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TV를 향해 허공에 대고 ‘TV’라고 쓴 뒤 전원 단추를 켜듯 손가락을 위로 까딱 올리면 TV 전원이 켜진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뒤 결제 금액을 손가락으로 허공에 쓰고 밑줄을 그으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진다. 운전 중에는 허공에 약속된 기호를 손가락으로 그려 길 안내 화면을 띄우거나 차 안 음악 볼륨을 손동작만으로 조절할 수도 있다. 콘셉트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품이다.
‘스마티링’은 스마트폰을 조종하는 반지다. 반지에 달린 작은 디스플레이와 버튼을 이용하면 스마트폰의 주요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중국 기크가 내놓은 ‘기크링’은 근거리통신(NFC) 칩을 내장해 반지를 NFC 단말기로 바꿔준다. 반지를 끼고 스마트폰을 쥐면 잠금 암호가 풀리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킥스타터에 지난 2월13일 등록된 ‘플라이핏’ 프로젝트를 보자. 플라이핏 본체엔 생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센서와 LED 패널이 장착돼 있다. LED 패널은 하루 동안 얼마나 걷고 뛰거나 계단을 오르내렸는지, 이용자 수면 습관은 어떤지 알려준다. 플라이핏을 발에 차고 수영을 하면 발을 얼마나 저었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이동 거리나 칼로리 계산, 현재 위치나 고도를 알려주는 기능은 기본이다.
자전거를 탈 땐 손목을 많이 안 움직이는 탓에 정확한 운동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다. 플라이핏 제조사는 이처럼 손목밴드로 정교한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찌가 유용하다고 말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신체와 교감하는 ‘컴퓨터’를 걸치고 살아가는 건 편리하면서도 피곤한 일이다. 누군가 지하철 좌석 앞자리에서 구글안경을 쓰고 날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가 혹시 나를 몰래 촬영하는 건 아닐까. 적잖이 신경 쓰이는 일이다. 중요한 서류를 보여주는 비즈니스 회의 자리에서 상대방이 구글안경을 쓰고 있다면 또 어떤가. 무심한 척 회의 서류를 몰래 촬영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을 게다. 미국에선 구글안경을 쓰고 극장에 들어서던 이가 ‘몰카’ 촬영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쫓겨나기도 했다.
특허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적잖다. 손목밴드든지 발찌든지 이어폰이든지, 수집하는 정보는 비슷하다. 애플은 생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헤드폰과 이어폰 형태의 스포츠 모니터링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지난 2월18일 미국 특허상표국에 등록했다. 애플이 등록한 특허는 이어잭에 내장된 센서가 각종 생체 정보를 수집한 다음, 블루투스를 이용해 무선으로 iOS 기기에 전송하는 방식이다.
지금껏 나온 입는 컴퓨팅 기기는 대부분 건강관리나 레저활동과 관련된 제품이다. 교육용이나 재난 구조용으로 쓰는 제품도 이미 시도됐다. 군사나 의료용으로 사용 범위가 확장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 기기들이 의료용으로 사용될 경우 기존 의료법과 충돌하는 부분은 없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입는 컴퓨터’는 아직 명확한 제 쓰임새를 찾지 못한 모양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연착륙할 것으로 보인다. 주피터리서치나 가트너같은 시장조사업체는 2013년 말 기준으로 입는 컴퓨팅 기기 시장이 14억~15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2016년께면 이 시장은 50억~60억달러대로 불어날 전망이다. 2~3년 뒤, 1억7천만 대에 이르는 기기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며 수시로 알림음을 띄우는 풍경을 상상해보자.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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