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광주시민이면 옛날 동교동 사고일 겁니다. 집권을 하려니깐 적자가 시원치 않아서 서자를 들였잖아요, 노무현 때부터. 그 뒤에 계속 서자를 들여오고 있죠, 문재인까지. 그런데 이제 서자가 시원치 않으니깐 양자라도 안철수를 들여와서 다음에는 무조건 집권해보자, 뭐 결국엔 그겁니다. 신당이고 희망이고 다 의미가 없고요, 어쨌든 될 놈을 갖다가, 서자든 양자든 있는 놈 다 데리고 오자….” -2월3일 TV조선 에서
“될 놈… 있는 놈” 난무하는 육두문자‘노무현·문재인은 서자, 안철수는 양자’. 야권을 깎아내리려다보니, 지나치다 싶은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인기는 높아져만 간다. 은 1월13일 2013년 하반기 종합편성채널(종편) 4사의 시청점유율이 11.35%를 기록해, 2012년 상반기(4.43%)에 견줘 2배 넘게 성장했다고 전했다. 지상파 시청점유율이 50% 선을 내주며 하락(52.35%→48.86%)한 것과 대조적이다.
시민들은 종편에 적응해가고 있다. 지난 2월11일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자영업자 ㄱ(52)씨는 대합실 텔레비전으로 MBN 뉴스를 보며 “종편은 대담과 논평 형식으로 풍부한 정치 이야기를 전해줘서 좋다”고 했다. “종편이 시원시원하다. 이제 평범한 지상파 뉴스는 재미가 없어서 못 보겠다. 어떨 땐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일단 재미있으니 계속 보게 된다.” ㄱ씨는 종편 개국 때만 해도 종편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시청자가 됐다. 그사이 텔레비전 화면 아래쪽엔 새빨간 띠에 큼지막한 글씨로 ‘뉴스 속보’란 자막이 떴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 플랜’ 기자회견 관련 소식이다. 이미 예고된 일정에 대한 속보 자막, 지상파 방송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다.
종편이 쏟아내는 편파와 막말의 대상은 민주당인 경우가 많다. 한때 ‘부당한 탄생’을 이유로 출연을 거부했던 민주당은, 대선 뒤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논리로 출연을 시작한 것. 그러나 이것은 종편이 ‘균형 방송’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건설업자 ㄴ(72)씨의 평가다. “나는 개인적으로 MBN보단 TV조선을 좋아한다. 좌우 상관없이 대화를 많이 하기 때문에 치우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TV조선에 등장하는 인사들이 중량감과 균형감이 있다.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하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거의 다 본다. 보는 사람들은 다 보는 것 같다.”
종편에 출연하면서 민주당이 점수를 얻을 리도 만무하다. 같은 날 서울역에서 만난 ㄷ(73)씨는 “민주당이 나오면 TV를 안 본다. 헐뜯고 비난하는 데 능한 사람들이다. 집권당을 헐뜯는 게 유독 심하다”고 했다. ㄷ씨는 사람들 속에 섞여 역사 대합실에서 채널A 를 시청 중이었다. “집에 있기 심심해서 잠깐씩 바람 쐬러 서울역에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데모를 한다. 대통령이 여자라고 얕잡아보는 것 같다.”
종편의 시사프로그램만 인기를 얻는 건 아니다. 대학생 ㄹ(25)씨는 최근 어머니(50)와 이야기를 나누다 종편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전업주부라 평소 뉴스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장성택 전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숙청 관련 사항을 자세히 언급하며 “북한이 곧 망할 것 같다”고 했다. MBN의 시사성 예능프로그램 (아궁이) ‘김정은 편’(1월10일)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이날 방송은 시청률이 높게 나왔고, 제작진은 2월10일 또다시 북한을 다뤘다. 사실관계가 불투명한 장성택의 엽색 행각과 리설주와의 염문도 다뤄졌다.
북한 관련 소식은 종편 시청자들의 주요 ‘시청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서울역 인근 주민인 80대 ㅁ씨도 날마다 오전 10시면 서울역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집으로 간다. “종편 뉴스를 보는 걸 좋아한다. 김정은이 깨지는 걸 보고 싶어서다. 북한 이야기가 많은 TV조선이 최고다. 평론가들이 나이 든 사람들이 잘 알아듣게 친절하고 자세히 뉴스를 해설해주니까 보기 편하다.”
‘북한 때리기’에 열광하는 노년층종편은 탄생 이래 지나친 편향성에 대한 지적을 무수히 받아왔다. 사람들은 그걸 모를까? 텔레비전 접촉 시간이 자영업자들에 견줘 월등히 적은 직장인들은 민감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직장인 ㅂ(57)씨는 “종편은 현실과 맞지 않는 일방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TV조선이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뉴스를 오락처럼 느껴지게 해서 불쾌하다. 나는 신뢰감을 주는 KBS와 MBC밖에 안 본다”고 했다. 40대 직장인 ㅅ씨는 대뜸 “종편은 안 본다”고 했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애청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채널A 은 조금씩 본다. 젊은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려고 JTBC 도 챙겨본다. 처음 나왔을 땐 정말 하나도 안 봤는데, 점차 예능 쪽은 보게 되는 것 같다.”
자영업자들도 인식은 하고 있었다. TV조선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던 고속버스터미널의 한 식당에 들어가 주인에게 “종편을 좋아하냐”고 묻자, “우리는 YTN만 본다. 손님들이 해놓고 갔다”며 채널을 돌려버렸다. 서울역 근처 식당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채널A와 TV조선을 시청 중이던 식당 4곳에 들어가 같은 질문을 하자, “잘 모르겠다” “손님들이 틀어놓고 갔다”며 채널을 돌리거나 텔레비전을 아예 꺼버렸다. 이 가운데 2곳은 1시간 뒤에 다시 갔더니, 앞서 보던 종편으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과일가게를 하는 ㅇ(50)씨는 자영업자들의 이런 반응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종편은 편파 방송이다. 잘 안 보지만 가끔 집에서 본다. 가게에는 주로 YTN을 틀어놓는다. 확실히 종편이 재미있긴 한데, 사람들이 종편에 대해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어서 가게에서 보기는 좀 껄끄럽다. 그런 면에서 YTN이 가게에서 틀어놓기엔 무난한다. 하지만 좀 지루하다.” 식당 주인들의 ‘종편 비시청자 연기’는, 종편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진 않음을 방증한다.
최근 소치 겨울올림픽 방송으로 인해 낮 시간대에 줄기차게 종편 시사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곳은 드물었다. 그러던 중 TV조선은 2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의 안현수(빅토르 안)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선수 관련 발언을 속보로 전하며, 안철수 의원이 마치 러시아로 귀화한 것처럼 자막에 오타를 내어 입길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올림픽 때문에 관심을 잃은 종편이 시청률을 만회하기 위해 의도한 실수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
6월 월드컵, 악재일까 호재일까4년에 한 번 6월에 치르는 한국의 지방선거는, 마찬가지로 4년에 한 번 6월에 실시되는 월드컵 축구와 일정이 항상 겹쳤다.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떠들썩해지면서 선거도 선거방송도 뒷전이 되기 십상이었다. 이번 월드컵(6월12일~7월13일)은 지방선거(6월4일)와 일정이 겹치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고 일주일 뒤에야 월드컵 방송을 볼 수 있다. 종편에는 다행일까, 불행일까? 여당과 야당엔 또 어떨까?
구민수 인턴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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