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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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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하기에 달렸다

설 지나며 벽에 부딪힌 광주의 신당 바람
수도권 야권 연대 여부가 ‘전략투표’ 향배 가를 수도
등록 2014-02-20 16:39 수정 2020-05-03 04:27

광주의 정치시장에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은 특별한 지위를 누려왔다. 누군가는 그 특권을 조선시대 육의전이나 시전 상인들의 ‘금난전권’(허가받지 않은 난전 상인들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에 견주기도 한다. 금난전권은 상업 발달이 지체되고 공물(貢物)의 조달 체계가 취약했던 시절, 중앙권력이 고안해낸 자구책이었다. 왕실과 관청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대가로 소수의 어용상인들에게 보장해준 시장 독점권이 금난전권이었던 것이다.
민주당 중앙당 역시 지역 시장의 기득권 구조를 묵인해왔다. 당권·대권을 노리는 유력 주자들로선 텃밭 지역의 일사불란한 동원 체제를 온존시켜 활용하는 것이 상황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기득권 구조는 시장 진입을 노리는 지역의 신진 세력에게 ‘정치적 금난전권’이나 다름없었다. 민주당 공천장 없이 정치적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는 애초부터 막힌 것이나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민주당 독점 구조는 약화됐지만

상황이 변한 것은 2012년 대통령 선거 국면이었다. DJ 사후 ‘향토 상단’인 민주당의 지역 장악력이 쇠퇴하고 안철수라는 유력자가 이끄는 신흥 상단이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부상한 덕이다. 시장 진입을 애타게 갈구해온 지역의 ‘난전’들이 동요했다. 기존 상단에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비주류 인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신구 세력의 양립 구도가 형성됐다.
지난 2월 초 인터넷 언론 가 발표한 광주시장 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이 지역에서 두 세력의 경합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준다. 민주당 소속의 현역 단체장인 강운태 시장과 안철수 의원 쪽 창당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 윤장현 공동위원장의 양자 대결 지지율은 44.2% 대 46.7%, 민주당의 또 다른 유력 주자인 이용섭 의원과 윤 위원장의 양자 대결 역시 44.7% 대 46.1%로 윤 위원장이 모두 오차범위(±3.7%포인트) 안에서 앞섰다.
지난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가 광주 지역 유권자 7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윤 위원장은 강 시장과 이 의원을 모두 앞질렀다. 이정재 새누리당 광주시당 위원장과 무소속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포함한 4자 대결을 가상한 조사였다. 윤 위원장은 강 시장이 민주당 후보가 됐을 경우 6.2%포인트(31.2% 대 25%), 이 의원이 후보가 됐을 경우 10.7%포인트(35.6% 대 24.9%)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이 지역 유권자를 대상으로 지난해 말을 전후로 실시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질 경우 민주당보다 당 지지율이 10~20%포인트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점은 윤장현 위원장의 소속을 새정치추진위원회로 명기했을 때보다 안철수 신당이라고 밝혔을 때 지지율이 10%포인트가량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전히 50%대에 그치고 있는 윤 위원장의 인지도( 조사)를 감안하면 그의 지지율 상당 부분은 안철수 의원의 후광을 입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제는 설 전후로 윤 위원장과 민주당 후보군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초 여론조사 결과에 한껏 고무됐던 안철수 신당 쪽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실제 의 지난 1월 조사에서는 윤장현 대 강운태, 윤장현 대 이용섭의 가상 대결시 지지도 격차는 각각 4.8%포인트(윤장현 40.3%, 강운태 35.5%), 9,3%포인트(윤장현 42.8%, 이용섭 33.5%)였다. 전략 지역인 광주의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애초 윤장현 위원장의 ‘추대’에 무게를 뒀던 신당 수뇌부에서도 경선을 통해 반등의 기회를 노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윤 위원장의 측근인 서정성 광주시의원은 지난 2월13일 과 한 통화에서 “(바람몰이를 위한) 인위적 경선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역에서 누구든지 동의할 수 있는 분이 (경선을 요구하고 후보로) 나선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비전과 신망을 갖춘 분이라면 (경선에) 함께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민주당 쪽은 여론조사상의 지지율 수치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광주시당의 한 관계자는 “선거는 결국 인물과 구도 싸움이다. 윤 이사장의 지지율은 후보 개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안철수에 대한 지역민들의 기대와 호감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안철수 거품’이 꺼지고 정권심판론이 힘을 받으면 윤 이사장의 지지도 역시 동반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설 전후 좁혀진 지지도 격차

민주당의 각 후보 진영 역시 신당 후보와의 본선 대결보다는 당내 경선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바람’에 기대는 신당과 달리 조직 기반이 탄탄한 민주당으로선 투표율이 높지 않은 지방선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강 시장 캠프의 조경완 대변인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선 회초리도 들지만 결국 자식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게 어머니 마음 아닌가. 민주당 지지도가 회복되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본선에선 낙승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 쪽의 이용원 특보 역시 “윤 위원장이 오랜 시민운동으로 덕망과 신뢰를 쌓았지만 정책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거나 지역 발전의 비전을 보여준 적이 없지 않나. 본선에서 시민들의 판단은 냉정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지역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 역시 안철수 신당의 승리 가능성을 낙관하지 않는다. 서정훈 광주NGO 센터장은 “시민운동가 출신이지만 윤장현 위원장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다르다. 윤 위원장이 경력과 철학, 마인드는 박 시장과 비슷하지만 현장 경험과 정책 콘텐츠를 박 시장만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선 보여준 게 많지 않다”고 했다. 구청장 출마를 준비하는 40대 지역 정치인도 “본선에 가면 안철수가 지역에 내려와 ‘진’을 치고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이상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목되는 부분은 역대 선거에서 지역 유권자가 보여준 ‘전략 투표’가 이번엔 어떤 식으로 발휘될 것이냐다. 광주시 산하단체에 몸담은 언론인 출신의 50대 인사는 “대선 패배 뒤 1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에 대한 지역민들의 평가가 실망을 넘어 환멸 수준에 다다랐다. 신당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민주당 정신 차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정치평론을 해온 오승용 전남대 연구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야권 분열’ 프레임이 지역 유권자에겐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신당 수뇌부가 광주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결코 호남만 따로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은 수도권을 향해 있다. 전체 판세의 가늠자인 서울·경기 선거에서 신당이 독자 후보를 고집할 경우 이곳 유권자들이 과연 신당 후보를 찍을까. 현재로선 부정적이다.”

벽에 부딪힌 OEM 선거?

어쨌든 장은 열렸다. 민주당이란 기득권 상단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독점의 폐해에 대한 인식도 확산됐다. 때마침 외부의 유력 상단이 전(廛)을 펼치자, 소외됐던 지역의 난전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하지만 초반 호황을 누리던 새 상단의 영업실적은 벽에 부딪힌 상태다. 매대에 올려놓은 상품들이 지역 소비자에게 확실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 탓이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의 한계다. 여기에 상단 본점의 영업철학을 의심케 하는 풍문마저 돌기 시작했다. ‘대목날’은 다가오는데, 소비자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광주=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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