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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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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반토막 이마트에 속았다

55살 이상 촉탁직 720명에게 시간제 전환 통보
‘시간제 확대’ 정부 방침 맞춰 기업들 꼼수도 다양화
등록 2014-02-12 14:52 수정 2020-05-03 04:27

“이마트 가족이 되어 반갑다. 여러분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수 있다. 1년에 한 번씩 계약서 쓰는 게 불편할 뿐이다. 축하한다.”
김순희(가명)씨는 지난해 4월1일 열린 ‘정규직 전환’ 축하 행사 때 점장이 했던 이야기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 와서 딴소리할 줄 알았으면 녹음이라도 해둘걸….” 당시 이마트는 전국 146개 매장의 도급사원 91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매장 곳곳을 누비며 상품을 진열하고, 음식을 조리하던 ‘아줌마’들이 대부분이었다. 김씨를 비롯해 만 55살(이마트 정년)이 넘은 사람들은 ‘촉탁직’으로 고용됐다. “계약서 쓸 때 정년 얘긴 듣지 못했어요. 도급 직원 중엔 63살까지도 일하는 분들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줄 알았죠.” 한숨 소리의 꼬리가 길다.
이마트는 최근 만 55살 이상의 촉탁직 720여 명에게 ‘시간제 일자리’ 전환을 통보했다. 주 40시간에서 주 25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이면, 120만원 남짓한 월급은 반토막 난다. 지난 2월5일 서울의 한 이마트 매장 인근에서 김씨를 비롯해 56~59살 ‘여사님’들 6명을 만났다. 나이 지긋한 여직원은 이마트 안에선 ‘여사님’으로 불린다. 이정옥(가명)씨는 “남편과 아이들을 벌어 먹여야 하는데 50만~60만원으로 어찌 살겠느냐. 시간제로 안 갈 거면 나가라는 건데, 이럴 거면 차라리 도급으로 그대로 두는 편이 나았다”고 하소연했다.

정규직 전환은 사실 이마트의 ‘선의’만은 아니었다. 등 떠밀려 결정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이마트 매장 23곳을 특별근로감독 해서 1900여 건의 불법파견 사례를 적발해내고, 이마트에 한 달 내 시정을 권고했다. 시정하지 않으면 197억여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도 했다. 10년 넘게 이마트에서 일해온 김씨 등이 속했던 회사도 ‘위장도급업체’였다. “1년마다 사장이 바뀌고 회사 이름도 매번 바뀌었어요. 우린 이마트의 지시를 받았고. 시급은 2300원에서 5670원으로 올랐네.” 박미자(가명)씨 얼굴에 쓴웃음이 번진다.

회사 “촉탁직 전환은 배려”

‘여사님’들은 시간제 전환도 혹시 정부 눈치를 본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박근혜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강조하고 있는 탓이다. 이마트 쪽은 “정년이 넘은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없어 배려 차원에서 촉탁직으로 고용했던 거고, 촉탁직은 1년 단위로 재계약한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현재 회사 홈페이지에는 ‘이마트 시간선택제 일자리 모집’이라는 제목 아래, 김씨 등이 맡았던 상품 진열 업무 등을 담당할 신규·경력 직원을 계속 모집 중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채용박람회 때 밝힌 540명을 뽑는 중이다. 촉탁직 720여 명의 시간제 전환은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정부 ‘코드 맞추기’는 각양각색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관리자급 이상 희망퇴직자를 ‘시간제 관리전담직’으로 다시 채용한다는 내용의 홍보자료를 내놨다.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보장하는 ‘시간제 텔러’ 모집에 경력 단절 여성이 대거 몰려 10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호응이 높자, 기존에도 퇴직자로 뽑고 있던 관리전담직을 시간제로 쪼개 새롭게 ‘포장’해 내놓은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해 SKT와 함께 ‘경력 단절 여성을 시간제 일자리로 뽑는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자회사도 아닌 협력업체 직원 100여 명 채용까지 슬그머니 끌어다넣었다. 그러나 겉과 속은 다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월 초에 내놓은 기업 354곳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시간제 채용에 ‘긍정적’인 응답을 한 비율은 17.5%에 불과했다.
사실 기업 처지에서 시간제 채용은 ‘손해 보지 않는 장사’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건비 지원금 한도를 기존 1인당 60만원에서 올해 80만원(대기업은 60만원)으로 올려줬다. 지난해 대기업 19곳을 포함해 기업체 328곳이 지원금 34억원을 받아갔다.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195억원이다. 고용창출 투자 금액에 대해선 법인세도 감면받는다. 시간제 고용은 올해부터 0.75명(지난해는 0.5명)으로 계산된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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