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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란 나중에 팔 때 실현되는 것이다.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주거를 누리는 동안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전·월셋집을 전전하는 삶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삶의 질을 냉정하게 비교해보라._박합수. 사진 김명진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이하 홍)- 앞으로 1~2년은 ‘바닥을 다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주택 가격이 시장 눈치를 보면서 1% 안팎으로 오르내릴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이 대세하락기인 건 맞다. 가구 연소득 대비 주택 가격 지표인 ‘PIR’ 추이를 보자. 서울 아파트의 경우 PIR는 한때 13배에서 최근 9배까지 내려와 있다. 연소득을 다 모았을 때 집을 사는 데 걸리는 기간이 13년에서 9년으로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집값이 반토막 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 때문이다. 한국에선 자동차나 집의 크기로 사람을 평가하고,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 집을 사고 싶어 하지 않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게 중요한 변수이긴 하지만, 거시경제 지표가 크게 흔들릴 상황도 아니다. 유럽 재정위기로 시장이 일시적으로 출렁이는 시기는 지났고, 미국도 양적완화 축소 기조를 미세 조정하는 수준에 그칠 거다. 거시경제나 국내 부동산 시장 모두 연착륙하는 방향으로 갈 만한 상황이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이하 박)- 지난 3~4년간 지역별 양극화가 극심했다. 지방은 가격이 급등하고 수도권은 침체를 거듭했다. 올해는 점차 그 간극이 좁혀질 것이다. 수도권은 약보합세, 지방은 소폭 상승세로, 전국적으로는 강보합세(상승률 0~1%)로 점쳐진다. 수도권은 2006년 말~2007년 초 최고점을 찍은 뒤 침체돼왔다. 서울 강남 지역의 중·대형 재건축 아파트가 30%나 가격이 빠지며 하락 흐름을 주도했다. 쉽게 말해 30억원 하던 집값이 20억원이 됐다. 이제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투자자가 떠나고 실수요자가 중·대형 아파트를 매입한다. 이제 추락은 제한적이다. 2~3년간 강보합세를 보일 것이다.
2. 정부는 주택정책을 제대로 펴고 있나.홍- ‘4·1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취득세를 면제해주는 등 금융 규제를 완화해준 것이다. 가격 급락을 막으려면 돈 많은 사람들이 떠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젊은 사람들한테 빚으로 집을 사게 해서 가격 하락을 막으려 했다. 최악의 바보짓이다. 일본은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경제가 박살 났다. 밑바탕에 사회복지가 깔려 있는 유럽이 바로 일어선 것과 달랐다. 일본에선 금리가 2배 이상 올라가고 부채의 만기 연장이 안 되자, 사람들이 집을 내다팔았다. 그 결과 집값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비슷하다. 서민경제부터 깨지면 부활이 안 된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에 더 집중해야 비극적인 사태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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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규제 완화가 아니라 ‘정상화’라고 봐야 한다. 그동안 규제가 과도했다. 예를 들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가 그랬다. 원래 정부의 로드맵은 양도세를 2012년에 33%로 내리는 거였다. 그런데 국회에서 갑자기 38%로 올려버렸다.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 정부가 큰 틀에서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아직 없애야 할 규제가 많다. 수도권 아파트에 적용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대표적이다. 아파트값이 급상승한 지방에는 적용되지 않고 오히려 침체에 빠진 수도권에만 놔뒀다. DTI를 풀면 가계부채가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정교하지 못한 추정이다. 수도권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2억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DTI 규제 탓에 은행권에선 1억5천만원밖에 빌리지 못한다. 그러면 5천만원은 신용대출을 받거나 비은행권에서 대출받아야 한다. 고금리로 내몰리는 것이다. 결국 주거비가 늘어나고 가계 부담이 커진다. DTI 규제를 없애고 은행에 자율 심사권을 맡겨 해결해야 한다.
3.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홍- 일부에선 ‘집값이 반토막 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노년층이 가진 순자산은 평균 4천만원에 불과하다. 60살 이후 한 달에 20만원으로 살아야 하는데 ‘깡통집’까지 날려버리라는 건 구세대한테 너무 가혹하다. PIR는 계속 떨어져야 하지만, 연착륙해서 신세대와 구세대가 공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박- 집값이 반토막 나려면 우리나라 경제가 망가져야 한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또 없어야 한다. 아파트 가격은 땅값과 건축비를 고려하면 평당 1천만원 밑으로 내려가기 어렵다. 지방 아파트가 지난 3~4년간 급등했던 것도 평당 600만~700만원에서 1천만원으로 수렴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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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말라. 하락하고 있는 시장에는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 “지금이 바닥이니까 집을 사라”고들 하는데, 설령 바닥이더라도 들어갈 필요가 없다. 바닥인 척하다가 다시 떨어질 수 있다. 바닥을 확인하고 나서 사도 늦지 않는다. 앞으로 집값이 너무 올라서 집을 못 살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론 시세차익을 노리고 집을 살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1% 정도 오르는 상황에서 집을 사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면, 그건 본인 판단에 달려 있다. 자녀를 안정적인 환경에서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집값이 1~2% 떨어지는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할 수 있지 않나.
집값이 바닥을 다지는 시기에 약간의 빚을 내어 집을 사는 것까지 말리고 싶지는 않다. ‘합리적 수준’의 빚은 집값의 30% 아래가 적당하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2006~2008년엔 35~40% 정도였다._홍헌호. 사진 한겨레 류우종
박- 실수요자에게 집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집값이 하락할까봐 걱정하는데 집값이란 나중에 팔 때 실현되는 것이다.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주거를 누리는 동안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전셋집에 살면서 2년마다 전세가를 올려줘야 하는 게 더 큰 불안감이다. 결혼하면 제1목표가 내 집 마련이고, 아이가 생기면 집을 사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전셋집, 월셋집으로 전전하는 삶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삶의 질을 냉정하게 비교해보라.
5. 빚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홍- 지금 대한민국에서 빚을 한 푼도 안 내고 집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지금 집 사는 사람은 바보’라고 하지만, 집값이 바닥을 다지는 시기에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 약간의 빚을 내어 집을 사는 것까지 말리고 싶지는 않다. ‘합리적’인 수준의 빚은, 주택 가격의 30% 이하가 적당하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2006~2008년엔 35~40%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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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취득세가 면제된 지난해 하반기가 최적기였다. 하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다. 특히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는 수익·손익공유형 모기지를 활용해볼 만하다. (국민주택기금에서 연 1~2%의 이자로 집값의 최대 40~70%까지 빌려준 뒤 나중에 주택을 팔 때 차익이 나면 기금과 대출자가 나눠갖는 제도다. 사들이려는 주택은 전용면적 85㎡ 이하이면서 값이 6억원 이하인 아파트여야 한다.) 2억5천만원짜리 아파트를 1억5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사고 이자를 내더라도 월세와 비교하면 주거비는 훨씬 적다.
6. 전세난이 계속 심해지고 있다.홍- 전셋값이 오르는 주된 이유는 금리다. 전·월세 전환율(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집주인이 얻을 수 있는 연이율)이 6%까지 떨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3%대인 금리보다는 높다. 그러다보니 집주인은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고 싶어 한다. 전셋집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전셋값이 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월세 전환 물량이 늘어나면 월세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시장이 적응해가는 과도기다. 앞으로도 집주인들이 월세로 전환하려는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본다. 다만 전셋값이 어느 정도 임계치까지 올랐기 때문에, 올해는 상승률이 둔화되지 않을까 한다.
박- 수급 불균형 탓이다. 우선 전세 수요를 분산해야 한다. 방법은 세입자를 매수자로 전환하는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독려하는데 전세가는 매매와 맞물려 있기에 흐름을 제대로 잡았다고 본다. 공급을 늘리는 게 또 다른 축이다. 정부는 공공임대 주택을 약속한 만큼 건설해야 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다 말이다. 주택이 필요한 곳은 수도권 외곽 지역이 아닌 서울 중심임을 명심하자.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도 필요하다. 서울 지역 재개발 용적률을 300%로 높인다고 정부가 발표했는데 그것에 찬성한다. 용적률이 높아져야 일반 분양이 늘어나고 임대 물량도 확보할 수 있다.
7. 세입자가 살아남는 법은.홍- 세입자는 발품을 팔아 좋은 전셋집을 구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결국 정부가 문제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 말고는 뾰족한 지원책이 없다. 전세금 대출을 늘려주는 건 독약이다.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LH공사와 SH공사가 분양사업을 접은데다 그들의 부채도 심각한 수준이어서 쉽지 않을 것이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저소득층의 월세를 지원해주는 주택바우처 제도를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 당장 저소득층 세입자들의 고통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월세 소득공제는 고소득 세입자가 혜택을 많이 볼 수 있고, 근로자들이 공제받는 액수도 미미하다. 소득공제보다는 직접적인 재정 지원인 바우처가 더 효과적인 방식이다.
박- 월세에서 탈피하는 게 첫걸음이다. 월급 200만원을 받아 주거비용 60만~70만원을 감당하며 살 수가 없다. 전세대출을 활용해 어떻게든 전셋집을 마련해야 한다. 그 디딤돌을 밟아서 궁극적으로 집을 사야 한다. 월세로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주택을 매입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전세대출금을 갚아나가고 또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집을 매입하는 거다. 대출을 받으면 빚이 있다는 부담감에 더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다. 그게 내 집 마련의 정석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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