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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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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이 아니다, 외교가 답이다

방공식별구역 계기로 달아오른 한·중·일 ‘이어도’ 삼국지
카디즈 확대와 이어도 함대 창설은 3국 간 갈등만 키울 것
등록 2013-12-12 15:21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을 지난 12월6일 오전 청와대에서 만났다. 바이든 부통령은 “미국에 맞서는 편에 베팅을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베팅이 아니다. 미국은 계속 한국에 베팅할 것”이라고 말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을 지난 12월6일 오전 청와대에서 만났다. 바이든 부통령은 “미국에 맞서는 편에 베팅을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베팅이 아니다. 미국은 계속 한국에 베팅할 것”이라고 말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선포를 계기로 동아시아의 세력권 다툼이 하늘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중국이 선포한 구역에 이어도 상공이 들어가면서 한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상공이 포함되면서 일본이, 미국 공군 훈련 구역이 중첩되면서 미국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일본 제국주의와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양자 동맹을 중심으로 부챗살 모양으로 뻗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패권주의 등 20세기의 유산이 제대로 청산·조정되지 않은 상태로 21세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부상,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 일본의 우경화 및 군사대국화, 한반도 정세의 불안, 각국의 민족주의 부상, 세력권 확대 시도 등이 맞물리면서 갈등 영역이 육·해·공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국제적 관례를 따른다는 모호한 현실

그렇다면 방공식별구역이 뭐길래 이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일까? 방공식별구역은 일반적으로 영공 외곽의 일부 지역까지 확대돼 설정된다. 여기로 들어오려면 누군지 밝히고 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방공식별구역은 영해나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달리 국제법으로 정해진 규율이 없다. 그저 국제적 관례에 따른다는 모호한 현실만 존재할 뿐이다. 영토 및 해양 관할권 분쟁까지 겹쳐 동아시아 하늘이 어지러운 까닭이다.

그런데 그 명칭과 역사적 근원에서도 알 수 있듯 방공식별구역은 군사적 개념이다. 높은 곳에서 초고속으로 날아오는 항공기는 아차 하는 순간 무서운 공격 무기로 다가올 수 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그랬다. 당시 미군은 정체불명의 전투기들이 다가오는 것을 포착하고 있었지만, 자국 전투기로 오인하고 대응하지 않았다가 기습을 당했다. ‘요새의 신화’가 무너진 미국 정부는 항공구역이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곤 대응책을 마련했다. 한국전쟁은 그 계기였다.

한국전쟁 발발 3개월 뒤 미국은 자국 영토의 동서남북에 방공식별구역을 세계 최초로 선포했다. 한국의 방공식별구역도 바로 한국전쟁 때 설정됐다. 1951년 3월22일 미국 태평양 사령부가 포고령 형태로 발표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지만 당시 미군이 포고령으로 발표한 구역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전시에 미군이 포고령으로 선포한 것이 시정되지 않으면서 국내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또한 일부 영공을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독도 상공은 포함된 반면 이어도 상공은 빠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마라도와 홍도 남방 일부 영공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설정 당시 영해를 3해리로 삼았던 국제적 관례가 유엔 해양법 제정으로 12해리까지 넓어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탓이 크다. 독도가 포함된 이유는 미군이 카디즈를 설정한 시점이 독도 영유권을 모호하게 남겨둔 샌프란시스코조약보다 6개월 앞서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이어도가 빠진 이유는 배타적 경제수역 선포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1969년 9월 방공구역을 설정해 이를 자국법에 명시했는데, 여기에는 이어도 상공뿐만 아니라 한국의 남방 영공의 일부도 포함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은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밖에 있는, 그러나 우리가 선포한 경제수역 안에 있는 이어도 상공에 진입할 때, 일본 쪽에 사전 통보를 하고 있다. 반면 우리 영공에 속하는 마라도와 홍도 남방 상공에 일본 항공기가 들어올 때는 한국에 사전 통보를 해야 할 의무가 없다.

현상 유지 선호하는 미국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 중이다. 핵심 골자는 이어도 상공 및 마라도와 홍도 남방 상공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한국이 이렇게 하면 중국·일본과 중첩되는 구역이 더 커지는데 이들 나라가 가만히 있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미국이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점도 우리로선 부담이다. 60년 넘게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았다가 중국의 발표 10여 일 만에 졸속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대응 방식을 취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일본의 보복성 대응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독도 상공을 자국 구역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중국의 향후 조치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서해에도 구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서해는 중국이 내해로 간주할 정도로 경제와 안보상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전을 거치며 미국 핵항공모함 등 대형 함정이 오가면서 서해의 민감성은 더 커졌다. 또한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는 주한미군이 군산과 오산 기지에서 중국에 대한 초계 활동을 벌일 가능성에 중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내부적으로는 서해 구역 설정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북한이라는 복병도 있다. 현재 카디즈는 휴전선 이북의 북한 영공 일부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동아시아의 방공식별구역 붐을 틈타 북한도 설정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현실화되어도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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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목되는 문제는 이어도다. 안 그래도 이어도가 한국과 중국이 각기 선포한 배타적 경제수역에 중첩되면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는데, 한국까지 방공식별구역에 이어도를 포함시키면 한·중·일의 군항기가 이 수중 암초 위에서 수시로 조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삼국이 서로 통보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갈등의 소지는 더욱 커진다. 여기에 더해 제주해군기지가 완공돼 한국 해군이 이어도 초계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미 해군까지 이용하면 긴장의 파고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 틈을 타 제주도에 공군기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 것이다. ‘평화의 섬’ 제주도가 ‘군사의 섬’으로 변질되고 한국의 동서남북 사방의 안보가 악순환을 형성할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토와 국권을 침탈당한 아픈 역사 탓인지, 우리는 영토 문제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러다보니 일본과는 독도 문제가, 북한과는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중국과는 이어도 문제가 있는데 이들을 뭉뚱그려 영토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세 가지 사안은 엄연히 그 성격이 다르다.

국방부가 앞장설 일 아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엄연히 우리 영토라는 점에서 일본의 도발적 언행에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에 빌미를 주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일본 우익에 ‘다케시마’를 선전할 호재가 되었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카디즈 확대에 신중해야 할 이유다. 북방한계선은 우리의 헌법이나 국제법적으로나 영토선이 아니다.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유력한 근거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잠정적인 해상분계선으로 합의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이어도는 어떤가?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다. 국제법도 그렇고,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도 그렇고, 한-중 간에 합의한 것도 그렇다. 이게 영토 문제로 잘못 인식된 결정적 배경은 지난해 총선과 대선 때 보수 진영이 ‘제주해군기지 반대=이어도 영토 포기’로 등식화하면서 개혁진보 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필요에 있었다. 그리고 군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예산 따먹기와 몸집 불리기의 기회로 삼고 있다. 외교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국방부가 전면에 나서 카디즈 확대를 주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연결돼 있다.

이어도 문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이해는 보수파가 그토록 중시하는 한-미 동맹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만약 이어도 인근에서 한-중 간에 군사 충돌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이어도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개입할 명분이 약하다. 그렇다고 개입하지 않으면 한국 내에서 ‘미국도 못 믿겠다’는 여론이 빗발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한·중·일 순방에서 나서면서 ‘현상 유지’를 입에 달고 있는 까닭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어도 인근 바다에 묻혀 있는 해저 자원을 주목한다. 그래서 지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과 베타적 경제수역 획정에 합의하지 못하면, 그 자원은 그림의 떡에 불과해진다. 이지스함과 전투기를 띄워놓고 자원을 개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고려할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는 한-중 양국이 공동관리수역을 추진해보는 것이다. 갈등을 협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군사력이 아니라 외교에 있다. 카디즈 확대와 이어도 함대 창설 같은 군사적 조치에 앞서 외교 협상에 주력해야 할 까닭이다.

돌고래의 지혜가 필요하다

다시 동아시아 얘기로 돌아가보자. 방공식별구역 논란의 배경에는 미국의 세력권 지키기와 중국의 세력권 넓히기라는 전략적 게임이 똬리를 틀고 있다. 현상 유지와 현상 변경의 충돌인 셈이다. 일본이 미국의 현상 유지 전략에 편승하면서도 자신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하려는 시도 역시 갈등의 중대 요인이다.

한국이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노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지혜로워야 한다. 종합 국력 세계 10위권인 한국은 결코 새우가 아니다. 덩치로 보면 이미 돌고래쯤 되었다. 지금 필요한 건 돌고래의 지혜다. 그 이름에 걸맞게 태평양에 크디큰 평화를 만들기 위해선 말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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