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 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 민주당·정의당과 안철수 의원, 시민사회·종교계 인사들이 특검 실시를 위해 손을 잡았으나, 발맞춰 갈 길은 험난해 보인다.한겨레 이정아
분노의 내용과 크기는 제각각 다르다. 모이면 커질 테지만, 모으기 쉽지 않다. 분노의 에너지를 조직화할 정치 주체가 부재하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된 것이다. 민주당은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일쑤고, 진보정당은 이름에 걸맞은 존재감을 잃었다. ‘새정치’를 외치는 안철수 의원이 새롭게 보여준 것을 찾기도 어렵다. ‘시민정치세력’이라는 단어에선 공허감마저 느껴진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이를 은폐하려는 시도, 규명하려는 이들에 대한 탄압, 나와는 상관없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대한 분노는 과연 어떤 형태로 모이고, 드러날 수 있을까.
11월12일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민주당과 정의당, 안 의원 등 야권과 시민사회·종교계 인사 등이 모였다. 이들의 요구는 ‘특검 실시’다. 특검 실시의 목적은 진상 규명이다.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과 경찰의 수사 축소·은폐 시도 등 1단계”뿐 아니라 “국정원의 공공연한 수사 방해, 정권 차원의 검찰총장 찍어내기와 특별수사팀장 경질 등 수사에 대한 외압 등 2단계”까지 특검 대상에 포함시켰다. 외압 의혹을 사고 있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남재준 국정원장, 황교안 법무장관의 즉각 해임’이 진상 규명에 필수적인 과정이라면, ‘국정원 전면 개혁 및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개혁입법 단행’은 진상 규명의 목표다. 앞으로 연석회의는 지난 5~7월에 이은 전국적인 2차 시국선언, 온라인을 통한 1인 시국선언 운동, 특검법 도입을 위한 서명운동, 김기춘·남재준·황교안 퇴진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안 의원은 국회 안에서 특검과 국정원 개혁안을 관철시키고, 시민사회와 종교계는 장외에서 여론 전선을 뒷받침하는 형식이다. 재판 결과를 기다리자는 청와대에 정면승부를 하자는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다만 ‘종북 프레임’에 갇혀 있는 통합진보당은 연석회의 틀에서 제외됐다.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앞에서 보수와 진보를,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가를 이유는 없다”고 연석회의는 밝혔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대선불복연대” “신야합연대”라고 날을 세웠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특검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걸 분명히 밝혀둔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보수언론들도 ‘2012년 대선연대, 2013년 특검연대, 그 얼굴이 그 얼굴’(), ‘김한길 “여와 큰 싸움”, 안철수 “대선 시비는 안 돼”’() 등의 제목을 단 기사에서 연석회의를 깎아내리거나 분열시키려는 의도를 나타냈다. 보수세력이 특검 요구를 ‘대선 불복 프레임’과 ‘야권 분열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건 예상된 반응이고, 계속될 전략이다. 문제는 연석회의 내부다.
“특검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여론을 일으키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안철수 의원이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 안 의원을 지지하는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한 의사를 그에게 투영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신야권연대니 지방선거를 겨냥한 연대니 하는 정치적 해석 때문에 안 의원 쪽이 매우 예민한 상태고, 우리도 곤혹스럽다.”(시민사회 쪽 핵심 관계자)
안 의원은 지난 11월4일 기자회견을 열어 여야 정당에 특검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윤석열 수사팀장의 배제는 너무나 분명한 수사 축소 의도로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수사 결과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의 검찰 수사를 고집한다면 정부·여당이 어떤 조처를 내놓더라도 미완의 과제로 기록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11월6일 시민단체·종교계는 특검 도입을 위한 연석회의를 정치권에 제안했고, 안 의원은 이에 응했다.
그러나 특검 관철 방식에 대한 민주당과 안 의원의 생각은 엇갈린다. 민주당 안에서는 특검법과 예산안을 연계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새누리당의 반대를 뚫을 현실적 수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안 의원은 “국가기관 대선 개입에는 여야의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요구를 관철하지 않겠다는 협의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같이 촛불 들고 나가자는 식이면 부적절하다고 본다. 예산안과 연계한다고 새누리당이 받을 것도 아니지 않나? 결국 여론밖에 없다. 새누리당 안에도 특검 말고는 ‘출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중도층 여론이 특검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서로 자기 진영만 결집시키는 방식으로는 관철하기 어렵다.”(안 의원 쪽 한 관계자)
특검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는 새누리당과 맞서려면 예산안 연계 등과 같은 현실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민주당과, 그렇게 할 경우 여론만 악화시킬 수 있으니 ‘설득의 정치’를 하자는 안 의원 쪽은 연석회의 시작부터 다른 길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특검 관철이 좌초될 경우 연대 틀이 유지될지 미지수라는 점에서 연석회의를 두고 ‘신야권연대’ ‘반박근혜연합’ 등을 이야기하는 건 시기상조다.
분노는 무기력한 야권을 못 미더워한다. 국회 내의 특검 논의와 별개로 추진되고 있는 ‘국민 특검’에 눈길이 쏠린다.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민사회 시국회의’(시국회의)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11월13일 ‘국민 공소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12월 초까지 ‘국민공소장’을 만들고 자발적인 ‘국민배심원단’을 모집해 올해 안에 ‘국민법정’을 열기로 했다. 특검을 통한 진상 규명을 위해 국민이 ‘마중물’ 역할을 하자는 취지다. 국민공소장은 국가기관의 총체적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백서 형태로 민변이 주도해 만들기로 했다. 국민공소장을 책자와 CD로 만들어 국민배심원단에게 배포하고, 동영상과 만화 등의 형태로 널리 홍보한 뒤 12월 국민법정이라는 ‘촛불의 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참여연대는 11월9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거리행진’에 나서며 에릭 홉스봄의 말을 인용했다. 국민이 특검이요, 당신이 특검이다. 국민배심원단은 11월16~30일 시국회의 누리집(anti-nis.net) 등을 통해 신청을 받는다. 국민공소장 제작 기금 1만원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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