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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23)씨는 지난 3월 구직활동을 접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한 달 만이었다. 그가 낸 입사 지원서는 10장이 안 된다. 아직까지 다시 지원서를 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다른 의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공부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방 안에서 혼자 생각에 잠겨 지내고 있다. 처음엔 그에게도 취업이 1순위 목표였다. 수도권의 전문대에 입학했던 그는 3년 전, 서울의 4년제 대학교로 편입했다. “4년제는 나와야 취업이 된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서다. 전공도 주변에서 취업에 유리하다고 추천한 컴퓨터학과를 선택했다. 그래도 부족한 것 같아 부전공으로 콘텐츠학도 들었다. 방학 중엔 집중적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 졸업을 앞두고선 취업 컨설팅도 받았다. 그러다 막상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시작하자 두려운 마음에 휩싸였다. “내가 취업을 진짜 원하긴 하는 걸까?” “스펙이 뛰어난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취업을 무기한 유예했다.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닫아버리는 20대가 늘고 있다. 여기서 지칭하는 20대의 성장이란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자신을 노동 주체로 자각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말한다. 노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질적 발전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결국 통상적으로 20대가 성장을 포기한다는 건 노동 주체의 삶을 단념하거나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대 비경제활동인구 사상 최대이를 유추할 수 있는 통계가 있다. 비경제활동인구(취업도 실업도 아닌 상태에 있는 사람)의 두드러진 증가세다.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면서, 참여할 의사도 없는 20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대 비경제활동인구는 지난 9월 기준으로 238만7천 명에 이른다. 20대 생산가능인구(629만9천 명) 가운데 그 비중을 따지면 37.9%다. 2000년대 들어 감소세를 보이던 20대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은 2005년 33%대로 저점을 기록한 뒤 지난해 처음 37%를 넘어서더니, 올 들어선 38%에 육박하고 있다.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이 그간 제자리거나 오히려 줄어든 다른 연령층과는 대조적이다. 적극적인 구직활동은 하지 않는 취업준비자와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급증한 게 주된 원인이다.
비경제활동인구 증가로 20대의 고용지표는 최악을 가리키고 있다. 고용률(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2005년 61.2%에서 올 들어 57.3%까지 낮아졌다. 2008년부터는 20대 고용률이 전체 연령의 고용률을 밑돌기 시작한 뒤 해마다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실업률(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 비율)은 여전히 7%대 후반으로 전체 연령 중 가장 높다.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는 20대가 증가하는 배경에는 성장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 일을 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다는 낭만적인 믿음을 갖기엔, 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이 너무나 살벌한 탓이다. 일단 노동시장 진입에서부터 심각한 병목현상이 발생해 상당수가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해도,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얻은 탓에 지속적인 생존조차 어렵다. 실제 상대적으로 처우가 좋은 대규모 사업장(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임금근로자 가운데 20대의 비중은 2006년 23.6%(43만4천 명)에서 지난해 18.9%(41만9천 명)까지 줄어들었다. 전체 임금근로자 대비 20대의 월평균 임금 수준도 같은 기간 79.9%(132만원)에서 지난해 76.2%(160만4천원)로 낮아졌다. 20대의 몫으로 돌아가는 좋은 일자리의 양이 갈수록 줄어들고 질도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다. 급속한 산업화로 고용이 충분히 이뤄진 덕에 자연스레 노동시장에 들어간 뒤 경제적 자립, 중간층, 중산층의 사다리를 올랐던 부모 세대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미래가 20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취업 경쟁을 뚫을 의지가 꺾이고도 남을 상황이다. 공동저자인 칼럼니스트 박권일씨의 설명은 이렇다. “기성세대는 고성장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늘 크게 진보하고 개선되는 상황에 익숙하다. 반면 지금 청년 세대는 대게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하고 더 열악하고 더 비참해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성장은 한가하고 낭만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뭘 해도 손해 보는 싸움… 단념이 합리적이다”그 결과 일부는 구직 단념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기도 한다.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면 취업이 오히려 손해라는 것이다. 취업문이 쪼그라들수록 학점·영어점수·인턴·공모제 입상 따위 스펙 쌓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늘어나는데, 취업이 주는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의 말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일자리를 잡아도 비싼 대학 등록금과 스펙 비용 회수가 어렵다. 좋은 일자리는 적고 남은 일자리들은 투자비용도 남지 않는 열악한 조건이니, 20대에겐 어떻게 해도 손해 보는 싸움이다.”
[%%IMAGE5%%]강성훈(25)씨는 취업을 비합리적으로 판단한 경우다. 그는 2007년 지방에 있는 한 대학교의 컴퓨터학과에 들어갈 때만 해도 명확한 계획이 있었다. 일본의 정보기술(IT)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복학을 앞두고 먼저 취업한 선배와 동기들을 봤다. 그들은 일본의 IT 회사에서 한 달 20만엔, 당시 한국 돈으로 200만원 남짓을 받았다.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 한국 IT 회사에 취업한 지인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정규직 딱지를 단 그들은 매일 생계에 허덕였다. 그런 열악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학점·영어점수·자격증에 쏟아야 하는 시간과 돈이 아까웠다. 그런 스펙을 갖춰도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이라는 뜻) 꼬리표가 가려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결국 대학을 그만뒀다. 그리고 올해 초까지 1년6개월 정도를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지금은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해외에 여행 중인 젊은이가 방문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제도)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취업하려면 인생을 통째로 투자해야 한다. 들어갈 때 스펙에 엄청난 돈을 써야 하고, 일하면서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보상은 쥐꼬리다. 사회가 그렇게 깔아놓은 레일 위에서 남들과 경쟁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왜곡된 고용시장과 노동환경만이 성장 거부 세대를 길러내고 있는 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인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문화도 20대를 질식시키고 있다. 자기계발 사회에서 철저한 자기 관리는 개인의 권리이자 의무로 여겨진다. 취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이를 내면화한 20대는 오로지 자기계발에 몰두한다. 그리고 실패하면 심한 자책에 빠진다. 학생의 자유와 의사를 강조하면서도 결국엔 경쟁만 부추겼던 어정쩡한 ‘열린 교육’을 받고 자란 20대에게선 이런 경향이 더 짙게 나타난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시장의 무능을 ‘자유’의 이름으로 개인의 무능으로 돌려버린 것이 바로 스펙의 실체다. 그리고 이 전략은 성공했다. 이 체제에서 시장이 정말 성공했다면 그것이 모든 사람을 자기계발의 화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엄기호, ) 결국 완벽한 결정에 대한 강박과 실패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20대는 아예 성장을 시도하지 않거나 유예하고 만다.
지난 8월 이재희(29)씨는 입학한 지 8년6개월 만에 한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기간을 빼고도 2년6개월 동안 졸업을 연기했다. 명분은 취업 준비였다. 처음엔 의학대학원 진학을 원했다. 2년간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 다음해엔 공기업 입사를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지난해부터는 9급 공무원 시험으로 갈아탔다. 자주 목표를 바꾼 건 나름의 전략이었다.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가 공기업과 공무원 시험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은 부문만 지원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주위의 기대를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실패를 인정하는 게 못 견디게 싫다. 한 시험을 붙을 때까지 몇 년씩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도 결국 취업을 못하면 정말 실패하는 거 아닌가. 차라리 조금 눈을 낮추더라도 일단 붙는 게 중요하다.” 그는 아직도 취업을 하지 못했다.
실패를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주변과 단절된 청년일수록 성장을 포기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일방통행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는 부모와 가족, 자기계발에만 몰두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지지받지 못한 20대는 안으로만 움츠러든다. 권혁기(27)씨에겐 집 거실에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부모가 출근한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다. 올 초 그가 일을 그만두면서 시작된 부모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다. 부모가 “아무 일이라도 찾아보라”며 이따금 툭 던지는 벼룩시장·교차로 따위 정보지를 볼 때면 당장이라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가 전혀 일을 안 했던 것도 아니다. 대학을 휴학한 뒤 대형마트에서 1년 정도 주차관리 아르바이를 했다. 결근과 조퇴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일했지만 “인력을 줄여야 한다”는 말 한마디에 해고됐다. 얼마 뒤엔 한 시청에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를 고용한 용역업체는 석 달 만에 이유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계약을 해지했다. 지난해엔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해도 월급은 150만원 남짓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기숙사 방에서 동료 몇 명과 함께 지내는 것도 참기 어려웠다. 이번엔 스스로 그만뒀다. 세 번의 노동 경험은 그에겐 충격이었다. 이유 없이 버려지는 느낌이 무서웠다. 그러나 가족은 위로해주기는커녕 윽박만 질렸다. 괴로움을 털어놓을 친구도 거의 없다. 그는 “돈은 적게 받더라도 오래 일할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을 잡고 싶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탈출구가 없다”고 했다.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20대들은 제각각의 이유를 달면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심리적인 방어기제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의 분석은 이렇다. “20대는 사회가 이야기하는 표준화된 삶을 살려고 계속 시도한다. 그런데 벽에 부딪혀 자꾸만 좌절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다른 삶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삶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다보면 스스로 긴장을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럴 땐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하나’라며 자신이 처한 현실에 적응하려 하는 것이다.” 비자발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구조적 제약에, 그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정치화되지 못 하는 불만들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간에, 성장을 거부한 대가는 혹독하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경제적 독립은커녕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까닭이다. 이미 1990년대에 니트족과 프리터족 출현을 경험한 일본에선, 청년들이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일에서 도피하려는 경향을 ‘하류지향’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일을 할 기회로부터 스스로 달아난다는 것은 머지않아 ‘하류사회’로 계층이 내려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런 계층 하강을 지향하는 사회집단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을 하지 않는 행동이 사회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다는 걸 본인도 충분히 알고 있고, 그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도 각오하고 있다.”(우치다 다쓰루, ) 일본의 상황에 빗대 한국 청년들도 노동 회피를 통해 스스로 하류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분석하는 것은 과도하지만,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청년들이 하류 인생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지적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도 크다. 일단 정부 재정이 타격을 받는다. 젊은 세대의 노동은 복지제도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고용률 70%’를 외치는 박근혜 정부가 여성과 청년층의 경제 참여를 유독 강조하고 있는 배경이다. 노동조직 등 사회 관계망에서 배제된 이들이 자살·자해로 자신을 공격하거나 타인에게 물리적 타격을 가할 위험도 있다. 좌절하고 고립된 청년층이 병리적인 파시즘 문화의 중심으로 모여들 가능성 역시 높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의 설명은 이렇다. “사회구조에 대한 20대의 불만이 정치화되는 계기가 있다면 사회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의회정치로 전혀 불만 표출이 안 되는 구조다. 불만들이 오직 문화적으로만 표출된다. 어떤 당을 지지해도 결과는 똑같다는 허무주의가 만연해질 때, 냉소적인 주체들이 나타나 모든 권위와 대안 가능성을 비웃게 된다. 그게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인 것이고, 그게 지금 20대 문화가 된 거다.”
문제는 사회적 안전망이다얽히고설킨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 걸까. 의 저자인 문화비평가 최태섭씨는 한국의 왜곡된 노동환경과 경쟁 문화가 바뀌지 않고선 답이 없다고 말한다. “지금처럼 20대 문제의 원인을 이들의 자질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한 세대가 분발해서 해결될 게 아니다. 노동시장과 사회에서 그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진욱 교수는 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사회적 안전망이 촘촘히 짜이면 청년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에선 버블경제가 꺼진 1990년대 이후 젊은 세대가 더 이상 이전처럼 대기업 정규직, 대도시의 아파트 등으로 상징되는 정형화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지 않게 됐다. 그런 젊은 층이 늘어나니 표준적인 삶의 패턴에서 벗어난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사회 여론이 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년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에서 탈표준화되고 비정형화된 삶의 풍경들을 맹아적으로나마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도 그에 맞는 뒷받침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나.” 이제 성장마저 거부하는 20대에게 필요한 건 그럴싸한 위로나 채찍질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얘기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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