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국 정부와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외노조화’를 무릅쓰고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현재의 규약을 지키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9월23일 “1개월 이내에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 부칙을 시정하고 해고 조합원을 조합 활동에서 배제하지 않으면 노조 설립을 취소하겠다”고 밝힌 터다. 1999년 합법노조로 인정된 지 14년 만에 전교조가 다시 ‘비합법노조’의 가시밭길로 내쳐질 위기다.
투표율 80.96%에 ‘거부’ 의견 68.59%(‘수용’ 의견 28.09%). 지난 10월16~18일 사흘 동안 전국 260개 지회 9천여 분회 조합원 5만9828명이 참여한 총투표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은 압도적인 지지로 ‘규약 시정명령 거부’를 선택했다. 총의를 모으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규약 개정을 거부하면 그들(정부)은 쌍수를 들어 기뻐할 것이다.” “규약 수정은 자기부정 행위다.” 각 지부의 카카오톡 방과 조합 게시판에선 조합원들의 뜨거운 찬반양론이 오가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탄압, 교육 장악에 맞서 싸우겠다는 조합원들의 의지다.” 예상보다 높은 ‘거부율’에 대한 전교조 집행부의 해석이다. ‘충돌’은 예고된 수순이다. 정부는 시정명령 이행 시한인 10월23일이 지나면 법외노조 통보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방하남 노동부 장관도 지난 10월14일 열린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법외노조’ 방침을 재확인했다.
법 밖으로 밀려나면 전교조의 지위는 임의단체로 격하된다. 단결권·단체교섭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일상적인 조합 활동도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의 한 조합원은 “조합원이 많이 이탈하고 ‘불법단체’라는 오명으로 국민적 지지도 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직뿐 아니라 전직 교원에게도 교원노조 가입 자격을 주도록 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한명숙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지만 당분간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전교조의 노조 지위 박탈이 당장 실현될지는 사법부의 판단에 달렸다. 노동부가 ‘노조 아님’을 통보하면 전교조는 곧바로 행정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및 통보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낼 예정이다. 과거 판례는 전교조 쪽에 힘을 실어준다. 1997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은 “조합원 중 일부가 조합원 자격이 없더라도 바로 노조법상 노조의 지위를 잃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노조의 자주성이 현실적으로 침해되었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노동조합의 지위를 상실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자격 밖의 조합원이 있더라도 곧바로 노조를 ‘법외노조’로 몰아갈 순 없다는 취지다.
ILO·OECD에 한국 정부 제소·재의 요청할 것
전교조 비합법화는 노동계와 시민사회 전반에 ‘도화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전교조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탄압은 한 노동조합의 문제를 넘어 시민사회 전반에 대한 탄압으로 풀이됩니다. 앞으로 전교조가 시민사회의 지원을 받아 반박근혜 정부 투쟁의 중심에 서게 될 겁니다.”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의 설명이다. 당장 10월19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서 1만 명의 전교조 조합원이 모이는 전국교사대회가 예고돼 있다. 10월21일에는 국제노동기구(ILO)에 한국 정부를 제소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특별노동감시국’ 재의도 요청할 계획이다. 한국은 1996년부터 10년 동안 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노동 분야 특별감시국이었지만 2007년 해제됐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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