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 예산안은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복지 공약은 대폭 후퇴했고, 관리재정수지는 큰 폭의 적자를 예정하고 있었다. 고스란히 빚으로 쌓여 장래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게 된 것이다.
정부 예산안은 26조원 규모의 적자예산으로 편성됐다. 역대 두 번째로 큰 적자폭이다. 정부는 복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정지출이 크게 늘었고, 경기회복을 돕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 운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내년 발행하는 전체 국고채는 97조9천억원에 이른다. 올해 추경예산 편성까지 하면서 적극적인 재정 운용을 했음에도 연간 국고채 발행 물량은 88조4천억원에 그쳤다. 1998년 본격적으로 국고채를 발행한 이래 가장 큰 규모로, 특히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한 적자국채 27조8천억원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국채 규모 2014년 1천조원 돌파할 듯
전체 국채 규모도 이에 따라 매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향후 5년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한국의 국가채무는 2014년 515조2천억원을 기록할 예정이다. 역대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한 국가채무 규모는 2017년에는 610조원으로 불과 4년 만에 100조원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2014년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부채 역시 올해 520조원에서 10% 이상 늘어난 54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면서, 전체 공공부문 부채가 1천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더구나 정부의 낙관적 경기 예측이 이번 예산안 편성에도 이어지면서 국가채무는 더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정부는 2013년 예산안에서 4%의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면서 216조3천억원의 세입을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세수는 이에 턱없이 모자랐고, 정부는 지난 5월 세입 추경에서 전체 세입 예상치를 6조원 줄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예상보다 심각한 세수 결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이미 7조8천억원 정도 세금이 덜 걷혔다. 이는 다시 적자국채 발행으로 연결된 공산이 크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3.9%로 예상하고 전체 세입예산을 218조5천억원으로 전망했다. 경기회복 진도에 따라 또다시 대규모 국채 발행이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복지예산은 크게 축소됐다. 기초연금은 소득·자산 하위 70% 노년층에게만 지급되는 것으로 축소됐고, ‘반값 등록금’ 공약의 시행은 1년 연기됐다.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에 필요한 예산은 전혀 편성되지 않았다. 반면 정책 과제 이행을 위한 ‘공약가계부’에서 3조원 줄이겠다고 약속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1조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지만, ‘민생·복지’를 표방했던 박 대통령의 선거 과정이 무색한 예산안으로 보인다.
3조원 줄이겠다던 SOC 예산은 1조원만 줄여이에 대해 최희갑 아주대 교수(경제학)는 “증세 없는 복지를 이야기한다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예산안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복지제도의 지속 가능성도, 나라살림의 건전성도 놓치기 쉽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특히 “복지제도는 전달 방식 등 전체 체계를 잡는 데 드는 비용이 많기 때문에, 어정쩡한 재정 투입은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증세를 해서 하루빨리 완결된 제도를 만드는 편이 불필요한 재정 소요를 최소화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노현웅 경제부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