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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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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표 기초연금, 국민연금을 쏘다

국민연금 더 낼수록 기초연금 혜택 줄어드는 구조… 노년층보다 국민연금 오래 납부할 청장년층에 심각한 피해
등록 2013-10-01 14:05 수정 2020-05-03 04:27

인천에 사는 50살 김동민씨는 월소득이 200만원이다. 자영업을 하다가 2001년 뒤늦게 물류회사에 취직해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전셋집에 살고 저축도 별로 없는 김씨의 유일한 노후대책은 국민연금이다. 2018년까지 일한다고 치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은 대략 17년. 김씨가 2026년 만 63살부터 받게 되는 국민연금 월수급액은 48만6천원(현재 가치 기준)이다. 2년 뒤 만 65살이 되는 2028년부터 김씨는 기초연금 대상자가 된다. 소득인정액(소득+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을 따져봤더니 소득 하위 70%에 해당한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이 유지됐다면 김씨는 2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문에 다달이 받게 될 기초연금이 줄었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2년 이상이 되면 1년이 늘 때마다 대략 1만원씩 기초연금이 줄도록 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바꾸면 김씨처럼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한 20~50대, 미래의 노인 세대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OECD국가 최악의 노인빈곤률·자살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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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9월25일 ‘기초연금 도입계획’을 발표했다. 65살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10만~20만원씩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소득 상위 30%는 기초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던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 깨졌다며 ‘공약 사기’라고 야단법석이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박근혜 정부가 무너뜨린 것은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다.

기초노령연금이 왜 도입됐는가? 노인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5%(2009년 기준)다. 노인 10명 중 4.5명이 가난에 허덕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3배 많다. 비극은 더 큰 비극을 부른다. 70살 이상 노인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84.4명, 역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5배)다. 우리나라의 평균 자살률보다 2.5배 높은 수치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적 노후소득보장제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있지만 반쪽짜리다. 사각지대는 넓고도 넓다. 2012년 12월 기준으로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18~59살 총인구)은 43%에 그친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에 가입할 수 없던 기존 노인 세대, 전업주부 등 적용 제외자(39%), 실직자·장기체납자 등 납부예외자(18%) 등 국민연금을 못 받는 사람이 더 많은 실정이다.


이번 기초연금안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년 늘어나면 국민연금 지급액이 1만원 늘고, 기초연금은 6700원 줄어든다. 당신이라면 3300원 더 받자고 매달 십수만원씩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내겠는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서 노인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서 노인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7년 국민연금마저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40년 가입 기준)이 60%에서 40%로 대폭 떨어졌다.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평균 근무 기간이 25년을 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은 25% 수준에 그친다. 국민연금 수급액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게 쪼그라들어 노인 빈곤의 수렁은 더욱 깊어졌다. 이때 기초노령연금이 등장한다.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국민연금 균등부분(A값)의 10%를 지급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다만 2007년에 균등부분(A값)의 5%로 정한 이후 매년 0.25%씩 인상해 2028년까지 10%를 달성한다는 단계적 도입 방식을 채택했다. 그 뒤 단 한 번도 기초노령연금 지급률은 오르지 않았다. 2013년 현재도 균등부분(A값)의 5%로, 1인당 최대 9만6800원을 지급한다.

국민연금과 연계한 게 더 치명적

기초노령연금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박근혜식 복지’ 기초연금의 민낯이 드러난다. 정부는 현행 기초노령연금처럼, 대상자를 ‘소득 하위 70%’로 제한했다. 소득인정액은 실질소득에다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 계산한다. 대도시에서 4억4600만원의 재산이 있으면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올해 소득 하위 70%를 끊는 소득인정액은 83만원(배우자가 있으면 132만8천원)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서가 새로 붙었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라는 문구다. 기초연금이 국민연금의 독립변수에서 종속변수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 가입 여부·기간과 관계없이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기초연금은 2014년 이전에 국민연금에 가입한 경우, 가입 기간 10~11년은 20만원을 받고 12년이 넘으면 1년에 약 1만원씩 줄어든다. 20년 이상 가입하면 반토막(10만원)이 난다. 왜 이렇게 설계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노인 기초연금 월 20만원’ ‘중증질환 100% 국가책임’ ‘반값 등록금 완전 실천’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아래). 하지만 지난 9월26일 2014년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며 핵심 공약을 줄줄이 파기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노인 기초연금 월 20만원’ ‘중증질환 100% 국가책임’ ‘반값 등록금 완전 실천’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아래). 하지만 지난 9월26일 2014년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며 핵심 공약을 줄줄이 파기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설계한 기초연금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국민연금의 구조를 먼저 알아야 한다. 국민연금 지급액은 균등부분(전체 가입자가 낸 돈·A값)과 소득비례부분(자신이 낸 돈·B값)을 더해 결정된다. 저소득층에 조금 더 많이 돌려주는 소득재분배 기능을 국민연금이 갖도록 이렇게 만들었다. 자신이 낸 돈(B값)이 적은 저소득자라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어지면 균등부분(A값)이 불어나 많은 수익을 누린다. 그래서 월소득 375만원인 경우 국민연금 수익비(낸 돈에 따라 받는 비율)는 1.3에 그치지만 100만원은 2.5에 달한다.

국민연금의 사회통합적 기능, 소득재분배 기능에 박근혜 정부가 찬물을 끼얹었다. 국민연금 균등부분(A값)을 따져 그 액수가 20만원보다 적으면 그 차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기초연금을 설계한 탓이다. 균등부분(A값)과 반비례해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긴 사람이 가입 기간이 짧거나 가입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기초연금을 상대적으로 덜 받게 된다. 국민연금 성실 가입자가, 저소득층이 역차별당하며 불이익을 떠안는 구조다.

복지부는 내년 지급 대상자(소득 하위 70%)의 90%(353만 명)가 20만원을 받고 나머지 10%(38만 명)만 월 10만~20만원씩 받는다며 “역차별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경우에도 기초연금 10만원을 받으니 국민연금에 가입했다고 손해 보는 분은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늘수록 기초연금 수령액이 줄지만 둘을 합한 금액은 어쨌든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그 액수가 줄어든다면 어느 누구도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안정된 노후가 보장된다는 정부의 부추김에 없는 살림을 쪼개 국민연금을 20년이나 내왔는데 아예 가입하지 않은 이웃보다 10만원이나 적게 기초연금을 받으라니 울화통이 터지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게다가 내년에는 38만 명이지만 국민연금이 성숙하면서 장기가입자, 특히 20년 이상 가입자가 늘게 돼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해마다 많아진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의 설명이다. “(박근혜표) 기초연금안을 보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년 늘어나면 국민연금 지급액이 1만원 증가하고 반대로 기초연금이 6700원 줄어든다. 당신이라면 3300원 더 받자고 매달 십수만원씩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내겠는가. 국민연금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정책이다.”

“노동자의 6500만원짜리 통장 빼앗은 셈”

한국의 노동 구조는 20대 후반에 취업하고 50대를 전후에 퇴사하는 게 일반적이다. 직장가입자로 국민연금 보험료(노동자 4.5%+사업자 4.5%)를 의무적으로 납부하지만 퇴사한 뒤 자영업이나 불안정한 일자리를 떠돌면 보험료가 버거워진다. 게다가 사업자 보험료까지 떠안아 부담은 2배로 늘어난다. 기초연금까지 손해를 본다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유인책이 아예 사라진다. 반대로 살림이 넉넉하다 해도 그렇다. 국민연금을 15년간 가입했지만 보험료를 계속 납부하기보다는 그 돈을 개인연금 보험료로 돌려 기초연금 20만원을 받고, 국민연금도 받고, 개인연금도 받는 걸 선택하는 게 낫지 싶어진다. 실제로 올해 초 국민연금에 연계해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계획안이 알려지자 2월에만 국민연금 임의가입자 1만1585명이 탈퇴하는 등 7월까지 총 4만4308명이 이탈했다.


유일한 해법은 65살 이상 노인 모두에게 국민연금과 연계하지 않는 ‘보편 연금’으로 기초연금을 일괄 지급하는 것이다. 그래봤자 국민·기초연금을 합한 한국의 공적연금 지출 비율은 OECD 국가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청장년층의 불이익은 더 심각하다. 현행법은 소득 하위 70%에게 주는 기초노령연금을 2028년까지 20만원으로 올리도록 돼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 없었다면 현재 30~40대는 2028년 이후 월 2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국민연금 장기가입자라서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에선 10만원만 받는다. 2023년을 기점으로 박근혜표 기초연금 소요 예산액(21조 8천억원)이 현행 기초노령연금(21조9천억원)보다 줄어들면서 복지 예산이 역전하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는 게 아니라 축소한다는 징표다.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시중은행에 물어보니 은행에 1억3천만원을 예치해야 매달 2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급여 수준을 절반으로 삭감했으니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노동자의 6500만원짜리 예금통장을 빼앗은 셈이다.”

악순환은 반복된다.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대상이 줄어들면 노인빈곤율을 낮추기가 힘들어진다.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한 취지가 무색해진다. 특히 50대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가 전 연령에서 가장 많아 가난하지만, 박근혜 정부안대로라면 현재 65살 이상 노인이 받는 혜택도 받지 못한다. 악순환이 더 큰 악순환을 부른다. 유일한 해법은 65살 이상 노인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일괄 지급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과 연계하지 않는 ‘보편적 연금’으로서 말이다. 문제는 돈이다. 정부의 기초연금안만 도입해도 내년부터 2017년까지 39조6천억원(연평균 9조9천억원)이 드는데 보편적 연금은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김잔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공포 마케팅’이라고 지적했다. OECD가 2012년 내놓은 ‘연금 지출 전망’을 보면, 한국의 기초연금·국민연금을 합친 공적연금 지출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9%다. OECD 28개 회원국 중 꼴찌다. OECD 평균은 GDP 대비 8.4%였다. 27위인 오스트레일리아(3.6%)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면 어떻게 될까? 복지부 재정추계를 보면, GDP 대비 3.1%로 올라선다. 그래도 OECD 평균의 4분의 1이다. 1인당 연금액이 여전히 낮고 그만큼 노인 빈곤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다

“부모에게 효도한 마지막 세대,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번째 세대”라고 소개한 박병선(64)씨는 기초연금 소식을 꿰뚫고 있었다. “자식이 부자고 효자라 하더라도 돈을 타 쓰면 미안하고 부담스럽다. 우리 부모님은 참 당당했는데 우린 그게 안 된다. 정부가 20만원씩 주면 참 좋을 것 같다. 내후년에 아내까지 받으면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될 텐데….” 7대 종손인 박씨는 먹고살기에 바빠 노후준비를 전혀 못했다. 젊어선 어린 동생들 시집·장가 보내고 나이 들어선 삼남매를 가르치다보니 손에 남는 건 집 한 채가 전부다. 그마저도 은행 대출이 절반이다. 우리 시대 아버지, 그리고 미래의 내 모습이다. 이대로 내버려둘 것인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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