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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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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적제국주의’의 부활?

자국민들 상대로 한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 기정사실화하며
군사 개입 만지작거리는 미국… 10년 전 전임자 그대로 닮아가는 오바마
등록 2013-09-06 14:50 수정 2020-05-03 04:27

아는 건, 그저 안다. 그러니 아는 건, 언제나 한 가지다. 모르는 건 두 가지다. 모른다는 점을 아는 것이 있고, 모른다는 점조차 모르는 것도 있다. 2003년 이라크 침공과 점령을 주도한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이 한 말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이 다시 한번 ‘의지의 동맹’(Coalition of the Willing)을 거론하기 시작한다. 전쟁의 먹구름이 가득한 시리아에 대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알고, 또 모르고 있는 건가?

존 케리 “도덕적 외설 행위다”

아는 것부터 따져볼 일이다. 시리아 전역에서 병원 27곳과 진료서 56곳을 지원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MSF)는 지난 8월26일 내놓은 성명에서 “8월21일 수요일 오전, 3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내에서 (의사회가) 지원하고 있는 병원 3곳에 3600여 명의 신경 독가스 중독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몰렸다. 이 가운데 355명은 끝내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유튜브’를 통해 현장 상황을 담은 동영상도 여럿 공개됐다. ‘가스’를 씻어내기 위함인지, 온몸에 물을 끼얹은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거리를 내뛰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것’이다.
이 단체의 운영이사인 바트 얀센 박사는 성명에서 “과학적으로 이런 증상의 원인이나, (이런) 공격을 가한 세력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역학적 형태와 보고된 환자들의 증상을 고려하면 신경 독가스에 노출됐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화학 또는 생물학 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국제 인도주의법에 위반되는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른다는 점을 아는 것’의 경계는 여기까지다.
미국과 전세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화학무기 사용을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넘어선 안 될 ‘금지선’이라 규정한 바 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달리 미국 쪽에서 나오는 얘기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거나, ‘부인할 수 없는 근거’란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고 있는 게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도덕적 외설 행위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시리아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 공격을 퍼부었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곧이어 ‘진군의 북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미국이 앞장서고, 영국과 프랑스가 뒤를 따르는 모양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8월27일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리아의 군사 개입과 관련해 어떤 최종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대담에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과 NATO, 페르시아만 연안 동맹국이 곧 군사 공세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크루즈 미사일 공격이나 융탄폭격 등 시리아에서 미국이 취할 군사행동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사드 정권이 다시는 화학무기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아주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그는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점을 ‘안다’는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반면 그에 따른 ‘증거’는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이번 일로 이득을 보는 집단은?

사고 발생 직후 국제사회의 비난이 집중되면서, 시리아 정부는 마지막 남은 ‘맹방’인 이란·러시아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사고 발생 이전부터 다마스쿠스에 머물고 있던 유엔 무기사찰쪽에 화학무기 공격 현장으로 알려진 구타 지역에 대한 방문 조사를 허용한 게다. 사찰단은 현장 조사를 마치고, 8월29일 현재 일단 다마스쿠스로 복귀
한 상태다. 사찰단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현장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않은 채다.


“도덕적 외설 행위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시리아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 공격을 퍼부었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곧이어 ‘진군의 북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미국이 앞장서고, 영국과 프랑스가 뒤를 따르는 모양새다.


그러니, 케리 장관이 언급한 ‘도덕적 외설 행위’의 실체를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언급해둘 것이 있다. 지난 8월14일 오전부터 16일 오전까지, 만 48시간 동안 이집트에선 적어도 1295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이었다. 8월14일에만 민간인 983명을 포함해 모두 1063명이 목숨을 잃었다. ‘외설’ 수준을 넘어선 일이다. 미국의 반응은 어땠을까?
휴가 중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유혈 사태를 맹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이집트 내정 문제이므로) 어느 한쪽 편을 들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군이 조속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필리스 베니스 미 정책연구소(IPS) 연구원은 8월27일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시리아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해 민간인을 공격했다는 점이 확인된다면, 그야말로 ‘도덕적인 외설 행위’인 셈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난 2년6개월 남짓한 시리아 내전 기간 동안 줄잡아 10만 명이 숨지고 수백만 명이 난민 신세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이런 건 ‘도덕적 외설 행위’가 아니란 말인가?”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따져보자. 시리아에서 화학무기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에 사용된 무기의 실체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그 무기를 누가 사용했는지조차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러니 묻게 된다. ‘퀴 보노?’ 이번 일로 이득을 보는 집단은 누구일까?
쉬운 문제부터 풀어보자. 손해를 볼 집단은 뻔하다. 먼저 시리아 국민이다. 이미 죽거나 다친 이들과, 그 가족이 부지기수다. 지역 공동체 전체가 만신창이가 됐다. 오바마 행정부가 공언처럼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나선다면, 미국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전쟁이 시작되면 국방예산 지출이 늘 수밖에 없다. 의회는 여타 예산을 삭감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회보장 관련 예산이 삭감 1순위가 될 게 뻔하다. 미국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지난 7월19일 상원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시리아 반군 장악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선포하는 데 따른 비용을 추산해 보고했다. 이것만으로도, 한 달 평균 10억달러가 소요될 것이란다.
실제 ‘군사적 개입’에 나선다면? 뎀프시 의장은 또 다른 ‘비용’을 거론했다. 그는 “군사 개입은 자칫 (이미 시리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알카에다 등) 극단주의 세력의 발호를 부추길 위험이 있으며, 특히 미국이 통제권 아래 두려고 그토록 노력해온 바로 그 화학무기가 제3자의 손에 떨어질 가능성마저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군사 개입 반길 반군·알카에다

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와 공동으로 실시해 8월24일 내놓은 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은 ‘미국의 시리아 내전 개입을 반대한다’고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군사 개입에 찬성한다’는 답변은 전체의 9%에 그쳤다. 특히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군사 개입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25%에 그친 반면, 46%는 ‘그럼에도 반대한다’고 답했다. 거짓 명분에 기대 밀어붙였던 2003년 3월의 이라크 침공이 가져다준 ‘교훈’이리라.
조금 복잡하지만, 이제 이득을 볼 집단을 따져볼 차례다.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으로선, 아사드 정권이 그중 일부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기 어렵다. 문제는 하나로 모아진다. ‘만약 그랬다면, 대체 이유가 뭘까?’
아사드 정권은 이미 무기금수 조처와 각종 경제제재에 허덕이고 있다. 최근엔 국제적인 압박과 고립의 수위가 한층 높아진 터다. 그럼에도, 시리아 정부군은 최근 전투 현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반군 장악 지역 일부를 ‘탈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정부군 내부의 누군가가 ‘돌출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사드 정권 차원에서 화학무기 사용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화학무기 사용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게 될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다른 쪽도 따져보자. 미국과 NATO 동맹국 등의 직접 군사행동을 통해 아사드 정권의 붕괴가 앞당겨지는 건 반군세력에겐 꿈같은 일이다. 이런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게다. 미국 정보 당국의 주장을 종합하면, 시리아 반군 진영엔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세력이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건 정설에 가깝다. 이들 역시 미국 등의 군사 개입을 내심 기다려왔다. 시리아의 전장에서 공격하는 게 미국까지 쫓아가는 것보다 훨씬 쉬운 것은 당연하다.
미국 등의 시리아 군사 개입은 알카에다 등 극단주의 세력의 ‘신규 채용’에도 효과적일 터다. 알카에다 등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에 환호작약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공습이든, 미사일 공격이든 마찬가지다. 이른바 ‘부수적 피해’로 불리는 민간인의 희생을 피할 순 없다. 군사 개입은 결국, 장기간에 걸친 핏빛 내전의 어느 일방을 편들어주는 행위일 뿐이다. 알카에다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 어딘가에, 우리가 ‘모른다는 점조차 모르고 있는 사실’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미 외교·안보 전문 매체 는 8월26일 인터넷판에서 “이란-이라크 전쟁 막바지인 1988년 초 미 정보 당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란군의 주요 거점에 대한 영상정보와 구체적인 위치정보를 이라크 쪽에 넘겼다”고 폭로했다. 미국이 전해준 정보를 바탕으로 이라크군이 사린가스 등 화학무기 공격을 퍼부으면서, 막판 전세가 이라크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다. 이 매체는 1988년 당시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한 릭 프랑코나 예비역 공군 대령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이라크 쪽은 (미국에)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란 점을 미리 통보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1983년부터 후세인 정권이 화학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이 전해준 정보를 활용해) 후세인 정권이 이란 쪽에 화학무기 공격을 퍼부을 것이란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안보리 결의 없는 군사 개입 ‘불법’

2004년 이라크 저항세력의 극렬 반발에 밀린 미군은 수니파 저항의 거점인 바그다드 서부 팔루자에서 백린탄을 사용했다. 백린탄에 노출되면 뼈와 살이 타들어간다. 그 무차별적 살상력 때문에 국제법은 백린탄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방사능 유출에 따라 여러 세대에 걸쳐 ‘참극’을 빚게 되는 열화우라늄탄 사용 역시 금지돼 있지만, 미군이 이라크 전역에서 이를 사용했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역시, ‘도덕적 외설’이다.
“미국이 유엔의 결의나 분명한 증거도 없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단행한다면, 의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과연 국제법이 이런 행동을 용인하느냐는 문제 말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를 계속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 출연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 정보 당국의 주장을 종합하면, 시리아 반군 진영엔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세력이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건 정설에 가깝다. 이들 역시 미국 등의 군사 개입을 내심 기다려왔다. 시리아의 전장에서 공격하는 게 미국까지 쫓아가는 것보다 훨씬 쉬운 것은 당연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이다. ‘판례’를 이미 찾았을 게다. 발칸반도의 보스니아가 내전 막바지에 이르렀던 1999년, 미국은 학살 방지를 명분으로 코소보 사태에 무력 개입했다. 러시아와 중국 등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 탓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을 내린 미국은, ‘공습 허가’를 다른 쪽에서 구했다. 바로 NATO 사령부였다.
유엔 헌장이 인정하는 ‘합법적 군사 개입’의 조건에, ‘NATO 사령부 허가’란 항목은 없다. 안보리의 결의를 얻어내거나 침략 행위에 맞선 정당방위가 아닌 한, 무력을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행위는 모두 국제법 위반이다. 미국과 NATO의 코소보 공습이 ‘불법행위’였던 이유다. 오죽하면 ‘인도주의적 제국주의’란 말이 나왔을까? 상황은, 시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 국내법을 따져도,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무력 개입은 ‘불법’이다. 미 헌법 제9조는 ‘전쟁선포권’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민주당 피터 드파지오 하원의원(오리건주)이 8월26일 등과 한 인터뷰에서 “설령 유엔 무기사찰단이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단행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군사적 개입에 나설 것인가, 아니면 화학무기 공격을 덮어버릴 것인가? 거짓으로 점철된 극단의 이분법이다. 2003년, 익히 봤던 바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잇따라 언론과 만나 ‘강력한 정황증거’를 거론하며 ‘믿어도 좋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8월27일과 28일 잇따라 미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회의가 열렸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뼈대로 영국 정부가 제출한 결의안을 토론하기 위해서다. 두 차례 회의에선 아무런 결론도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 쪽은 “군사 개입은 자칫 시리아는 물론 중동 일대 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쪽에서도 “섣부른 군사 개입은 지역 안보에 ‘엄중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영국 의회, 군사 개입 동의안 부결

영국 의회는 8월28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제출한 시리아 군사 개입 동의안을 13표 차이(찬성 272, 반대 285)로 부결했다. 이에 따라 향후 미국 주도의 시리아 군사 개입에 영국은 참여하기 어렵게 됐다. 부결을 예상하지 못한 캐머런 총리도 “의회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라고 결정했고, 정부는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의지의 동맹’을 거론하는 미국은, 독자적인 군사행동에 나설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전임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노벨평화상까지 ‘선불’로 받았던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10년 전 그의 전임자와 고스란히 닮아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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