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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4일, 도둑이 몽둥이 든 날

국정원 댓글 증거 나오고, 김무성은 NLL 대화록 까고, 박근혜는 민주당에 ‘성폭행범 같은…’ 역공
등록 2013-07-18 15:41 수정 2020-05-03 04:27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사진기자단

2012년 12월14일. 대선 닷새 전. 국정원 여직원 김요원(가명)씨가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댓글 작업을 하다 민주당에 꼬리를 밟힌 지 3일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 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난무했으나 비밀기록물인 대화록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던 때.

그러나 이날 국정원 대선 댓글 공작과 NLL 대화록 유출은 묘하게 겹친다. 국회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 조사 특별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지난 7월10일 브리 핑에서 “2012년 12월14일이 국정원 대선 개입 핵심의 날”이라며 “이 날 연루된 모든 사람들은 국정조사 증언대에 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무슨 일이 있었나.

박근혜 “한 여성을 집에 가둬놓고…”

오전 8시36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박근혜 후보가 긴 급 기자회견을 연다. “도대체 선거가 무엇이고 권력이 무엇이길래 터 무니없는 허위 사실로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급기야는 한 여성을 집 에 가둬놓고… (민주당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선거가 도저히 어렵 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허위·비방이 갈수록 도를 넘더니 이제는 국가 기관(국정원)까지 정치 공작에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성폭행 범들이나 사용할 수법’이라는 원색적인 표현도 나온다. 박 후보는 내 내 굳은 표정으로 회견문을 읽은 뒤 아무 질문도 받지 않고 부산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며 자리를 뜬다.

오전 9시, 새누리당은 ‘문재인 캠프의 선거 조작 진상조사 특위’(이 하 특위) 2차 회의를 연다. 심재철 의원은 “국정원 여직원의 컴퓨터에 서 아무런 물증이 나오지 않는다면 헌정 사상 최악의 선거 부정 음 모 사례가 될 것이다. 문 후보는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후 보직을 사퇴해야 하는 일이 나타나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전 11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김씨의 노트북 보 안을 해제한다. 오전 11시30분, 새누리당 특위는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아가 “공명정대하고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다. 오후 2시30분, 새 누리당 특위는 오피스텔 현장에 있던 민주당 의원 11명이 집단적 감 금 및 집단적 주거침입 미수 행위, 허위 사실 공표 등을 저질렀다며 수서경찰서에 고발장을 낸다.

오후 3시, 부산 서면 유세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거대책 본부장은 NLL 대화록의 내용을 그대로 읽는다. 김 의원이 “내가 너 무 화가 나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쯤 부산 유세에서 그 대 화록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부짖듯 쭉 읽었다”(지난 6월26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는 날이 이날이다.

빗속에서 울부짖은 김무성

저녁 7시20분,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김씨 노트북 의 디지털 증거분석 작업에 들어간다. 40분 만에 삭제된 메모장이 복구된다. 김씨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언론사 사이트 등에 이 례적으로 수만 건 접속한 사실 등 댓글 작업을 한 흔적과 인터넷상 에서 IP 역추적을 회피하려 한 흔적이 확인되기 시작한다.

2012년 12월14일. 국정원 댓글 공작의 증거가 나온 날이고, 새누 리당이 NLL 대화록을 사실상 ‘깐’ 날이며,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날’ 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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