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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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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과 하루살이의 습격

도심 주택가에 떼로 나타난 연노랑뒷날개나방, 동양하루살이, 황다리독나방… 광공해가 나방을 부르고 단조로운 도시 생태계가 갑작스런 증가 키워
등록 2013-06-26 17:43 수정 2020-05-03 04:27
지난 6월19일 밤,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인근 가로등 주위로 깔따구 등 곤충들이 날아들고 있다.김명진

지난 6월19일 밤,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인근 가로등 주위로 깔따구 등 곤충들이 날아들고 있다.김명진

청소일을 하는 유치기씨는 자신의 몸에 시커멓게 달라붙는 나방이 징글징글하다. “서울에 몇십 년을 살아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우리나라 것들이 아닌 것 같아.”

‘꺅! 꺅!’ ‘지지직~ 지지직’.

지난 6월8일 자정. 서울 동대문 의류상가 일대에서 생경한 전쟁이 벌어졌다. 쇼핑객들이 연신 질러대는 비명과 건물 입구마다 설치된 전기살충기에 걸려든 벌레들이 타 죽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던 유행가와 뒤엉켰다. 소란이 일어난 원인은 나방이었다. 쇼핑몰 밀리오레 건물 앞에 설치된 조명으로 5~6cm 크기의 나방떼가 쉴 새 없이 몰려들었다. 건물 벽에도, 길바닥에도 시커먼 나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쇼핑하러 온 직장인 서아무개(30)씨도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이 무서웠다. “나방 무리를 서울 한복판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방이 만들어낸 비늘이 먼지처럼 허공에 떠돌았다.

수집가에게 인기가 많은 종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위치한 쇼핑몰 디자이너클럽 건물 쪽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곳에서 청소일을 하는 유치기(72·남)씨는 자신의 몸에 시커멓게 달라붙는 나방이 징글징글하다. “서울에 몇십 년을 살아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우리나라 것들이 아닌 것 같아.” 옆을 지나가던 직원이 말을 덧붙였다. “아이고, 알을 까기 전에 다 죽여야 해요.”

녀석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을까.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안능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정체를 확인해봤다. 이름은 연노랑뒷날개나방. 웅크리고 있으면 회색빛이지만, 날개를 펴면 밝은색이 보인다. 나방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종으로, 전국 곳곳 산간지역에서 볼 수 있다. 나방의 유충(애벌레)은 주로 참나무에서 자란다. 상가 인근에 위치한 훈련원공원이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돌아봤지만 이 녀석들의 유충이 자랄 만한 나무를 찾을 순 없었다. 좀더 멀리서 모여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중구청에 따르면, 3~4년 전부터 나방 관련 민원이 발생했는데 올해 유독 신고 수가 많았다. 지난해 6월 초 하루에 한두 건이던 민원 신고 수는 올해 같은 시기 20~30건으로 늘었다.

동대문으로 나방떼가 찾아들던 시기, 강 건너에선 또 다른 벌레로 인해 술렁거렸다. 일명 ‘압구정 벌레’라고 불리던 녀석들의 이름은 동양하루살이. 하천이나 강가 등 물속에서 애벌레 시절을 보내는 수서곤충이다. 몸집이 2~3cm로 여느 하루살이보다 크다. 2급수 이상 물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수질을 알려주는 지표종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펴낸 ‘제7차 한강생태계 조사연구’ 보고서를 보면, 동양하루살이는 강동대교 남단·광나루지구·잠실수중보 남단·서강대교 남단 등 한강을 따라 넓게 분포하고 있다. 동양하루살이가 서울 도심에 무리지어 나타나 화제를 모은 건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5월에도 한 달간 서울 강동·광진·송파구 일대에서 동양하루살이 출몰로 인한 민원이 들끓었다. 그 뒤로도 한강변 아파트나 주택가에 동양하루살이가 나타나는 일은 잦았다. 서울시 강동구청 지역보건과 김정미 주무관은 “2002년 암사동에 생태공원 습지를 조성하면서, 하루살이가 자랄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며 “예년에 비해 올해 강동구에선 민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19일 저녁, 연노랑뒷날개나방이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공사장 가림막에 붙어 쉬고 있다.김명진

지난 6월19일 저녁, 연노랑뒷날개나방이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공사장 가림막에 붙어 쉬고 있다.김명진

서울 도심은 아니지만, 경기도 광주나 강원도 인제 등에선 새하얀 나방떼로 몸살을 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엔 황다리독나방이었다. 황다리독나방 역시 남한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종으로, 2~3년 전부터 급격히 수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올봄 경기도 광주 주택가 조사에서 황다리독나방 수백 마리를 확인한 안능호 박사는 “매년 6월에 대량으로 발생하는데, 기온이 높아 예년보다 빨리 성충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조명은 사람도 곤충도 끌어들이고

전문가들과 민원이 발생한 지역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도시지역에서 몇몇 종의 곤충 개체 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1차적으로는 녀석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백문기 한반도곤충보전연구소장은 “도시 주변이나 강변에 유기물이 많아지는 등 곤충들의 입장에서 먹이를 찾을 수 있는 서식환경이 좋아진 걸로 봐야 한다”며 “녹지를 조성하면서 산간지역 나무를 가져다 인위적으로 심을 때 나무에 붙어 사는 나방 유충이나 알이 함께 옮겨져 어느 순간 대량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다리독나방 유충은 층층나무 잎을 갉아먹고 산다. 이 수종을 가로수로 심으면서 개체 수가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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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이 곤충 발생을 부채질했다는 설명도 있다. 도심의 온도는 대기오염이나 인공열의 영향으로 주변 지역보다 높게 나타난다. 이른바 ‘열섬현상’이다. 곤충은 포유류와 다르게 대량 번식하며 환경 적응력이 강하다. 국립생물자원관 허준미 박사는 “곤충은 보통 1년에 한 세대만 나오는데, 온도가 높아지면 성장이 빨라져 1년에 두 세대가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배연재 고려대 생명공학과 교수는“동양하루살이는 장마 전후 5~6월과 8~9월, 이렇게 1년에 두 번 발생한다. 초봄에 태어난 애들이 빨리 자라면 가을에 성충(어른벌레)이 돼 늦여름에 나오는 애들과 맞물려 대량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큰 틀에서 보면, 몇몇 종의 곤충 수가 대폭 늘어나는 현상은 생태계 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다. 곤충의 유충을 먹는 또 다른 곤충이나 성충을 먹는 다양한 조류 등 포식자가 복잡하게 분포돼 있다면, 특정 종만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먹이사슬은 단순하다.

사람들이 하루살이나 나방을 보고 놀라는 건 수가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낯선 곤충이 무섭고 혐오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상가나 쇼핑몰 등 상업지구에 곤충에 대한 민원이 집중된 것도 그래서다. 장사를 해야 하는 상인들로서는 피해가 많았을 터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라고 무시무시한 사람 눈에 띄고 싶었을까.


질병 매개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일상생활에 불편을 일으키는 곤충을 일컬어 ‘뉴슨스’라고 부른다. 농촌 생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깔따구·꼽등이 등의 곤충은 도시 사람들에겐 혐오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나방이나 하루살이가 밤마다 도심으로 날아드는 건 ‘광공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손님의 눈길을 끌기 위해 설치한 화려한 조명은 곤충의 눈길까지 잡아끌었다. 하루살이와 나방은 빛의 자극을 좇는 주광성을 띤다. 본능이다. 번데기에서 벗어난 나방이 근친교배를 피해 멀리 떠나기 위해 희미한 하늘빛을 향해 날아오른 습성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굉장히 넓은 지역에 퍼져 있던 곤충들이 빛으로 인해 서울 근교로 유입되고, 최근 늘어난 녹지대로 서식지를 옮긴 뒤 다시 빛을 보고 도심으로 날아왔을 수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노태호 박사의 분석이다. 유독 나방이 많이 몰렸다는 동대문 쇼핑몰 밀리오레·디자이너클럽 건물은 인근 다른 건물에 비해 더강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특히 건물 주위에 설치된 동그란 수은 등은 나방이 좋아하는 파장이 짧은 빛이 나온다. 하루살이는 나방과 달리 형광등의 하얀 빛을 좋아한다. 나방과 부딪친 적이 있다면, 오해는 마시라. 나방은 빛을 향해 돌진할 뿐 당신을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

나방은 빛을 향해 돌진할 뿐

도심의 광공해는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원래 매미는 햇빛이 있는 낮에만 운다. 그러나 야간 조명 탓에 낮과 밤을 구분하지못하게 되자 밤에도 울게 되는 것이다.

대기의 다양한 구성 성분에 인공광이 산란돼 밤하늘이 밝게 보여 별을 관측하기도 힘들어졌다. 과도한 조명은 사람의 삶에도 악영향을 준다. 옥외 가로등 불빛이 실내로 침입하면 불면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인공조명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자 지난해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이 제정돼 올해 2월부터 시행됐지만, 아직 실질적인 규제가 이뤄지진 않고 있다.

지난 6월19일 밤 동대문 밀리오레 상가 주변은 2주 전과는 사뭇 다르게 평화로웠다. 간혹 연노랑뒷날개나방 한두 마리가 조명등으로 날아들 뿐이었다. 주변상인들 역시 더 이상 나방떼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 연이어 비가 내린 탓도 있지만, 방역 작업 뒤 수가 크게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없애겠다며 살충제를 뿌리고 방역을 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라고 조언한다. 살충제는 방역 대상 곤충뿐 아니라 다른 종들도 죽일 수 있다.사람에게도 이롭지 않다.

나방은 질병을 옮기는 곤충이 아니다. 산림 해충이긴 하지만 사람이 피해다닐 정도로 위험하지 않다. 유충 시기를 거쳐 성충이 된 나방은 두 달가량을 산다. 그러니까 수명이 거의 끝난 생명을 서둘러 죽인 셈이다. 녀석들의 죄목은 무엇일까.

2006년 5월 서울 광진구 강변역 테크노마트 주변으로 몰려든 동양하루살이떼.백문기 소장 제공

2006년 5월 서울 광진구 강변역 테크노마트 주변으로 몰려든 동양하루살이떼.백문기 소장 제공

질병 매개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일상생활에 불편을 일으키는 곤충을 일컬어 ‘뉴슨스’라고 부른다. 뉴슨스의 범위는 모호하다. 농촌 생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깔따구·꼽등이 등의 곤충은 도시 사람들에겐 혐오감을 일으키는 ‘나쁜 벌레’가 될 수도 있다. 황다리독나방은 ‘독나방’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안능호 박사는 “독나방이라고 다 독이 있는 건 아니다. 이 종도 독이 없다고 봐야 한다”며 “민감한 사람들에게 알레르기성 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경계할 정도로 위험한 곤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동양하루살이는 깨끗한 곤충의 대표주자다. 어른이 된 동양하루살이에겐 입이 아예 없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분비물 역시 없다. 성충이 된 하루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통 3~4일가량을 산다. 이 기간 동안 오로지 번식에만 골몰한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없애겠다며 살충제를 뿌리고 방역을 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라고 조언한다. 살충제는 방역 대상 곤충뿐 아니라 다른 종들도 죽일 수 있다. 사람에게도 이롭지 않다. 대전대 기초과학연구소 조영호 연구원은 “곤충이 왜 발생했는지를 먼저 따져보는 게 중요한데, 민원이 들어왔다고 바로 죽여버리면 해당 곤충의 상위 포식자들 수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쇼윈도에서 최후 맞은 불청객의 넋

사람의 입장에서 이들이 불편하다면, 곤충을 유인하는 인공조명의 세기를 낮추는 등 친환경 저감 대책을 고려해봐야 한다. 또 서식지를 줄이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모기의 경우 물웅덩이가 많아지면 대량 발생하게 되는데, 공간을 설계할 때 이런 장소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몇몇 종이 많이 발생하면 천적이 되는 종을 인위적으로 이입시키기도 하는데, 이 경우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하다. 복잡한 먹이망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조롭게 돌아가는 도시 생태계가 좀더 풍성하고 복잡해진다면 몇몇 곤충이 어느 날 대량 발생하는 일은 잦아들 가능성이 높다.

동양하루살이가 압구정동 쇼윈도로 날아가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강변에 알을 낳은 뒤 강에 떨어져 생을 마감했을것이다. 이들의 주검은 물고기의 밥이 된다. 온몸을 불살라 낳은 애벌레들은 물속 미생물을 부지런히 먹어치우며 강을 청소할 것이다. 그러나 빛을 좇아 도심의 불청객이 된 녀석들은 끝내 서식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쇼윈도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도시에서 동양하루살이의 주검은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렇게 숨져간 수만마리의 나방과 하루살이의 혼은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참고 문헌 (조영권•009), (한영식•011)

자주 보는 곤충의 숨겨진 진실
모기가 피를 먹은 건 불과 200년 전
나비와 나방.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되듯, 비슷한 글자이되 상반된 이미지를 풍긴다. 대체로 낮에 볼 수 있는 예쁜 것은 나비, 밤에 날아다니고 음습한 것은 나방으로 생각할 게다. 그러나 나비와 나방의 구분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분류학적으로 둘은 모두 나비목에 속하는데, 나비목엔 약 20만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나비로 불리는 것은 10%가량이다. 나방 가운데는 낮에 활동하는 종도 있다. 일반적으로 나방은 번데기로 변태할 때 고치로 번데기를 보호하지만, 나비는 딱딱한 번데기 안에서 변태한다. 나방에 대한 고정관념은 과거에도 있었다.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은 특정 나방의 출현을 죽음의 징조로 받아들였다. 고대 멕시코 사람들은 대형 나방을 저승사자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나비목엔 산림 해충이 많다. 인간이 산림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직간접적으로 방해하는 곤충이다.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는 건 아니니 나방은 자신에게 덧씌워진 이미지가 억울하지 않을까. 그런데 억울한 곤충은 나방뿐만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주 조그만 무엇인가가 비행하고 있을 것이다. 도시인들도 자주 볼 수 있는 곤충. 이 중 80% 이상은 파리목인 깔따구다. 깔따구는 수천 종에 이른다. 오염된 물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다. 종에 따라선 깨끗한 물에 살기도 한다.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깔따구는 하수구에 서식하는 노랑털깔따구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 없는 곤충은 바퀴벌레일지 모른다. 바퀴벌레 3천여종 가운데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종은 10여 종에 불과하다. 여름철에 가장 미움을 받는 곤충인 모기가 사람의 피를 먹게 된 데는 사람의 탓이 크다. 모기의 자연 숙주였던 다른 온혈동물들이 감소하기 시작한 200년 전부터 몇몇 모기종이 인간의 피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참고 문헌 (조안 엘리자베스 록·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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