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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근무 중 본사의 영업 방침으로 (영업사원) 연봉의 13%를 선공제 후 (매출) 목표가 기준 미달시 공제액을 차감하여 급여를 지급하였음. 이로 인해 각 영업사원들 간에 경쟁을 유발하여 각각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압박을 (대리)점주에게 주어 심리적 부담감을 준 것을 확인합니다. 또한 대리점 당월 목표 미달시 점주로 하여금 매출계획서를 작성토록 하고 익월 영업에 물량 할당, 감가 축소, 전략(제품 할당) 축소로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월 목표는 대리점 협의 없이 회사 기준에 따라 점주에게 전달하여 영업토록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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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수한 CJ제일제당 퇴직 간부의 ‘확인서’ 내용이다. ‘본사가 과도한 판매목표를 설정한 뒤 대리점들을 압박해 매출을 달성했다’는 고백을 담고 있다. 거래상 지위를 이용한 ‘판매목표 강제’는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해당한다. 그는 퇴직 전 회사에서 영업사원 및 대리점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메커니즘은 이렇다. 본사는 각 대리점을 맡고 있는 영업사원들에게 일정 금액을 뗀 급여를 지급한다. 각 대리점에는 시장 여건상 소화하기 버거운 판매목표를 할당한다. 영업사원들은 차감된 급여를 받으려면 대리점을 닦달할 수밖에 없다. 목표에 미달하는 대리점에는 단가 할인 및 전략 제품 배정을 줄이거나 매출계획서와 각서 등을 쓰도록 압박한다. 목표를 달성한 영업사원에겐 미리 떼놓은 액수에 추가 금액을 더해 지급한다.
지난 4월30일 수도권의 한 CJ제일제당 대리점주는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5월부터 바로 (다른 대리점이) 영업 개시하도록 윗선 명령 떨어졌습니다. 5월자부터 발주 불가능합니다. 빨리 인수인계하시는 게 최선책일 듯싶습니다.” 본사의 영업사원이 보낸 문자였다. 매출 부진과 연체금 누적으로 더 이상 대리점 영업을 할 수 없다는 통보였다. 다른 대리점이 구역을 인수토록 결정했다는 의미였고, 5월부터는 물품 발주를 차단한다는 소식이었다.
2005년 6월 사업을 시작한 대리점주 ㄱ씨는 초기 월 6천만원의 판매목표를 할당받았다. 본사가 부여한 목표액은 점점 늘어나 한때 2억4천여만원까지 뛰었다. 시장의 크기는 한정돼 있으나 목표액이 급증하면서 매출을 달성하지 못하는 달이 늘었다. 재고가 쌓이는 만큼 실적은 점점 줄었고, 결국 2011년 담당 구역 절반을 포기해야 했다. 본사는 영업사원을 통해 매출계획서와 자금계획서 및 각서 작성을 요구했다. CJ제일제당 전직 간부의 증언 내용과 대리점 관리 절차가 동일하다. 최근 회사는 ㄱ씨로부터 구역을 쪼개받아 대리점을 차린 점주에게 나머지 구역까지 인수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현재 ㄱ씨는 회사 방침에 반발해 “대리점을 넘길 수 없다”며 본사와 맞서고 있다. 그는 누구도 헤어나올 수 없는 CJ제일제당의 대리점 쥐어짜기 탓이라고 주장한다.
CJ에 따르면 신선식품(두부·달걀·콩나물 등 저온 보관 식품)과 상온식품(밀가루·조미료 등 가공식품)을 합쳐 전국 대리점 수는 300여 개(수도권은 60여 개)에 달한다. ㄱ씨의 사례는 그만의 ‘특수 케이스’가 아니다. CJ제일제당 대리점 다수가 겪고 있는 공통의 ‘몰락 과정’이다. 새로 사업을 시작한 대리점주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는다.
장려금제도와 판매목표 강제가 핵심먼저 대리점을 인수하는 사업자는 양도하는 사람과 ‘대리점 인수인계 계약서’를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새 사업자는 이전 사업자의 설비를 실제 평가액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넘겨받는다. 또 다른 대리점주 ㄴ씨의 계약서(2008년 7월)를 보면, 그는 이전 사업자로부터 1t 탑차 2대(2500만원)와 개인용휴대단말기(PDA) 2대(200만원), 냉동고(1천만원), 기타 집기(4250만원)를 합쳐 모두 7950만원에 설비를 샀다. 설비는 지급한 돈의 값어치에 못 미치는 낡은 것이 대부분이다. ㄴ씨는 “계약서상으론 탑차를 2대 산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1대만 넘겨받았고, 나머지 1대도 한 달도 못 쓰고 폐차시켰다. PDA도 거의 못 쓰는 고물이었다. 본사가 금액을 정해놓고 물건을 끼워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설비 인수 형태를 띤 일종의 권리금 지급이다. 대리점주들은 이 절차를 “본사에서 주도한다”고 말한다. 새 사업자는 양도인과 협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사 영업사원이 뽑아온 계약서에 서명한다. ㄴ씨는 “서명할 땐 양도인이 배석하긴 하지만 설비 인수와 관련해 어떠한 사전 협의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권리금을 내고 대리점을 인수한 점주들이 이젠 자신들의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CJ제일제당은 현재 권리금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본사 고위 관계자는 “권리금 문제에 개입한 적 없다. 회사 직원이 물품 가격을 산정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일단 대리점 사업을 개시하면 급증하는 판매목표가 기다리고 있다. 장려금제도와 연계한 본사의 과도한 판매목표 강제가 CJ제일제당 갑을 관계의 핵심 고리다. 판매목표는 본사가 일방적으로 정한다. 대리점 담당 본사 퇴직 간부는 “본사가 대리점마다 임의로 쪼개서 할당한다. 점주의 의견을 듣는 절차는 없다. 협의해봐야 불만밖에 들을 게 없다”며 “본사 입장에서 매출엔 전진만 있지 후퇴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리점주 ㄷ씨도 “판매목표를 놓고 본사가 상의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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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목표를 채울수록 재고도 점점 쌓이게 된다. 대리점주 ㄹ씨는 “일반적으로 내 구역에서 소화할 수 있는 판매량은 월 1억5천만원 수준인데 본사는 2억7천만~3억원을 할당한다”며 “남는 것은 헐값에 넘기거나 반품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회사는 반품 물량을 수거해 폐기하기만 할 뿐 보상해주지는 않는다. 대리점주 ㄹ씨의 경우 밀어내기로 판매하지 못한 두부를 본사가 이틀에 한 번씩 싣고 가서 폐기했다. 그는 “시존(CJone·발주 및 판매 등이 이뤄지는 전산 시스템)에서 확인해보니 폐기 물량이 연평균 2억5천여만원어치나 됐다”고 했다. “본사는 대리점 판매목표만 할당하면 매출이 된다. 반면 대리점은 본사로부터 피가 빨릴 만큼 빨린 뒤 버려지는 구조”라며 ㄴ씨는 격앙했다. 현재 CJ제일제당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임병진씨는 2001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11년간 대리점을 운영한 뒤 8억원의 빚을 지고 파산했다. 집은 경매에 넘어갔다. 그는 “본사의 과다 목표를 맞추려다 손익이 악화됐다”며 “본사가 남산도 못 오르는 사람에게 에베레스트를 오르라고 강요하면서 생긴 결과”라고 했다.
대리점주들이 ‘장려금의 늪’에 빠지는 데도 이유가 있다. CJ제일제당은 매출목표 달성을 촉진할 목적으로 장려금을 활용한다. 본사는 대리점들과 ‘매출할인 및 장려금 지급약정서’ ‘특별장려금 부속약정서’ ‘반품장려금 부속약정서’ 등의 이름으로 장려금 계약을 맺는다. 대리점이 목표를 채우면 본사는 8~9%의 장려금을 지급한다. 대리점들은 장려금을 받기 위해 재고를 떠안고서라도 판매목표를 채우게 된다. ㅁ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장려금이라도 받아야 직원 월급이나 생활비로 나가는 현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장려금을 못 받으면 운영을 못해요. 장려금을 받겠다고 판매목표를 채우다보면 점점 부실해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고 마는 겁니다. 본사는 부실이 심한 대리점을 버리고 새 대리점을 구하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거리로 나앉는 거예요.”
장흥배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간사는 “명칭 그대로라면 장려금은 갑이 을의 영업활동을 격려·지원하는 용도로만 사용돼야 하지만, CJ의 경우 판매목표라는 불공정행위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업권을 보호하지 않는 본사 방침도 대리점의 경영난을 가중한다. 대리점들이 운영하는 큰 거래처를 본사가 직거래로 가져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개 거래 금액이 큰 매장들이다. 지역에서 새로 오픈하는 매장도 대리점에 맡기지 않고 본사가 직접 거래를 뚫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골목상권 잠식까지 더해지면서 대리점의 주요 거래처는 속속 증발하고 있다. ㄴ씨의 거래처 현황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가장 규모가 큰 거래처는 GS가 운영하는 SSM으로 넘어가면서 거래 관계가 끊겼다. 세 번째 규모의 업체도 롯데 계열 SSM으로 넘어갔고, 두 번째와 다섯 번째 규모의 거래처는 직거래로 바뀌었다. 결국 두 번째 규모의 거래처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대리점주 ㅂ씨는 “큰 매장을 본사가 다 빼앗아가버리면 우리는 구멍가게와만 거래하라는 소리”라고 했다. 유통 대기업들의 시장 확장과 본사의 직거래화가 힘을 합쳐 대리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형국이다.
본사는 대리점주들의 문제제기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며 부인했다. 본사 고위 관계자는 “ㄱ씨의 (대리점 인수인계 추진의) 경우 2010년 7월부터 자금 경색이 와서 최근 2억~3억원대의 판매금액을 입금하지 못했다. 본사가 계속 손해를 감수하면서 배려할 수만은 없다. 신용을 초과하는 연체에 대해서는 영업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과도한 판매목표 강제 논란에 대해서도 “점주들과 상의해 정한다. 목표는 과거에 팔았던 수준에서 정하는 것으로 쌓이는 재고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같은 조건이라도 개인의 실력과 노력에 따라 수익이 다르다. 돈을 버는 대리점이 훨씬 많다. 방만한 대리점까지 책임지긴 힘들다”고 했다. 대리점 거래처의 직거래화를 두고는 “회사가 자금력을 동원해 대리점에 이익이 안 되는 거래처를 관리해주는 것”으로 “대신 배송은 계속하게 해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대리점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입법해야참여연대는 CJ제일제당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는 한편, 대리점주들과 협의해 법적 대응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장흥배 간사는 “공정위는 경제민주화의 파수꾼답게 CJ제일제당의 불공정행위 조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국회도 하루빨리 ‘대리점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입법해 을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6월4일 인터뷰 내내 대리점주들의 휴대전화가 웅웅 울었다. 함께하지 못한 점주들이 인터뷰 상황을 궁금해하며 잇따라 전화를 걸어왔다. 관심의 크기만큼 전화벨은 울리고 또 울렸다. ㄹ씨는 “그는 본사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 판매목표도 주는 대로 다 했다. 그런데 빚더미에 앉았다. 적자를 능력의 문제로 치부하는 본사에 정말 화가 난다”고 했다. 점주들은 협의체를 구성해 본사와의 협상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판매목표 강제 폐지와 반품 조건 개선, 본사 직거래화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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