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이다. ‘멘붕’이 세대를 초월한 국민 유행어가 돼버렸다. 이 기세면 “부자 되세요” 이후 최고의 새해 덕담 자리를 “멘붕 탈출하세요”가 잇지 말란 법도 없다. 멘붕은 큰 충격을 받아 우울함에 빠지거나 의식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심리적 착란 상태를 가리킨다. 기원과 관련해선 견해가 분분한데,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서 프로게이머들의 상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다가 일상어가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은 대통령 선거 이후 멘붕의 고통을 호소하는 독자들을 위해 시민들의 멘붕 탈출기를 공모했다. “왜 충분히 아파할 시간을 주지 않느냐” “더 슬퍼하도록 우리를 좀 내버려두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각자의 경험과 비법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려는 시민들의 열기 또한 뜨거웠다. 작가·의사·경제평론가, 그리고 다른 어떤 분야보다 내상을 깊게 입은 영화계 인사들도 동참했다. 의 정지영 감독, 미국 할리우드에서 개봉을 준비 중인 김지운 감독은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를 통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상처와 상심이 쉽게 치유될 리 만무하다. 희망은 꺾였지만,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 _편집자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신월리
무갑산 기슭 신월공단 골목에서
최호철 2012.12.28
늘 차창 밖 풍경으로만 있던 곳을 찾았다.
길 따라 떠밀려온 공장들이 논밭과 산자락을 갉아먹는 곳.
이곳에서 하굣길의 초등학생을 만났다.
외국인 노동자를 보았다.
여기가 내가 사는 곳, 내가 사는 현실.
내가 찾아 그리고자 하는 곳.
일러스트레이션/ 김태권
대선이 끝난 뒤 멘붕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집니다. 그런데 이 멘붕이라는 말, 그리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시간이 흐르면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다양한 성찰적 의견이 나올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내 무력감이나 분노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할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깨닫게 될겁니다. 스스로를 한번 믿어보세요.
정말 걱정되는 것은 진짜 멘붕이 온 사람들입니다. 대선 끝난 지 사흘 만에 두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버렸습니다. ‘이렇게 5년을 버티긴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신 분도 있습니다. 이분은 그동안 다른 동료 해고자가 스스로 목숨을 버렸을 때 ‘우리 다시는 죽지 말자’며 동료들을 위로하던 35살의 젊은 가장입니다. 이분이 그렇게 힘들어했을 줄은 주변 사람 누구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며 눈물 흘릴 때, 그 뒤에서 울지도 못하고 멍하게 홀로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정말 위태롭습니다. 주위에 있는 많은 해고 노동자들이 그런 상황입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심정일 수 있지만, 그들은 죽음이란 실재와 현실적으로 맞닥뜨린 사람들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그분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공감하고 연대할 때 그분들은 죽음과 같은 사회적 고립감에서 빠져나와 살 힘을 얻게 될 것이고,우리 또한 멘붕이라 이름 붙인 허탈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제안하는, 가장 효과적인 멘붕 탈출법입니다.
지난 몇 개월간 우리를 사로잡았던 이념·가치를 내려두고 개인적 삶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배우자, 자녀, 친구와 사적이면서 깊숙한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사회적·정치적 존재로서의 중압감을 벗고, 나라는 개별적 존재에 집중하며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해보십시오. 지금의 공허감도 사라질 것입니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마인드프리즘 대표
50대를 위한 경제해설서정권 교체의 열망이 강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 며칠간은 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지인이 보내준 문자메시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멘붕도 사치다.” 정말 하루하루가 힘든 서민들은 멘붕을 겪을 정신적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처져서는 안 된다. 과거 경험을 돌이켜봐도 실망스러운 결과를 놓고 계속 망연자실하면 더 힘들어진다. 특히 괴롭다고 술 마시는 건 금물. 숙취로 몸이 힘들면 마음은 더더욱 가라앉는다.
사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든 2013년에 나는 잠수를 탈 생각이었다. 2012년 한 해 나는 거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쉬어도 될 충분한 권리(?)를 갖게 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많은 이들이 멘붕에 빠진 상황을 보니 나 같은 사람이라도 꼼지락대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을 바꿨다. 우선 이번 선거의 승부를 가른 50대를 위한 쉬운 경제해설서를 쓰기로 했다. 그들의 선택을 탓하기에 앞서 기득권 미디어가 왜곡한 한국 경제의 진실을 보여 주고 싶은 생각에서다.
무엇보다 2012년 여름 시작한 연구소를 키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열심히 경제 현실을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생산하고 제안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10년 뒤 삼성경제연구소를 대체할 연구소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되새겨본다.
이 사회의 전진을 위해 필요한 일들에도 어떤 식으로든 힘을 보탤 생각이다. 할 일이 많다. 더 많은 유권자들의 자각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시민들의 열망을 더 잘 받아안을 정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고단해진 서민들의 삶을 개선할 더 좋은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 정책을 생산하고 실행할 인력도 키워야 한다. 여야 구분 없이 토호세력의 무대로 전락한 지방정치를 바꿀 생활정치인도 양성해야 한다. 인터넷 팟캐스트 를 넘어서 세대 구분 없이 전달될 수 있는 미디어도 필요하다. 그 일들을 열심히 하다 보면 우리는 곧 새로운 희망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상주에게 슬프시냐 물어야 하나943호 특집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라고 배웠다. 네 생각엔 반대한다, 그러나 네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 따위의 말에 전율한 시절도 내겐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다른 게 틀린 것으로 생각된 적은 없었다. 취향이 아닌 가치관에 관한 거였기에 충격은 컸다. 정치인이야 자기 욕망과 생각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보여줬던 차니 그렇다 쳐도, 모든 팩트를 다 보고 듣고도 선택을 한 내 가족과 이웃의 생각이 절망을 느끼게 했다. 51%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 그 또한 내 조국, 내 이웃이라는 사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반대로 48%가 함께 허탈해하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로였다.
젊은 배우의 글이 화제였다. 언제까지 위로해달라 할 거냐, 잘하면 좋은 거 아니냐, 잘할 수 있게 감시하고 도와주자 하고 말했다가
힘들어하던 48%에게 된통 미움을 산 일이 있다. 뜯어보니 틀린 말은 없었다. 오히려 붕괴된 멘털을 붙잡아보려고 애쓰는 젊은 친구에게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그 옳고도 옳은 말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았다 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것이다. 따끔한 충고는 위로 다음에 와야 그 가치와 무게를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법이니까.
충고, 격려, 이런 것들도 싸울 힘이 남은 사람들한테나 해당되는 말일 거다. 5년을 더 기다리는 건 더 이상 자신이 없다고 생을 포기한 분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위로라는 것조차 가당치 않음을 안다. 상주에게 얼마나 슬프시냐고 말로 꼭 물어야 하나, 문상을 갈 때마다 궁금했었다. 내가 상주라면 나랑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입 다물고 있어주는 걸 더 원할 것 같아서였다. 48%도 다 같진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다시 전의를 불태울 만한 힘이 혹시 남은 분들이 있다면 (있어야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이제 그만 마음 다잡고 그럴 힘조차 없는 분들을 위해 옆에 있어드리자. 그리고 다시 신발을 신자.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니까. 오지혜 배우
멘붕의 추억 김대중
2012년 12월19일 밤. 6살배기 딸이랑 대선 개표 방송을 보던 나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딸은 무슨 일이냐고 계속 물었지만 “음응∼” 신음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필 전날 유방암 조직검사를 받느라 헤집어진 상처는 쑤셔왔고, 불안감과 불길함이 밀려왔다. 자정이 되어서야 들어온 남편에게 “이런 날, 왜 나를 혼자 두느냐”고 원망을 한 사발 늘어놓았다. 남편은 노들장애인야학의 박경석님과 함께 있었다고, 그분은 재판이 몇 개 걸려 있는데 큰일이라고 짧게 답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래 그런 분들도 계시지. 이 추위에 철탑 위에 계신 분도 있고. 그분들에 비하면 나는 참 별일이 없구나. 남편은 투표권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비판적 지지’란 걸 했다고, 그런데도 안 되었으니 이젠 미련이 없다고 씁쓸히 말했다. 이번엔 진짜 할만큼 했지. 투표율도 높았고, 진보정당도 사라졌고.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를 긁어모았는데도 안 되는구나. 1987년 체제, 민주 대 반민주, 비판적 지지. 이런 구도로는 못 이기는구나.
이제 정말로 끝이로구나. 디 엔드! 어쩌면 이 실패가 고종의 죽음 같은 건 아닐까. 구체제의 상징인 고종을 보내고 나서야, 그 폐허 위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서고, 한편으론 좌파운동이 본격화되었듯이. 1987년 체제를 마감하고, 민주화세력을 보내고, 이제 새롭게 계급정당을 일궈볼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1987년부터 야권 분열에, 3당 합당에, 민주정부 10년에,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 남은 게 뭘까. 다가오는 건 뭘까. 체제의 종말? 파시즘? 우리가 알던 근대와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뭔가 놓쳤던 건 아닐까. 긴 호흡으로 공부를 해야겠다. 일단 절망의 시대를 견디었던 루쉰과 베냐민을 읽으며 동시대적 위안과 용기를 얻어야겠다. 그리고 우리 딸, 미래의 시민을 잘 키워야겠다. 그것만이 희망일 테니. 황진미 영화평론가
비뚤어질 테다‘그날’ 이후 한동안 눈 감고 귀 씻었다. 무엇도 궁금하지 않았다. 책도 읽히지 않아 집에 오면 공부방에 가방만 던져놓고 책상에 앉지도 않았다. 그러다 250년 전,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지은 시를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를 집게 됐다. 다산은 우부승지,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의 고관이었으나 1801년부터 18년7개월에 걸쳐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지극한 공부가 가져다줄 툭 터질 도리의 힘을 믿었던 그는 두 번의 유배로 자신을 자책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 구덩이에 빠졌다. 하지만 평지려니 하고 지낸다”는 다산의 의지를 헤아려보려고 마음 가는 대로 밑줄을 긋다가 깜짝 놀랐다. 읽고 또 읽어봐도 250년 전의 시점이 아니었다. “…막막하게 본다. 본다고 보일 리 없는데, 그저 올라가 본다…”(등산), “…어쩔 수 없다면 견뎌야겠지. 세상살이 힘든 줄을 이제야 알았더냐. 그러려니 하겠다.
그래본들 하겠다”(집 하인이 돌아간 뒤),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긴 밤도 또 이렇게 지나가리라”(밤중에 일어나). 허탈함을 털어내려 지인들은 앞으로 공부에 매진하겠단다. 나도 그래볼까 싶지만 선뜻 내키지 않고 지금은 그냥 비뚤어지고만 싶다. “세상은 어차피 제멋대로 간다. 괜히 마음만 다칠라. 경전 공부한다고 너무 애쓰지 마라. 남 이기려 들지 말고, 남 해코지도 하지말고 구슬땀 흘리며 그렇게 살아라.”(시름을 달래려) 친구들아, 재뿌려 미안하다. 나는 당분간 경전 공부하지 않을래. 그냥 구슬땀 흘릴래. 다산 선생님, 의미를 멋대로 해석해 죄송합니다. 근데 저 지금 삐뚤어지는 중이잖아요. 용서해주세요. 김민 제4회 손바닥문학상 당선작 수상자
943호 특집
제 멘붕은 조금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2012년 가을 제 영화 (이하 )가 두 번째로 제한상영가, 즉 상영금지 조처를 받으면서부터였습니다.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제한상영가 조처는 처음에는 멘붕을, 모욕감을, 다음에는 분노를 주더군요. 그래서 소송 걸었습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제한상영가 취소하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사실 이 상영금지 받은 것은 특정 정치인을 풍자한다는 이유였는데요, 그 정치인이 이번 대통령 당선인이십니다. 혹자들은 빨리 감옥 갈 준비 하라며 감옥에서 읽을 도서 리스트를 만들어 주시기까지 합니다. 도스토옙스키, 하이데거, 니체, 등등. 웃으면서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실은 문제의 그 장면을 삭제하고 개봉할까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아차! 이 영화를 처음 만들었을 때를 기억해봅니다. 촛불 정국, 용산 참사, 4대강 논란 등 국민의 분노를 일으킨 문제를 기록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싸워보자며 영화를 만들었더랬습니다. 지금 싸움을 포기하게 되면 영화의 존재 의미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까. 싸움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으니 표현의 자유 이슈가 덧붙여진 지금도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감옥 공포를 잠재우며 생겨납니다.
풍자는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들었습니다. 풍자는 소통의 시작인 동시에, 피드백의 과정이며, 통합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습니다.
풍자를 탄압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것입니다. 은 1천만 관객이 좋아할 영화는 아니지만, 법적으로 금지되어서는 안되며, 금지될 만큼 나쁜 영화라면 그것은 관객이 판단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믿음이 저를 지치게 하고, 멘붕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또다시 이 믿음이 저를 일으킵니다. 이 자식아, 네가 영화를 왜 만드는 거냐? 초심을 잊었냐? 처음처럼 한잔 주랴? 아 이 망할 놈의 믿음, 지겹지만 고맙습니다.
올해엔 지치지 않으려 합니다. 멘붕이 와도 ‘웃으며 반사!’ 해버릴까 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한두번 해본 것도 아닌데 뭐 별거 있나요? 처음 시작했던 대로 하렵니다. 길게 보렵니다. 이기든 지든 주저앉진 않으렵니다. 벌써부터 피로감이 밀려오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요로코롬 생겨먹었는데요. 여러분도 도스토옙스키 읽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선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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