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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해체, 부족한 준비



원전 해체 비용 2003년 이후 고정돼 비현실적, 월성 1호기 ‘가압중수로’ 해체는 외국 경험도 없어
등록 2012-11-30 11:55 수정 2020-05-03 04:27

펑! 높이 152m의 콘크리트 더미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무너졌다. 2006년 5월21일 아침, 미국 오리건주 레이니어 ‘트로얀(Trojan) 핵발전소’ 냉각탑이 폭파 공법으로 해체됐다. 비용·안전 문제 등으로 1993년 멈춘 이 원전은 2024년께 해체 작업이 마무리된다. 2007년 당시 추정한 주요 시설 철거 비용만 2억3천만달러였다.
 
해체 비용 기준을 둘러싼 논란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을 투입하는 원전은, 폐업 절차를 밟는 데도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거대한 원전시설 해체 작업과 핵연료 재처리 등의 복잡하고 난해한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구분하는 원전 해체 작업은 30~60년 동안 서서히 시설을 제거하는 ‘지연 해체’와 원전이 멈춘 뒤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해체하는 ‘즉시 해체’, 그리고 콘크리트 등 구조물로 시설 전체를 봉인해버리는 ‘영구 밀봉’이 있다.
우리나라는 원전 해체 비용을 원전 원가에 반영한 ‘사후처리기금’으로 적립한다. 지난해 기준 원전 원가는 1kWh당 37.58원으로, 이 가운데 18.8%인 7.07원이 사후처리기금이다. 사후처리기금은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 관리하는 ‘방사성폐기물관리비용’과 ‘사용후핵연료관리부담금’,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관리하는 ‘원전해체충당금’ 등이 있다. 이들은 지식경제부가 제시하는 원전 해체 비용을 부채로 적립해둔 뒤 필요한 때 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원전 해체 비용의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지식경제부는 2003년부터 고시를 통해 원전 해체 비용을 1기당 3251억원으로 정한 바 있다. 이는 2003년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에너지기구(OECD Nuclear Energy Agency)의 발표 자료에서 제시한 국가별 원전 해체 비용의 평균치를 근거로 한다. 그러나 환경단체 등에서는 지난 9년 동안의 물가상승률과 원전 근처 마을의 피해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이 반영돼야 하는 국내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비용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를 바탕으로 고리 1호기 폐쇄 비용이 최대 9860억원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한수원은 “2010년 프랑스 감사원이 평가한 국가별 원전 해체 비용 평균치는 2010년 기준 1호기당 6500억원 규모”라며 “우리나라도 그동안의 물가상승률과 폐기물 처분 단가 등을 고려해 1호기당 5천억원(2010년 1천MW급 1호기 기준) 이상으로 증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전 해체 로드맵’ 없어
원전 해체 절차와 기술 연구 등 ‘원전 해체 로드맵’ 자체가 없다는 점도 심각하다. 현재 원자력안전법 등 국내법에는 “한수원이 계획서를 제출한다”는 내용 외에 원전 해체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규정이 없다. 최근 이 문제가 불거지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법령 검토에 들어갔다. 미국은 영구 정지 뒤 2년 이내에, 일본은 해체 착수 30일 전에 해체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또 올해 들어서야 원자력진흥위원회가 10년에 걸쳐 원전 해체 연구·개발을 진행하기로 했다. 11월20일 설계수명을 끝낸 월성 1호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압중수로(CANDU)를 쓴다. 그러나 전세계 129건의 원전 해체 과정 가운데 가압중수로 원전이 해체된 적은 아직 없다. 원전 해체를 대비하는 우리 정부의 현주소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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