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작 SBS 드라마 는 방영 당시 고전했다. 최고 시청률이 10%를 간신히 넘었다. 와인과 소믈리에라는 소재는 신선했지만, 여심을 사로잡은 KBS 와 탄탄한 시대극인 MBC 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정작 이 드라마는 종영되고 나서야 은근한 인기를 누려왔다.
“스토리텔링과 연관된 장소성”경북 청도군에 위치한 세트장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져온 덕분이다. 비결은 드라마 소재에 꼭 맞는 장소다. 이 세트장은 청도군의 명소인 ‘와인터널’과 바로 붙어 있다. 일제시대에 만든 철도터널을 개조한 이곳에선 2006년부터 세계 최초의 감와인이 숙성·저장되고 있다. 100% 청도 반시로 만드는 와인이다. 관광객은 와인터널에서 감와인을 맛보고, 주변 농가에서 직접 감을 딴 뒤 와인을 만들 수도 있다. 체험이 끝나면 세트장에 들러 기념사진을 찍는다. 감와인으로 연계된 지역 관광상품에 세트장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구조다. 경북도와 청도군은 세트장 유치를 위해 제작사에 4억5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한 뒤 세트장을 무료로 개방해, 직접적인 수익을 내지는 않지만 주민들의 소득 증대엔 적잖은 도움이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와인터널을 운영하는 청도감와인(주)의 이갑수 전무는 “와인터널과 세트장의 시너지 효과로 매출이 2006년부터 매년 20~30%씩 늘어 지난해에는 30억원을 기록했다”며 “덩달아 우리가 100여 개 감 농가로부터 수매하는 양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세트장은 임종수 세종대 교수 등이 ‘드라마 테마파크, 문화콘텐츠와 지역의 만남’(2010년) 논문에서 제시한 드라마 테마파크의 가장 기본적인 성공 요인을 비교적 잘 충족하고 있다. “테마파크는 드라마의 스토리텔링과 연관 있는 장소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즉, 별도 부대시설이 없는 단순 세트장인데도 드라마의 소재인 와인과 밀접한 지역에 터를 잡아 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물론 지역 밀착형 세트장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게 지자체의 적극적인 사후 관리다. 주민의 재산인 세트장이 일회용 소품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계속 새로운 드라마를 유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발간한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시설 실태와 운영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지속적인 관리로 수익모델 개발에 성공한 사례로 경남 합천군의 합천영상테마파크를 꼽았다. 2003년 영화 세트장으로 문을 연 이곳에선 지금까지 등 67편의 드라마·영화·광고가 촬영됐다. 경남도와 합천군이 수년간 총 210억원을 들여 이곳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1920~80년대 시대극 촬영이 가능하도록 가꿔온 덕분이다.
전담 공무원 배치해 지원공무원 5명이 전담 배치돼 제작사들에 각종 편의를 제공해온 것도 인기 비결이다. 덕분에 이곳은 입장료와 임대료 등으로 지난해에만 4억2천만원의 직접 수입을 올렸고 지역에도 170억원의 생산 파급 효과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까지 이곳에서 KBS 을 촬영한 팬엔터테인먼트 오환민 프로듀서의 말이다. “수시로 서울에서 합천까지 4시간 길을 오가야 했지만, 촬영 내내 만족스러웠다. 시대 배경에 맞는 소품이 가장 다양하다. 공무원들이 거리 촬영 섭외를 직접 해주고, 필요한 장비를 말하면 1~2시간 안에 구해줬다. ‘운영의 묘’를 가장 잘 살린 곳이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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