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임대주택 단지엔 홀로 사시는 분들이 많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 다들 사정이 어려우니, 서로의 어려움을 알아주기 힘들다. 아파트가 작다고 홀몸 노인, 장애인만 입주시킬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입주시켜 활력이 돌게 해야 한다.”
“나이가 들었다 하더라도 옆집 노인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옆집에 가서 말동무를 해주고 일정 금액을 보수로 받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시행해달라.”
“지체장애나 정신장애가 있는 주민들에게 갑자기 변고가 생겼을 때 병원에 보내려면 보호자를 찾아야 하거나 절차가 너무 복잡해 일이 제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법적 후견자가 있으면 필요할 때 일 처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 시장 “현행 기초생활수급제도 문제 많아”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이 9월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봇물처럼 쏟아낸 고충이다. 박 시장은 임대주택 관련 시 담당자, SH공사 사장,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9월11일부터 사흘간 장기전세주택·재개발임대주택·영구임대주택 단지를 돌며 입주민들을 만나 제도 개선을 위한 의견을 들었다. 서울시는 9월14일 ‘임대주택 정책투어 후기간담회’를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한 임대주택 제도 개선을 논의했다.
박 시장은 “서울 ㅅ동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연달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그곳에 가보려 했지만, 시장이 가게 되면 (자살하는 곳으로) 낙인찍는 (역)효과가 있다고 해 다른 곳을 찾았다”며 “현장에 가면 문제의 본질이 있고 답이 있더라. 주민들로부터 논리정연하고 생활의 지혜가 녹아 있는 제안을 듣고 감동스러웠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영구임대주택 주민들의 빈곤 문제와 사회적 고립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2007년 강서구 관내 임대주택 주민들만 보더라도 중산층에서 몰락한 계층과 원래 가난했던 이들의 비율이 반반이었다면, 지금은 어릴 때부터 가난했던 분들이 대부분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탈락해 차상위계층이 된 이들이 병원을 찾아 스스로 정신장애인이 돼서라도 수급권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희망을 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삶을 장애로 낙인찍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김현수 강서정신보건센터장의 말이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현행 기초생활수급제도의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소득이 발견돼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탈락하는데, 사람들이 돈이 많지 않은 경우 이들의 생활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빠른 시간 내에 실태를 파악해 중앙정부에 의견을 전달하고 새로운 법제가 만들어지게 해야 할 것 같다. 소득이 생기면 전액 저축하도록 의무화한다든가 정말 자립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수급 지위를 박탈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급히 자살 예방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현수 센터장은 강서구 관내 임대주택 단지에서도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지하철 역사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것처럼 복도형 아파트에 투신 보호막이라도 설치한다며 상징적으로나마 자살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홀로 사는 사람들만이라도 (집에 직접 찾아가는) 방문 관리를 해야 한다.” 서울복지재단 이혜경 이사장은 입주민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 되는 알코올중독자나 정신질환을 앓는 수급자에 대해선 집중적이고 다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꺼번에 모든 사람을 관리할 수 없다면, 실험적으로라도 성공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방치된 입주자 정보 파악 지시
서울시는 이 밖에도 △방치된 입주자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정보 파악 △입주민들의 임대주택 간 이동 △주민 자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독거 세대 공동작업장 및 생활공간 도입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시는 전문가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올 연말까지 임대주택 관련 종합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명태균이 받았다 한 ‘김건희 돈’ 어떤 돈...검찰 수사 불가피
엄마, 왜 병원 밖에서 울어…취직 8개월 만에 죽음으로 끝난 한국살이
‘해품달’ 송재림 숨진 채 발견…향년 39
[단독] 명태균 “김 여사 돈 받아”...강혜경 “5백만원”
‘윤 퇴진 집회’ 무리한 구속영장, 법원이 막았다
동덕여대 학생들 ‘공학 반대’…“검열 않고 여성 문제 논의하는 곳”
아이돌이 올린 ‘빼빼로 콘돔’…제조사는 왜 “죗값 받겠다” 했을까
[단독] 돌연 사직서 낸 이충상 “너무 많이 맞아…전의 상실했다”
삼성전자, HBM 반도체 천안서 생산
집회·탄원 독려…이재명 1심 선고 앞 친명계 전방위 사법부 압박 ‘눈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