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추출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간단한 핸드드립을 대부분 선호한다. 하지만 핸드드립은 커피콩이 가진 본래의 맛을 그대로 드러내 세밀한 기법이 필요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엌으로 가서 보온병을 찾는다. 커피를 머그컵에 쏟으면 모락모락 향과 맛이 피어난다. 3년 전부터 가정용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들고 있다. 포트를 가열하면 수증기가 커피 가루를 통과해 에스프레소가 추출된다. 전날 밤 4∼5잔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뜨거운 물을 섞어 보온병에 담아둔다. 그러면 바쁜 아침에도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남은 커피는 회사로 가져간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다. 2010년 1월 유럽으로 장기 출장을 갔을 때 스페인 기자였던 룸메이트가 매일 아침 모카포트로 커피를 추출했다. 커피향을 맡으며 잠을 깨는 게 참 달콤했다. 유럽식 커피를 얻어 마시며 어깨너머로 커피 추출법을 배웠다. 3개월 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모카포트를 사왔다.
된장과 커피의 공통점커피의 맛과 품질에 관심이 높아지자 로스터리 카페에 이어 커피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나만의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커진 덕이란다. 2009년부터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커피 강좌를 해온 위철원(36) ‘루트커피’ 대표의 설명이다. “커피 인구가 늘자 커피전문점의 획일적인 맛에 싫증 난 소비자가 생겼다. 이들은 신선하고 개성 있는 커피 맛을 찾는다. 연령대도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홈카페 시장은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디자인 프리랜서 김영연(30)씨는 2010년 겨울부터 핸드드립과 모카포트를 애용한다. 날마다 마시는 커피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커피 강좌를 수강한 게 계기였다. “핸드드립, 모카포트, 커피머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를 추출하니까 즐거웠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내가 내린 커피’라고 하더니 사실이더라. 추출 방식에 따라 신맛, 단맛, 쓴맛의 어우러짐이 달라지는 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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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의 특징은 김씨처럼 커피 맛에 민감하다는 거다. 커피 맛은 흔히 3가지로 따진다. 첫째, 풍부하느냐다. 전문용어로 ‘바디’라고 하는데 연하지만 입에 꽉 차는 느낌을 갖는 커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허전한 느낌이 들면 바디가 약한 것이고, 풍성한 느낌이 들면 강한 것이다. 둘째, 커피의 3대 맛(신맛·단맛·쓴맛)이 몇%로 나타나는지에 따라 다르다. 자신의 느낌에 따라 정하면 되고 단맛은 향기로도 느낄 수 있다. 셋째, 향기(아로마), 맛과 향기의 절충(플레이버), 맛(테이스트)으로도 구별된다. 플레이버는 맛과 향이 복합돼 느껴지는데 원두커피일수록 강조된다.
전문가들은 많이 마시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과 싫어하는 커피 맛을 구별하게 된다고 했다. 위철원 대표의 말이다. “외국인은 된장찌개가 맛있는지, 맛없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먹어 본 경험이 부족해서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입문서 의 저자인 바리스타 하보숙(42)씨도 이에 동의한다. 다만 ‘공부하듯’이라는 표현을 추가했다. “콜롬비아 커피 맛을 알고 싶다면 이번주에는 로스터리 카페에서 그 커피만 마셔본다. 카페마다 선호하는 로스팅(생두를 볶아 원두로 만드는 작업) 방법이 달라서 공통점과 차별점을 파악할 수 있다. 또 향은 뜨거울 때, 맛은 식은 뒤에 모습을 드러내니까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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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인철(50)씨가 커피 맛에 눈을 뜬 건 집에서 로스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같은 생두라도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걸 체험했다. 로스팅은 8단계로 분류되는데, 일반적으로 약하게 볶으면 신맛이 강하고 세게 볶으면 쓴맛이 강하게 된다. “생두가 500g에 만원이면 원두는 100g에 만원이다.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직접 볶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다양한 맛에 반해버렸다. 그냥 프라이팬으로 볶는데 온도에 따라, 볶는 시간에 따라 같은 생두도 맛이 천차만별이다. 매주 20분간 생두를 잘 볶아야 한 주가 행복하다.”
로스팅한 원두를 가는 방법도 커피추출법에 따라 달라진다. 굵은 설탕 입자 정도(1mm)는 프렌치프레스 등을 이용해 뜨거운 물에 커피 가루를 부어 담그는 데 적합하다. 중간 굵기는 핸드드립에, 고운 굵기(0.5mm)는 모카포트와 어울린다. 원두를 갈 때는 ‘천천히’가 중요하다. 원두를 빨리 갈면 열이 발생해 잡미가 나기 쉽고 커피향이 날아가버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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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추출법이 다양하지만 가장 간단한 페이퍼 드립을 대부분 선택한다. 하지만 커피콩이 가진 본래의 좋은 맛과 나쁜 맛을 그대로 드러내 세밀한 기법이 필요하다. “물을 되도록 커피 가루와 가까운 위치에서 조용히 부어준다. 이때 거품이 일어나고 부풀어오르는데 이것이 ‘뜸’이다. 20∼30초 부풀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나선형을 그리듯이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원을 그리며 부어나간다. 뒤로 갈수록 점점 물의 높이를 낮게 하고 물 붓는 속도를 빠르게 한다. 추출하려던 양이 만들어지면 커피 가루 속에 물이 남아 있어도 아까워하지 말고 미련 없이 분리해야 한다. 추출량 이상으로 물을 내리면 맛이 옅어지고 잡맛이 생긴다.”(바리스타 하보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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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커피콩을 볶고 원두를 갈고 커피를 추출하던 커피 애호가들. 그들이 도전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직접 커피콩을 키우는 일이 아닐까? 노진이(45)씨는 2008년 제주시 삼양2동에 ‘제주커피’를 열었다. 6600m²의 땅을 빌려 원두용으로 수확하는 콜롬비아·에티오피아·필리핀산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관상용이 아니라 수확하려고 커피를 재배하는 건 국내에서 처음이다.
노씨가 ‘커피농사꾼’에 도전한 건 단순한 이유였다. “좋은 커피콩을 생산해 신선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어요. 세계 7위의 커피소비국이지만 커피콩을 생산하지 않아 2·3차 유통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래서 1년 이상 오래된 원두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게 속상했죠.” 2002년 커피와 처음 인연을 맺은 그는 바리스타, 로스터, 커피컨설턴트를 거친 뒤였다.
여름에는 홑겹, 겨울에는 세 겹 비닐하우스제주는 화산토에 해양풍, 온도 등 커피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추운 겨울이다. 2010년 가을 제주 커피는 첫 수확을 했지만 그해 겨울 큰 냉해를 입어 지난해에는 커피를 얻지 못했다. 지난 5년간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여름에는 홑겹, 겨울에는 세 겹 비닐하우스에서 커피나무가 몸집을 불리고 있다. 1차 산업인 커피농업을 토대로 원두를 제조하고 커피를 교육하는 2차, 3차 산업까지 활동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3월엔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았다. 노씨는 “블루마우틴이 있으니 ‘한라마운틴’ 어떤가, 아니면 ‘오름커피’도 좋고. 아직 재배가 힘들지만 제주 땅에서 자란 커피나무와 마음으로 함께 호흡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커피콩의 기원은 에티오피아로 알려졌는데, 그 작은 씨앗이 과테말라·콜롬비아·베트남 등으로 퍼져 그곳 기후와 토양에 맞춰 자랐고 그 지역 이름을 얻게 됐다. 언젠자 제주도 ….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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