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프랑스 파리는 에펠탑이 아니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19세기에 지은 집들은 아름답고, 동네 재래시장에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뒷골목을 헤매고 작은 카페에 들어가 파리지앵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도 ‘진짜 파리’를 만나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역시 에펠탑이 빠지면 섭섭하다. 고철덩어리일 뿐이라고? 날렵하고 뾰족한 곡선의 에펠탑과 낮고 무거운 파리 건축물들이 이루는 인상적인 대비를 음미해보셨나. 아침엔 이 ‘고철덩어리’ 다리 밑으로 태양이 떠오르는데, 일출의 신비에 하늘과 에펠탑이 동시에 반응하는 모습은 위대한 예술작품 이상의 감동을 준다. 매일 밤 수만 개 전구가 축제처럼 반짝거릴 땐 ‘고철덩어리’가 마치 ‘당신도 오늘 이렇게 빛났어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이 파리의 절정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효리가 십수 년째 톱스타인 이유가 있듯, 이들이 세기를 넘어 ‘스타 여행지’로 군림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명소는 긴 시간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보물섬이다. 눈과 귀와 감수성을 연다면 분명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걸 발견하는 건 여행자의 몫이다. 부디 ‘명소 찍기 여행’에 대한 반발로 명소까지 거부하지는 말기를.
김현정 프리랜서 작가
대체 대영박물관에서 뭘 할 수 있을까영국 런던에 다섯 번 갔지만 한 번도 대영박물관과 웨스트민스터사원을 간 적이 없다. 그곳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 있을까? 가이드북에 있는 건물과 전시물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 대신 나는 그 지역 지도를 산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종류와 다른 멋진 여행지도, 탐험가의 호기심을 부르는 대축적 지도들. 지도서점이 없으면 여행서점에 들르고, 그도 없다면 그 도시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서점을 찾는다. 동물원도 꼭 들르는 목록 중 하나다. 전세계 동물원 비교가 내 여행의 연구과제 중 하나다.
런던에서 3곳의 멋진 여행서점을 만났다. 말리본의 돈트 북스는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에드워드 왕조풍의 서가라는데, 1층에 중앙홀이 있고 2층에 테라스 형식의 서가에 책이 꽂혀 있다. 여행 마니아라면 코벤트가든의 스탠퍼드 서점에 이르러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3개 층이 모두 지도와 가이드북, 여행문학으로 채워져 있다. 런던 좌파의 역사를 보려면 세인트팬크라스역 주변의 하우스만스에 가보라. 자칭 ‘런던의 프리미엄급 래디컬 서점’인 이곳은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원두커피를 팔고, 각종 정치단체의 팸플릿으로 벽면을 채웠다. 미국 시애틀의 ‘레프트뱅크’와 자웅을 겨루는 세계적인 사회과학 서점이다.
대영박물관과 웨스터민스터는 언제 갈 거냐고? 나에게 런던 출장이 열흘 정도 주어져 사나흘 이상 할 일이 없는 날이 도래한다면, 슬리퍼 끌고 마실 가듯 한번 다녀오겠다.
남종영 기자 한겨레 토요판캐리어 VS 배낭
우리 아이의 허리 건강을 위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가 ‘사서 고생’하는 행위다. 텐트·코펠·버너 등 캠핑장비를 배낭에 때려넣고, 그걸 등에 멘 채, 게다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한여름 뙤약볕의 일본 대마도를 2박3일간 일주하자니, 제정신인가. ‘대마도 정벌계획’인지 ‘대마도 여행계획’인지 모를 그 녀석의 ‘무리수’에 단 한마디로 맞섰다. “너 그러다가 일본에서 변사체 된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평소 느끼지 못한 여유와 휴식을 얻으려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배낭이 웬 말인가. 배낭을 멘 여행에 ‘개고생’과 궁핍함이 따른다면, 캐리어와 함께하는 여행에는 사색과 여유가 있다. 당연히 여행용 캐리어라야 한다.
사실 가까운 초등학교 근처만 가도, 대세는 캐리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생용 배낭, 곧 책가방의 시대는 저물고 형형색색의 학생용 캐리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학생용 캐리어 제조업체 ○○사는 이렇게 말한다. “최근 초등학생의 척추측만증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는 무거운 책가방에 있습니다. 우리 아이의 소중한 허리 건강, ○○이 지켜줍니다.”
최성진 기자 한겨레 토요판잘 다려진 7부 바지를 입지, 새하양 셔츠에 단추 두 개는 풀어, 위로 헌팅캡을, 밑으론 로퍼가 제격이지, 왼손으로 은빛 캐리어를 쥐고 오른손 들어 선글라스 저 너머로 내다보는 거야, 그래 떠나는 거니까, 미지의 여인은 내가 다 찾으리라, 레츠고 하는데 대한민국 보도블럭 위 나선지 10분 만에 캐리어 바퀴가 톡 빠져. 바퀴는 나뒹굴고 삐걱춤을 추는 캐리어는, 단추 하나 더 풀고 헌팅캡 돌려쓴 뒤 결국 등짝에 짊어매지.
2000년 첫 해외여행길에 캐리어 바퀴 한쪽이 작살났다. 마법처럼. 부실한 삼손 같으니라구. ‘위따위’로 차려입진 않았지만 결국 난 ‘짐짝’을 들고 거품물며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캐리어 여행은 거처가 동선을 낳지만, 배낭 여행은 동선이 거처를 품는다. 캐리어는 거처에서 채워지나, 배낭은 동선에서 게워진다. 되레 나이드니 배낭멜 일이 많다. 수도권 산에선 15ℓ를, 지리산 종주할 때 60ℓ를 멘다. 내 성격처럼 용량이 우유부단해 웬만한 여행에선 25ℓ가 다 맞다. 두 달 전 땅끝 미황사에 나흘 머물렀는데, 25ℓ에 근심이란 근심까지 죄다 담기 충분했다. 그리고선 온전히 나의 보폭으로 그것들의 감량을 달성하고 체감하는 맛! 올 휴가 때도 25ℓ로 바다를 건너려 한다. 다만 꾸역꾸역 캐리어 끌고 동행하겠다는 이 있으니 걱정이다. 배낭 속에 캐리어를 담겠다는 계산인 겐지.
임인택 기자 한겨레 사회부연인여행 VS 혼자여행혼자 떠난다면 사랑하지 않는 중이다
“우리 여행 갈래?”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다. 대학 신입생 시절 한 여름밤 대학 캠퍼스를 걷다 우연히 마주친 그가 툭 던진 그 말. “좋아.” 망설여지지가 않았다. 처음으로 손 꼭 잡고 강원도 춘천으로 떠났다. 연인이 되고서도, 영화보다는 여행을 즐겼다.
그때부터다. 여행을 떠나는 내 옆자리엔 늘 그가 있다. 물론 ‘그’는 몇 번 바뀌지만. 여행은 행복해지려고 떠난다. 행복은 연인과 나누고 싶다. 여행은 위안을 얻으려고도 간다. 연인은 큰 위안을 준다. 혼자 떠나고 싶다면 사랑하지 않는 중이다!
뇌로만 따져봐도 결론은 같다. 나는 귀차니스트다. 계획을 못 짠다. 연인은 든든한 여행 플래너이자 내비게이션이다. 가끔은 노래도 불러주고, 개그도 해주고, 시도 읊어주는. 식도락 여행을 위해서도 연인은 필요하다. 혼자선 한정식도, 한우도, 회도, 조개구이도, 오리탕도 엄두가 안 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반땡’으로 가능하다는 사실.
연인이 없는 사람은 여행도 못 가냐고? 반문하실 분, 있겠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 없어본 적 없어서. 여행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끊임없이 사랑하며 살자는!
ㅅ기자
사랑은 엽서로 하세요결혼하고 나서 나의 여행은 시작됐다. 20대 후반의 연애는 붕 뜬 비행기처럼 신나는 경험이었건만 연인 박군은 실제로도 나를 ‘비행기 태워줬다’. 최초의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병’에 걸린 나는, 사실상 반백수인 프리랜서라는 직업과 박군의 응원을 좌우 날개 삼아 1년에 한두 번씩 2주에서 40일에 이르는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혼자.
여행까지 와서 연애질이라니, 오호통재라! 혼자서는 가고 싶은 데 가고 마음에 드는 데서 얼마든지 머물 수 있다. 동행을 의식할 필요도, 싸우다가 “그 인간의 밑바닥을 봤어요” 하고 울 필요도 없다. 그런 낭비는 이제 접으시라. 시간과 체력과 비용이 아깝다.
혼자면 내 힘으로 뭐든 해야 하고,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며, 아이처럼 타인에게 도움받는 법도 배우게 된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간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체험한다.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도 많이 생기며 이는 뿌듯한 추억으로 저장된다. 불쌍한 커플족이여, 이 모든 걸 포기할 텐가!
그럼 사랑은? 엽서로 한다. 나는 매일 박군에게 그날의 감흥을 담아 엽서를 쓴다. 떨어져 있는 내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록새록 되새기게 된다. 결혼 6년차가 말하노니 지금보다 더 달콤한 사랑을 꿈꾼다면 혼자 여행하시라. 어쩌면 당신의 짝꿍도 좋아할 것이다.
김현정 프리랜서 작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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