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빰빰빠 빰빰빠 빰빰빠빰’ ‘둥둥둥 둥둥둥 둥둥두둥’.
지난 6월14일 저녁 7시 울산문수경기장. K리그 울산 현대와 부산 아이파크의 15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중계 화면’ 속 울산 선수들은 파란색 유니폼, 부산은 빨간색을 입었다. 중계 카메라가 1대뿐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자리에서 좌우로만 왔다갔다 하는 심심한 카메라 워킹이다. 화면을 잡는 카메라는 가끔씩 포커스가 나갔지만 선수들과 공을 용케 잘 따라다녔다. 화질은 떨어진다. 등번호까지는 확인 가능한데, 태클에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나 헐떡이며 그라운드에 침을 뱉는 생생한 장면은 잡히지 않는다. 공을 따라 줌인, 줌아웃이 빠르게 들고 난다. 화면 상단 왼쪽 귀퉁이에 ‘울산 0:0 부산’이 단조롭게 떠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경기 시간 알림은 없다. ‘콜록’ 소리가 크게 들린다. 누군가 마이크 옆에서 기침을 했다. 캐스터와 해설은 없다. 대신 경기 몰입도와 청각적 현장감은 커졌다. 주심 휘슬, 현장 응원, 장내 아나운서 멘트가 생생하다. 울산에 프리킥 찬스가 왔다. 화면이 대각선 위로 솟구쳤다. 중계 카메라가 전반 21분을 알리는 경기장 전광판을 비춘다. 김승용이 찬 공이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슬그머니 ‘울산 1:0 부산’으로 바뀐다.
중계 안 해주면 못 볼 줄 알았지?
울산에서 나고 자란 서준혁(19)씨는 프로축구팀 울산 현대의 팬이다. 서씨는 이날 경기를 지극한 팬심으로 ‘자체 중계’했다. 디지털캠코더 1대로 찍은 인터넷 생중계가 없었다면 경기장에 오지 못한 울산·부산 팬들은 경기 결과(울산 2:1 부산)를 건조한 신문기사나 인터넷 뉴스로만 접해야 했을 것이다.
서씨의 자체 중계는 이날이 두 번째였다. 지난 4월25일 울산에는 비가 왔다. 울산 현대와 FC 서울의 경기가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렸다. 축구경기는 야구와 달리 비가 와도 취소되지 않는다. 경기 시작 2시간 전, 지상파·케이블TV·지역방송 어디에서도 중계를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갑자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영화학과에서 촬영을 전공하는 서씨는 노트북컴퓨터, 50만 화소 디지털캠코더, 삼각대, TV 수신카드, 무선인터넷 기기(에그)를 들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전반 20분께 경기장에 도착한 서씨는 장비들을 연결했다. 실시간 인터넷방송 서비스인 아프리카TV에 ‘방송국’을 열었고, K리그 자체 방송을 시작했다. 시청자 300명이 꽉 차자 다른 이들이 서씨의 방송을 받아 방송국을 새로 열었다. 인터넷을 통해 1천 명 정도의 K리그 팬들이 서씨의 1인 중계방송을 뜨겁게 시청했다. 서씨는 “문자 중계로 득점을 상상하기보다 열악한 중계 화면이라도 직접 보는 것이 훨씬 만족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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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하는 기자는 정말 몰랐다. ‘축빠’들의 고통을. 원래 기업이 붙고, 광고가 붙는 프로 경기는 어디선가 다 생중계해주는 거 아닌가. 아니었다. 프로야구는 다 해주는데. 프로축구는 달랐다. 해주면 고마운 일이라 했다. 그럴 리가. ‘아시아 최고 리그’라고 들었는데. 기자가 현실을 그렇게 모를 수 있느냐고 했다. 몰랐다. 솔직히 K리그에 별 관심 없었다. 물정 모르던 대학 신입생이 우연히 이념서적 읽고 사회 불평등에 눈을 떴다는 게 이런 건가.
K리그 팬들은 한이 많다. 승부차기 실축만큼 깊고, 낭심으로 막아낸 슈팅만큼 아픈 한이 종양처럼 가슴 한가운데 응어리졌다. 비가 와서 프로야구 중계가 취소되면, 케이블TV 스포츠채널들은 야구 중계에 밀렸던 K리그 중계 대신 야구경기 재방송을 한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주요 경기도 제대로 중계되지 않는데, 채널을 돌리다 보면 아직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경기가 중계된다. 그러다 보니 경기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직접 영상을 찍어 실시간 중계를 하는 이도 있다. 화면 속 선수들이 깨알 같다. 팬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경기장 곳곳에서 1번 카메라, 2번 카메라, 3번 카메라를 맡아 중계를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온다. 그저 보고, 즐기고, 놀아야 할 팬들이 이러고 있다. 서씨는 “K리그에서 해트트릭이 나왔는데도 그날 지상파 스포츠 뉴스에서는 야구선수가 햄버거 몇 개를 먹었다는 뉴스가 먼저 나오더라. 시시콜콜한 야구선수의 일상이 축구선수의 기록보다 앞서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야구 1.5% vs 축구 0.4%, ‘따따블’ 스코어
대한민국은 ‘야구 공화국’이 됐다. 케이블TV 프로그램 편성에서만큼은 확실히 ‘공화국의 룰’이 지배한다. 2012년 프로야구 중계권료는 27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프로야구는 하루 쉬는 월요일을 빼고 매일 경기가 있다. 하루에 동시에 진행되는 프로야구 4경기는 KBSN, MBC SPORTS+, SBS ESPN, XTM을 통해 전 경기 생중계된다. 주말에는 지상파가 생중계를 하기도 한다. FC 서울은 K리그 16개팀 가운데 최고 인기팀이지만, FC 서울 팬들도 없는 집 제삿날 돌아오듯 생중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FC 서울 홈경기를 중계해 팬들의 호평을 받았던 교통방송 케이블 채널 tbs는 올해 중계권 계약을 하지 못했다. 지난 5월28일 FC 서울 경기 현장에서 뿌려진 ‘매치데이매거진’에는 이런 카툰이 실렸다. “야구는 매일 중계를 해주는데 왜 축구는 중계를 안 해주는 겁니까?” “야구는 누구 여자친구가 예쁘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스토리 없는 스토리 다 보여주는데! 액션영화도 영상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스토리가 재미없으면 다 쓰레기 되는 거야! 지금 축구가 딱 그래! 경기력이 안 좋아서 인기 없는 게 아니라고!”
K리그 중계권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상파 3사에 중계권을 팔았다. 지상파를 제외한 케이블TV·지역민방·IPTV 등 나머지 매체들은 대행사인 에이클라를 통해 중계권을 확보했다. 올 한 해 K리그 중계권료는 모두 합쳐 7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왜, K리그 팬들은 생중계에 목말라 하는 걸까. K리그 팬들과 생중계 사이에는 유로 2012에서 우승한 스페인도 뚫기 힘든 ‘벽’이 있다.
1.5% 대 0.4%. 프로야구 경기와 프로축구 경기 평균 시청률이다. 그게 그거인 것 같지만, 케이블 채널에서 평균적으로 1%를 넘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한 케이블 채널 스포츠편성 관계자는 “우리도 K리그 중계권을 사놓고 방송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시청률이 걸린다”고 했다. 기아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등 인기팀이 붙는 경기는 시청률이 3%까지 나오기도 한다. K리그는 가장 격렬하고 재미있다는 ‘한국판 엘클라시코’ FC 서울-수원 삼성 더비도 시청률 1%를 찍기가 만만치 않다. 나머지 팀들은 잘 나오면 0.7%, 안 나올 때는 0.1~0.2%까지 내려간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TNmS의 도움을 받아보았다. K리그는 3월3일 개막해 7월1일까지 152경기(총 352경기)를 소화했는데, 이 가운데 지상파 3사, 케이블 스포츠채널 3사, 종합편성채널(TV조선)을 통해 생중계된 경기는 50경기에 불과하다. SBS가 3월3일 생중계한 ‘성남 일화 대 전북 현대모터스’ 개막전 시청률이 4.1%로 가장 높았다. 이 경기를 포함해 6개 경기만이 시청률 1%를 넘겼다. 대부분 경기가 0.1~0.4%에 몰렸다. 4월1일에 있었던 ‘슈퍼매치’ FC 서울-수원 삼성 더비(SBS ESPN 중계)도 0.9%에 그쳤다.
시청률은 광고 판매와 직결된다. 3~4월 초까지 18경기를 생중계했던 케이블 스포츠채널 3사는, 4월7일 프로야구 개막 이후로는 6경기만을 생중계했다. 케이블 채널 관계자는 “한 달 단위로 광고가 판매되는데, 매일 경기가 있는 야구와 대개 일주일마다 경기가 돌아오는 축구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야구는 매 이닝마다 광고가 들어간다. 투수를 교체해도 광고가 들어간다. 경기 시작 전과 하프타임에만 광고가 붙는 축구와 비교할 수 없다. 한쪽은 방망이 들고 덤비는데 기껏해야 이단옆차기 하는 셈이다. 또 다른 스포츠편성 PD는 “축구는 45~50분짜리 일반 프로그램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광고 판매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상파 광고업무를 하는 코바코 관계자는 “솔직히 프로야구도 지상파는 어렵다. 하물며 프로축구 경기를 내놓으면 광고가 제대로 붙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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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축구의 공생은 가능한가
야구는 광고가 참 많다. 지난 7월4일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광주 경기는 MBC SPORTS+에서 중계했다. 6회말이 끝났다. 공수가 바뀌는 짧은 시간. 무려 7개의 광고가 쏟아진다. 화면이 야구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운동장 빈 곳을 찾아 또다시 팝업 광고가 뜬다.
축구팬들은 방송사 쪽의 현실론에 분연히 맞선다. “K리그 인기가 없으니 중계가 없다고 하지만, 반대로 중계가 없으니까 인기가 없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의지를 가지고 K리그를 편성·노출시키면 분위기는 달라질 거라는 얘기다. 아픈 지점이지만 유럽 리그에 눈높이를 올려놓은 이들의 시선을 끌기에 K리그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다. 이에 서준혁씨는 “K리그에도 흥행 요소는 충분히 있다. 이걸 포장하고 상품화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하려는 방송사들이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축구팬들의 불만은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중계권을 돈 받고 넘기면서도 생중계 조항 하나 못 챙기느냐는 것이다. 축구연맹 관계자는 “지역민방 등을 통해 많은 경기가 생중계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 한정된 중계이다 보니 어웨이 경기는 상대팀 지역팬들이 시청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불만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경기 시간이 겹칠 때 축구냐 야구냐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방송사들이다. 연맹에서 아무리 협조를 구해도 결정은 그쪽에서 하게 된다”고 했다. 중계권을 특정 방송사에 독점으로 몰아주자는 주장도 있지만, 연맹 쪽은 “독점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일단 ‘접촉면’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프로야구라는 ‘최상위 포식자’가 지배하는 생태계에서 ‘공생’은 가능할까.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등의 중계권을 대행하는 에이클라의 이종성 홍보팀장은 “같은 시기에 축구와 야구 시즌이 진행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상생하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그는 “프로야구와 경쟁하는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K리그 중계 횟수를 늘려가다 보면 상황이 조금씩 변할 것으로 본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에이클라는 최근 축구전문채널인 SPOTV+ 운영에 들어갔다. 이 팀장은 “한국 케이블 시장에서 프로축구 8경기 모두를 하루에 생중계로 소화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당장은 전 경기 생중계가 어려운 대신, 시청자가 연속극처럼 축구를 볼 수 있게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꾸준한 중계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생태계에 평화는 당분간 어렵다는 얘기다. 구단 자체적으로 자구책을 찾는 곳도 있다. 강원도민 구단인 강원 FC는 지난해부터 외부 업체와 계약을 해 홈경기를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자체 중계한다. 살림이 어려운데도 중계 카메라 5대, 현장 스태프만 25명 넘게 쓴다. 하루 중계비만 600만원 정도가 든다. 강원 FC 전략사업팀 임용민 주임은 “카메라 6~7대를 설치하는 일반 방송사 중계와 퀄리티 차이는 거의 없다. 경기당 인터넷 누적 시청자는 2만 명 정도 된다”고 했다. 포항 스틸러스, 성남 일화도 구단 자체 방송을 한다.
1980년대 호남 유권자 심정 같은
축구팬들의 현재 심정이, 1980년대 호남 유권자 같다는 말도 나온다. 야구에 너무 억눌려 중계도 못 보고 산다는 얘기다. 프로축구만이 아니다. 다른 종목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지난 5월 여자배구가 일본에서 8년 만에 올림픽 진출권을 따냈지만, 이를 생중계한 곳은 없었다.
프로야구도 한때 고작 몇십 명, 몇백 명 관중 앞에서 던지고 때려야 했던 참담한 시기를 거쳤다. K리그에는 자체 중계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적인 ‘축빠’들이 가득하다. 이 말이 축구팬들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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