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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동지, 오늘의 경쟁자

경남 농민운동 20여 년 함께해온 강기갑·강병기 통합진보당 대표 후보로 맞서…
1차 진상조사 결과, 새로나기 특위 혁신안에 전혀 다른 평가 내리는 옛 동지의 맞대결
등록 2012-06-26 15:00 수정 2020-05-03 04:26
강병기 통합진보당 당대표 후보. 탁기형 기자

강병기 통합진보당 당대표 후보. 탁기형 기자

강기갑 통합진보당 당대표.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기갑 통합진보당 당대표.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986년에 처음 만났다. 대학을 막 졸업한 26살 청년은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경남 지역 가톨릭농민회에 참여했다. 거기서 평생 동지를 만났다. 7살 많은 농민운동 선배와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 둘 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서 오랫동안 함께 활동했다. 선배는 2004~2006년 전농 부의장을 지냈다. 후배는 2003년 전농 정치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둘 다 민족해방(NL) 계열로 분류된다. 26년 뒤 두 남자는 경쟁자로 섰다. 이것이 정치다. 2012년 6월 강기갑(59)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강병기(52) 전 경남 정무부지사는 통합진보당 당대표 자리를 두고 다투게 됐다. 지금껏 같은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력과 가치의 대변자가 됐다. 이것이 현실정치다.

강기갑 비대위 비판하는 강병기

견해 차가 크다. 먼저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 문제. 강기갑 위원장은 1차 진상조사를 근거로 중앙당기위원회가 당헌·당규에 따라 이석기·김재연 의원 등의 제명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강 위원장은 6월21일 SBS 라디오에서 “(중앙위) 폭력 사태에 대해서 신체를 잘라내는 아픔을 가지면서도 그분들에 대한 징계 절차를 차근차근 조사위 결과대로 진행하고 있다”며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해서 자진 사퇴를 눈물로서 호소하고 몇 차례 만나서 사정했다”고 밝혔다.

강병기 전 부지사는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해 강기갑 위원장과 혁신비대위를 비판했다. 그는 “혁신비대위가 당기위 제소 전까지는 정치적 해결이라는 이름하에서 두 분이 자진 사퇴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며 “진보정당에서 제명과 출당을 시키는 것은 극히 제한적으로 조심스럽게 마지막 수단으로 써야지 시간에 쫓기듯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강 전 부지사의 태도는 곧 발표될 2차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책임질 점이 있는지 가리자는 것이다. 당권파의 태도와 비슷하다. 강병기 전 부지사가 출마 선언 때 썼던 표현과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강 전 부지사는 6월15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자진 사퇴시키겠다고 단호하게 밝힌 바 있다. 요컨대 강병기 전 부지사는 여전히 ‘정치적 해결’을 도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두 후보의 이런 차이는 1차 진상 조사 결과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생긴다. 강기갑 위원장 등 혁신비대위 쪽은 1차진상조사 결과에 일부 미흡한 점이 있지만 경선 부정이 있었음이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당사자가 투표를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당내 경선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된 사실, 당원이 아닌데도 당원으로 등록돼 투표를 했다고 집계된 사실, 하나의 IP에서 20명 이상이 투표한 사실 등이다. 그러나 당권파는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1차 진상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강병기 전 부지사는 1차 진상조사에 결정적 한계가 있다는 쪽에 가깝다.

강병기 전 부지사는 노선과 이념 측면에서도 혁신비대위와 날을 세운다. 혁신비대위 산하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는 6월18일 당운영 및 정책과 관련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운동권 정파의 패권주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정파등록제를 제안했고, 주한미군 철수 강령도 국민의 오해를 풀려면 표현을 다듬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벌해체론을 현실 타당성을 고려해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고 북핵과 북한 인권, 3대 세습에 대해서도 당이 견해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 강 전 부지사는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어 새로나기 특위의 주장을 반박했다. 강 전 부지사는 주한미군 철수 재검토와 재벌해체론 재검토 요구에 대해 “명백한 진보적 가치의 후퇴”라고 비판했다. 북쪽의 3대 세습 등에 대해서도 “현안이 제기될 때마다 발표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언론이 종북주의 논란을 벌이는 시점에 북한 관련 논쟁을 벌이는 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짝 당원’ 2만 명, 통진당 실체

정파등록제는 분당 전 민주노동당 때부터 여러 차례 제안됐다. 정식 의결기구에서 논의하기 전에 운동권 정파에서 미리 정책과 태도를 조율한 뒤 정작 당 의결기구에서는 토론이 아닌 힘으로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운동권 특유의 패권주의를 해결하기 위해 정파가 공개적으로 활동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이 소속된 브라질 노동자당(PT)이 정파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강 전 부지사는 정파등록제에 대해서도 ‘비현실적’이라고 반대했다.

두 후보 모두 박빙의 승부를 예측한다. 강기갑 위원장은 NL로 분류되는 인천연합, 진보신당 통합파인 새진보통합연대, 참여당계 등의 지지를 받고있다. 강병기 전 부지사를 지지하는 핵심 세력은 NL 계열인 울산연합, 부산경남연합이다. 여기에 일부 당권파의 표를 기대하고 있다. 강병기 부지사 쪽은 출마 전에 이정희 전 대표를 만나 당권파와 정책 및 입장을 논의했다는 추측에 대해서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투표권을 가진 당권자는 4·11 총선 때보다 크게 줄었다. 총선 당시 당권자 수는 7만8천 명 안팎이었다. 6월25~28일로 예정된 인터넷 투표와 6월29일 현장투표에 참여할 당권자는 총선 때보다 2만여 명 준 5만8천여 명이다. 총선 비례대표 경쟁후보 경선만 참여하고 이후 당비를 내지 않은 ‘반짝 당원’이 2만여 명임이 드러난 것이다. 진보정당의 낮은 민주주의 지수에 야당 성향의 유권자들은 놀란다. 두 후보 모두 그 놀란 가슴을 치유할 적임자가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강기갑 위원장은 NL로 분류되는 인천연합, 진보신당 통합파인 새진보통합연대, 참여당계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강병기 전 부지사를 지지하는 핵심 세력은 NL 계열인 울산연합, 부산경남연합이다. 여기에 일부 당권파의 표를 기대하고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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