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고속철도) 민영화는 진정 꼼수일까.
국토해양부가 상반기 KTX 민간사업자 선정을 뒤로 미뤘다. 주성호 국토해양부 2차관은 4월19일 KTX 민영화 사업에 대한 ‘민간제안요청서 정부(안)’을 발표할 때, “국민들의 이해와 설득이 필요한 시점에 정책 목표 추진 시기를 못박는 것은 적절치 않아 탄력적으로 추진하겠다”며 “4월 민간사업자 모집 공고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국회 차원의 논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당의 총선 승리를 호재 삼아 추진하려고 했던 KTX 민영화 사업은 여론의 역풍을 맞아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숨고르기가 애초 시나리오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날 오전 1차로 기자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는 ‘운영 준비 기간을 감안해 2012년 상반기 중 제2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임’이란 문구를 넣었다가 브리핑 직전 ‘상반기 선정’ 부분을 삭제한 보도자료를 다시 배포할 만큼 우왕좌왕했다. 국토부는 이 안을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친 뒤 공고할 예정이지만 중요한 것은 여론의 추이다.
실현가능성 없는 요금 인하안
그럼에도 조기 추진이라는 기조는 흔들림 없어 보인다. 이날 발표한 민간제안요청서 정부(안)은 이번 사업을 이명박 정부의 임기내에 추진하겠다던 지난 2월의 사업 추진 방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요금 인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영화 뒤) 요금 인상 우려 때문에 반대 여론이 높았던 것 같다”며 구체화된 요금 인하율을 설명했다. 요금 인하는 85% 수준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요금 인하 효과만 연간으로 환산하면 2천억원, 향후 15년간 3조원이라고 강조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 10% 인하를 기본 전제조건으로 하고 입찰 참여 기업들이 추가 운임 인하를 제시할 경우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며 “이번에 공개된 정부안은 가산점 조건으로 5% 추가 인하안을 명시해 15% 인하하는 효과를 거두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설명이 말바꾸기 연속이었다는 점에서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 20% 인하 효과가 있다고 했다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 10%로 줄여 잡고 다시 여론을 의식해 15%로 늘려 잡은 것 자체가 그때그때 다른 주먹구구식 분석의 결과 아니냐는 것이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3조원이라는 숫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경제가치 20조원처럼 뜬구름 잡는 주장과 다름없다”며 “인천 이용자 예측 수요가 부풀려져 경영난에 허덕이는 공항철도 사례처럼 이번에도 수치가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국토부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수서 KTX의 하루 이용객이 8만여 명에 달할 것이라는 수치를 제시하지만, 이는 현재 KTX의 전체 이용객 14만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수서역을 이용하게 된다는 예측치다. 특히 한국교통연구원의 수요 예측은 인천공항철도(예측 수요 21만 명, 실제 이용객 1만3천 명), 김해 경전철(예측 수요 17만 명, 실제 이용객 3만여 명)을 비롯해 용인 경전철, 부산·대구 지하철처럼 예측치의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점에서 신중을 요한다. ‘KTX 민영화 저지와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대책위’는 “공항철도처럼 인구 변동이나 배후단지, 인접한 교통환경 등에 대한 분석이 충분치 않다”며 “건설회사와의 유착관계까지 심각하게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레일 재정 악화, 대형 참사 위험
이번 발표에서는 민영화가 일부 재벌 기업에 특혜를 주려 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듯 대기업 지분 제한(49%)을 강조했다. 대기업 특혜 시비를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분 제한 명시가 오히려 꼼수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박 위원은 “49%라는 수치로 가리려 하지만 51%에 국민주나 중소기업 등이 참여하며 지분이 분산돼 대기업이 적은 지분만으로도 경영권을 갖기는 어렵지 않다”며 “15조원 들어가는 사업에 4천억원 정도만 있으면 손쉽게 경영권자가 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최근 요금 인상이 민영화의 결과로 해석돼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킨 지하철 9호선의 사례와 명백하게 구분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국토부는 비판 여론이 비등하기 전까지 지하철 9호선을 민영화의 성공 사례라며 내세웠다. 하지만 이날 국토부 관계자는 “9호선은 민간이 기반시설을 투자했기 때문에 요금을 통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구조지만 KTX 사업은 건설을 국가가 하고 신규사업자는 선로 임대료를 지불하며 순수 운영사업만 하는 구조”라며 “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토부가 강조한 바로 그 차이점이 특혜의 근거라는 논리가 맞선다. 9호선은 건설 부문에서 일부 기업이 그나마 투자를 했지만 KTX 민영화는 국민 세금으로 만든 철로 위에 숟가락만 얹어서 수익을 내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날 국토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코레일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KTX 노선을 민간에 떼주고 나면 코레일의 재정 악화가 심화돼 새마을·무궁화 등 적자 노선 축소와 폐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 고속철도 노선에 복수의 운영회사 열차가 다닐 경우 대형 참사가 우려된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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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로 만든 철로, 운영권은 대기업이?
국토부의 적극적인 해명과 사업자 선정 보류에도 민영화를 둘러싼 여론은 여전히 좋지 않다. 여당 의원 상당수를 포함한 정치권과 시민단체, 노조 등이 일제히 반대 의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주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민영 KTX 도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나자’는 권도엽 국토부 장관의 요청을 거부하고, ‘KTX 민영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말라’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4월18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미명 아래 재벌에 국가 기간 교통망인 철도를 넘겨주는 행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KTX 민영화 저지와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대책위는 성명을 통해 “정부가 반대 여론에 부닥치자 사업자 선정 시기만 모호하게 하는 것은 꼼수”라며 “국토부는 민영화 사업 자체를 백지화하고 국민과 원점에서 토론하라”고 요구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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