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4·11 총선의 최대 승부처는 전국 유권자의 절반(2천만여 명)이 거주하는 수도권이다. 비례대표 54석을 제외한 지역구 가운데 절반 가까운 112석(서울 48석, 인천 12석, 경기 52석)이 몰려 있는 탓이다. 수도권은 표심의 가늠자이기도 하다. ‘지역기반 정당’이 존재하는 영호남, 충청이나 새누리당 지지세가 강한 강원과 달리 수도권은 지역주의의 영향을 덜 받는 편이다. 대신 선거 당시 정치 상황이나 주요 쟁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17대 총선 땐 탄핵 역풍, 18대 총선 땐 뉴타운 바람으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70% 이상을 석권한 것이 대표적이다.
“선거 중심축 약간만 변해도 판세 변화”
그런데 이번엔 좀 이상하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는데도 선명한 선거 쟁점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등 전선이 형성될 만한 사안에서 ‘좌클릭’ 제스처를 취하자, 정책이나 노선에서 정당 간 차별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판세도 안갯속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체로 야당과 여당이 6 대 4로 의석을 나눠가질 것이라고 평가한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67석, 새누리당이 45석가량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모두 ‘엄살’을 피우고 있다. 이길 것으로 예상하는 곳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전통적 지지세가 강한 지역을 중심으로 30석 안팎에 불과하다. 여야 모두 초박빙 경합 지역으로 분류한 곳도 30곳이 넘는다.
이렇게 여야가 혼전 양상을 띤다고 평가하는 수도권 총선에서 승부를 가를 변수는 무엇일까? 정치권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우선 20~30대 투표율에 관심을 기울인다. ‘정치 무관심층’으로 꼽혔던 20~30대는 2010년 지방선거 무렵부터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 전체 판세를 좌우하는 ‘핵’으로 떠올랐다. 4·11 총선에서 당을 불문하고 청년 비례대표 후보 등을 배치한 것은 이들의 참여와 지지를 끌어내려는 대표적인 시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월19~20일 전국 유권자 1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유권자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는 20대 이하 유권자는 36.1%, 30대는 47.1%였다(신뢰구간 95%, 표본오차 ±2.5%). 전체 적극적 투표의향층(56.9%)보다는 낮지만, 4년 전 18대 총선 때의 같은 조사 결과보다는 각각 10.0%포인트, 12.7%포인트 뛰어오른 수치다.
청년층 투표율이 높아지면 새누리당보다 민주당 등 야당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워낙 박빙의 싸움이라 선거의 중심축이 약간만 이동해도 전체 판세가 바뀔 수 있다”며 “특히 통합진보당은 이정희 대표가 서울 관악을 불출마를 선언한 뒤 지지율이 상승세에 있다”고 말했다. 한 자릿수 지지율을 면치 못하던 통합진보당은 이 대표가 후보를 사퇴한 뒤 12.1%(3월29일 )까지 지지율이 치솟았다.
통합진보당과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린 민주당은 야권 단일후보를 지지·홍보하는 멘토단을 통해 젊은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다. 소설가 공지영씨, 조국 서울대 교수, 시사만화가 박재동씨, 가수 이은미씨 등 12명이 멘토단에 이름을 올렸다. 진보신당은 영화감독 변영주씨, 만화가 최규석씨, 칼럼니스트 김현진씨 등 14명을 진보신당 19대 총선 홍보대사로 위촉해 20~30대 유권자들의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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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 피로감’이 악재를 덮는 아이러니
또 다른 변수는 정권심판론이 얼마나 파괴력을 발휘할지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휘두르고, 여당은 국정안정론으로 맞선다. 경제 악화와 높은 실업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 4대강 사업 밀어붙이기, 언론악법 등 날치기,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민간인 불법사찰 등 정국을 뒤흔드는 사안은 차고 넘친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야당이 공격할 소재는 많지만, 아직은 정권심판론이 깊이 먹혀드는 분위기는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악재가 악재를 덮을 만큼 정부·여당의 잘못이 많다 보니 유권자가 사안에 무덤덤해지는 ‘악재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는데다, 이 정권의 ‘피해자’ 또는 ‘대안’으로 인식되는 정치 구도상의 문제가 더 크다. 유권자의 반이명박 정서는 강하지만, 박 위원장은 이 정권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심판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권심판론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2010년 지방선거나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에 비하면 정권심판론의 영향력이 많이 약화됐지만, 여전히 유권자들 속에 잠복해 있기도 하다”며 “야당이 선거전을 진행하며 현 정권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 정권심판론은 언제든 강하게 표출될 수 있다. 특히 정치 불신으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중도층, 무당파 성향의 부동층을 어느 쪽이 흡수하느냐는 여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야권 연대가 얼마나 위력을 떨칠지도 수도권 총선의 관전 포인트다. 중앙당 차원에서 전국적인 야권 연대를 통한 후보 단일화를 이룬 건 이번 총선이 처음이지만, ‘감동’은 크지 않은 편이다. 우선 진보신당을 제외한 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두 당만의 연대에 그쳤다. 후보 단일화 합의 과정에선 통합진보당이 결렬을 선언할 정도로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단일화 뒤에도 김희철 의원 등 일부 민주당 후보가 경선 결과에 불복해 상처를 남겼고, 통합진보당에선 당권파의 패권주의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수도권 10명 출마한 진보신당 변수
하지만 범진보개혁 진영에 호감을 가진 유권자의 표를 결집시킬 수 있는, 새누리당과의 일대일 구도를 만들었다는 점 자체는 야당이 기대를 걸어볼 만한 상황이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공동의 선거운동을 통해 기존 조직과 지지층을 얼마나 ‘화학적’으로 결합시키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즉 통합진보당 후보가 출마한 곳에선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 민주당 후보가 출마한 곳에선 통합진보당 지지층이 얼마나 단일후보를 흔쾌히 지지할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타격을 입는 건 진보신당이다. 진보신당은 서울 동작을 김종철 후보, 서울 구로갑 강상구 후보, 경기 의정부갑 목영대 후보 등 수도권에 후보 10명을 냈다. 윤희웅 실장은 “야권 연대에서 진보적 색채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진보신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 이들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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