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은 진압됐다. “공천 탈락자들이 무소속 연대라도 만들어서 총선을 어렵게 할 수 있다”던 안상수 전 대표도, 당적을 버린 상태에서 ‘무소속 연대’를 공식 제안했던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도, “낙하산식 공천이 이뤄지면 중대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권오을 전 국회 사무총장 등 원외 친이 인사들도 모두 꼬리를 내리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탈당 기자회견 시각까지 예고했던 진수희 의원도 결국 뜻을 접었다. 이에 따라 ‘비박’(非朴) 보수 진영의 세력화 움직임은 급격히 사그라졌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완벽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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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 김무성 의원의 불출마 선언
총선 전 보수 분열의 마침표는 김무성 의원이 찍었다. 애초 ‘나홀로 공천’을 받은 이재오 의원은 정치적 운신의 공간이 넓지 않았다. 지역에서 잠행에 가까운 행보를 거듭하던 이 의원이 이번 여권 분열 국면에서 제기한 메시지는 “지금이라도 감정적 보복 공천을 하지말고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을 해달라”는 점잖은 요청에 그쳤다. 친이계에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여전히 잠재적 대선 후보로 분류되는 정운찬 전 총리도 총선에는 뜻이 없다는 뜻을 밝힌 상태였다. 시선이 4선의 김무성 의원에게 쏠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3월12일 기자회견을 위해 무소속 출마, 신당 창당, 백의종군 등 세 가지 종류의 회견문을 준비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당 공천에서 탈락한 새누리당 의원 10명 정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오전 10시30분까지만 해도 ‘탈당 후 무소속 출마’ 회견문을 참모들과 다듬고 있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다 던지고 그만하자’고 하고 불출마 회견문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의 불출마 선언은 친이계의 이탈 및 보수신당 창당 흐름에 비수를 꽂은 셈이 됐다. 김현철 전 부소장과 안상수 전 대표, 진수희 의원은 사흘 뒤 눈물을 흘리며 ‘불출마’를 선언해야 했다. 진수희 의원을 직접 만류한 이는 다름 아닌 이재오 의원이었다. 이어 허태열·박대해·이종혁·허원제 의원 등 공천을 받지 못한 부산 지역 현역 의원 전원이 출마 의사를 접었다.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거론하던 이성권 의원도 뜻을 접었다. 공천 승복은 조전혁·이경재·박종근·김학송·정해걸·윤영·조진형·김성회·이사철 의원 등 계파를 막론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뤄졌다. 보수표의 분열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게 된 박근혜 위원장은 “(김무성 의원이)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고 본다”고 그를 치켜세웠다. 세종시 논란 끝에 결별했던 두 사람이 ‘재결합’의 여지를 만들어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곧 구성될 선거대책위원회는 ‘화합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권에선 김무성 의원의 공동 선대위원장 혹은 선대본부장 기용설, 총선 이후 당 대표 추대설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필두로 한 친이계는 ‘패배’한 것일까? 파국 직전에서 이뤄진 봉합 과정, 그중에서도 몇 차례의 변곡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3월9일 정운찬 전 총리와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했다. 그 직후 정 전 총리는 “박세일 국민생각 대표가 추진하는 비박연대에 참가할 생각도, 총선에 출마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야권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줄 보수 분열에 대한 이 대통령의 우려가 전해졌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대통령은 3월12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토론회에서 “박근혜 위원장은 유망한 정치인이며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은 몇 사람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앞서 박 위원장도 “대통령 탈당이 해법은 아니다”라며 여권 내부에서 제기되던 이 대통령의 탈당을 통한 적극적인 차별화 요구에 제동을 걸었다. 총선을 앞두고 일시적 ‘밀월관계’가 형성된 셈이다.
‘비박’과 ‘친박’의 묵계?
공천 결과에 반발하며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공언하던 친이계 인사들에게도 이 대통령의 의중이 전해졌다. 메신저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이달곤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다. 특히 임 전 실장은 공천 문턱에서 주저앉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을 직접 접촉해 “멀리 보고 가야 한다”며 만류했다. 이달곤 수석의 ‘문자메시지’ 파문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위원장 사이의 ‘밀월’을 방증하는 사례다. 이 수석은 공천 결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 친이계 김희정 새누리당 후보에게 공천 축하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일부 공천위원들의 이름도 거론됐다. 하지만 이 메시지가 이 수석의 실수로 김희정 의원과 이름
이 비슷한 민주통합당 김유정 대변인에게 발송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에선 청와대가 이 공천위원들을 통해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개입했고, 공천 결과도 미리 보고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와 박근혜 위원장 사이에 모종의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번 분열의 봉합은 이 대통령의 ‘패배’라기보다는 오히려 친이계의 ‘조직적 퇴각’으로 읽힌다. 올해 총선은 친박계에 대한 ‘공천학살 프레임’이 작동한 2008년 총선과 달리 회고적·정권심판적 성격을 갖는다. 과거 ‘친박 무소속’이나 ‘친박연대’를 통한 결집이 유권자에게 통했던 이유는 ‘박근혜’라는 차기를 도모할 수 있는 대선주자와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지역
기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반면 현재의 친이계에는 미래를 담보할 가치도, 인물도, 세력 기반도 없다. 이미 누더기가 돼버린 이명박 정부 4년의 깃발은 초라하다. 아무런 성과 없이 보수 분열의 책임만 떠안게 될 수도 있는 구도였다는 뜻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친이계가 이탈해서 새로운 세력을 만들든, 무소속으로 출마하든, 박세일 대표의 국민생각으로 흡수되든 성공 가능성은 모두 희박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대선주자로서 박근혜 위원장의 위상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번 퇴각을 통해 친이계는 야권이 제기한 ‘정권심판론’ 전선을 물타기하는 동시에 총선 결과를 박근혜 위원장의 온전한 책임으로 전가할 수 있는 부수적인 명분까지 챙기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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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분열 본격화 하나
봉합 국면에서 정운찬 전 총리와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친이계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이 일제히 ‘대선 출마’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정 전 총리는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 수수방관만 할 수 없다”며 “풍요롭고 품격 있는 국가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김 지사도 “(나 자신을)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중 도지사직을 사퇴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총선 이후 본격적인 대선 경쟁의 공간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물론 그 가능성의 실마리는 이번 ‘퇴각’이 열었다.
박근혜 위원장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선으로 가려면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불가피하고, 그 가장 강력한 표현은 물론 대통령의 탈당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대선의 교두보이자, 비대위를 구성하고 그가 여권의 전면에 나선 뒤 처음으로 마주한 중대한 시험대다. 어떤 식으로든 보수표의 분열은 피해야 했다. 대신 박 위원장은 공천 과정을 통해 친이계 핵심 인사들을 대거 솎아내고, 당을 온전하게 장악하면서도 분열의 후폭풍은 최소화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박근혜 위원장이 공천 국면에서의 계파 갈등을 자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흡수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박근혜 위원장의 ‘MB와의 차별화’ 움직임도 총선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봉합이 ‘갈등의 해소’라기보다는 ‘파국의 연기’로 해석되는 것도 그래서다.
한편 여권의 분열 국면이 진정되자 야권에서 ‘이명박근혜’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런 ‘전선의 희석’을 다분히 의식한 견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이명박근혜 정권 심판의 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논평했다. 심판론의 대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위원장을 싸잡아 겨냥한 발언이다. 민주당은 공천 작업이 마무리되고 선대위 조직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시점에 맞춰 이런 기조의 대여 공세를 강화할 방침이다.
친이계 이탈자를 규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선진당과 공조해 새로운 보수세력을 구축하려던 국민생각 박세일 대표의 구상은 사실상 폐기 처분됐다. 박 대표는 3월14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번 총선에서 신보수·개혁보수 세력이 원내 교섭단체가 돼야 대한민국이 선진화되고 통일이 될 수 있다”며 “자유선진당을 비롯한 중도우파 세력에 조건 없는 즉각적인 연대와 통합을 제안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반향은 없었다. 박세일 대표는 박근혜 위원장이 한나라당 대표로 있던 2005년, 국회의 행정도시특별법(세종시법)이 통과되자 “수도 분할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의원직을 내던진 바 있다. 정치적으로 아무리 다급하다지만,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과 손잡는다는 구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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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된 국민생각
한 정치평론가는 “비박연대의 실패로 국민생각이 확인 사살을 당했다”고 촌평했다. 당초 “전국 200곳에 후보를 내겠다”던 국민생각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70~80석의 후보를 내는 것으로 목표치를 대폭 하향 조절했지만, 그나마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생각의 한 관계자는 “이제 독자 생존 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국민생각으로 자리를 옮긴 ‘극우 여전사’ 전여옥 대변인의 존재는 “중도보수와 중도진보의 정치 실험”이라는 창당 취지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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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총리는 3월14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며 “수수방관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사회에 많은 빚을 지고 살아왔다.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며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정 전 총리는 “돌아가는 것을 보니 나라가 정상적이지 않다”며 “해군을 해적이라고 하고, 또 양극화가 대단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풍요롭고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말을 네 차례나 했다. 정 전 총리는 조만간 동반성장위원장직에서 물러난 뒤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시동을 건다는 방침이다. 총선 국면에 어떤 형식으로든 개입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정 전 총리의 대선주자로서의 잠재력에 대해 “생각할 가치도 없다. 이미 지나간 인물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한 정치평론가는 “유권자의 시각에서는 여전히 대선 후보가 경제 문제에 역량을 갖추고 있기를 희망하는 성향이 강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정운찬 카드’가 부분적으로 유효하겠지만, 그 성공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의 ‘가벼운 처신’도 논란거리다. 11개월에 걸친 국무총리 재직 기간(2009년 9월~2010년 8월)에 각종 설화로 이미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제의 ‘731부대’를 “항일 독립군”이라고 표현한 일이나 “대학입시에서 국사를 영어로 테스트하자” “인터넷 보급이 한국 문화의 수준을 상당히 떨어뜨리고 있다”는 등의 발언이 그런 사례들이다. 세종시 문제로 이 대통령과 충돌하던 박근혜 위원장을 “잘못된 약속조차 지키려는 여자”로 지목한 이른바 ‘잘못녀’ 논란으로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세종시 문제 해결을 위한 ‘원포인트 총리’로서의 갈등 관리는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밑천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3월15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포인트)에서 정 전 총리를 선택한 응답자는 2.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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