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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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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

[특집1] 후쿠시마 원전 사고 1년 현지 르포…
핵사고 원인 제공한 원전족들 제염 작업으로 배불리는 사이 ‘피폭의 모르모트’로 버려진 사람들,
3월11일 대규모 탈원전 집회
등록 2012-03-08 17:46 수정 2020-05-03 04:26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대였지만 믿을 수 없었고, 빛의 계절이었지만 암흑 천지였다. 희망의 봄이 왔지만, 절망의 겨울이 계속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갖지 못한 시대이기도 했다. 모두들 천국을 향해 나아갔지만, 정작 우리가 향한 곳은 그와는 정반대 방향이었다….”(찰스 디킨스, 에서)
지난해 3월11일 오후 2시46분께 일본 도호쿠 지역의 지축이 뒤흔들렸다. 리히터 규모 진도 8.8, 관측이 시작된 이래 일본에서 발생한 최악의 강진이었다. 지진 발생 직후 경보가 울리더니, 이내 지진해일(쓰나미)이 해안을 덮쳤다. 후쿠시마현 동쪽 오쿠마마치 바닷가에 자리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와 제2원자력발전소의 원전 10기도 무사하지 못했다.
흉포해진 자연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제1원전 1호기, 3호기, 2호기의 외벽이 수소폭발로 차례로 무너져내렸다. 냉각수 유입이 중단된 원자로는 달궈질 대로 달궈졌다.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달았다. 쓰나미 경보 발령 직후부터 원전 반경 2km, 3km, 10km로 몇 시간 단위로 확대되던 대피 명령은 이튿날 오후 20km까지 확대됐다. 줄잡아 20만 명이 허둥지둥 피란길에 올라야 했다.
부질없는 짓인지도 몰랐다. 대기와 해류를 타고, 피난 행렬보다 빠르게 방사능 물질이 사방으로 번져갔다. 그보다 더 빨리 퍼진 것은, 불길한 미래라는 ‘극단의 공포’였다. 값싸고, 깨끗하고, 안전하다고들 했다. ‘밝은 미래의 에너지’라 불렀다. 머리 좋은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이 부른 재앙이었다. ‘원자력 신화’는 그렇게 종말을 고했다.
은 3·11 참사 1년을 맞아 일본의 후쿠시마와 한국의 삼척, 두 도시를 돌아봤다.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날아간 후쿠시마에선 지난 1년여 ‘탈원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11 참사 이후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신규 원전 후보 부지를 확정·발표한 한국의 삼척에서도 ‘반핵’ 여론이 차츰 힘을 얻어가고 있다. 다만 여전한 것은 삼척의 바닷가를 따라 떠다니는 눈먼 욕망의 그림자다._편집자
» 어둠이 깔린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의 모습.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는 마무리됐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방사성물질은 방출되고 있다. 강한 방사능 때문에 노심 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

» 어둠이 깔린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의 모습. 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는 마무리됐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방사성물질은 방출되고 있다. 강한 방사능 때문에 노심 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

“돈 따위는 필요 없다. 3월11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가 난 지 1년여, 지금 후쿠시마 사람들은 이렇게 절규하고 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들의 희망은 쉽게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방사능에 오염된 대지는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옛 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원전 사고가 터진 지 올해로 26년이 됐지만, 그곳 주민들은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방사능 오염 심각해도 피난지역 지정 안 돼

지난해 3월12일 오후 취재를 위해 후쿠시마로 향하는 자동차 속에서 “제1원전 1호기가 폭발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후쿠시마에 가닿아야 했다. 액셀러레이터에 올린 발에 힘을 주었다.

이튿날인 3월13일 아침,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있는 하투바마치에서는 고선량의 방사선이 새나오는 게 관측됐다. 일본 정부는 “만일에 대비해 원전 반경 10km 안에 있는 주민들이 피난해주셨으면 한다”고 발표했다. 이 지역의 방사능 오염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현지에 있던 주민들은 “대비해야 할 ‘만일’은 대체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날 급히 피난길에 오른 주민들도 마을이 ‘오염’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갈아입을 옷을 챙기거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에 물을 주려고 마을로 돌아오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지나는 차량을 하나씩 세운 뒤 “마을이 이미 방사능에 오염돼 위험하다”고 설명하고 다시 피난하라고 권하기를 되풀이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피난이다. 인체에 곧바로 영향을 주는 피해는 없다.”

정부는 계속 방사능 오염 사실을 은폐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긴급신속방사능영향예측네트워크시스템’(SPEEDI)이 측정한 데이터도 숨겼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피폭’을 강요당했다. 생명권을 희롱당한 것이다. 하루이틀이 지나자 원전 반경 20km, 30km로 피난지역이 넓어졌다. 하지만 오염물질은 이미 북서풍을 타고 퍼진 채다.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설정한 ‘피난지역’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 지난해 3월16일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의 한 임시대피소에서 제1원전 반경 20km 지역 안에 살다가 피난길에 오른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검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방사성물질이 스며든 옷가지를 모두 폐기하고,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은 뒤에야 입소할 수 있었다.

» 지난해 3월16일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의 한 임시대피소에서 제1원전 반경 20km 지역 안에 살다가 피난길에 오른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검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방사성물질이 스며든 옷가지를 모두 폐기하고,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은 뒤에야 입소할 수 있었다.

계측기로 직접 재보기로 했다. 3월15일 오후 원전에서 서북쪽으로 50km 떨어진 후쿠시마현 소마군 이이타테무라에서 1시간에 40마이크로시버트(μSv), 이이타테무라 마에다 마을에선 100μSv의 방사선이 나왔다. 도쿄에서 일반인이 통상적으로 노출되는 방사선량의 2천 배에 해당하는 고선량이었다. 3월 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 일대가 방사선에 심하게 오염된 상태라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 지역을 피난구역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물도 오염됐다. 논밭도 오염됐다. 그곳에서 자라던 채소도 오염됐다. 젖소가 피폭됐으니, 우유도 오염됐다. 피해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수축산물의 출하가 금지됐다. 마을에서 젖소를 키우는 11개 축산농가에선 밭에 구덩이를 파서 우유를 버렸다. 젖소는 정기적으로 우유를 짜주지 않으면 유선염에 걸리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만난 축산농민 하세가와 겐이치(57)는 “버리려고 (젖을) 짰다. 이런 기분을 아느냐”고 울먹였다. 우유 출하길이 막힌 축산농민들은 영양가가 낮은 쌀겨를 소에게 먹이고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보다 더한 피폭량

그래도 세월은 흘러갔다. 사고가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지역 농촌마을에선 매화·복숭아·벚꽃이 만발했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예전 같으면 산에선 고사리·청나래고사리·두릅 등이 새싹을 틔웠을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나물을 캐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계곡에서는 곤들매기며 산천어가 모습을 드러냈을 게다. 그럼 ‘계곡 낚시의 메카’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멀리 간토 지방에서도 낚시꾼들이 몰려왔을 것이다. 원전 사고는 이런 즐거움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렸다. 논밭에선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졌고, 적막해진 마을에는 목련이 홀로 만개해 있었다.

“올해는 규모를 키워 우사 한 동을 더 지으려 마음먹었는데….” 일대에서 오염도가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진 나가도로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는 다나카 다타이치(40)를 만났다. 도쿄에서 태어나 홋카이도에서 낙농을 공부했다는 그는 10년 전부터 이곳에 정착해 낙농을 시작했다. 원전 폭발 이후에도 다나카는 매일처럼 퇴비를 정리하거나, 건초를 거둬들이는 등 야외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퇴비와 건초가 눈비를 맞아 완전히 젖어버렸기 때문이다.

원전에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친구가 보내온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서다. 그 전까지 마을이 방사능에 오염돼버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지난해 4월 중순 만났을 때 다나카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여기 있어도 괜찮은 것이냐”고 물었다. 진지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에게 ‘진실’을 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가 지난 10년 동안 일궈놓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임을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 지난해 3월29일 후쿠시마현 이이타테 지역에서 한 축산농민이 갓 짜낸 우유를 들판에 버리고 있다. 우유에서 방사능이 검출돼 출하길이 막혔지만, 젖소의 젖을 짜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 지난해 3월29일 후쿠시마현 이이타테 지역에서 한 축산농민이 갓 짜낸 우유를 들판에 버리고 있다. 우유에서 방사능이 검출돼 출하길이 막혔지만, 젖소의 젖을 짜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곳은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 사고 당시 원전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측정된 방사능보다 높은 방사선량이 꾸준히 측정되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설명을 들은 다나카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키우던) 소를 어떻게 처분할지가 결정되는 대로 산으로 가서 소나무 가지에 목이나 매야겠다.” 가슴이 아려와 도저히 함께 있을 수 없어, 차를 돌려 현장을 빠져나왔다.

4월 중순, 나가도로 지역 주택의 빗물 배수통에서 시간당 1.1밀리시버트(mSv)의 방사선이 계측됐다. 이른바 ‘핫스팟’(통상 사고지점 반경 10km 안쪽)이라고 불리는 고오염 지역 수준이다. 다나카 목장 주변의 방사선량도 40~50μSv였다. 다나카는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직후 며칠 동안 이미 20mSv 이상의 방사선에 피폭됐다. 사고 이후 한 달 남짓 동안 그가 일본인의 연간 피폭 허용량의 20배에 해당하는 방사선에 노출됐음을 뜻한다.

바다와 대기로 퍼지는 방사능

다나카뿐이 아니다. 쓰기다테 마을 주민 모두가 다량의 방사선에 피폭되고 있었다. 4월11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반경 30km 밖에 있고, 연간 피폭량이 20mSv를 넘을 위험이 있는 지역을 ‘계획적 피난지역’으로 설정했다. 한 달 안에 대피를 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가 고용한 방사선 전문가들은 바로 전날까지 마을을 돌며 전혀 딴소리를 했다. 주민들을 피폭의 위험으로 내몬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20살 이상인 성인에겐 암 발병 위험성이 제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계신 분들은 장래 암이 발병할 경우, 이번 원전 사고가 원인이 아니라 평소 몸 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아이들을 밖에서 놀게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평소처럼 생활해도 괜찮습니다. 걱정해서 스트레스를 쌓아두는 쪽이 더 위험합니다.”

» 원전 사고 뒤 주민이 모두 대피한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의 텅 빈 거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버려진 개들이다. 아치형 광고판에 일본어로 쓰여 있는 문구는 ‘원자력, 밝은 미래의 에너지’란 뜻이다.

» 원전 사고 뒤 주민이 모두 대피한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의 텅 빈 거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버려진 개들이다. 아치형 광고판에 일본어로 쓰여 있는 문구는 ‘원자력, 밝은 미래의 에너지’란 뜻이다.

2011년 말, 노다 요시히코 당시 총리는 ‘원전 사고 (처리) 종결’을 선언했다. 원자로 안에 방치된 핵연료의 상태도 모르고, 따라서 언제 다시 폭발할지도 알지 못하는 채로 말이다. 방사성물질은 여전히 대기와 바다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모든 게 끝났다”고 주장한다.

제염으로 돈 버는 원전 건설회사들

원전 추진 세력들도 다시 움직이고 있다.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 작업을 주도하는 한편, ‘국내 원자력발전 재가동’과 ‘원전 수출’ 등을 다시 입에 올리고 있다. 3·11 사고의 원인 규명이나 책임 추궁 등 무엇 하나 이뤄진 게 없다. 모두들 “원전이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거대 지진이 다시 원전을 덮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부정하지 못하면서도, 이런 일들이 버젓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 후쿠시마현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제염 작업은 사실상 (오염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이염’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방사능이 줄어들 리 없다. (방사능을 없앨 수 있는 기술은 아직 개발돼 있지 않다. 지금 상황에선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만 년에 달하는 방사능 반감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번역자) 그저 방사능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뿐이다. 지표면을 벗겨내 방사능물질을 물로 흘려보내면, 고스란히 강 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지금 아부쿠바강(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현과 미야자키현을 흐르는 강)에 흘러드는 후쿠시마현의 오염물질은 매일 500억 베크렐(Bq)이다. 이 물질이 태평양으로 흘러들고 있다. 지난해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방출해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지만, 이때의 방사선물질량과 똑같은 양이 지금도 매일 태평양으로 흘러들고 있다.

» ‘방사능 위험에 예외는 없다.’ 일본 정부가 공식 오염지역으로 지정하지 않아 사고 이후 넉 달여간 마을을 지켰던 후쿠시마현 이이타테의 축산농민 하세가와 겐이치. 자신이 키운 소들이 도축되는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던 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 ‘방사능 위험에 예외는 없다.’ 일본 정부가 공식 오염지역으로 지정하지 않아 사고 이후 넉 달여간 마을을 지켰던 후쿠시마현 이이타테의 축산농민 하세가와 겐이치. 자신이 키운 소들이 도축되는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던 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이타테무라에서 거주지역은 2년, 들판은 5년, 삼림은 20년 동안 제염 작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총액은 3244억엔이다. 이이타테무라에는 1700여 가구가 산다. 한 가구당 1억엔 이상 제염 비용이 드는 셈이다. 이 예산은 새로운 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옮기는 데 쓰는 게 더 현실적이다. 피폭은 계속되고 있다.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제염에 막대한 예산을 쓰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아닌가? ‘억지 춘향’ 격으로 진행되는 제염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가지마건설·오바야시건설·오바야시구미·다이세이건설 등 종합건설회사들이다. 원전 건설에서 막대한 이익을 취한 종합건설회사들은, ‘원전을 없애자’는 움직임이 시작된 지금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들은 “원자로를 없애는 작업과 제염으로 향후 몇십 년은 먹고살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우리는 버려졌다. 피폭의 모르모트(실험 대상)가 됐다.” 지금 후쿠시마 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현실일 게다. 일 때문에 아이와 아내를 피난시키고 홀로 고향을 지키고 있는 남성도 많다. 아내와 아이는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것이나 매한가지다. 이혼도 늘고 있다.

주민들 사이의 대립과 반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럴수록 고립감도 커지고 있다. 오염지역에서 피난 나온 사람과 머물고 있는 사람, 보상금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경계구역이나 계획적 피난지역으로 지정되지 못한 주민들까지. 후쿠시마 시내에서 만난 한 택시 운전사는 “피난 간 사람들은 일도 하지 않으면서 보상금을 받았다. 술 마시고, 파친코(도박장)나 다니고 있다. 나처럼 매일같이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바보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보수 함께 탈원전 운동 시작

오는 3월11일, 도호쿠 대지진 1년을 맞아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에선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 ‘원전은 필요 없다! 후쿠시마 현민 대집회’다. 이날 집회에는 보수에서 진보, 지금까지 원전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단체·개인까지 광범위한 사람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날에 맞춰 수많은 행사가 예정돼 있다. 원전 없는 사회, 단절을 넘어 연대로 가는 새로운 움직임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일본)=글·사진 모리즈미 다카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번역 길윤형 한겨레 국제부 기자



모리즈미 다카시(60)는 핵문제 전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직업 사진기자로 출발해 1990년대부터 카자흐스탄 등 옛 소련 시절에 장기간 핵실험이 실시된 지역과 원전 폭발사고가 났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열화우라늄탄 사용 논란이 일고 있는 이라크 사막지대 등 현장 취재를 통해 핵재앙의 현실을 알리는 데 힘써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튿날인 지난해 3월12일을 시작으로 지난 1년 동안 그는 모두 18차례 후쿠시마 현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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