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을은 우리나라 동남권 ‘진보 벨트’의 핵심 축이다. 새누리당 텃밭이나 다름없는 지역 분위기지만,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을 재선으로 만들어준 명실상부한 ‘진보정치 1번지’다. 하지만 창원을이 이런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야권의 ‘분열’과 통합진보당의 ‘무능’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의 무리수
지난 2월8일 경남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2012 희망정치 실현을 위한 경남의 힘’과 민주통합당 경남도당, 통합진보당 경남도당은 야권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창원을 예비후보로 등록한 구명회·변철호·주대환 민주통합당 예비후보, 손석형 통합진보당 예비후보, 박훈 무소속 예비후보도 이 합의에 동참했다. 김창근 예비후보가 창원을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진보신당 경남도당은 이날 기자회견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정당 간 호혜 존중과 여성, 소수자 등 가치와 원칙에 부합되는 야권 연대에는 적극 결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보면 이 지역의 선거 연대는 착착 준비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진보신당 쪽은 창원을의 후보 단일화가 자신들이 말하는 “원칙에 부합되는 야권 연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통합진보당이 현직 경남도의원직을 사퇴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손석형 예비후보를 당의 후보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손 예비후보는 2008년 강기윤 전 한나라당 경남도의원이 창원을 총선에 출마하려고 도의원직을 사퇴하자 권영길 의원 등과 함께 그를 거세게 비판하며, 강 전 도의원 때문에 치르게 된 보궐선거 비용을 보전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가 도의원에 당선된 건 바로 강 전 도의원 때문에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해서다. 그런데 불과 4년 만에, 국회의원 되려고 도의원직을 버리는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이다.
손 예비후보는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둔 것일까? 기본적인 배경은 옛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 문제로 지난해 내내 ‘밀고 당기기’를 하다 등을 돌리게 된 일이다. 지난해 6월 통합 여부를 결정하는 진보신당 당대회를 앞두고 권영길 의원은 “저 권영길은 2007년 대선 경선에 나서면서 중재자의 역할을 버렸고, 그것이 분당으로 이르는 길목이 되었다. 상처받으셨던 모든 분들께 사과드린다”며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두 당의 이름난 정치인들이 ‘배지’ 한 번 더 달려고 통합을 추진한다는 일부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진보신당에 통합을 호소한 것이다.
당 안팎에선 이 지역구를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문 전 대표는 옆 지역구인 창원갑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모양새로 따지자면, 권 의원은 진보 통합의 명분을 지키려고 불출마하고, ‘이후 주자’로 가장 유력했던 문 전 대표는 지역구를 비워줌으로써 진보신당에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던 셈이다. 이 무렵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이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창원을 진보통합후보 공동발굴위원회’(발굴위)를 꾸려 권 의원의 불출마 정신과 진보 통합, 총선 승리의 목적을 살릴 후보를 공개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진보신당에선 김창근 예비후보(전 금속노조위원장)가 등록했고, 영화 로 유명해진 박훈 변호사가 무소속으로 등록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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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갈등까지 더해 삐걱대는 선거연대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끝내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실패했고, 그 대신 국민참여당·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와 합당해 통합진보당이 된다. 권영길 의원과 문성현 전 대표가 ‘희생’을 감수하며 노력한 진보정당 통합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권 의원은 크게 실망했고, 통합진보당의 창원을 선거 준비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또한 지난해 12월 통합진보당이 당원 투표를 통해 손 예비후보를 선출하자 발굴위도 해산해버렸다. 도의원직 사퇴로 논란을 빚은 이를 통합진보당이 후보로 선출한 마당에 발굴위를 더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손 예비후보가 실제로 도의원직을 사퇴한 지난 1월엔 문성현 전 대표가 며칠 동안 선거운동을 접은 채 자신의 페이스북에 “참으로 괴롭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현직 지방의원이 사퇴해 보궐선거를 유발하는데, 당의 총선 후보로 결정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결정을 내릴 법도 하다. 실제로 지난 2월3일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는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은 해당 보궐선거에만 후보를 내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다. 당내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묵은 정파 갈등이라는 문제가 더해져 흐름은 다수파인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주도하게 됐다. 정파 갈등이 심한 울산에서 통합연대 출신인 노옥희 예비후보가 출마를 준비하는 동구에, 현직 울산시의원인 옛 민주노동당 출신 이은주 예비후보도 등록을 해버린 것이다. 김창현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공동위원장은 당 회의에서 “인재풀이 부족한 진보정당은 당면 선거에 이기기 위해 어떤 분도 내세울 수 있다”는 주장까지 펴며 이들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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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김창근 진보신당 예비후보 쪽은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의 정의를 훼손하는 후보와는 경선을 치를 수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야권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다면, 창원을에선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손석형·김창근 예비후보가 과거 창원을 지역의 거대 노조 가운데 하나인 한국중공업(현재 두산중공업) 위원장을 번갈아 각각 5차례와 4차례 맡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이 속한 민주노총 내 정파가 달랐기 때문에 그렇게 여러 차례 위원장직으로 서로 주고받은 것이다. 그랬던 두 사람이 단일화를 못하면 ‘진보 벨트’로 불리는, 거제·사천·진주 등 창원 주변에서 노조의 영향력이 크거나 통합진보당·진보신당의 갈등이 깊은 지역도 무너지기 십상이다.
부글부글 끓는 건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다. 특히 도덕적 논란 때문에 선거 연대가 삐걱댄다면, 이는 창원을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여론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김해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을은 민주통합당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곳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김해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장유면은 창원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유권자의 거주 비율이 매우 높다. 야권 연대에 관한 부정적 인식이 퍼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단일화 못하면 선거 구도 못 만든다”
경남 지역의 사정에 밝은 통합진보당의 한 인사는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이 단일화를 못하면 선거 구도 자체가 안 만들어진다. 지금 상황에서 창원을이 ‘진보정치 1번지’라는 이름을 지킬 가능성은,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안에 남북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과 비슷하다고 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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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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