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사건이다. 그때 사람들은 ‘불평등한 한-미 행정협정 개정’을 주장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도 요구했다. 사람들은 서명을 받고 시위를 하다 한국 경찰에 끌려갔다. 19년 뒤에도 놀랍게 같은 구호가 나온다. 한국진보연대·전국여성연대·민주노동당 등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은 지난 10월 경기도 동두천 성폭행 미군 재판과 관련해 의정부지방법원 앞에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과도 요구했다. 19년 전 윤금이씨 사건 관련자들을 다시 찾아나선 이유가 여기 있다. 같은 구호가 왜 19년 뒤에도 나올까. 그들에게 윤금이씨 사건에 대한 소회와 함께 SOFA에 대한 견해 등을 물었다.
당시 검사, “신병 확보 뒤 수사했다면…”
당시 수사를 맡은 박승진(54) 검사는 2004년 검찰을 나왔다. 지금 변호사다. 과의 전화 통화에서 박승진 변호사에게 (SOFA 때문에) 피의자가 미군 부대와 한국 수사기관을 오고 가서 수사에 어려움이 없었는지 물었다. 박 변호사는 수사에 장애는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자존심’을 언급했다. “수사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당시 SOFA에 따라 미군이 한국 검찰과 법원에 잘 협조했으니까요. 결국 케네스 마클은 한국 사법부의 정상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까? 다만, 기분상의 문제랄까요, ‘우리 검찰이 직접 구속했으면’ 하는 상태에서 (마클을) 소환하는 게 언짢았습니다. 자존심이랄까요.” 그에게 현행 SOFA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현재 SOFA의 내용을 잘 모른다. (윤금이 사건은)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지금 시민단체의 SOFA 개정 주장이 구체적으로 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등 미군이 주둔하는 다른 나라의 협정과 비교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불평등한지…. 다만, 실제로 다른 나라 협정과 비교해 불평등한 부분이 있다면 개정하는 게 맞겠지요”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정말 불평등한 게 있다면”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많은 학자와 시민단체가 여전히 불평등함을 지적한다. 한-미 SOFA에서는 한국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고 특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주한미군뿐 아니라 미군속, 그들의 가족, 기타 친척까지 포함한다. ‘기타 친척’ 여부는 미국이 판단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일 SOFA와 대표적으로 다른 특혜다. 이외에 특혜가 많다.
당시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김찬국 공동대표는 2009년 8월 숨졌다. 그는 존경받는 목사, 신학자, 인권운동가였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상지대 총장을 지냈다. 그와 함께 공동대표로 항의를 조직한 전우섭 목사는 이후로도 오래 동두천에서 시민운동을 했다. 성매매 여성을 돕는 사회단체 ‘다비타 공동체’를 만들었다. 성매매 여성,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 등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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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판사, “중요한 사건, 다 기억해”
당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변동걸(63) 부장판사는 2005년 서울중앙지법원장 자리를 끝으로 퇴직했다. 그는 당시 흥분한 방청객을 달래며 재판을 진행해야 했다. 1993년 3월10일 공판에서 그는 방청객에게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 부분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피고인에게 적절한 처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는 법원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에 충실히 이행할 것이고 이를 믿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열혈 방청객이 많았다. 그때의 자료 사진을 보면 ‘민족의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도 보인다. 지금 사형제 폐지는 진보 진영의 공통 의제다. 19년 전엔 범죄자 미군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지금 그는 법무법인 화우의 변호사다. 변동걸 변호사는 말을 아꼈다.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내용을) 다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냥 판결로 평가받으면 됐지 더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듯합니다.”
당시 는 창간된 지 4년째였다. 의욕적으로 윤금이 사건을 보도했다. 홍용덕 기자가 현장을 누볐다. “윤금이 사건 때 2년차 햇병아리 기자에 불과했습니다. 설마설마했는데 가보니 기도 안 찼고, 특히 기지촌 여성들이 우리 누나, 여동생 등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팠죠. 그 충격은 이후 기자생활 중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의 하나로 각인됐고, 경기도 평택 안정리와 송탄 호박골 기지촌 할머니들, 동두천 보산동 일대 기지촌의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 동두천 보산동 일대는 한국 여성 대신 필리핀 여성들로 대체됐는데, 사람만 바뀌었을 뿐 여성들의 현실은 큰 차이가 없어요.”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2006년 마클을 가석방했다. 법무부 차관이 당연직 위원장으로 결정에 참여했다. 법무부는 당시 언론에 가석방심사위원 명단도, 가석방 사유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가석방 사실조차 국정감사 기간에 알려졌다. 몰래 가석방한 셈이다. 당시 김희옥 법무부 차관은 현재 동국대 총장이다. 김희옥 총장은 ‘당시 가석방 사유가 무엇인가’라는 의 질문에 홍보실을 통해 “워낙 사건이 많아서 개별 사건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정희, “여성 문제 자각이 큰 전환점”
윤금이 사건은 한 걸출한 정치인을 낳았다. 이정희(42) 민주노동당 대표다. 그는 1987년 학력고사에서 여성 수석을 했다. 서울법대에 들어갔다. 부잣집 출신은 아니었지만, 모범생에 가까웠다. “빈곤 문제에 눈뜬 가장 중요한 계기는 1992년의 윤금이 사건입니다. 동두천에 갔다가 쉼터를 방문해서 6살 소녀를 만났어요. 기지촌의 클럽에 다니던 엄마와 미군 아빠 사이에 태어난 예쁜 아이였는데, 아빠는 본국으로 떠나고 엄마는 빚 때문에 도망가 클럽 여주인이 키우고 있더군요.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엄마가 나타나 빚을 갚거나, 10년쯤 키우면 종업원을 시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는 여주인의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 문제를 풀지 않고는, 모르는 척 눈감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2009년 10월 인터뷰 중)
와의 2009년 10월 인터뷰 때도 이를 재차 언급했다. “성매매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으니까, 제 인생에서 여성 문제에 대한 자각이 큰 변환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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