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색 조끼를 입은 ‘수신호’가 비를 맞으며 편도 4차선 도로 한가운데 위태하게 서 있다. 지난 10월15일 토요일 서울 한복판. 주말, 오후, 비, 세일, 중국인 관광객이 한꺼번에 겹친 백화점 앞은 버스와 승용차들로 엉켰다. 차선 2개를 차지한 수신호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백화점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지상의 마지막’에 파란색 비옷을 걸친 ‘도우미’가 있다. 발갛게 상기된 볼 위로 텔레비전 속 연예인들처럼 마이크가 보인다. “안녕하십니까? 꿈과 희망이 가득한 ○○백화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래쪽 지하주차장 방향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대기시간이 50분가량 소요되니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차량 한 대, 한 대마다 같은 말을 무한 반복한다. 도우미 건너편에는 이제 막 도우미 세계에 발을 디딘 교육생 도우미가 선배의 멘트와 손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다. 달팽이처럼 말린, 꿈과 희망이 가득한 어두운 지하로 차량들이 들어간다. 지하 2층 정산소 박스에 앉아, 들어오는 차와 나가는 차를 맞이하는 ‘정산원’의 손이 바쁘다. 아침 7시 근무를 위해 이른 출근을 할 때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았다. 정산원은 빗물을 뒤집어쓴 채 정산소를 지나는 차를 보고서야 바깥 날씨는 ‘비’라는 사실을 안다. 4개로 분할된 정산소 모니터에는 들어오는 차와 나가는 차의 번호를 카메라가 자동으로 판독한다. 판독 오류가 나면 정산원이 직접 입력해야 한다. 지하 3층, 지하 4층. 승용차 라디오가 지지직거리며 주파수를 잡아내지 못한다. 지하로, 지하로 내려갈 때마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도우미가 서 있다. 보기에 살짝 민망한 손동작을 반복한다. 자리가 났는지 주차장 쪽으로 안내한다. 앳된 얼굴의 ‘유도’가 자신이 확보한 라인 안으로 차량을 이리저리 안내한다. 유도원 뒤로 청소 유니폼을 입은 미화원이 대걸레를 들고 지나간다. 지하주차장은 ‘만차’ 표시에도 불구하고 꼬리를 무는 차들이 공회전을 하며 내뿜는 배기가스와 엔진 열기로 후끈하다. 성질 급한 운전자가 있는지 ‘끼이익’ 하는 소리가 주차장 안을 울린다. 정산원·도우미·유도원·미화원이 한 세트로 움직이는 ‘도심의 막장’. ‘막장 인생’이라서 막장이 아니다. 탄부처럼 땅 밑에서 일하고, 얼굴과 코에 검댕이 묻어나서 그렇다. 대신 탄광과 달리 불황은 없는 막장이다. 차에서 내린 고객들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서둘러 지하주차장을 벗어난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유리벽 안은 공기가 다르다.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고 들이마신다. 꿈과 희망은,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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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거 뭉치면 연탄 한 장"
지하주차장 청소노동자가 죽었다. 폐암이었다. 그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작업장도, 휴게실도 지하에 있었다. 산업재해 여부를 두고 유족과 근로복지공단 사이에 소송이 붙었다. 지난 9월29일 서울행정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을 읽고 있자니 백화점·쇼핑몰 등 대형 건물의 지하주차장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가 걱정됐다. 백화점을 드나들 때마다 무심히 지나쳤던 이들이다. 지상에서도 참기 힘든 배기가스가 뭉쳐 있는 지하주차장의 공기질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지하주차장을 일터로 삼은 지하 생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용이 위태로운 이들은 모두 가명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전기료를 줄이려고 지하 환기시설 작동을 ‘조절’한다는 쇼핑몰 이야기도 들었다. 불과 2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대기질 측정을 한다는 측정대행업체 쪽 사정도 들었다. 지상인들이 스쳐지나간 지하에는 모르는 이야기가 많았다.
최인선(39·여)씨는 2006년 12월부터 지하주차장 정산원 일을 시작했다.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해서 쇼핑몰로, 최근에는 다시 백화점으로 옮겼다. 이쪽 일은 이직이 잦은 탓이다. 대부분 용역업체 소속이다. 계약 기간을 12개월, 24개월 이런 식으로 쪼개다 보니 오래가지 못한다. 손에 쥐는 돈은 적고 일은 고돼서 3개월, 혹은 반년 만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 백화점은 그나마 쇼핑몰보다는 일하기가 좋았다. 지하주차장 말고도 지상주차장이 있어 ‘순환’근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공기 대신 사람이 직접 순환한 셈이다. 지하 근무는 고역이었다. “물청소를 하지만 지하 진입로 쪽은 매연이 쌓여서 새까맸어요.” 지하주차장 노동자들은 “시커먼 거 뭉치면 연탄 한 장 나오겠다”고 했다. ‘점오평’(0.5평·1.65㎡)짜리 정산소 박스는 좁다. 의자, 컴퓨터 모니터, 주차권 리더기로 꽉 찬다. 몸을 이리저리 돌릴 수는 있지만 갑갑한 것은 마찬가지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겨울에는 스팀난로가 놓인다. 작은 팬이 정산소 박스 위에 달렸다. 유일한 환기시설이다. “사실 소용없어요. 주차권이나 주차비를 받아야 하니 창문이 항상 열려 있잖아요. 그 공기가 그 공기죠. (팬 하나) 설치해놨다, 이거죠.” 최씨는 정산소 박스 안에 공기청정기는 따로 없다고 했다.
요즘은 주차비 정산 업무가 무인화로 가는 추세다. 그래도 정산원을 쓰는 곳은 여전히 많다. 정산원·도우미·유도원·수신호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필요한 것도 정산원이다. 출구마다, 층마다 배치되는 탓이다. 최씨가 얼마 전까지 일했던 쇼핑몰에는 주차 관련 노동자가 59명이었다. 주간정산 A조(오전) 10명, B조(오후) 8명, 야간정산 A조·B조 각 6명, 도우미 9명, 유도원 12명, 수신호 8명이 일을 했다.
한 번 감기에 걸리면 낫질 않아
지하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정산원과 유도원이다. 출근하면 지상으로 갈 일이 없다.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모른다. 차가 들어올 때 비나 눈이 묻어 있으면 그제야 운전자들에게 물어보고 날씨를 안다. “지하에서 매연이 어디로 가겠어요. 아침에 출근하면 정산소를 청소하는데 한나절도 못 가요. 매연이 나갈 구멍이 없으니 쌓이고 쌓여서, 저녁때 손가락으로 책상을 훑으면 새까맣죠. 지하주차장도 페인트칠이 잘돼 있어서 고객이 보기에 깨끗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최씨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에도 매장 쪽으로는 가지 못한다. “지하주차장 근무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는 고객 동선이 있는 곳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요.”
유도원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 학생이 맡는다. 고교생·대학생들이다. 백화점 지하주차장 아르바이트생 이영주(23)씨는 “싼값으로 막 부리려고 어린 학생들을 쓰는 것 같지만, 시급으로 따지면 다른 곳보다는 그래도 잘 주는 편”이라고 했다. 다른 곳보다 잘 쳐준다는 시급은 5600원 정도다. 정산원들은 그나마 에어컨이 딸린 박스 안에 앉아 있지만, 유도원들은 차들 한가운데 서 있다. 여름이면 배기가스와 엔진 열기에 “완전 사우나” “완전 죽는다”고 했다. 15분 정도만 서 있어도 금방 옷이 땀에 젖는다. 샤워실도 따로 없다. 그래서 유도원들은 안에 러닝셔츠를 꼭 받쳐 입는다. 요즘 커피전문점에서 문제가 된 주휴수당도 못 받을 때가 많다.
백화점 정산원으로 7년 넘게 일하는 이우선(42·여)씨는 한 달에 128만원을 받는다. 하루에 기본 8시간 근무를 한다. 결원이 생기면 갑작스럽게 1~2시간 연장근무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2시간 일하고 1시간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상인들이 보면 쉬는 시간이 상당히 긴 것 같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이씨는 지하주차장 정산원 일을 시작하고 1년 정도 뒤부터 호흡기 질환을 얻었다. 감기에 한 번 걸리면 당최 낫지를 않는다. 여성호르몬 분비도 줄었다. 건강검진을 받기는 하지만 “학교 다닐 때 받던 건강검진 수준”이라고 했다. 민종호(32)씨는 지난해 8월부터 지난 6월까지 지하주차장 야간 정산원으로 일했다. 정산 업무가 무인화되자 재계약은 날아갔다. “건강 걱정을 많이 해요. 건강검진을 하긴 하는데, 문제는 건강검진을 받기 전에 잘리거나 관두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검진 자체도 워낙 간소하고요.”
1년9개월째 정산원으로 일하는 김미영(24·여)씨는 목이 칼칼하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목에 무리가 왔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다 공기도 너무 나쁘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구매하신 영수증이나 무료 주차권 있으십니까?” “확인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차하셔도 됩니다.” 이런 말을 무한 반복한다. 1시간 정도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지하주차장 달팽이 통로가 경사져 있다 보니, 정산을 마치고 출발하는 차에서 시커먼 배기가스가 더 나온다. 그래서 목이 아픈 지하주차장 노동자들은 물을 많이 마신다. 무턱대고 많이 마실 수도 없다. 자리를 비우고 화장실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방광염이 ‘지병’인 여자 정산원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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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1시간에 차량 250대 배기가스 마셔야
우민지(22·여)씨는 지하주차장에 들어온 지 이제 두 달밖에 안 됐다. 근무하고 코를 풀면 까만 콧물이 나온다. 휴게실도 지하에 있다. 지하 2층인데 환기시설은 없다. 렌즈를 끼고 일하는데 안구건조증이 심하다. 일을 시작할 때 용역업체 쪽이든 백화점 쪽이든 건강상 유의사항을 전해들은 바가 없다. 마스크를 쓸 법도 하지만 이 역시 ‘불가’다. “서비스업이고 고객과 대화도 해야 해서” 마스크를 쓰면 안 된단다. “고객 보기에 좋지 않은 것도 이유”라고 한다. 최인선씨는 “고객이 우리가 쓴 마스크를 보면 ‘여기 공기가 그렇게 나쁜가’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2년째 지하주차장에서 일한 이은지(28·여)씨는 “24시간 운영되는 지하주차장에 대형 환기시설이 있지만, 24시간 내내 작동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근무 1년 만에 만성 비염을 얻었다.
최인선씨는 “가장 바빴을 때는 주말 1시간 동안 250대를 출차시킨 적이 있다”고 했다. 1초에 2~3대가 나가는 느낌이었다. 최씨가 일했던 쇼핑몰에서는 한 출입구에 평일에는 1천 대, 주말에는 1300대 정도의 차량이 지나갔다. 지상이라 해도 가만히 앉아서 이 정도 차량의 배기가스를 맡으면 정신없을 것이다. 이럴 때는 하루에 한 출구에서만 1명의 주차 정산원이 100만원가량의 주차비를 걷기도 한다. 지하주차장 남성 노동자들은 쉬는 시간이면 꼭 세수를 한다. 얼굴에서 구정물이 나온다. 침을 뱉으면 까맣다. 남자들은 세수라도 하지만 여자들은 화장 때문에 세수도 못한다. 백화점이나 쇼핑몰 쪽에서는 ‘풀메이크업’을 요구한다.
최인선씨는 지하주차장 노동자도 백화점 매장 직원들처럼 ‘감정노동’을 한다고 했다. “배기가스도 싫지만 비싼 차 끌고 와서는 주차비 달라는 소리에 화를 내며 500원짜리 동전을 집어던지고 가는 고객들도 싫어요.” 그러면서 근무환경 개선은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지하주차장 근무환경은 모든 차가 전기차로 싹 바뀌기 전에는 안 바뀔 거예요. 공기청정기를 1m에 하나씩 놓기 전에는 공기 순환도 안 될 거고요. 서울에서 지하 공간을 죽이고 지상에 주차장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돈이 안 되니까요.”
지하(실내)주차장의 공기질은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에 의해 관리된다. 1996년 ‘지하생활공간 공기질관리법’이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지하주차장은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2003년 현재의 실내공기질관리법으로 개정되면서 연면적 2천㎡ 이상인 실내주차장도 해마다 측정대행업체 등에 의뢰해 공기질을 측정하게 했다. 측정 오염물질은 모두 9가지다.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포름알데히드 △일산화탄소는 기준치를 어기면 개선 명령과 ‘약간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유지기준’ 항목이다. △이산화질소 △라돈 △휘발성유기화합물 △석면 △오존은 기준치를 어겨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권고기준’ 항목이다. 건물주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1급 발암물질인 라돈과 석면이 이렇다. 게다가 권고기준은 2년마다 측정하게 돼 있다. 미세먼지·일산화탄소·이산화질소·휘발성유기화합물·오존은 지하역사·지하상가 등 다른 다중이용시설과 지하(실내)주차장의 기준치가 다르다. 실내주차장 기준치가 더 높게 잡혔다. 임상혁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의 실내 공기질 기준 자체가 외국보다 높은 편이다. 지하주차장은 소비자나 고객이 잠깐 머무는 공간이라 기준을 더 느슨하게 잡은 것 같다”고 했다.
기준은 그렇다 치고 실제 지하주차장 공기질을 관리하는 쇼핑몰·백화점 쪽은 어떨까. 지하 3~5층을 지하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서울의 한 쇼핑몰. 지난 10월11일 오후 4시 지하 3층 주차장은 평일이어도 손님들로 붐볐다. 도우미와 수신호가 출구마다 서 있었다. 미화원도 수시로 지나다녔다. 주차장 규모도 커서 지하 3층 한 바퀴를 도는데 5분 넘게 걸렸다. 하지만 대형 송풍기 21대 가운데 절반 가까운 10대가 꺼져 있었다. 한 바퀴를 돌자 눈이 따끔거렸다. 지하주차장 관리자는 “전체적으로 송풍기를 작동시키지 않고 순환적으로 튼다. 매연이나 열기 때문에 우리도 시간 단축을 요청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쇼핑몰 쪽은 “전력 피크치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총전력 사용치가 있는데 그걸 넘어가면 전기요금을 낼 때 기준요금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한전 서울본부 관계자는 “쇼핑몰이나 백화점의 전기요금은 애초 계약한 기본요금과 사용한 만큼 내는 전력량 요금으로 나뉜다. 쇼핑몰 쪽에서 말한 전력 피크치는 기본요금 부분인데, 계약 전력을 넘어가면 전기료를 더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쇼핑몰 쪽은 “전력 피크치를 수시로 점검하는데 과부하가 걸려서 쇼핑몰 전체의 전력 피크치가 올라가면 (전기설비 중) 뭘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 급배기(환기시설)를 구역별로 릴레이식으로 작동시키거나 전력 소모량을 줄이려고 공조기의 세기를 줄인다”고 설명했다. 이 쇼핑몰의 경우 지하 3층은 모두 600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데 150~200대가 들어온 순간부터 급배기를 작동시킨다. 지하 4~5층은 각각 550대 정도를 수용하는데 120대 이상부터 급배기가 돌아간다. 차량이 적은데 급배기를 돌리면 전력 낭비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한여름 지하주차장은 급배기를 다 돌려도 매연이나 더운 열기를 100% 빼낼 수는 없다”고 했다.
실태가 이렇다면 실내공기질관리법에 따른 위반 사례도 많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박양숙 서울시의원(민주당·성동4)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다중이용시설 실내공기질 위반사례 현황(2009년~2011년 9월)을 보면, 유지기준 위반 사례 53건 가운데 지하주차장은 단 1건에 불과하다. 권고기준 위반 사례 42건 중 지하주차장은 아예 없다. 서울시내에 연면적 2천㎡ 이상인 지하주차장이 1379개에 달하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관리가 잘되는 곳도 있겠지만 법에서 정한 기준치가 너무 높거나, 혹은 실내공기질 측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건물주나 쇼핑몰·백화점 관리자는 해마다 건물 준공일에 즈음해 실내공기질 측정대행업체에 의뢰해 지하주차장의 공기질을 측정해야 한다. 업체는 측정 결과를 행정기관에 보고한다. 서울시에는 이런 업체가 15곳이 있다. 한 업체의 관계자는 “연면적인 1만㎡ 이하면 2개 지점, 1만∼2만㎡면 3개 지점, 2만㎡ 이상이면 4개 지점에서 공기질 측정을 한다”며 “지하주차장이 여러 층으로 나뉜 대형 건물의 경우 한 층에 1개 지점에서만 측정이 이뤄진다”고 했다. 제대로 된 측정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는 “백화점 등에서 요청한 시기에 측정하기 때문에 차량이 많은 주말을 피하거나 미리 청소를 해놓는 것 같다. 환기시설 역시 측정일에는 100% 가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식으로는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실내공기질관리법의 취지를 살리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측정비로 고작 17만~20만원을 받거나, 하루에 3곳 이상의 여러 건물을 측정하는 업체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역시 ‘날림 측정’을 조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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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에 떠밀린 건강·생명권
게다가 측정대행업체의 측정 결과로는 건물주가 실내 공기질 기준을 어겨도 과태료를 매길 수 없다. 과태료는 오직 시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 측정한 결과를 기준으로만 부과된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해마다 관리 대상의 10%씩을 실태 점검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보건환경연구원이 관리 대상을 해마다 모두 조사할 수는 없다. 측정대행업체 관계자는 “행정·감독기관에서 몇몇 측정대행업체의 측정일에 맞춰 불시 감독을 나온다면 부실 측정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하주차장 노동자 수는 대형 쇼핑몰 한 곳에만 기본적으로 60~70명 정도다. 전국적으로 적어도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파악되지만, 그 실태나 현황은 제대로 파악된 적이 없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쪽은 “노조로 조직된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상담 사례도 없다”고 했다. 박양숙 의원은 “지하주차장 노동자는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들”이라며 “이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이 전기요금에 떠밀려서는 안 된다.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관리·감독 등 행정적 조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건물이 높아지면 지하층도 깊어진다. 지하시설 노동자의 건강이 고작 전기요금 따위에 밀린다면, 그건 지하시설을 이용하는 지상인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
글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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