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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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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갖고 튀는 자들을 주시하라

불법 영업, 단기 이익에 눈먼 영업 기반 훼손, 소유권 적법 여부 의혹 등 한국 기업 소유한 외국자본의 탐욕 지켜봐야만 하나
등록 2011-10-24 15:29 수정 2020-05-02 04:26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지난 10월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앞에서 ‘론스타 징벌적 매각명령촉구결의대회’를 열어 “금융 당국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에 대해 징벌적 매각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지난 10월13일 저녁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앞에서 ‘론스타 징벌적 매각명령촉구결의대회’를 열어 “금융 당국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에 대해 징벌적 매각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최근 금융자본의 탐욕에 대해 축적된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미국 월가에서는 이미 수차례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월15일 여의도에서 론스타 같은 외국 금융자본의 탐욕을 고발하는 시위가 때아닌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행됐다.

눈앞의 이익 좇아 불법영업한 SC제일은행

흔히 우리나라에서 외국자본의 고배당 쥐어짜기는 ‘먹튀’라는 말로 요약된다. ‘먹고 튄다’는 이 말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감정의 선을 건드리기에 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현상에 언제나 부정적이고, 때로는 격렬히 반응한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고배당, 고액 연봉 등은 모두 경영권 행사일 뿐이고 이런 결정이 주주가 선출한 이사회에 의해, 특히 사외이사의 동의를 거쳐 이루어졌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누가 맞는 것일까? 한발 뒤로 물러나서 본 첫인상은 고배당에 대한 격렬한 문제제기는 철없는 감정적 반응인 것 같고, 적법한 권리 행사를 강조하는 주장은 무엇인가 ‘있어 보이는’ 주장 같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서기에는 가슴속에 남은 찜찜함이 너무 크다. 논리적으로 꼭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마치 ‘신발 속에 들어간 조그만 돌멩이’처럼 양심을 찌른다. 정말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먼저 ‘있어 보이는’ 주장의 타당성부터 살펴보자. 고배당과 고액 연봉의 결정이 경영 행위인 것은 맞다. 이사회를 통해 결정됐다면 회사에 손해를 끼칠 가능성 역시 어느 정도 통제된 것도 맞다. 왜냐하면 이사는 회사에 충실할 의무가 있고, 회사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손해를 끼치면 그것을 개인적으로 배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첫 번째 본격적인 주주대표 소송 사례인 삼성전자 소액주주들의 이건희 대표이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판결에서 보듯이, 이제는 최대 재벌의 총수조차 이런 의무를 완전히 깔아뭉개기는 어렵다.

그것으로 끝인가? 그렇지 않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이상적 이사회의 모습과 온갖 욕심에 물든 사람들이 소유하는 회사의 경영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 회사는 노골적인 불법을 저지를 수 있다. 각종 민·형사상 제재를 각오하고서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불법이 언제나 발각되거나 제재받는 것은 아니라는 실낱같은 희망이다. 그런 무모한 사주가 과연 있을까? 물론 있다. SC제일은행의 경우를 보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6일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SC제일은행 법인은 물론 부행장 2명을 비롯해 임직원 31명에 대한 제재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SC제일은행에는 기관 주의와 함께 과태료 450만원이 부과됐고, 임원 5명은 중징계, 직원 19명은 경징계를 받았다. SC제일은행이 이처럼 도매금으로 징계를 받은 이유는 은행법상 은행이 취급할 수 없는 이른바 ‘메탈론’(귀금속을 사들여 기업에 빌려주고 수익을 나눠갖는 영업)을 거래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SC제일은행은 메탈론 거래가 적발될 것을 우려해, 수익금을 SC 본사 계정으로 옮겼다가 감독 당국의 지적을 받고 다시 되돌렸다. 이뿐만 아니라 SC제일은행은 ‘MR 계정’이라는 그룹지원 공동경비 계정을 만들어서 SC그룹을 지원하다가 문제가 되고 있다. 회계 부실은 징계받는 단골 메뉴다. 은행에서 회계 부실이라니!



단기 이익 그 자체를 위해 회사의 영업 기반이나 성장잠재력을 당장 현금화하는 것이다. SC제일은행의 경영진은 그동안 44회에 걸쳐 연수원과 전산부 등 104건의 자산을 매각해 총 3600억원의 엿을 바꿔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27개 영업점을 폐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적법 자본 검증되지 않은 론스타

다음은 좀더 교묘한 술책이다. 단기 이익을 위해 회사의 영업 기반이나 성장잠재력을 당장 현금화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님이 아끼는 골동품을 엿장수에게 가지고 가서 엿으로 바꿔 먹는 것과 같다. 이처럼 엿 바꿔 먹은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미안하지만 SC제일은행을 한 번 더 보자. SC제일은행의 경영진은 그동안 44회에 걸쳐 연수원과 전산부 등 104건의 자산을 매각해 총 3600억원의 엿을 바꿔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27개 영업점을 폐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실경영을 통제하고 군살을 빼려는 경영합리화 의도였을 수도 있겠으나, 단기 이익 극대화를 위해 영업 기반 훼손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외국자본의 단기 이익 경영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론스타가 지배하는 외환은행의 예가 그렇다. 외환은행은 겉으론 SC제일은행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야심찬 발전 계획을 추진하지 않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은행을 껍데기만 남기고 거덜 내는 것도 아니다. 외환은행은 비교적 잘 보존돼왔다(물론 최근에 론스타와 하나금융지주간의 거래 때문에 직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느라 영업 기반이 훼손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은 론스타의 자체 경영전략 결과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넘어가자).

론스타의 전략은 외환은행을 잘 보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배당만 쥐어짜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외환은행을 언제라도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다. 그러려고 특별히 위험한 사업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다만 배당은 투자이익을 회수하기 위해 쥐어짜는 것이다.

이런 론스타의 전략은 어떻게 봐야 할까? 혹자는 고배당 때문에 론스타를 비난하지만, 나는 그런 논의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고배당을 통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위험한 수준으로 하락하거나, 은행의 유동성이 메마른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감독 당국이 감독 조처를 통해 강제로 시정할 수 있다. 고배당이 그런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한 무어라고 찍자를 붙기 어렵다.

그럼, 론스타의 경우 무엇이 문제인가. 내가 론스타의 고배당을 문제 삼는 것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적법한 소유주가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론스타가 은행법상의 산업자본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외환은행을 지배하는 것은 불법이고 무효다. 이에 대한 검증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론스타가 주주 행세를 하며 배당을 마구 받아가는 것은 큰 문제다. 나중에 부당이익을 환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일단 외국으로 나가버린 돈을 다시 회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자본 문제 다각도로 감독해야

외국자본 문제는 모든 경제 문제가 그러하듯이 다양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소유권에 대한 의혹부터 무모한 불법, 교묘한 엿 바꿔 먹기까지 그것이 초래하는 양상은 다채롭다. 따라서 이에 다각도로 대응해야 한다. 단순히 고배당만을 문제 삼으면 외국자본은 바꿔 먹는 엿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대응할 게 뻔하다. 그것보다는 ‘좋은 외국자본’을 가려내 소유를 허락하고, 이후에도 계속 ‘좋은 행동’을 하는지 열심히 감독하는 교과서적 해법이 오히려 정답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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