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는 199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핵심적인 논란거리 중 하나였다. 민영화 성공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겪은 민영화 부작용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199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살 때, 서울의 지인이 급하게 신간을 부탁해서 특급우편으로 책을 부친 적이 있다. 2만원 정도 했다. 그 뒤에 물가가 좀 올랐지만, 무엇보다 프랑스의 우체국이 민영화됐다. 2년 전, 파리에서 급히 미국으로 추천서, 즉 종이 1장을 특급우편으로 보낼 일이 생겼는데 그 비용이 8만원이라서 놀란 적이 있다. 정부의 예산 부담이 좀 줄어들었겠지만 선진국의 우편 서비스라고는 믿기지 않게 비쌌다. 민영화이기는 한데 이게 현 정권이 주장하는 것처럼 ‘선진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선진화’라는 이름의 민영화 논리
국제적으로 민영화의 폐해를 얘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게 ‘블랙아웃’으로 불리는 대규모 정전 사태 같은 것이다. 수익성 위주로 발전회사들이 움직이면, 돈이 되는 분야에만 투자하거나 기본 운영경비만 대고 수익을 올리기 시작한다. 당연히 유지·정비나 외곽 지역에 대한 신규 투자에 소홀하게 되고, 이렇게 노후 설비가 늘어나면 정전은 피할 수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민영화된 발전회사인 도쿄전력을 정부가 제어하기 힘들어서 애먹는 상황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한국에도 올해 단전 사태가 있었다. 시장도 실패할 수 있고, 정부도 실패할 수 있다. 한국의 단전은 아무리 봐도 비전문가일뿐더러, 행정이 아니라 ‘보은’을 목적으로 한 대통령 친구들과 교회 인사들을 단체장으로 너무 많이 내려보내다 보니 행정 공백이 생겨 발생한 제도 실패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민영화 논리를 들이댈 때 보통은 공기업 같은 행정행위 혹은 경제행위가 주요 대상이 된다. 특정 지역이나 시설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인천공항의 민영화는 관리 기관에 대한 민영화이며, 동시에 정부가 보유한 시설물에 대한 민영화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민영화는 좀 익숙한 종류이다. 민영화가 실익이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공공부문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것인가, 이런 경제성을 중심으로 문제가 벌어지게 된다. 낙후된 지역에 전기를 보급하거나 고립된 지역에도 택배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면 공기업으로 계속 운영하는 것이고,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정권이나 국가는 민영화하게 된다.
제주도의 중문단지는 정부가 전두환 시절에 민간인들의 토지를 저렴하게, 그리고 강제로 수용해서 만든 국가 관광단지다. 골프장과 부지로 구성됐고, 제주도의 여러 관광단지 중에서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고 아직 원안대로 개발사업이 채 끝나지 않은 곳이다. 여기에 현 정부가 ‘선진화’라는 이름의 민영화 논리를 들이대며 민간에 매각하겠다고 나선 것이 이 사건의 기본적 개요다. 여기에는 그냥 회사와 시설물을 민영화하는 것과 달리, 공유지를 민간에 매각하는 조금 다른 문제가 개입하게 된다. 공유지를 민간에 넘겨주면 기본적으로 공시지가와 실제지가가 벌어지는 시세 차익, 이 경우 보수적으로 잡아도 4배 정도의 이익이 발생한다. 이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게다가 이건 공유지, 즉 토지 개념으로 이곳에 이미 다른 민간 회사들이 호텔 등의 시설물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도로와 용지 등 기본 인프라 관리를 하고 다른 회사들이 영업하는, 전형적으로 정부와 민간이 복합적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이곳의 도로 관리 등 기본 관리를 민간이 맡게 되면 민간 회사들 사이에 갈등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새로 용지를 구매한 곳은 자기 시설을 설치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도로와 편의시설을 정비함으로써, 다른 업체들에 상대적 불이익을 줄 수밖에 없다. 그게 수익성의 논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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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건가
정부가 민영화를 추진할 때, 한국의 경우는 특혜 논란이 불거진다. 현 정부가 인천공항 등 민영화를 추진할 때마다 여론의 벽에 부딪힌 것은, 그들이 내세운 ‘공정사회’와는 좀 거리가 멀게 친인척 혹은 종교계열 회사에 부당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일방적으로 제공한다는 의심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제주 중문단지 민영화가 특혜라고 의심받는 것은, 이렇게 입찰만 받아도 떼돈을 벌 수 있는 사업에 이 지역에 자기 호텔을 가진 삼성·롯데·현대 같은 대표적 건설사들이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한 차례 유찰됐는데, 그게 시민단체나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 아니라 단독 입찰 형태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뭔가 수익성인 경제성 그리고 투명한 행정 절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생태적 눈으로 보면, 제주의 중문단지나 경주의 보문단지 등은 정부가 관리하고 그 안에서 제도적 효율성을 찾아가는 편이 고밀도 개발과 골프장 난개발이 예상되는 민간 매각보다는 낫다. 그리고 언젠가 다음 세대가 이 땅을 또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경우, 예를 들어 생태관광이나 슬로관광 등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할 경우 민간에 매각됐을 때는 다르게 시도해볼 가능성이 없어진다. 회사야 민영화했다가도 필요하면 다시 공공기관으로 바꾸면 되는데, 공유지인 토지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이미 개발돼서 망가진 곳을 원래대로 회복시키기란 어렵다. 이걸 ‘비가역성’이라고 한다. 한번 팔아버리면 되돌리기 어려운 공유지와 국유지를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려고 민간에 매각하는 것을 선진국이 되는 길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 식이면 중남미 국가들은 벌써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 뒤에 해도 늦지 않아
나는 민영화에 이념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영국에서는 민간 관리가 시작되면서 발전소 해체 때 비용 등이 주가에 반영되면서 오히려 원자력발전소 증설에 시장가격이 반영돼 사회적 합리성을 찾아가기도 했다. 정부가 껴안고 있어서 좋은 경우도 있고 나쁜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중문단지 매각의 경우는 생태적·경제적으로 특혜가 아니고는 설명되지 않고, 장기적 합리성도 이해되지 않는다. 주가 시세를 살펴야 하는 다른 민영화와 달리, 중문단지는 그럴 위험도 없기 때문에 진짜로 매각해야 한다면 그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합의될 때 해도 좋다. 지금 이렇게 조급히 민영화하는 것은 선진화가 아니라고 본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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