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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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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온도, 티파티도 아닌 상상력

자유주의 vs 보수주의 넘어 “서로 돕는 자본주의” 외치는 미국 시위…
케인스와 폴라니의 영감을 21세기에 실험하는 정치·경제·문화 네트워크 혁명
등록 2011-10-13 11:07 수정 2020-05-03 04:26


다양한 시위의 경향 중에서 한 시위 참가자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자본주의”가 싹터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준다.

미국 월가 점령 시위는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새롭지 않은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난 세계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낡은 이분법을 넘어 새로운 체제로의 긴 이행이 시작된 징후로 이 시위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빌 게이츠처럼 ‘창조 자본주의’로 부를지, 제러미 리프킨처럼 ‘탈중심의 자본주의’로 부를지, 아니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처럼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로 부를지는 열린 과정이다.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의 맹아

난 이 시위와 안철수 현상이 있기 전 에 쓴 칼럼에서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이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자유주의를 요구하는 한국의 미묘한 이중적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제 좌파들도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협동조합 사회주의 같은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제언했다. 마침 내한한 진보 석학인 프레드 블록은 현 지구적 위기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이분법을 넘어선 케인스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같은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뉴욕으로 떠나는 그를 공항에서 배웅한 뒤 뉴욕 월가 점령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이 시위는 긴 안목으로 보면 참가자들의 다양한 의도를 떠나서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의 맹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간 수십 년간 미국에서 주요한 사회운동은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주로 무브온 대 티파티의 대립이었다. 전자가 미국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자유주의자들의 운동이라면, 후자는 이를 퇴행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보수주의자들의 시위다. 무브온류의 시위는 탄핵 위기의 빌 클린턴을 구출했고 바보 같은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으며 중도주의자 버락 오바마를 당선시켰다. 반대로 티파티류는 미국 근대를 복고적으로 퇴행시키는 뉴라이트 운동을 전개했고 강압적 패권 제국을 추구했으며 시장과 종교의 근본주의를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럼 이번 시위는 무브온 계열인가, 티파티 계열인가?

하지만 항상 두 계열만이 대립한 것은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0년대 뉴딜은 당시 케인스의 지적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시장을 공동체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의 상상력의 소산이었다. 그것은 단지 일국적 운동이 아니라 지구적 투기 금융의 운동을 제한하는 비판적 세계화 운동이기도 했다. 이때 운동의 동력은 무브온이 아니라 더 급진적인 민주주의 운동과 정당에 기반한다. 지금은 모두 잊었지만 당시 뉴딜 민주당의 지역 조직은 오늘날과 달리 매우 진보적 풀뿌리가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 운동은 넓게 보면 이후 1960년대의 사회운동과 시애틀에서의 비판적 세계화 운동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하지만 1960년대 운동은 소수자 힘의 한계로 정당을 더 진보적으로 개혁하지 못하고 오히려 박근혜류의 보수주의자인 리처드 닉슨에게 1968년 정권을 넘기거나 쿨한 소비주의 자본주의의 원료로 작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시애틀 시위는 강렬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제어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새로운 무기, 소셜네트워크

한동안 미국인은 이 흐름을 망각한 채 오바마를 통해 무브온의 꿈, 아메리칸드림의 꿈을 추구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았기에 단순하게 복고적으로, 정치공학적으로 뉴딜 정치를 연구했으며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같은 기득권 체제와 타협했다. 중요한 것은 케인스의 사고를 폴 크루그먼이나 낡은 좌파들처럼 복제하는 게 아니라 그의 상상력을 21세기 자본주의에 맞게 실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자본주의 혁신에 대한 뒤늦은 오바마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난 오바마 당선 직후 그의 좌절을 예고한 바 있다. 그리고 지금 미국 주류 지식인들은 응급처방의 남은 카드를 소진한 채 현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전망과 힘을 못 찾고 공포에 빠져 있다. 어쩌면 이 운동은 그 기나긴 탈출의 첫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브온과 오바마의 좌절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시민들은 정치적 경험을 통해 한동안 잊은 뉴딜의 원래 정신과 1960년대 운동의 전통을 복원해가는 중이다. 한국은 지금 주로 오바마 혁명(코리안드림의 회복)을 향하고 있지만 미국은 조금씩 탈오바마 혁명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이 시위가 새로운 것은 과거 뉴딜 체제나 1960년대 운동, 심지어 시애틀 시위도 가지지 못한 새로운 무기인 소셜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셜네트워크는 아직 한계도 많지만 서서히 집단지성의 창조성, 연결된 힘을 통해 새로운 연대적 문명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는 정치·경제·문화 전반의 네트워크 혁명이며 새로운 체제 이행의 주된 동력이다. 이 시위는 이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빛바랜 교과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뿌리로의 운동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 정수는 위대한 인류의 지성인 칼 폴라니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시장이냐 국가냐의 낡은 사고나 신자유주의 반대, 복지국가론의 협소한 시야를 넘어 시장과 국가를 우리 삶의 뿌리와 연대성에 긴밀히 착근시키는 것이다. 월가의 전설인 펠릭스 로하틴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 비즈니스에 사람이 빠져버렸다”( 9월10일치)고 예리한 통찰을 던진 바 있다.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은 바로 삶의 뿌리와 접속된 연대의 체제로의 과정이다.

이미 이러한 운동은 광범위하게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진행형이다. 미국에서 시장 교조주의를 넘어 은행을 분권화된 연방제에 뿌리내리려는 주립은행 운동이 일고 있는 게 그런 것이다. 협동조합과 노조, 시민운동을 연결하거나 지역화폐 운동을 벌이는 것도 그러하다. 단지 기존의 소심한 자유주의자나 교과서 좌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시위에 합류하기 시작한 미국 노조는 과거 민주당 버스 동원과 이익집단 운동을 넘어 풀뿌리 시민들과 접속으로의 새로운 운동의 기로에 서 있다. 민주당과 무브온 또한 새로운 체제로의 혁신을 사고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다양한 시위의 경향 중에서 한 시위 참가자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자본주의”가 싹터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이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준다.

단지 미국의 일이 아니다

아직 다양한 성격이 혼재한 이 시위가 자본주의 문명의 긴 이행 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기존 교과서를 넘어서는 상상력이다. 아직 너무도 미약하지만 이제 이 시위는 앞으로 수십 년간 지속될 긴 전망을 가져야 한다. 단지 오바마 재선을 넘고 기존 뉴딜 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 새로운 정당체제와 시민정치 운동, 새로운 풀뿌리 경제와 정치구조의 연방제적 실험, 새로운 지구적 연대 경제, 정치 운동과 제도로 진화해나가야 한다. 이는 그저 미국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안철수 현상도 이런 거시적 맥락과 접속할 때 비로소 내년 이후 우리는 한국판 오바마의 좌절의 가능성을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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